만사(輓詞) [ 계동 전경창 선생을 애도하며 ]
형조정랑(刑曹正郎) 정숙남(鄭淑男)
慟矣吾亡友
爲人梃世豪
朝廷倚以重
流輩仰之高
精辨爭雕鶚
風稜壓餮饕
天乎何奪速
不覺失聲呼
내 벗이 죽음에 통곡하노라.
이 벗의 사람됨은 세상에서도 뛰어난 호걸.
조정은 이분에게 무겁게 의지했고
동료들은 모두 태산처럼 우러렀네.
정채(精彩)롭기는 수리와 다투고
풍모는 철도(餮饕)를 누를 만했네.
하늘이시여! 어찌 이 사람을 급히 뺏어가십니까?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실성하였네.
[출처] 국역 계동선생문집 [國譯 溪東先生文集]
정채(精彩):
아름답게 빛나는 색채(色彩).
정묘(精妙)하고 뛰어난 광채(光彩).
철도[饕餮):
전설에 나오는, 먹는 것을 탐하는 악수(惡獸).
● 정숙하[ 鄭淑夏 ]
정의
1541(중종 36)∼1599(선조 32).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월호(月湖). 자는 경선(景善). 초명은 정숙남(鄭淑男). 한양 출신.
증조부는 고양군수(高陽郡守) 정수(鄭穗), 조부는 옥과현감(玉果縣監) 정인준(鄭仁俊), 아버지는 정건(鄭謇)이고, 어머니는 원주변씨(原州邊氏) 변사신(邊士信)의 딸이다. 처부는 풍천임씨(豊川任氏) 정간공(貞簡公) 임호신(任虎臣)과 여흥민씨(驪興閔氏) 민개(閔愷)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과 헌납을 지냈다. 1594년(선조 27)에 청주목사, 이듬해에 동부승지가 되어 의총(義塚)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우부승지·좌승지 등을 지내고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다시 이듬해 좌승지·병조참지를 거쳐 1599년에 좌승지·병조참의·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숙하 [鄭淑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