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윤리 원동력은, 개인 생활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검토해보면 알아볼 수 있다.
11. 개인 생활에 첫 번째 단계는 지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각을 통한 지각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지각이 느낌 혹은 개념이라는 중간 과정이 없이 직접적으로 의지로 전환되는 생활 영역에 있다. 여기에서 고려되는 인간 원동력은 단순한 본능이라 불린다. 우리 욕구 중에서도 (배고픔이나 성관계 등) 순수하게 동물적이고 저급한 것이 바로 이 길에서 채워진다. 본능 생활이 보이는 특이한 면은, 개별적인 지각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의지를 규정하는 양식은 원래 저급한 감각 생활에 속한다. 그런데 더 높은 차원에 지각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지각한 다음에 별 생각없이, 그리고 그 지각에 특별한 느낌을 연결시키지 않은채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있다. 규범에 따라 타인과 교제할 때처럼 말이다. 이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원동력을 우리는 예절 혹은 도덕적 예의라 부른다. 지각을 통해 직접적으로 유발되는 행위를 더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순전히 예절에 맞추어 행동하는 데에 더 익숙해진다. 이는 예절이 그 사람의 성격적 경향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12. 개인 생활에 두 번째 범주는 느낌이다. 외부세계 지각에 특정 느낌이 연결된다. 이 느낌이 행위를 위한 원동력으로 바뀔 수 있다. 내가 굶주린 사람을 보면 동정심이 우러나고, 이 동정심이 내가 행동할 원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수치심, 자존심, 명예심, 굴종, 후회, 동정심, 복수심, 감사, 경외감, 신의, 사랑, 의무감 등이 그런 느낌에 속한다.
13. 마침내 개인 생활에 세 번째 단계로 사고와 표상이 있다. 표상이나 개념은 숙고를 통해 행위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 변한 형태로 늘 되풀이되는 지각에 우리가 의지의 특정 목표를 끊임없이 연결함으로써 표상이 동기로 바뀐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아주 없지 않은 사람이 특정 지각을 보면, 그것과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했던 행위나 누군가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 행위에 대한 표상이 그 사람 의식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표상은 나중에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모범 사례로 어른거리고, 결국에는 그 사람 성격적 경향의 한 부분이 된다. 이렇게 설명되는 의지 원동력을 실질적인 경험이라 부를 수 있다. 실질적인 경험은 차츰차츰 순수하게 습관적인 행위로 넘어간다. 어떤 행위에 대한 전형적인 그림이 우리 의식 속에서 특정 생활 상황에 대한 표상과 아주 단단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경험에 근거하는 숙고를 완전히 생략하고 지각에서 곧바로 의지로 넘어갈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14. 개인 생활에서 가장 높은 단계는 특정 지각 내용을 참작하지 않고 개념으로 하는 사고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관념 범주를 원천으로 삼아 순수한 직관을 통해 개념 내용을 규정한다. 이 개념은 처음에는 특정 지각과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가 어떤 지각을 암시하는 개념에서, 달리 말해 표상에서 영향을 받아 의지로 들어서는 경우에는, 바로 그 지각이 개념적 사고를 거치는 우회로에서 우리를 규정한다. 우리가 직관에서 영향을 받아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 원동력은 순수한 사고다. 철학에서 순수한 사고 능력을 이성이라 명명하는 바, 이 단계에서 설명된 도덕적 원동력을 실질적 이성이라 부르는게 정당해 보인다. 이 의지 원동력을 가장 명료하게 다룬 사람은 크라이엔뷸이다.(<철학 월간지 Philosophische Monatsheft> 18권 3호) 필자는 이 주제에 관한 그 논설을 현대 철학, 특히 윤리학에 있어 가장 괄목할 만한 작업으로 평가한다. 크라이엔뷸은 여기서 언급하는 도덕적 원동력을 실질적 선험 인식(praktisches Apriori)이라 칭했다. 이는 직관에서 직접적으로 흘러나와 행위를 하도록 추진하는 동력이라는 의미다.
15. 여기서 명약관화한 것은, 이런 추진력은 문자 그대로 엄격한 의미에서 성격적 경향에 더이상 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내 내면에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관념적인 것이라 결과적으로 보편적인 직관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의 정당성을 행위 근거로, 그리고 행위 출발점으로 보는 즉시 나는 의지로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는 내가 의지로 들어서는데 개념이 시간적으로 그 이전에 내 내면에 있었는지, 혹은 행동하기 바로 전에 비로소 내 의식 속에 들어섰는지, 이와는 무관하다. 달리 말해 개념이 경향으로서 이미 내 내면에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 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16. 진정한 의지 행위에 이르기로는, 순간적인 행위 추진력이 개념 혹은 표상 형태로 성격적 경향에 작용할 때일 뿐이다. 그런 경우에 그 추진력이 의지의 동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