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저는 혼자 살게 된지가 20년이 넘었습니다. 나올 때, 남편이 뇌종양 수술을 하고 생활능력이 없어지니까 애들 교육도 시켜야 하겠기에 남편은 시어머니께 두고 혼자 나와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론 직장도 괜찮고 해서 아무 문제 없는데, 큰 애가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합니다. 남편은 20년 넘게 떨어져 살고, 같이 살 때도 뜻도 잘 안 맞았고 20년 동안 잘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애들 보고 아버지를 좀 모셔라 해도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고 어찌 하면 좋을런지요?
◆ 법륜 스님
본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열심히 꿋꿋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잘 살았느냐 할 때엔 인생을 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다 하더라도 인생을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 마음에 번뇌가 생기고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점점 더 삶이 고달파진다. 이걸 각오해야 합니다. 그동안 지은 인연의 과보를 이제 점점 더 받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만난 겁니다. 낳아주신 부모나,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형제와는 달리 부부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예요. 그럼 그 생판 낯선 사람하고 왜 부부가 됐느냐? 다 내 좀 편하려고 그런 겁니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든지, 생활에서 도움을 얻든지, 위로를 얻든지 또 성적인 그런 문제를 해결하든지, 애를 낳든지, 뭔가 남편으로부터, 아내로부터 도움을 얻는 겁니다. 혼자 사는 것보단 그래도 둘이 사는 게 게 낫지 않느냐 이 말은 내가 덕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도와주는 게 있지만 내심 이럼 속내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저렇게 누워있으니 남편구실도 못 하고, 돈도 못 벌고, 못 버는 정도가 아니라 병수발까지 해야 하고 이러니 나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못해졌어요. 그래서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혼자 살 수밖에 없죠. 그래서 혼자 나와 애들도 키우고 했지만 삶에 기준을 잘못 잡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남편을 보살피면서 살았어야 했다.
남편이니까 무조건 보살피라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인연을 맺어 자식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자식들 입장에선 이유야 어쨌든 아버지를 어머니가 버렸잖습니까? 그렇죠? 내 아버지를 어머니가 버렸다. 그 사정이 머리로는 이해가 돼요. 그러나 마음 깊이에는 늘 섭섭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하고 살면서, 앞으로 어머니와 뭔가 조금이라도 불만이 생기면 마음에서 이게 씨앗이 돼가지고 '그래 엄마 니는 뭐 잘 했노? 아버지 버리고 간 게 잘했나?' 이런 게 마음 속에 늘 쌓여 있습니다. 자식의 마음속에는,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이 자꾸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애써 키운 자식이지만 감사는커녕 저항을 받기가 쉽습니다.
이게 첫째 문제고, 두 번째는 남자 아이라면 결혼생활이 원만하기 어렵습니다. 여자에 대한 불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설명으로 안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 여자는 저런 거구나' 우리 엄마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무의식 속에 이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가 부족합니다. 아내를 자꾸 의심하고 갈등이 생깁니다. 그리고 딸이 있다면, 생각으로야 '난 엄마처럼 안 해야지' 하더라도 버리고 떠나는 업(까르마)이 이미 전수되었기 때문에, 자기도 남편이 어려워지면 생각과는 달리 자꾸 떠나는 쪽으로 마음의 결정이 기울게 됩니다.
지금 이제 그런 초입에 들어 있습니다. 과보가 이제 막 시작이 됐습니다. 겨울로 치면 첫 추위가 더 춥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니까.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보의 초입에 들어있지만 느끼기에는 더 어렵습니다. 사실은 앞으로 이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러니 지금 이 문제를 잘 이해하시고 과보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보다 열 배나 더한 일이 닥치더라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집에 돌아가라는 게 아니고, 우선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하십시오.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을 때 뭐라고 약속했습니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겠다 이렇게 맹세했는데, 내가 그 약속을 어겼다. 상대가 아프다는 이유로, 또 어떤 사람은 상대가 부도났다는 이유로, 상대의 성격이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상대가 뭐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어떤 이유든지 이혼을 하려고 할 땐, 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결혼 서약문에 뭐라고 돼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다 핑계에 불과하다. 내가 그 약속을 어겼구나. 병들어 누워있는 남편을 더 정성으로 보살펴야 하는데 오히려 버리고 나왔으니, 정말 내가 어리석었구나. 못된 여자구나. 이걸 깊이 돌아보고 참회(懺悔)를 해야 합니다.
후회(後悔)하라는 게 아니라, 참회하라는 겁니다. 후회와 참회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잘못한 자기를 또 미워하는 게 후회입니다. 잘못한 나를 미워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 했구나 이걸 깊이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말아야 하겠다. 이게 참회입니다. 이렇게 참회기도를 계속 해나가다 보면 내 맘속에 있는 찌꺼기들이 정화가 됩니다. 이런 찌꺼기들이 정화가 되면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따지면 질문하신 분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또순이처럼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과보를 받느냐?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는 것은 무슨 못된 짓을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쥐약인 줄 모르고 먹는 겁니다. 어리석어서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이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인연과보의 이치를 몰라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참회기도를 해서, 마음 깊이 진실로 참회가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 내 어리석음의 인연과보로구나' 이렇게 기꺼이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누가 나를 비난할 때,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괴롭지만 '아이고 내가 두드려 맞아 죽어야 하는데 욕설만 듣고 넘어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어요? 욕이 괴로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이것이 바로, 인연과보가 반드시 있는 가운데서 내가 인연과보 없는 길로 가는 도리입니다. 참 묘한 도리입니다.
출처 : 법륜 스님 <즉문즉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