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야 하나?
박 가 경
꿉꿉한 습기와 땀 냄새가 뒤섞인 체육관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들이 울린다. 거칠고 힘찬 불협화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뒤이어 타격음이 들린다. 팡팡 터지는 소리가 체육관 안을 가득 메우며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가득 채운다. 바닥 전체에 깔린 매트 위에 한 명은 복싱 글러브를, 한 명은 킥 미트(kick mitt)를 착용하고 짝을 지었다. 킥 미트는 주먹과 발차기를 막을 수 있는 손에서 팔꿈치 부분까지 보호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보호구이다. 복싱 글러브 낀 사람이 킥 미트를 향해 주먹과 발차기를 날렸고, 그것을 잡는 사람은 온몸에 힘을 주어 이를 받았다.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알바생 친구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추천해 준 무에타이를 배운 지 삼 개월째다. 무에타이는 천 년가량 이어진 태국 전통 무술이다. 실제 전장에서 맨손으로 적을 무찌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고대 무술 무아이보란이 현대화된 것이다. 무에타이는 오직 주먹만 사용하는 복싱과 다르게 주먹, 다리, 팔꿈치, 무릎 등 가능한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위협적인 기술들이 많아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글러브와 보호구를 착용하여 연습한다.
발차기 한번 주먹 한번 휘두를 때마다 불을 활활 타오르게 공기를 주입하는 펌프질처럼 심장이 끊임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숨이 가빴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왼쪽 눈과 뺨을 타고 턱에 고였다가 떨어졌다. 온몸에 열을 가득 머금고 있다가 땀과 함께 배출하기를 반복하며 ‘살이 탄다’라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내 살들! 다 타버려라!’라는 말을 거친 숨소리에 담아 구령을 내뱉으며 더 거칠게 움직였다. 동작이 끝난 후 서로에게 인사하고 물러나 단전에서 올라오는 더운 김을 뿜으며 숨을 고른다.
나의 다이어트 역사는 굴곡이 많다. 몸무게 곡선 그래프를 그리면 산봉우리를 세 번 넘는 모양이 된다.
첫 번째 산은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밥을 먹어도 항상 배가 고팠던 고등학교 때다. 그 당시 최고 몸무게까지 찌웠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 매일 수영을 하고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내 첫 다이어트이다.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했다. 먹는 걸 참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성공적인 결과에 큰 성취감을 느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하게 빼서 그런지 요요현상이 와서 다시 되돌아왔다. 뺀다고 고생했는데 찌는 건 너무 쉬워서 허탈했다.
두 번째 산은 호주에서 생활했을 때이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한 레스토랑에서 일했을 때 퇴근 때마다 매일 피자 한 판을 포장해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맛있으면 0칼로리라고 했는데 내 생애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했다. 쭈그려 앉아서 신발 끈 묶기가 힘들다는 걸 처음 느꼈다.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조건 굶지 않고 식단을 짜고 유산소 운동과 근육 운동으로 나누어 계획했다. 운동 시작과 마지막은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하고 중간에 근육 운동을 했다. 단백질과 칼로리 낮은 채소 위주로 식단을 짰다. 이때 먹은 삶은 달걀을 생각하면 온몸에 달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번 다이어트도 20kg 감량을 하며 성공했다. 성공한 비결은 주변 지인들 덕분이다. 같이 달려주신 분이 계셨고, 전직 헬스 트레이너셨던 분도 계셔서 근육 운동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를 악물고 다시 찌우지 않고 평생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일 년에 걸쳐 뺀 결과이다. 타국에서 쾌거를 이뤘고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지냈다.
세 번째 산은 공부한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을 때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순이로 지냈다. 활동을 멈춘 몸은 영양분을 개미가 겨울 준비하듯 차곡차곡 지방으로 저장했다. 다시 최고 몸무게로 되돌아갔다. 지방은 최대한 붙을 수 있는 곳에 다 붙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고통의 날들을 보낼 생각을 하니 몸이 젤리처럼 바닥에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소개받은 것이 무에타이이다. 평소 검도나 태권도 같은 무술 하나를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무에타이를 배우게 되었다. 어설펐던 무술 동작들이 연습을 통해 제대로 나왔을 때 쾌감을 느끼고 서로 짝을 지어 운동하는 것이 즐거웠다.
몸무게의 굴곡을 겪으면서 다이어트를 왜 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날씬한 몸을 선호하는 분위기에 떠밀려 내 몸에 만족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TV에 나오는 예쁘고 날씬한 사람을 향한 동경과 딸이라고 살찌는 것에 민감한 어머니, 주변에서 살 빼면 더 이쁠 것 같다는 말 등 여러 이유가 다이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살찌면 옷맵시도 좋지 않고 입을 옷도 한정되어 옷 사는 것도 두려워지고 내 몸에 대해 자괴감도 든다.
누가 옷 사이즈의 기준을 정했는지 체중계를 만들었는지. 몸은 본능대로 나중에 재난 상황을 대비해서 영양분을 내 몸에 축적하려는 것뿐인데. 주변에 미(味)의 욕구을 자극하는 산해진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행복한 시대에 태어났을 뿐인데. 미(美)의 기준은 높다.
건강을 위해서 누군가 정해 놓은 표준 몸무게로 살아가길 권장한다. 건강의 기준을 몸무게로 맞춘다면 오히려 정신적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하지 않을까?
이번 무에타이를 시작하면서 살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체중 관리는 나의 체질에 맞게 하는 것이라면, 굳이 살을 빼야 하나? 무에타이를 통해 정신적 건강 찾고 자연스럽게 몸에 축적된 지방을 운동을 통해 소비하도록 둘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은 먹을 거고 다이어트로 몸을 혹사할 일 없이 주변 말에 흔들림 없이 내 몸을 사랑하고 아낄 것이다.
첫댓글
가경 파이팅! 건강조심하고 내 몸을 사랑하고 아껴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