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에 있는 연인산(1,068m)은 해마다 한번씩은 찾습니다. 연초록의 입사귀들이 초록색으로 짙어지기 전에 일정을 잡습니다. 계절의 여왕(女王)이라는 오월 초순 첫번째 일요일입니다. 이 때는 해충(害蟲)들이 입사귀를 갉아 먹기 전의 완전한 무공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승차하여 한 시간 전후에는 가평역에 도착합니다. 승객 대부분이 산객들이며 일시에 뛰여들어 자리다툼으로 아수라장이 되지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기본적인 질서나 매너는 찾을 수 없습니다. 통로에도 주저앉는 것은 보통이며 음식까지 주고 받으며 박장대소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은 배차간격을 일요일이나 공휴일만큼은 줄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위짜추 씨모우 조단서 까토나 오늘은 네명만이 함께 합니다. 연인산 산행이 지기(知己)들에게는 조금은 힘에 부치는 등산로이기도 하지요. 연인산 입구에서 버스를 하차하여 폐교(閉校)가 된 백둔초교 방향으로 향합니다. 해 마다 이곳을 통과하곤 했지만 스쳐 지나기만 했는데 오늘은 자그마한 동상이 발길을 멈추게합니다.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 외마디 절규로 부모와 형 동생 두명 온 가족이 무장공비에 의해 무참히 몰살되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발생합니다.1968년 11월2일 강원도 평창군 계방산 기슭에 있는 이승복군의 집에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겨우 열살배기 어린아이의 입이 찢기우고 가엾은 짧은 생이 그 순간으로 전부입니다. 형과 아버지는 중상(重傷)으로 목숨은 부지했으나 죽음만도 못한 더 한 아픔만이 남았습니다. 비명(悲命)에 스러져간 어린이 이승복기념관이 설립됩니다. 반공교육(反共敎育)의 모델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폐교가 된 백둔초교에는 이승복어린이도 폐기(閉棄)가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숱한 세월의 온갖 먼지가 뒤집어 씌워져 있으며 받침대도 흩어져 버린 폐물로 보일 뿐입니다. 글씨마저도 희미하게 이승복 학생의 이름만으로 확인이 됩니다. 학교 정문이었던 왼쪽 귀퉁이에 버려진채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씁쓸한 마음만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저 앞서 가는 지기들의 발걸음을 서둘러 쫓아갑니다. 다음 이곳을 찾을 때는 한송이의 꽃이라도 바쳐야겠다는 어설픈 다짐을 하면서 말입니다. " 까아악 까아~악 까~아 악 " 산속에 울려 퍼지는 까마귀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하늘에 치솟고 있습니다. 계곡 구비구비로 흐르고 있는 청아한 물소리는 예전과 같이 노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풍덩 빠져 보고픈 생각은 굴뚝 같으나 혹여나 물이 오염될까봐 물고기에 상처를 주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장수고개에서 잠시 배낭을 풀고 자리를 잡습니다. 역시나 간식시간은 마음과 몸이 가벼워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갈증과 허기를 달래주고 채워줄 뿐 아니라 스스럼 없이 튕겨져 나오는 너스레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정상(頂上)을 뒤로 하고 노적봉 이정표 방향으로 급하게 틀어지는 등산로로 올라섭니다. 주위에는 단풍취를 비롯한 원추리 우산나물 다래순 두릎 철쭉꽃 송화 등이 싱싱하고 향긋함으로 노객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구나무산 가기 전에 좌측 능선으로 꺽어서 내려갑니다. 산객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이곳은 언제나 우리들만의 음치들의 합창길이 되곤합니다. 땡소리에도 거침없이 목청만은 더욱 커지며 박자 음정은 떠나버린지 오래입니다. 배꼽춤으로 허리가 끊어질듯 웃어대지만 엔돌핀은 말초혈관까지 팍팍 방출되고 있습니다. 연인산 펜션마을로 이어지는 계곡은 노객들에겐 방심은 금물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낭떠러지의 산행길은 아차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수혜자가 될런지 모르니까요. 발목을 덮는 낙엽에 미끄러지기는 다반사이며 돌부리에 걸리고 나무뿌리에 채이며 네발로 기기도 하면서 온 몸은 땀으로 휘감기고 있습니다. 오전 10시 30여분 부터 출발한 시간은 오후 네시 반이 되서야 펜션마을 입구에 내려섭니다.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택시를 콜하여 가평역 근처의 손두부 맛집으로 들어섭니다. 오후 다섯시에 대바기와 회식 장소에서 합류하기로 했으므로 입니다. 솥뚜껑 두부구이와 콩비지탕에 씨원한 알콜의 완샷은 언제나 별미 중에 특선메뉴입니다. 곁들여 터져나오는 권주가에 온갖 시름은 나래를 접어 공중에 떠 버립니다. 언제나처럼 노객들에게는 오로지 평안하고 홀가분한 즐거움만이 가슴속을 일렁이고 있습니다. 신록의 향기와 연인산의 기(氣)를 배낭 가득히 채웠음에 더 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등산의 맛에 취하고 권주가에 젖은 몸을 전철 속으로 몸을 맡깁니다. 망우역에서 추가되는 알콜의 향취를 흡입하며 살아 있음에 산행할 수 있음에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황혼에 젖어 버리고 있는 노구(老軀)라지만 용암처럼 흘러 넘치는 사랑의 용트림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 옛날 무명산(無名山)이던 이곳에서 사랑의 원혼(怨魂)이 되어 스러져 버린 젊은 남녀가 있습니다. 그토록 애닮은 사랑의 아픔을 오늘밤 이 노객의 꿈 속에서나마 풀어볼까 합니다. 그로해서 여기를 찾는 모든 연인(戀人)들에게 사랑의 꽃이 활짝 피는 진정한 연인산(戀人山)으로 거듭나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