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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고대의 흔적과 현대의 최첨단 유행이 공존하는 이탈리아
고대의 화려한 전통과 유물을 간직하며, 현대의 최첨단 패션과 유행을 잘 융합시키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럽 대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장화처럼 뻗어 나와 있다.
◈ 수도 : 로마(Rome, 280만명)
◈ 인구 : 6,239만명(2021)
◈ 기후 :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 면적 : 302,072km2(한반도의 약 1.5배)
◈ 주요도시 : 로마(Roma), 밀라노(Milan), 나폴리(Napoli)
◈ 언어 : 이태리어
◈ 종교 : 카톨릭(85.7%), 정교회(2.2%), 이슬람(2%), 개신교(1,2%)
로마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곳으로 쥴리어스 시저 등이 활약한데 이어, BC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시작된
로마 제국은 그 뒤 아프리카 북부는 물론, 중동과 영국에까지 손을 뻗치는 큰 제국을 이루었다.
4세기 말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세계 종교로 전파시켰다. 15세기에는 높아진 시민 의식과 귀족들의 비호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으며,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분열된 국토는 1861년에야 통일을 보았다.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자리 서게 됐으며, 2차대전 뒤에는 자동차 공업, 패션 산업, 관광 등으로 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공업이 발달해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가 공존하고 있다.
지리
유럽대륙으로부터 지중해쪽으로 긴 장화 모양을 하고 있는 길이 약 1,170㎞의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반도와 시칠리아섬, 샤르데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302,072㎢로 한반도의 약 1.5배정도이며, 지와 구릉이 많고 평야는 전국토의 1/5정도 밖에 안된다.
지반이 불안정하여 지진이 잦으며, 시칠리아섬의 에트나산은 유럽 최고의 화산으로 화산운동을 하고 있는 분화구와 900여개가 넘는 기생화산이 있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서쪽은 시칠리아․사르데냐섬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아드리아 해에 면해 있다.
기후
이탈리아는 4계절의 변화가 분명하지만,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기후보다 약간 덥다. 그러나 북부지역은 아페니뇨 산맥의 영향으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균기온은 15.3캜정도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600-1,000mm로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증가한다. 강수일수는 계절적으로 편중되지는 않았으나 주로 가을에 많이 내리며,
여름에는 햇볕이 강렬하나 습기가 없어 지낼만하다.
사회문화
공용어는 이탈리아어며 국경 주변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사용하는 곳도 더러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지의 식당이나 상점, 호텔등 에서는
영어가 통용되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국교는 로마 카톨릭교도로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며 결혼식, 장례식 등이 대부분 교회에서 행해진다.
이탈리아는 지방별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지금도 각 도시별로 통일성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방을 이동할 때마다 이탈리아의 특색있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밀라노(MILANO)
해발 122m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예로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현재도 19세기 후반에 발전하기 시작한 근대공업으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우리에게 밀라노 패션쇼로 익숙한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두오모 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 유명하다.
밀라노의 중심가는 두오모 광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와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은 거대한 아케이드로, 전통있는 유명한 카페와 부티끄가 줄지어 있다. 이 곳에서는 또한 연중 수많은 전시회가 열린다.
▶ 밀라노의 기후
구 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평균기온 (°C) | 0.9 | 2.9 | 6.7 | 10.7 | 15.2 | 19.0 | 21.5 | 20.8 | 17.4 | 11.9 | 6.2 | 1.8 |
최고기온 (°C) | 5.7 | 8.2 | 12.5 | 17.0 | 21.3 | 25.1 | 28.0 | 26.9 | 23.4 | 17.6 | 11.0 | 6.7 |
최저기온 (°C) | -3.9 | -2.3 | 0.8 | 4.5 | 9.1 | 12.8 | 15.0 | 14.7 | 11.3 | 6.2 | 1.3 | -2.9 |
평균강수 (㎜) | 51 | 60 | 88 | 125 | 124 | 88 | 64 | 88 | 68 | 84 | 105 | 51 |
☞ 두오모(Duomo)
시내 중심에 있는 이 광장을 축으로 1-2km 안에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으며, 시당국의 계획으로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가 조성했다. 중앙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비가 서 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애용된다. 두오모 대성당은 3159개의 거대한 조각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00m 높이의 유리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길이 157m, 높이 108.5m로 바티칸의 산 피레트로 사원에이어 세계적으로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
두오모 광장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밀라노의 영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명령에 의해 다빈치, 브라만테등의 참여로 1450년에 완공되었다. 비스콘티가의 거성으로 지어졌으며 성의 내부는 고고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임종하기 3일 전까지 작업을 했고 지금은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는 대작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보관되어 있다.
☞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칼라 극장은 아쉽게도 2005년까지 수리중으로 공사에 들어가서 폐쇠될 예정이다.
1778년에 세워졌으나 제 2차 세계 대전때 파괴되어 1946년에 재건되었다. 19C 이후로 푸치니, 로시니, 베르니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이 초연되었다.
베니스 (Venice)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로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는 동서 문물의 합류 지점이었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고 부르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가 약 30만명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있는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해상도시로 유명하다.
옛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써 발전해왔으며,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로써 번영해 왔다.
18세기말 나폴레옹에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1000년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공화국체제를 지켜오며 번창해왔으며, "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본토와의 사이에 철도다리가 세워지고 1932년에는 자동차 다리가 건설되면서 본토와의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었다.
▶ 베니스의 기후
구 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 (°C) | 7 | 9 | 13 | 17 | 22 | 26 | 29 | 28 | 24 | 18 | 11 | 7 |
최저기온 (°C) | 0 | 1 | 5 | 9 | 13 | 78 | 19 | 18 | 15 | 9 | 4 | 0 |
평균강수 (㎜) | 55 | 54 | 61 | 72 | 69 | 78 | 67 | 77 | 67 | 68 | 86 | 53 |
☞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
산 마르코 성당은 비잔틴과 서방 양식의 혼합 구조로 건축되었으며, 1063-1073년에 산 마르코의 무덤을 덮는 교회로 세워졌다. 황금의 교회로 이름붙여진 성당으로 르네상스와 17C에 변형이 가해졌으며 다양한 양식으로 재건되었되었다. 특히 대리석과 모자이크의 아름다운 장식이 유명하다. 성당 앞에는 사이프러스, 칸디아,
모레아의 베니스 왕국을 상징하는 세 개의 깃대가 꽂혀있다.
☞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베니스에서 가장 멋진 건물로 9세기경, 베네치아공화국의 총독의 성으로 지워졌다고 한다. 현재에 외관으로 보이는 것은 궁전의 모습으로 14~15세기경에 북방에서 전해진 고딕예술이 베네치아의 동방적인 장식과 융합이 되어서, 독특한 양식을 탄생시켰고 이것을 베네치안 고딕이라고 불리운다.
두칼레궁전은 그 양식의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17세기에 만들어진 탄식의 다리는 그 이름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 베니스의 여러 다리들은 섬들과 도시의 여러지역들을 이어주는데 탄식의 다리 역시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과 피리지오니 누오베라는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재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한숨을 내쉬었다하여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 진 것이다.
플로렌스(FLORENCE)
이탈리아의 중부에 위치해 있며, 14-15C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이다.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인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라고 불리울 정도로 로마에 이어 역사와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11세기~16세기에 걸친 많은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세계 예술 유산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이다.
▶ 플로렌스의 기후
구 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 (°C) | 10 | 12 | 16 | 18 | 23 | 27 | 32 | 31 | 27 | 21 | 15 | 11 |
최저기온 (°C) | 2 | 3 | 6 | 8 | 11 | 15 | 18 | 18 | 15 | 11 | 5 | 3 |
평균강수 (㎜) | 70 | 70 | 70 | 80 | 80 | 60 | 40 | 50 | 70 | 100 | 110 | 80 |
☞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Duomo,Santa Maria del Fiore)
거리의 중심을 향하면 눈앞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능한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라는 말처럼 175년, 엄청난 세월을 걸쳐서 만들어진 두오모는 어떤 외진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의 일부분이 보일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성당의 광장에는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두오모는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깜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아씨시 (Assisi)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 구릉 지대에 위치한 2만 8천명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과 1208년에 설립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본부가 위치한, 중세 역사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을 인정받아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당과 수도원을 필두로 하여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로 늘 붐빈다.
☞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Papale di San Francesco)
아씨시를 방문하는 80%이상의 관광객들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보기 위해서 방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아씨시를 대표하는 곳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성인 프란체스코으 유해가 모셔저 있는 곳이다. 과거 이곳에는 공동 묘지가 있던 자리였으나, 성당이
세워진 이후, 천국의 언덕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성당에서 바라보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은 장관이다.
☞ 산타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1257년에서 1265년 사이에 지어진 산타 키아라 성당(Basilica of Santa Chiara)은 역사적이면서 영적인 중요성을 지닌 곳 중 하나입니다. 이 교회의 이름은 성 프란체스코의 친구이자 보호자인 성 클레어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그녀가 만든 가난한 자매들의 회에는 수천 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양쪽의 거대한 아치 지지대, 분홍색과 흰색 돌의 줄무늬로 지어진 아름다운 서쪽 외관을 감상하세요. 정교하게 조각된 바퀴 모양의 장미꽃 무늬 창이 성당 앞쪽 벽에 장식되어 있으며 창 옆에는 사자 부조가 있습니다.
13세기의 십자가 그림이 성가대석 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쪽 신도석 가까이에 있는 십자가상의 기도실(Oratory of the Crucifix)에는 잘 보존된 12세기 나무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성상이 부를 버리고 신과 교회에 봉헌하라고 산 다미아노(San Damiano)에서 성 프란체스코에게 교시했다고 전해집니다.
넓은 신 고딕양식의 지하실로 내려가면 성녀 클레어의 무덤이 보입니다. 그녀의 시체는 지하실 동쪽 끝에 잘 보존되어 있으며 밀납으로 얼굴이 보호되어 있습니다. 지하실 서쪽 끝에는 프란체스코와 클레어가 입었던 튜닉과 프란체스코가 자른 클레어의 머리카락 등 프란체스코의 주요 유물들을 소장되어 있습니다. 지하실은 6세기 동안 주제단 아래 숨겨져 있던 성녀 클레어의 시체가 1850년 발견되고 난 후 19세기에 지어졌습니다.
산타 키아라 성당의 입장료는 없으며 매일 운영되지만 계절별로 시간이 다르며 점심 시간에는 대개 문을 닫습니다. 아침에 성당을 방문하면 버스 투어 인파를 피할 수 있습니다. 아침 미사에 참석하면 이 성당이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종교 의식을 거행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로마(ROME)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
이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神)인 마르스와 인간인 레아실비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레무스(REMUS)와 레물루스(ROMULUS)에 의해서 건국 되었다고 한다.
태어난 후 테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를 암늑대가 젖으로 키웠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로마를 세운 시조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테베레강 하류에 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7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원의 도시'이다.
▶ 로마의 기후
구 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 (°C) | 13 | 14 | 15 | 18 | 22 | 26 | 29 | 29 | 26 | 22 | 17 | 14 |
최저기온 (°C) | 3 | 4 | 6 | 8 | 12 | 16 | 18 | 18 | 16 | 12 | 8 | 5 |
평균강수 (㎜) | 81 | 75 | 65 | 55 | 32 | 16 | 15 | 33 | 68 | 93 | 110 | 90 |
☞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4세기초 로마 최조의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으로 지어졌다. 이 성당이
로마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유는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장소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4년 이곳에서기독교를 처음 공인했으며, 이 성당은 로마 교황에게 기증되면서 최초의 교황청이
되었다.
☞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성모 모리아 대성당 /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성모 대성당 또는 성모 설지전(聖母 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로마
최고(最古)의 성당이다.
325년 교황 리베리우스의 꼼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건축하라고 계시를
내렸는데, 8월의 한여름이었음에도 실제로 에스퀼리노 언덕 부근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이에 교황 리베리우스는 431년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다. 그래서‘눈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도 불린다.
☞ 콜로세움(Colosseum)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인 바티칸 시국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곳은 전세계 카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홀륭한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 수도 : 바티칸
◈ 인구 : 약 천명
◈ 면적 : 0.44 km2
◈ 주요언어 : 라틴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 종교 : 카톨릭(Roman Catholic)
▶ 위치와 면적
바티칸 시티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 테베강 서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번에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흰색 선이 도로 위에 그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짓는 국경이다. 바티칸은 이탈리아가 19세기 들어 근대통일국가로 탈바꿈하면서 교황청 직속 교황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주변의 지역에 대해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라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토 0.44㎢의 세계에서 가장 조그만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 바티칸의 영토권은 성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로마 동남쪽 120km지점에 있는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의 교황 하계 관저에 국한된다. 영토 내에는 성 베드로 광장, 대성당, 교황궁전, 관청, 미술관, 도서관, 은행, 방송국, 인쇄국, 철도역, 우체국, 시장 등이 있다.
☞ 바티칸 박물관 (Musei Vaticani)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l,400여개의 방들이 있으며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곳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들과 회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라파엘의 방도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곳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 광장 옆길로 돌아가면 위치해 있다.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청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된 이 곳의 대부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이다.
이 곳의 소장품은 역대 교황이 모은 것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미술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의 진귀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품 중 아주 중요한 대표작만 골라 보는 데도 2시간이 걸린다. 미술관 및 박물관 개장시간은 9:00-14:00(하절기 17:00)까지이고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후레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피냐정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일방통행을 해야 한다.
☞ 피냐정원(Pigna Courtyard or Pine-Corn Courtyard)
이 정원은 1816년 Pirro Ligorio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대한 청동 솔방울 분수가 있는데, 이것은 아그리파의 욕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천정화나 최후의 심판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쌤플 그림이 걸려져 있고, 내부에서는 가이드가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 벨 베데레의 뜰(Cortile Ottagonale)
관람객이 처음으로 통과하는 곳으로, 18세기에는 클레멘스 14세와 피우스 6세가 수집한 조각들이 놓여있었다. 바티칸 궁전의 전신인 이곳은 19세기 피우스 7세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뜰의 한 모퉁이에 라오콘상이 있는데 이는 16세기초 콜로세움 부근의 티투스 목욕장 유적에서 발견된 대리석상으로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이다. 큰 뱀에 묶여 고뇌하는 모습은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Laoconte)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레오카레스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동상을 로마 시대에 복사한 대리석상인 아폴로상도 꼭 봐야할 작품이다.
☞ 회화관(Pinacoteca)
바티칸 박물관의 입구를 들어서 안뜰 오른쪽에 있다. 비잔틴시대부터 현대까지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들 중 제8실에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 '마리아의 대관''폴리뇨의 마리아''그리스도의 변용'은 꼭 관람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변용'은 라파엘의 최후 작품으로 아랫부분은 제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제9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성작 '산 지롤라모' 제12실에서는 마니엘리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카라바죠와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리스도 강가'등 찬란한 예술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라파엘의 방(Stanza di Raffello)
궁전 오른쪽 2층에 있는 4개의 방이다. 라파엘로가 이 곳의 그림들을 그릴 당시 성 시스틴 성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교황과의 의견대립으로 피렌체로 귀향했을 때 라파엘로는 아무도 입실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스티나 예배당에 몰래 들어가 미켈란젤로의 예술 기법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이 방은 '화재의 방' '서명의 방' '엘리오도라의 방'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4개의 방 중 가장 아름다운 '서명의 방'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에게 의뢰하여 그렸다는 천장화를 볼 수 있다. 이 벽화 는 라파엘이 1508-11간 심혈을 기우려 그린 것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지식과 도덕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의 대표작 '성체에 대한 토론' (1509 - 10년 제작, 너비 7.7m)과 철학의 승리를 그린 '아테네 학파'(1510년 제작, 너비 7.7m)도 벽을 마주보고 전시되어 있다.
'엘리오도라의 방'에 들어서면 오른쪽에서부터 '레오네 1세, 아티라를 체포하다' '볼세나의 기적' '신전에서 추방되는 엘리오도라' '성 베드로의 해방'이 차례로 걸려 있고 천장화로 '아담과 이브'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은 4개의 방 중 가장 크다. 여기에는 라파엘의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그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미네르바 다리의 성전)'등이 전시되어 있다.
나폴리 (NAPOLI)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See Naple and die)라던가?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전원 풍경을 느긋히 즐기면서 두시간을 달리면 평온하고 목가적인 도시 나폴리를 만난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에서 그러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폴리는 고대 그리스인이 이 땅에 온 이래 통치자는 몇번이나 바뀌었지만 남 이탈리아의 중심 대도시로 발전해 왔다. 각각의 시대의 소중한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부르폰가의 시대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San Carlo), 이탈리아의 삼대 극장중의 하나로 17세기의 왕궁 Palazzo Reale을 시작으로 대성당인 두오모, 긴역사를 가진 도시의 거리 스파카 나폴리(Spacca Napoli), 안쥬가의 누오보성(Castel Nuovo), 카포디몬테국립미술관)Museo e Gallerie Nazionale di Capodimonte),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useo Aecheologico Nazionale)등 유수의 관광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나폴리에는 2개의 섬이 있다. 카프리섬(Isola di Capri)과 이스치아섬(Isola d' Ischia)으로 나폴리만에서 페리고 1시간정도 걸리면 닿는 아름다운 섬이다.
폼페이 (POMPEI)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0,000여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베수비오는 26일 폼페이가 완전히 화산속에 덮여버리는 폭발 이전에 몇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고, 한 순간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폼페이 사람들을 고대 이집트에서 볼 수 있는 미라의 형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폼페이를 삼켜버렸을 때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높은 리조트 도시였고 농업,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BC 62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주택과 사원들을 재건해 겨우 재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BC 79년 신의 분노라고는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고스란히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 폼페이의 기후
구 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고기온 (°C) | 13 | 14 | 16 | 19 | 24 | 28 | 31 | 32 | 27 | 23 | 18 | 14 |
최저기온 (°C) | 7 | 7 | 9 | 12 | 15 | 19 | 22 | 22 | 19 | 15 | 12 | 8 |
평균강수 (㎜) | 65 | 61 | 52 | 47 | 9 | 18 | 14 | 19 | 56 | 75 | 97 | 76 |
소렌토 (SORRENTO)
"돌아오라 쏘렌토로(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가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그리고 오렌지 숲으로 쌓인 소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는 평화와 고요의 천국이다.
쏘렌토(Sorrento)는 쏘렌타인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나폴리 근처의 도시이다. 예전부터 나폴리와 인접한 해안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쏘렌토의 수공예 목조품과 치즈, 올리브유, 리몬첼로(limoncello)라 불리는 지방 특산품을 제외하고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작은 도시에서 맑은 바다빛과 카프리를 가로지르는 햇살이 비춘다.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가 여기서 태어났으며, 타란텔라가 여기서 춤을 추었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갖춘 가구와 그림 그리고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코레알 박물관도 가봄직한 곳이다.
란치아노(LANCIANO)
란치아노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250Km 페스카라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 소도시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안싸눔(Anxanum)이라 불리었으며, BC 1181년 트로이의 난민이었던 솔리무스에 의해
도시가 세워졌다.
전승에 의하면 이 도시는 로마군 백인대장 론지노(Longinus)의 고향으로 이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에서 돌아가실 때에 그분을 창으로 찍렀던 군인이다.(요한19,34 참조)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15,39)라고 고백한 백인대장과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론지노는 그리스도교로 전향하여 란치아노라는 지명은 이탈리아 말로 창이란 뜻이며, 이러한 이유로
지명이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그 후 그가 병들어 누웠을 때, 창에 묻은 주님의 피를 자기 눈에 갖다 대자마자 병이 낫는 것을 보고,
군인 생활을 포기한 뒤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박해를 맞이했다. 집정관은 그의 이를 뽑고 혀를 잘랐지만 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도끼를 들고 이교도들의 신상을 부수며 “이게 무슨 신들인가!”하고
외쳤다. 그러자 집정관은 그를 즉석에서 참수하도록 명령했다. 그의 유해는 만투아(Mantua)에 보존되어
있으며, 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산 조반니 로톤도(SAN GINVANNI ROTONDO)
산 조반니 로톤도는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Padre Pio)이 평생 계셨던 곳이자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오상의 성 비오 신부는 1887년 5월 25일 이탈리아 남동부의 베네벤토(Benevento) 대교구에 속한
피에트렐치나에서 아버지 그라초 포르조네(Grazio Forgione)와 어머니 마리아 주셉파(Maria Giuseppa
Forgione) 사이에서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출생 다음날인 2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려서부터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와 묵상을 즐겨하였다. 10살 때에
그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부모에게 말하였고, 아버지는 아들의 신학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12살 때 첫 고해와 첫영성체를 한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을의 사립 중학교에
들어갔고, 1903년 1월 6일 16세의 어린 프란치스코 포르조네는 모르코네(Morcone)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같은 해 1월 22일 수련복과 함께 비오라는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그 뒤 1907년 1월 27일에 종신 서원을 하였고, 1910년 8월 10일 23세의 나이로 베네벤토의 주교좌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번잡한 세상과는 아주 동떨어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산조반니 로톤도'가 오상의 비오 신부의 명성에 힘입어 세계적인 순례지로 성장 변모하고 있다.
현재 이곳 지하에는 성 비오 신부의 무덤이 있다. 1968년 성 비오 신부의 고행의 삶은 유명하였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위로집이라는 거대한 병원을 건립함으로써 이 작은 마을을 풍요함의 요지로 만들었다.
오르비에또(ORVIETO)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96㎞ 떨어진 팔리아강(江)과 키아나강(江)의 합류점에 있다. 해발고도 195m의 바위산
위에 위치하며, 케이블카로 오르내린다.
고대 에트루리아의 12개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뒤에 로마의 도시가 되었으며, 로마 시대 말기에는
우릅스베투스라고 불렸다. 12세기에 자치체가 될 때까지 토스카나 백작령의 중심지였다.
1448년에는 교황령이 되었다.
☞대성당(Duomo di Orvieto)
성체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볼세냐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1290년부터 300년 동안 건립된
주교좌성당이다. 13세기 보헤미아 출신 사제인 프라하의 베드로는 매일 미사 중에 먹고 마시는 성체와
성혈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의 성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오르비에토와 가까운 볼세냐의 산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그는
또 다시 의심을 품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던 중에 성체에서 피가 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그는 인근 오르비에토에 머물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Urbanus IV)에게 모든 사실을 보고하였고, 교황은
피를 흘린 성체와 피 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토로 모셔오도록 한 후 면밀히 조사하여 그 모든 것이 확실한
'성체 성혈의 기적'임을 선포하였다. 이 기적은 14세기부터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도록 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에 가면 지금도 그 피 묻은 성체포를 볼 수 있다.
오르비에토의 보석 중의 보석인 이 성체포는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축소판처럼 아름다운 성물함(1339년
제작) 안에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