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논 한필지를 팔았습니다.
저희 가족이 인천에서 살다 뿔뿔히 흩어지게 된것이 20년이 다 되어 가네요.
큰 딸은 대전으로 발령이 나고, 남편은 보은으로 발령이 났어요.
남편은 큰 아이 따라가서 밥을 해주고 지내라고 하더군요.
그러던중 큰 아이가 가족회의 소집하더니 자기 걱정은 하지말것이며. 엄마는 무조건 아빠를
따라가서 내조를 잘해야 한다고 하고, 작은딸에게는 학교에 열심히 다니라고 해서 정말 그 때
한번 더 생각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해 보아야 소용 없는 일이지만 천장을 쳐다보고
자려고 누우면 그런 생각이 더러 들곤 합니다.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원래 촌놈이기도 하고 세련 되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정말 냇가에서 다슬기 잡고 물놀이 하며. 봄이면 쑥캐고 행복하게 살았지요.
늦은 나이에 수영배우고, 자전거 배우고, 거기에다 수치침강사 까지 되었으니 뭘 더 바래야 할까요?!
그렇게 제가 이곳에서 땅을 사고 텃밭을 가꾸고, " 선생님" 소리가 귀 익어 가는동안 제 작은딸은 병들어
갔다는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려서 부터 매사에 소심하고 두려워 하던 아이라는 생각도 잊었
습니다. 대학생 씩이나 되었으니 다 잘 해야 하는것이라고, 규정을 지어 놓았지요 우우.
어두워지면 두려움에 잠을 설치고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가봐요.
학점미달로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체 저희가 집을 처분하고, 시골로 데려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직장에 다니다가 30살 되던해 신랑감이 나타나서 시집 보내 버렸지요.
제가 원체 무식하고 용감해서 마음에 병이 깊은 아이를 그냥 내치듯이 결혼 시켜버렸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네요.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아이도 두명을 낳았답니다 ㅎ ㅎ.
우리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사정을 가장 모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제법 씩씩하게 아이들을 돌보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아이옆에 조금만더 있어줄걸 그랬을까요?!!!!!!!!!!!!!!.
하지만 남편도 무척 이곳에서 자리 잡는데 힘들었습니다.
나의것이 아닌것은 언젠가 주인을 찾아 떠나가는것 같습니다. 타향은 결코 고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위로하기 위해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는데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생이란 때론 거센 풍랑처럼 밀어 부쳐야 할 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고요히
주위를 살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껴안아야 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논 판돈은 딸아이 둘에게 줄 생각 입니다.
아이들 키우느라 지금 가장 힘든 때이니까요.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부족함이 많은것이 인생이란 大 드라마가 아닌가 오늘 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수지침. 한약. 체침을 배워서 그래도 병원에 거의 다니지 않아서 작은 돈이지만 아이들에게 줄 수 있어서
늦게 나마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위드코로나시대 특히 가족을 잘 살펴 봐야 합니다.
세상이 달나라처럼 멀어진 세상!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특히 장사 하시는 분 들 너무 힘겨워 하십니다.
올해는 좀 날씨가 좋아서 강낭콩 농사를 잘 지었으면 합니다. 벌써 강낭콩이 떨어져서 오늘 마트에 가보니
보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잡곡이 나와 있는데 1회 해 먹을수 있는 분량이 9800원이나 되어 놀래서 그냥
돌아 왔습니다.
그나마 쌀이 있는것이 너무 감사하네요.
새해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첫댓글 정말 이상하네요
분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임상실에
있다니 얘야 거기서 나와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