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10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심사 결과
<수혜자 및 대상 작품>
최지인, 시 「늪지의 개」 외 9편
<심사평>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한국을 휩쓸고 있을 때 제10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응모작 최종심 심사를 진행했다.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거리 풍경은 우리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우리는 사실 평소에도 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진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 이 심사평을 쓰고 있는 시간까지는 확진자가 그다지 늘지 않았고 사망자도 없다. 하지만 하청 업체 노동자 한 분이 체불된 임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들의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연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분위기를 퍼뜨리는 한국의 주류 미디어는, 실제로 목숨을 끊게 되는 ‘노동/자본’에 관계된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조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 문학은 미디어화 되지 않는 문제를 조명하고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지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은 이러한 요청에 응답한 작가에게 주는 격려의 상이다. 올해에도 시 159명, 소설 99명, 르포 2명 등 많은 ᅟᅮᆫ들이 투고해주셨다.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열 분의 작품에 대한 토의를 거쳐 창작기금 수혜자를 뽑았다. 심사 대상은 여섯 분의 단편소설 12편, 한 분의 르포 작품 1편, 세 분의 시 작품 30편이었다. 일단 조영관 시인의 문학정신과 맞닿은 작품을 선정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기성의 문학적 관습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작품을 찾았다. 소설 작품들은 대개 완성도가 높았으나 주제가 허전하다든지 결말이 미진하거나 참신성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어떤 작품은 잘 짜여 있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본 기금에 부합했으나 다소 도식적인 구성이 문제가 되었다. 르포 작품은 현재적 의의를 갖는 과거의 어떤 사건을 서사화하고 있지만, 미완성된 작품으로 보인다는 의견과 현재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르포 작품을 기대한다는 의견이 나와 선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시 작품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어떤 분의 시 투고작들은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미 다른 문학상을 타신 그분의 투고작들이 잘 쓴 ‘모범적인 시’로 보여서 과연 이 창작기금의 성격과 걸맞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지인 시인의 「늪지의 개」 외 9편을 제10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작으로 선정했다. 최지인 시인의 투고작들은 현 젊은 세대가 자신의 시적 목소리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그에 걸맞은 형식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가 작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최지인 시인은 기성의 서정시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때 시단에서 번성했던 ‘실험’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현실 문제들을 서정적 주체의 구체적인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시에 전면화하여 드러낸다. 그는 고통이나 고뇌를 미학적으로 승화하지 않는다. 그러한 승화는 그 고통과 고뇌 자체가 가진 거칠고 생생한 질감을 제거할 수 있다. 그의 시편들은 젊은 세대가 겪는 현실상황과 경험, 그리고 고뇌를 날것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래서 질서가 없고 산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산만함이 현 젊은 세대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유한 경험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의 독자적인 시학이 되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학이 최지인 시인의 시편들이 현실 문제를 시화하는 데에서 빠질 수 있는 상투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서정적 주체의 솔직함, 소수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가는 자세는 심사자들에게 미더움을 줬다.
수혜자로 선정된 최지인 시인에게 축하의 인사와 더불어 좋은 시를 투고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더욱 굳건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정글 같은 한국 현실을 헤쳐 나가면서, 깊고 먼 곳까지 시의 길을 걸어가시라는 말씀을 감히 드려본다. 응모한 다른 모든 분들께도 고마움과 아쉬운 마음 전달하고 싶다.
(심사위원: 이시백, 김남일, 박일환, 이성혁)
수혜자 약력
최지인: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이다.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를 펴냈다.
수혜 소감
조영관 시인을 기리는 창작 기금을 수혜하게 되어 기쁩니다. “죽도 밥도 안 되는 시”를 보듬어주신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운영위원회’ ‘노동자시인 조영관추모사업회’ 모든 관계자분과 심사위원이신 이시백 소설가, 김남일 소설가, 박일환 시인, 이성혁 평론가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사람의 이름만 나열하여도 백지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만큼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함께 문학을 하는 한국의 선후배 작가님들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계속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시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안다 시인과 최백규 시인 덕분에 첫 시집과 동인 시집을 묶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끝없이 질문하며 세계를 바라보았고 찰나의 밝은 것들을 시로 적었습니다. 형제 같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제가 날 때 아버지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어머니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청춘을 다 바쳐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때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부모만큼만 하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에겐 스승이 많습니다. 모자란 탓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대학 시절, 시간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김근 시인과 이경수 평론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습니다.
이번 응모작의 초고를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은 박화수 씨입니다. 좋은 편집자를 반려자로 둔 것은 제게 분명 행운입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기꺼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언제나 당신의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고 조영관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많은 사람이 도와주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정직하게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