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자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수혜자: 김수(본명: 김혁지)
*수혜 작품: 단편소설 <어둠의 공간> 외 1편
*심사평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극복하는 여타의 재난과 달리 사람을 매개로 하는 이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전화시킨다. 사람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어디로도 손을 뻗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가 다른 재난에 비해 더욱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난의 시기에 문학이 더욱 필요한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저 너머에 우리와 동일한 통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11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에 시 부문 150명, 소설 부문 91명, 르포 2명 등 총 243명이 작품을 응모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된 작품들은 시 부문에 응모한 3인과 소설 부문에 응모한 3인의 작품들이었다. 각각의 작품 모두 심사위원들의 요구수준을 충족하는 고유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로서 동일한 기준으로 선후를 가리는 것이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그러므로 최종 선정의 과정은 작품의 우열이 아니라 어느 작품이 더 조영관이라는 이름에 적합한가를 찾는 여정이었음을 미리 밝힌다.
오랜 시간의 숙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소설 부문에 응모한 김수의「어둠의 공간」외 1편을 제 12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의 수혜작으로 선정했다. 많은 수의 돼지를 밀집하여 사육하는 비인도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과, 그에 못지 않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그린「어둠의 공간」은 소재에 대한 심도 깊은 취재와 속도감 있는 문체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새끼 돼지들이 도살당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가지게 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것들의 이면에 가려진 희생들을 소설의 형식을 통해 직면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 어딘가를 불편하게 한다. 건설노동 현장의 주류가 된 중국동포와 한국인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겨울비」또한 노사갈등이라는 기존의 도식을 따르지 않고 서발턴 사이의 갈등을 다룸으로써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노동현장의 불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수혜자로 선정된 김수 소설가에게 축하를 보내며 훌륭한 작품들을 통해 시야를 넓여 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 다른 장소에서 반드시 그 작품들이 빛날 것이라 믿는다.
*수혜 소감
입춘 다음날 오솔길을 가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그날 이곳 항구 도시 부산도 조금 추웠습니다. 무심코 바라본 마른 덤불 사이로 들풀들이 올라와 있더군요. 작은 무리를 지어 엉킨 들풀이랑 혼자 나앉은 냉이도 보였습니다. 의연한 태로 봐선 날이 꽤 지난 모양새였습니다. 아! 들풀들은 독한 겨울 냉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살아나는구나. 이 단단한 겨울 땅을 헤집고 솟구치는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간 싹을 틔우고 나온 푸른 들풀들을 보지 못했을까. 혹여 들풀들이 여기서 겨우내 시름시름 앓으며 견딘 건 아닐까.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펐습니다.
봄은 질긴 들풀 내음을 이끌고 어느덧 바짝 다가오는데요. 어디로도 볕이 들지 않아 봄을 잃어버린 사람들. 비정한 도시의 지층 밑에 깔린 그들은 아무리 몸을 들썩여 헤쳐 나가려 해도 무망합니다. 힘겹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간들 출구가 없으니까요. 자꾸 그러다 보면 자포자기하게 되는 거죠. 소모적인 사회 적응 회로에서 밀려나 심신이 병들어 지쳐 버린 사람들…. 당분간, 어쩌면 지속해서, 저는 그분들 이야기를 담아낼 작정입니다. 그 세계에 소속된 저를 소환하는 것이지만 빚지는 마음이 덜한 건 아닙니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그쪽 어떤 분들에겐 늘 빚을 지는 기분입니다.
이번 창작기금 응모 과정과 수혜 통보를 받고 노동자 시인 고 조영관님의 연보를 차분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동안 조건 반사적으로 절망하고 주저앉은 제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부 사회에선 ‘불가촉’으로 낙인찍힌 노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낙인 때문에 끝내 주저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표현의 통로를 얻은 이상 제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쓸 생각은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글을 쓰는 행위는 아픔에 대한 공감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엔 글쓰기에 조금씩 상징적인 요소를 가미하려고. 미력하나마 그 지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빈약한 표현력을 끌어올리려는 고민이 비로소 시작된 것 같습니다. 열정을 믿어 보지만 역량이 부족해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빨리 사유의 폭을 넓혀 정제된 문장으로 현실을 녹여 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마음이 들떠서 책을 읽어도 와 닿지 않으니 걱정입니다. 저에겐 절망뿐이었던 2019년 늦가을 무렵이 회상됩니다. 그때 작가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한국소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지평에 도전할 길을 열어 주신 ‘조영관 창작기금’ 운영진과 심사위원 선생님 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에 응모한 글이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저 자신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일층 분발하라고 용기를 주신 거겠죠. 고마움 잘 간수해서 정진하겠습니다.
*수혜자 약력: 2019년 ‘한국소설’ 신인상 수상. 2020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동상 수상.
첫댓글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