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낙동강 세평 하늘길"중에
양원역과 승부역 사이의 "낙동비경길"을 마저 걷고자 했습니다.
외씨버선길 분천역까지 걷고 나서 저는 철암역까지 걸었지만
옆집(지도와 나침반) 회원님은 그렇지 못하여
해가 가기전에 마무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대를 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미 저한테 낙동비경길을 걸었다고 말씀을 하셨답니다.
선택적 기억증후군(물론 제 마음대로 정한 병명)이 서글픕니다. ㅠ
초대한 후에 집안일 하다가 다시 통증이 찾아 왔으니
아픔과 신선함의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손님은 부석사를 가시고자 했고 두어번 걸어본 길이라
안내에는 자신이 있었고 연말에 부석사와 봉황산의
기운을 받으면 고마운 일이지요.
고향집은 부석사 뒷산인 봉황산의 그림자가 석양무렵이면
드리워지는 곳이니 꽤 괜찮은 의미가 있는 걸음입니다.
제 고향 "오록(梧麓)"은 오동나무가 있는 산기슭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입니다.
봉황새는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전설의 새입니다.
오록은 봉황의 기운이 스민 곳입니다.
부석사 뒤 봉황산 너머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나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번 걸음에는 거기를 감상하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께닫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 뿐이고 마을에 발자취를 남겼으니 된 게지요.
12월 23일 월요일 아침
전 날 밤늦게까지 마오타이에 소주와 맥주를 마셨고
낮에는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었는데
역시 시골은 공기가 좋고 갖가지 시름을 내려 두고 마셔서 그런지
별 부담없는 아침을 맞았습니다.
콩나물국으로 해장아침을 챙겨먹고 길을 떠납니다.

최고 높이가 525미터로군요.
부석사가 그 즈음에 위치하고 있나 봅니다.
최저높이가 300미터인데 대략 물야장터가 아닐까 싶네요.

경북 봉화군 물아면에서 영주시 부석면을 다녀 오는 여정
손님은 시골까지 온 김에 부석사를 구경하겠다고 했습니다.
8년전엔가 한번 와보고는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부석사를 2년전엔가 한번 다녀 왔었기에
이 번에는 부석사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빙 둘러서 정문쪽 적당한 곳에서 쉬면서
손님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입장료도 3천원 정도 하는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괜스리 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고.
부석사에 다다라 동네 할머니가 보이길래 입장료를 여쭈어 봤더니
2천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최근에 5백원이 오른 거라고 귀뜸을 해주시더군요.
왠지 천원을 절약한 기분이 들어서 계획을 바꾸어 같이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뭐 혼자 구경하시게 하는 것도 손을 대접하는 게 아닌 것 같죠? ㅎ
재작년에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친구의,
부부와 같이 부석사를 찾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절구경하지 않고 바로 정문으로 가려고 하는데 굳이 입장권을 끊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로 실랑이를 하고서 열받은 친구가 다시는 부석사를 안 온다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히 친구한테 미안.
그 친구는 조상의 묘도 부석사 경내에 있어서 명절이면 입장권없이 성묘하러 가는 사람인데.
아~ 웬 걸, 매표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안쪽으로 옮겼나 보다 하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갈래길이 나왔습니다.
어? 이 지점에 매표소가 없으면 관람객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공간인데......
월요일이라 매표를 하지 않는 날일 수도 있겠다 하면서
무량수전 이정표를 찾아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정문으로 나오면서 보니까 매표소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문엔 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지금도 모릅니다만
헛걸음 해서 되돌아 와야 하는 게 싫어서 후문쪽 매표소까지 가지 않고
저만 바로 우횟길로 갔더라면 배아플 뻔했습니다.
집에서 부석사 후문 매표소까지 7.5킬로미터 쯤 됩니다.

화려한 단청없이 투박하고 담백한 누각통문이
천오백년을 이어온 가람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낭중지추!

또다른 누각통문 안양루를 배경으로


무량수전
법당앞 석등과 법당안 아미타불 그리고 무량수전 모두 국보입니다.
그 전에도 그랬었고 이 번에도 가보지는 않았던 조사전도 국보이니
부석사에는 국보가 네 개나 있습니다.
혹시 더 있으려나?
조사전은 의상대사를 모신 곳입니다.
지팡이를 심었는데 거기서 은행나무가 자랐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바짝 말랐을 은행나무 가지에서 잎이 자라고 꽃이 폈을 리는 만무지만
마의태자의 용문산 은행나무도 그렇고 은행나무가 단골이네요.
지팡이를 꽃아서 나무가 자랐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만
신비로운 곳에 신성한 기운이 깃들었을 것이라 여겨봅니다.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가 생각납니다.
길동무께서 아주 명문이라고 읽어 볼 것을 권하시네요.
무량수전 기둥의 배가 불룩하고 위로 갈수록 홀쭉합니다.
웬 멋을 저렇게 내셨나?

이중환의 택리지에, 실을 넣어서 통과시키면 바위에 걸리지 않으니
공중에 떠있는 돌이라는 뜻의 "부석(浮石)"이 보입니다.
뒷쪽은 붙어있고 아마 앞족이 아랫바위와 사이에 틈이 있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구경을 마치고 내리막길을 좀 내려오니 일주문에였나? 수호신 사천왕 그림이 있습니다.
몰래 침범하려던 마귀가 짓밟혀 신음하네요.

일주문 아래에서, 걸어 내려 온 계단을 배경으로.
(일주문이 아닐 수도 있고)
절문을 나서니 추운 날씨에도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우리를 부릅니다.
안 사도 좋으니 맛을 보고 가라시더군요.
봉화사과도 훌륭하고 부석사과(부사 품종)도 달고 아주 맛이 있습니다.
볕이 좋고 일교차가 큰 곳이거든요.
따뜻한 마음씨에 마음도 덩달아 포근했습니다.
관광단지 음식점 거리로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니
바위에 유네스코 서계문화유산 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합니다.
재작년에도 보았을텐데 잊었었는지 이 번에 처음 알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석사 아래 관광단지 식당에서 청국장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제법 준수했습니다. 관광지 치고는 괜찮은 가격 8천원.
주인이 가장 저렴한 비빔밥을 권하더군요. 시키면 청국장도 나온다고 안내를 하면서.
청국장정식은 1만원이었는데 욕심이 과하지 않은 주인장 젊은이 칭찬합니다.

인도가 따로 없는 찻길로 걷다가 호젓한 뚝방길을 택했었습니다.
영주시 부석면에서 시군경계를 넘어 물야면으로 들어 온 지도 꽤 지난 지점.
집에서부터 15킬로미터쯤 될 것 같습니다.
사진속 저 멀리 골짜기 좁쌀만한 건물들이 희미하게 물야장터임을 알려 줍니다.
거의 다 왔다는 것입니다.
추수가 끝나고 잔디가 누렇게 잠자는 뚝방길이 사행천따라 굽이쳐갑니다.
한가롭고 게으른 걸음을 멈추고 포근한 겨울을 담아 보았습니다.
걸으면 통증도 덜하여
자그마하게 행복한 오늘도 바람처럼.
첫댓글 겨울 부석사도 정겹네요~
전봇대마냥 도열한 은행나무의 헐벗음도 묵언수행인 양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