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호명되지 않은 영웅’ - 3. 새끼 나귀의 주인
본문 : 마가복음 11장 6절(1~7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새번역>
황당해도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우리 집 바깥 길 쪽으로 나있는 문에 매여 있는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를 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마치 자신의 나귀라도 되는 듯이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달려 나가 그들을 막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짓입니까?”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오히려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쓰시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들과 이 나귀의 위치까지 알게 된 경유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마치 가장 아끼던 것을 가장 귀한 일을 위해 내어준 것처럼 뿌듯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이 하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저의 새끼 나귀를 풀어서 데리고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었고, 언제 가져온다는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감사’였습니다. 그것도 벅찬 감동을 동반한 감사였습니다. 감사해야지 라고 생각한 게 아닌 분명한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어 주는 것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고,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키우던 나귀가 바로, 말씀의 성취를 위해 사용되는 나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스가랴 9장 9절, 새번역>
왕이신 예수께서, 메시아께서, 구원을 베푸실 왕께서 다른 나귀도 아닌 바로 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니!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어찌 보면 작디작은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말씀의 성취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평화를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는 곧바로 예루살렘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의 어린 새끼 나귀가 보입니다. 등에는 겉옷이 걸쳐져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중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치 그 나귀가 내가 된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등에 업고 영광스러운 입성에 동참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현실이 된 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다니! 정말 놀라운 은혜의 현장에 나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저 나귀가 내 나귀입니다. 예수님이 내 나귀를 타고 계십니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마 세월이 흘러 이 나귀를 돌려받고 나서도 이 나귀는 그 마을의 명물이었을 것입니다. 너도 나도 예수님이 타신 나귀를 타보고 싶다고 하면서 재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귀 주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예수님이 자신의 나귀를 타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었을까요? 만약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나귀 주인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름도, 사는 곳도, 사실 어떤 연유로 내어 주게 된 것인지도, 정확히 언제 돌려받았는지도, 어떤 혜택이 있었고, 빌려준 대가는 받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완전히 ‘호명되지 않은 영웅’입니다. 그의 기꺼운 섬김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자 했던 계획에는 큰 차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태워 본 적 없는 새끼 나귀를 찾느라 제자들이 꽤 고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나귀 주인은 충분히 내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의 지체도 없이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자마자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마가복음 11장 6절, 새번역>
가만히 있었던 것은 “주가 쓰시겠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쓰시는 곳이라면 기꺼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내어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이 주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번 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나의 소유 중 무엇인가를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사실 나귀 새끼는 그 주인에게 전 재산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전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은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의 전 재산인 무엇인가를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우리가 가진 집, 우리가 가진 차, 우리가 가진 돈, 우리가 가진 시간을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 한 마디로 가져가시려 한다면 과연 우리는 이 새끼 나귀 주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은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그런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진짜 아멘이라고 기꺼이 감사함으로 내어드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욥의 이 고백을 잊지 않고 우리 인생에 녹여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욥기 1장 21절, 새번역>
새끼 나귀의 주인은 분명히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끼 나귀를 주신 분이 주님이시니, 쓰시겠다하면 당연히 가져가셔서 쓰셔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나는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였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주셔서 감사하고, 가져가셔서 감사하는 마음, 그 놀라운 마음을 품고 있던 새끼 나귀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인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주셨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러니 주인이 쓰겠다고 하시면 기꺼이 내어드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진다면 얼마나 큰 영광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주님이 직접 쓰시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위대한 쓰임입니까? 그러니 당연히 찾아오는 감정은 ‘감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호명되지 않은 영웅인 새끼 나귀 주인은 우리에게 ‘감사’가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신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가신 것으로 감사하는 마음, 가져 가셔서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에 쓰임 받는 다는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진짜 감사는 내가 받는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닌 내가 드리고, 내가 드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심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감사’란 것은 드리는 게 아깝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받는 것에만 감사하기 시작하면, 받지 못하는 순간 불평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것을 드리는 것을, 그것도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순종으로 드리는 것이라면 ‘감사’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만 같아 가슴 벅찬 감사가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절기상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조금 색다른 이름의 감사주일을 드리고자 합니다. ‘The 감사’의 주일입니다. 1년 중 가장 특별한 감사이면서, 평소에 드리던 감사보다 더 감사하고자 하는 날입니다. 주신 것에 반응하고, 추수한 것에 반응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드리는 것에 감사하는 특별한 감사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기쁨과 자원함으로 평소보다 더 기쁨으로, 더 감격하며, 더 기꺼이 드리는 감사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새끼 나귀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기꺼이 드리는 감사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호명되지 않은 영웅으로 자신의 전부를 감사함으로 드렸던 새끼 나귀 주인처럼 2024년 최고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시고자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간, 노력, 열정, 돈, 소유 중 그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 말에 순종하여 감사함으로 드리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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