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자가 다음과 같이 결정됐습니다.
<수혜자 및 선정 작품>
박진희, 단편소설 「투이의 가방」 외 1편
<심사평>
제13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응모자는 시 부문 177명, 소설 부문 85명, 르포 부문 1명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문학의 위기 담론 속에서도 문학을 통해 시대의 상처를 드러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견인하기를 바랐던 조영관 시인의 의지를 응모작들에서 느낄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가는 총 6인이었다. 어떠한 연대의 희망도 사라진 공간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고립된 채 파편화된 청년들의 양상을 그리는 시편들과 마치 르포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치열한 취재를 통해 그려낸 근현대사의 비극, 이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화의 충돌, 비행 청소년과의 따뜻한 소통을 다룬 소설들과 최근 플랫폼 노동의 다양한 양상을 다룬 르포까지, 각자 고유의 시선을 가진 응모작들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일정 수준을 도과한 작품들을 두고 1인의 수혜작을 결정하는 과정은 좋은 작품을 읽는다는 즐거움과 함께 또 다른 미덕을 가진 우수한 응모작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괴로움이 함께 하는 과정이었음을 미리 밝힌다.
심의위원들은 오랜 시간의 토의 끝에 소설 부문에 응모한 박진희의 「투이의 가방」외 1편을 제13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작으로 선정했다. 「투이의 가방」은 밭떼기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배추 수확기의 농촌지역을 배경으로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리,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어두운 현실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피폐한 농촌의 현실과 이주 노동자들의 생활을 성실한 취재를 통한 세밀한 묘사와 가독성 있는 문장으로 풀어나가는 부분이 심의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다만 부조리한 현실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인물들이 사건에 온전히 녹아나지 못하고 소설의 주제의식이 인물의 행동이 아닌 소설가의 육성으로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는 함께 응모된 「여각구도」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향자와 비전향장기수의 행로를 통해 개인의 삶을 근원에서 잠식하는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추적하는 소설가의 단단한 문제의식이 상기한 문제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었다.
수혜자로 선정된 박진희 소설가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향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소설들을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정되지 못한 다른 응모자 분들에게도 감사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반드시 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심사위원: 김남일(소설), 박일환(시), 하명희(소설), 김대현(평론)
■수혜자 약력
박진희: 1976년 부산 출생
2009년 현중노조문학상 노조위원장상 시 부문 당선 <브라보, 샐러리맨>
2019년 시집 《몽상물고기》 출간
2021년 제157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 <고독한 흔적들>
2022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 <해바라기로 피는 커피>
■수혜 소감
언젠가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길게 뜸 들이지 않고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상대에게 작가는 내게 정체성 같은 거라고 답했는데, 그때는 그게 적절한 표현 같았다. 생계 수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글은 변함없이 쓰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나고 보니 글로 생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작품이 독자에게 도달하기 위해 작가는 부단히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런 깨달음이 직업과 정체성이 접점을 이루는 곳으로 인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소설을 쓰는가, 독자는 왜 소설을 읽는가’를 종종 자문해 본다. 일테면 작가는 매일 지나치는 도로 위에, 짓이겨진 채 비린내를 피워올리고 있는 다람쥐의 시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시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인상적인 글로 표현함으로써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대 담론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문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그게 뭐냐고 물으셨다. 딸이 받는 상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잘됐다고 하시는 엄마 때문에 또 한 번 웃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던 박일환 작가님을 통해 당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이충호 작가님이었다. 작가의 길로 이끌어주시고 등단 후에도 자문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흔치 않은 기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당선의 이유를 찾으셨을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인간으로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큰 이유인 딸 설현과 점점 나의 글에 대한 비평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남편과 함께 나눈 오늘의 기쁨이 부디 무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