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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육군본부 軍史硏究所長 한설 장군 박경석 서재 방문
2016년 7월 14일. 주요 軍史 자문 및 史料확인차
연구원 김상규 박사 연구소장 한설 장군 박경석 한국전쟁연구과장 김수일 대령
한설 장군
나의 증언을 녹화 녹음하고 있다
내 영상 자료를 시청하고 있다.
해설
국군에서는 군신(軍神)과 전쟁 영웅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다. 창군 주역인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영역의 군신, 전쟁 영웅은 일본군 출신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백선엽 장군은 전권을 휘여잡고 군사(軍史)를 왜곡했다.
특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해서 부임한 후 軍史의 왜곡 날조는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이에 맞서 문학작품으로 여론 범위를 넓힌 뒤 정면 공격으로 결사 항쟁에 나섰다. 다행이 진실을 존중하는 의인(義人)들이 나타나 마침내 軍史 바로 잡는데 성공했다.
첫째, 옛 중국군 정규 장군이며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 유신헌법에 반대해 외지에 쫓겨났던 채명신 장군을 복원시켰고 가짜 전쟁 영웅 심일 소령을 격하시키고 살신성인의 참군인 강재구 소령으로 대체시키는데 성공했다.
가장 치열했던 경우는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사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심을 끝낸 사안을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에 걸쳐 성명서를 내는 한편 청와대에 직보, 그 결정을 뒤집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백선엽은 일본군에서 만주 일대의 독립 운동가와 독립군 소탕작전의 지휘관이었다. 만주의 간도특설대는 일본 관동군 휘하에서 독립운동가와 독립군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악명 높은 부대였다. 그 간도특설대에서 육군중위로 진두에서 활약했다. 따라서 분명한 민족 반역자임을 만 천하에 밝혔다. 그 자료 수집에 영상 회고록 시리즈에 게재한 일본인 다나카 히사히로(田中久弘) 박사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힌다.
여기 사진을 올린 한설 장군은 그 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의 軍史 바로잡기 위한 대장정(大長征)에 도움을 준 의인(義人)은 다음과 같다.
1. 주월한국군사령관을 역임한 채명신 장군-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철회에 솔선
2. 6.25당시 6사단 중대장 이대용 장군-가짜 호국영웅 심일 소령 영웅 조작 증거 제시
3. 3사단장을 역임한 박정인 장군-백선엽 간도특설대 지휘관 죄상 폭로
4. 당시 국방장관 김태영 장군-백선엽 명예원수 철회 작업에 협조
5. 육군본부 군사연구소장 한설 장군-가짜 호국영웅 심일 소령 진상 규명에 솔선
6. 일본인 田中久弘(다나카 히사히로) 박사-백선엽 간도특설대 독립군 토벌 자료 제공
7. 문학평론가 송백헌 박사,충남대 명예교수-간도특설대 역사자료 고증 및 확인
참고 자료 1 간도특설대 부대가(한글로 번역)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 떨쳐
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연변 작가 류연산씨가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 에 쓴 간도특설대의 만행.
○ 야간 토벌 작정 중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임
○ 간도특설대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냄
○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일본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촬영
○ 항일부대원 중 여성을 포로로 생포하고 강간 시도 후 실패하자 모두 살해
○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 후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만듬
참고 자료 2 간도특설대의 편성 및 임무
간도특설대는 만주 일대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독립군 토벌을 위해 조직된 일본 관동군 휘하의 특수부대이다. 규모는 대대급이며 본부의 일본군 장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인으로 편성됐다. 일본 관동군은 '조선인 항일 세력은 조선인이 토벌해야 성과가 있다' 고 판단,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란케는 오랑케가 잡이야 한다' 며 편성한 조선인 토벌부대가 간도특설대이다. 백선엽은 만주군 중위로 중대급 토벌대를 지휘했다. 백선엽 외에 김백일의 활약도 돋보였다고 일본인 기자가 술회하고 있다.
참고 자료 3 성명서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는 세기의 난센스다
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 박경석 (예) 육군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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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육군본부 軍史硏究所에서는 베트남전 史料를 비롯해 민감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자문, 확인을 요청해 왔다.
나는 어느 기관보다 최선을 다해 정확한 사료로 협조했다.
그러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자문위원장으로 자청 부임한 이래 軍史 왜곡이 극심해지자 나와의 협조 채널이 끊겼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6.25전쟁사는 백선엽에 의해 편집 발행되고 있었는데 내용 왜곡이 극심해 몇번 항의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특히 가장 민감한 내용이 기술된 1권과 2권에는 백선엽이 내 승인도 없이 후미 편찬자문휘원 명단에 내 이름을 도용 인쇄 했다. 軍史를 연구하는 나 박경석을 왜곡 공범자로 각인한 것이었다. 백선엽 다운 수법이다.
언젠가는 법적 절차를 밟을 생각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발행 [6.25전쟁사] 말미에 내 이름을 도용해 백선엽 밑에 자문위원으로 인쇄된 나 박경석의 직함은 아래와 같다.
6.25전쟁사 제1권 자문위원 전우신문 회장 박경석 / 제2권 자문위원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박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