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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숲에서 만난 한국사
저자: 김용만
정가: 18,000원
출간일: 2021년 11월 15일
크기: 154*225*28mm
분량: 360
출판사: HOLIDAYBOOKS
물, 공기, 햇빛 등등.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하지만 반대로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존재들이 있다.
당연히, 그저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없어지면 바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로 나무, 그리고 숲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무리를 이루고 삶의 터전을 확장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밭을 일구었으며, 땅을 파 내가 원하는 곳까지 물을 끌어오는가 하면, 식량자원을 얻기 위해 그 지역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많이 필요한 자원은 <나무>였으며, 나무를 얻기 위해 <숲>을 파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숲이라는 키워드로 관통하고 있다. 그동안 기후와 환경에 대해 다룬 책은 무수히 많이 나왔으며, 그중에서도 숲과 나무에 대해 전지구적 또는 지엽적인 입장에서 살펴본 책들 역시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나온 책으로는 강판권의 『나무열전』(2007, 글항아리)와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2010, 글항아리),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1·2』(2011, 김영사), 양종국의 『역사학자가 본 꽃과 나무』(2016, 새문사), 전영우의 『우리 소나무』(2020, 현암사) 등이 있을테고, 외국서적으로는 존 펄린(송명규 역)의 『숲의 서사시』(2002, 따님)를 시작으로 요하임 라트카우(서정일 역)의 『나무시대』(2013, 자연과생태), 한스외르크 퀴스터(이수영 역)의 『숲의 역사』(2021, 돌배나무)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무를 갖고 역사를 이렇게 살펴보고 서술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으니 말이다. 단, 존 펄린의 책에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사에 대한 내용이 없어 아쉬웠다. 이후 국내에서도 관련 서적들이 출간됐지만, 통시적인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루기보다는 특정 이슈에 집중한 반면 『숲에서 만난 한국사』는 '한국 숲의 서사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책은 단순히 시간 순대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목차를 봤을때 고조선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1장에서 저자는 <왜 숲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한국사에서 숲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숲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숲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부담없이 시작한다. 특히 '신석기혁명'이라는 용어로 대표될만큼 농경문화가 문명의 시작이고, 농경민이 수렵 · 채집민, 또는 유목민보다 우월하다는 상식 아닌 상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을 빌어 '농업의 시작을 인류 역사 최악의 실수'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면서 농경문화에 대한 환상을 지적하고 그 실체를 파고든다. 저자는 농경민의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른 반면(장점) 쉽게 터전을 옮기기 힘들다보니(단점) 무리를 이루어 발전시키는 데 유리했다고 보았다. 거기에 사람의 욕심까지 추가하여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문명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돌아보게 되고 농경문화 중심의 역사에 익숙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경문화 이외의 역사도 분명히 존재했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한 · 예 · 맥 · 말갈 이야기를 한다. 숲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참신한 시각이었다. 고대사를 조금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 예맥, 말갈 등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유목민, 추장, 기마, 약탈, 수렵 등의 키워드를 꺼내곤 한다. 실제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 매체에서도 그렇게 묘사되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 터전을 살펴보면 오히려 숲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반도와 동북지역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동해안에 인접한 거대한 산맥이 백두대간을 이루면서 연해주 일대까지 뻗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공교롭게도 옥저, 예, 맥, 말갈, 읍루, 숙신 등등 한국 고대사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집단들의 주 생활무대였다. 그들의 생활풍습이나 주거환경 등을 비교해보면 유사한 점도 많았지만 차이점도 많았으며,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집단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숲이라는 공간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 안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도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의 다양성이 곧 한국 고대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저자는 아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숲이 울창한 지역! 하면 강원도! 무슨무슨 산! 이런 대답이 나오지만 과거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숲이 있었다. 숲과 평지가 구분된 것이 아니라 숲과 평지가 반복적으로 연결된 채 전국토를 아울렀던 것이다. 이는 중국과 확연히 다른 자연환경으로서 차로 몇시간, 며칠을 달려도 자그마한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중국과 다른 역사가 이 땅에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만주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러 가면 차 안에서 몇시간을 바라봐도 계속 같은 풍경, 드넓은 평야만 보이기 일쑤이다) 저자는 신간수와 신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환웅이 왜 하필 신단수를 통해 이 땅에 내려왔는지 고민해보자는 거였다. 이러한 세계수, 우주목의 존재는 비단 우리만의 시각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태초의 역사를 언급할 때 나오는 존재가 바로 세계수 또는 우주목의 존재이다. 숲과 나무가 전지구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그럼 단군과 고조선만 그러했을까? 아니다. 역대 건국시조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문명의 요람이었고, 숲이 잉태한 씨앗은 곧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크게 싹을 틔우게 된다. 저자는 숲에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후 그 사람들이 이룩한 거대한 제국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간다. 숲에 살았던 사람들은 특유의 강인함을 품은 채 농경과 유목의 장점을 익혀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했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가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500년을 채 채우지 못한채 사라져간 반면, 고구려는 무려 700여 년을 동북아시아에서 존속하면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그 자리에 터전을 잡은 발해도 마찬가지였으며, 먼훗날 그 자리에서 흥기한 여진과 만주족도 마찬가지였다. (유소맹이 쓴 『여진 부락에서 만주 국가로』를 보면 청나라의 초기 성장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5장. 달라져버린 숲'이다. 전체 9장 분량의 중간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책의 내용이 크게 둘로 나뉜다.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랄까? 인류가 숲을 존경하고 그 가치를 중요시 여기던 풍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를 맞이한다. 인간은 더 이상 숲을 '자원을 구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탐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무분별한 벌목, 관리하지 않는 숲, 숯의 사용과 농경지의 확대, 거대한 건축물의 축조 등등 사람의 숲에 대한 의존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숲의 파괴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다. 그 변화상을 저자는 '사찰'과 '돼지'라는 키워드로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저자는 거대한 종교 건축물을 보유한 불교의 영향으로 숲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경외심이 인공 목조 건축물로 옮겨졌다고 보았다. 그로 인해 샤머니즘의 성소였던 숲의 나무들이 베어지고, 그 자리에는 대규모 사찰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사찰은 숲을 파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길을 택했고, 오늘날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사찰이 숲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서술하였다. 더불어 돼지가 본래 농가에서 기르는 동물이 아닌 숲에서 방목해서 자라던 동물임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숲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돼지도 귀중한 동물에서 혐오 동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후 농경민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찾아오고, 숲을 지키지 못한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사 최악의 오판으로 '동북9성 경영의 실패'를 꼽았다. 복합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고려 중앙 정부의 실책으로 고려는 숲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던 것 같다. 고려 후기 왜구와 몽골로 인해 고려의 숲은 더욱 더 심하게 파괴되었으며, 이는 조선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물론 조선도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원칙부터 무너졌다. 농경을 나라의 첫번째 근간으로 중시했던 조선은 농지 확보와 농민 육성을 위해 숲을 파괴하였다. 권세가들은 광범위한 숲을 사유화하였으며, 당시 그린벨트였던 국유림은 금산(禁山)으로 지정됐음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벌목을 지속했다. 숲의 자원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은 점점 깊숙한 숲으로 들어갔고, 숲의 훼손 범위 역시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해야 했고, 근본적인 산림 정책을 자리잡지 못 했다. 조선 말기 이를 살펴본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조선의 민둥산을 언급한 것도 이해가 간다. 필자 역시 2005년 금강산 답사를 위해 동해안에 다녀왔을 때 민둥산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저자 역시 북한에서 봤던 민둥산의 충격을 책에 남겨두고 있다) 경의선 방면에서 군 생활을 했을때 봤던 휴전선 근처의 경관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 주민들도 조선인들처럼 나라에서 엄격하게 접근이 금지된 지역의 숲을 제외하고는 이미 당장 쓸만한 것들이 있는 숲은 모두 허허벌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산림 황폐화는 일제강점기에 더욱 더 심해졌다. 일제는 조선 각지에 도로와 철도를 놓고, 현대적인 시스템에 입각한 법과 제도, 관청 등을 설립하였다. 조선을 발전시켜 주기 위해서? 아니다. 보다 효율적으로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서다. 소멸하기 전의 별이 가장 밝은 빛을 내듯, 일제는 조선의 그나마 남아 있던 숲을 온 힘을 다 해 수탈해갔다. 해방 직후에도 우리 숲은 단기간에 변화되지 못 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토가 신음하는 상황 속에서 숲이 멀쩡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한국전쟁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고지전'이라는 전쟁 양상은 숲을 완전히 소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높은 산 정상에 자리잡은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점령군이 바뀌는가 하면, 수십 수백번에 걸쳐 산 정상부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니 산의 지형이 바뀌는 것도 다반사요, 나무나 풀이 자라는 걸 바라는 것도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이후 많은 면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사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 국토 전체가 헐벗었다가 성공적으로 복원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물론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지만, 꾸준한 사업 시행으로 곳곳에서 숲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바다와 강, 산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가진 세계의 몇 안 되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전히 담뱃불 또는 부주의한 실수로 발생한 불씨로 인해 산불이 발생하고, 특히 광범위한 규모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고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숲에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신단수와 같은 세계수나 우주목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터널과 다리, 도로와 철도가 산을 가로지르거나 관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호화별장이나 리조트, 경기장이나 아파트 단지를 짓기 위해 수백년된 나무들을 벌목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은 꾸준히 관리되고 있으며, 도시 안이나 아파트 단지 안에는 녹지화 사업이 지속되고 있다. 모순이라면 모순일까.
여전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나무와 숲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숲을 관리하고, 숲을 보유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나무와 숲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 당연하면서도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말한다.
미래의 숲이 한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인간이 숲을 어떻게 대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는 말이 있다.
자! 우리의 숲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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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뵙습니다. 댁내 모두 무고하신지요.
도서관에 구입신청 해놓았습니다.
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
선생님도 잘 지내시죠? 올한해도 무탈하게 보내시고, 좋은 일 많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222쪽 이후 조선시대 산림정책, 착호군 관련 내용 등을 중심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개괄적으로 관련내용을 요약한 인상이라 그다지 매력적인 책은 아닙니다. 더구나 역사교양서 시리즈물의 하나로 기획한 것 같은데 출판사의 편집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 1) 각주 배치가 책 뒤쪽이라서 가독성이 약하고 그것도 출처 위주라 교양서에 필요한가? 싶습니다. 2) 내용과 별로 연관이 없는 삽화 남발, 3) 개별 논문 수준의 전문성도 없고 건조한 학자풍 필체 때문에 흥미가 현저히 반감됩니다.
- 여휘님이 소개해준 세 권의 번역서를 알게 된 것이 오히려 더 큰 소득입니다. 오히려 그런 외국서적이나, 산림청 기타 훌륭한 관련 웹사이트를 소개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방에 풀렸을 때 이 책을 집어든 사람 중에 과연 몇 명이나 구입해 갈지 의문입니다.
아직까지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특정 주제를 살펴보는 연구에 있어서 외국 연구자들이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숲과 나무에 대한 부분도 그러한데, 이게 거시적인 시각이냐, 미시적인 시각이냐에 따라서 차이가 분명하게 있을듯합니다. 국내의 경우, 북한 및 중국의 자료를 활발하게 이용하지 못하느냐도 영향을 좀 끼치는 것 같고요. 점차 이런 연구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읽으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참고로 제가 재미있게 본 숲나무 관련 책과 기사 소개합니다.
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 著
나무가 숲으로 가는 길 - 로저 디킨 著
잡초의 재발견 - 조지프 코캐너 著
숲에서 숲으로/숲의 인문학 /산책 - 김담 著
숲으로 - 호시노 미치오 著
숲에서 길을 찾다 - 이천용 著
내가 좋아하는 풀꽃 - 이영득/박신영
[국민일보] 최영선의 풀·꽃·나무 친해지기
[좃선일보][문화칼럼] 김민철의 꽃이야기/박윤선의 그림으로 보는 자연
오오~~숲과 나무 관련된 책이 상당히 많네요. 제가 확실히 너무 책을 편식해서 보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소개해주신 책들도 하나씩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