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재산이 시(詩) 한 줄만 못해
- 시인 백석(白石)과 자야(子夜)의 사랑이야기-
春川 동부복지관 자서전쓰기반
지도강사 德田 이응철(수필가)
소중히 간직한 사랑이야기를 꺼내본다. 가을하늘처럼 드높은 한세기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 내 문학의 뗏목과도 같았던 백석과 자야의 평전은 빛이 바래도 위대하다.
우리네 인생은 어쩜 사랑 속에서 헤엄치다가 한세상을 마친다고 감히 외쳐본다. 어떤 사랑이냐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차원이 낮은 육감의 사랑에서부터 차원 높은 영혼의 사랑 모두는 사랑이란 이름을 이 세상에 꽃처럼 피워 아름다운 세상에서 음미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솔깃하고 맛이 나는 사랑 이야기엔 청마와 이영도란 시조시인의 사랑이 애틋해 현장을 돌아보다가, 요즘 백석의 기생 자야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아 지혜의 바다를 돌아보고 헌책방에서 백석 평전을 구해 그 사랑에 빠져본다.
누구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보면 늘상 자신의 사랑을 몰래 꺼내 보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따스한 가슴이 있다. 꾀꼬리처럼 울지 못할 기찬 사랑들을 다들 가지고 살아왔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들은 그 사랑이 시들지 않기 위해 화수분처럼 사랑을 담고 살아가리라.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 화두는 친한 수필가가 지난번 다녀온 길상사(吉祥寺) 이야기가 심금을 울려 산불처럼 번지게 되었다.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혜의 바다를 헤엄치며 심해까지 들어가 그의 사랑을 찾아 나선다. 남자들이야 누구나 이성에 대한 미모의 편력이 왜 없을까만 심오한 사랑이 전개되는 차원 높은 실제 이야기들이 이데올로기나 신변잡기의 사랑이 아닌 숭고한 사랑으로 안착 되어 추억의 손잡이가 된다.
오늘 생각해 본 화두는 무엇인가? 저마다 세상사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석대 문창과 교수 안도현 시인은 백석 연구를 하면서 백석의 삶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삶을 추억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시인 백석은 월북 작가이다. 1987년 해금이 되면서 활발하게 백석을 연구하게 되었다. 18세 때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모의 아들로 등단한 백석-. 안도현은 백석문학상을 11회 때 받을 정도로 그에 대한 사모가 남달라 어찌보면 천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월북 작가로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백석 시인, 세기의 사랑 이야기를 조명한 장본인은 ‘백석 시선집’을 편찬하신 이동순 교수와 안도현이다.
-백석의 삶과 사랑 그리고 시-.
백석은 어떤 인물인가?
본명은 기행(驥行). 1912. 7 평북 정주에서 출생, 일본 야오야마 학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34년에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한다. 그 후 36년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기도 한 그는 42년 만주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도 종사하다 광복 후-. 본격적으로 문필활동을 했다.
1935년 농촌 정서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를 형상화한 정주성으로 등단한 그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으면서 기존의 도덕, 권위 전통 등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당시 문인의 시선을 받는다.
백석의 첫사랑은 1935년 24세 때 이화여고 통영 출신인 蘭(박경련)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까만 눈에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 낭창한 여인-, 구애를 위해 그는 친구와 통영을 세 번이나 찾아갔으나 번번이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한다. 아니, 동행한 친구 신현중이 신부 부모에게 백석 가정을 거짓으로 폭로해 어머니가 기생출신이라 해 결혼을 거절케 한다.
친구의 변신, 이유는 있다. 신현중 누나 제자가 난(蘭)이라 이참에 부모께 잘 보여 신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통영에는 평안도 출신 시비가 남쪽 충렬사에 세워있다.
이 때 난의 사랑으로 명정 골을 찾아다니며 지은 글이 여승, 통영1, 2등 서술시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잉태되었다. 백석은 한국어를 아름다운 시로 지어 일본에 살던 이중섭도 (1916) 오산 출신으로 조국의 모국어가 그리울 때는 백석 시를 읽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번 길상사 소개할 때 새로운 글을 여기 소개한다.
법정 스님으로부터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으로 살다간 길상화 보살은 1915년 서울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로 15세에 결혼했으나 이듬해 남편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조선 권번의 기생이 되었고, 그녀의 뛰어난 글재주를 아까워하던 독립운동가 신윤국의 도움으로 동경 유학을 갔으나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신윤국이 함흥 형무소에 투옥되자 유학생활을 뒤로 하고 그의 면회를 위해 함흥에 머무르는 동안 영생고보의 영어교사이던 모던보이 백석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백석은 다른 여자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되나 다시 도피하여 진향(자야, 김영한) 과 사랑에 빠지고 또 강제 결혼, 다시 사랑의 도피 등, 세 번의 결혼과 도피를 반복하던 백석이 만주로 같이 떠나자고 했으나 백석의 앞길에 장애물이 되지 않으려던 진향이 서울에 남았지만, 해방과 남북분단의 장벽에 막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 진향은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백석의 생일(7월 1일)때는 일체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방안에서 불경을 외며 평생동안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고 ‘창작과 비평’사에 2억을 출연해 백석 문학상을 제정했다
그 후 백석은 기생이지만 일본 유학파의 문예를 겸비한 당대의 모던 엘리트 여성 자야(子夜) 김영한을 만나 3년 정도 동거를 하면서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꽃피웠다. 평소 기생 신분으로 금하선생이 지어준 진향(眞水無香)의 닉네임도, 김숙이란 가명도 지닐 정도로 유명했다. 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녀를 눈여겨보았던, 시인 잡지<삼천리>를 운영하고 있던 파인(巴人) 김동환의 제안으로 수필 ‘눈 오는 밤’ 으로 등단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야는 이른바 ‘문학 기생’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나처럼 천한 여성을 한 시인이 사랑해서 한 줄 나타샤로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살겠다. 사랑을 선포하는 자야-. 1000억이 시 한 줄 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고 여승이 되어 대원각을 길상화란 법명을 지어주신 법정스님께 시주했다. 또 자야는 백석을 그리며 1997년 2억 기금을 백석문학상으로 선뜻 기부했다. (당시 말 한필이 5원) 그 후 도종환 당시 문체부장관이 13회 때 수상, 11회 때 안도현이 1000만원을 수상해 연연히 이루어진다. 백석대학교 또한 기독교법인인데 백석시인과는 어디에 나오지 않아 모를 일이다.
세상 사는 원동력을 자야는 돈이 아닌 사랑의 시인 백석에게 있었다.
그는 뒤늦은 1953년 중앙대 영어영문학을 졸업하면서 백석은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영문학을 간 이유도 있다고 한다. 또 유명한 자야 말이 있다.
-저는 운명이란 한줄기가 아닌 여러 줄기인데 그 중 한줄기에 인생을 산다고 생각한다. 함께 만주로 가지 못한 후회……, 그리워 당시 국내 3대 유명 주점 대원각을 하면서도 백석을 잊지 못한다. 1987년 그는 22살에 내 사랑 백석이란 회고록을 펴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기자들에게 나는 천억이 그 분 시 한 줄보다 못하더란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것이 후세들에 감동 대 감동-. 물질 그리고 한 줄의 영혼을 맡긴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은 릴케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한다. 서민적이고 솔직한 그의 작품-.
자작나무를 백화로 숲속의 여왕이라 하던 백석, 처녀를 천희로 부르던 백석,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터 마을에서 여인을 기다리던 백석-. 또 그를 푸시킨보다 더 쉽고 아름다운 시라 했고, 도연명보다 더 진실한 자연사랑 시인으로 알려진다.
월북해 한 때 정주 군수를 지내고 김일성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백석, 자본주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평양 예술가에서 양강도로 쓸려간 그는 거기서 30년 동안 양치기를 하며 문학을 마시며 살아갔다는 후문이다. 95년 2남 2녀를 두고 이윤희라는 아내 곁에서 잠든다. 평생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은 진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 아름다운 한 줄을 썼다는 안도현 시인의 말이 실감난다.
백석의 평전을 보면서 남북 분단사로 증발되었던 한 시인, 그를 끔찍이 사랑하며 천금보다도 그의 시 한 줄을 사랑한 여인은 천상에서 반드시 재회했으리라.
누구든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와 어떤 사랑을 했던가! 백석의 평전을 여기저기 찾아본 그 날 저녁은 처음 가을밤이 찾아온 날이었다. 문학과 사랑과 여인-. 그리고 여승이 되어 7월 1일은 일체 음식을 외면한 채 오로지 내 사랑의 백석만 그리다가 1999년 떠난 자야-. 길상사에 작은 사랑 탑이 오늘 찾아오는 길손을 반길 뿐-. 허무가 불나방처럼 뇌리를 어지럽힌다.
요즘 유행어로 내로남불이 거론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역대 어느 사랑 이야기든 애틋한 불륜들이 명작으로 눈길을 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부부간의 사랑의 심도-. 유부녀로 자살한 안나, 나폴레옹에 실망해 인생의 목적은 사는 데 있다고 자야를 죽도록 사랑한 피에르 베스호프, 그리고 창녀 재판에서 배심원 공작으로 참가해 언젠가 자기가 임신시킨 하녀임을 알고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 네플류도프-. 언제 읽어도 모두 애틋한 톨스토이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절기는 그 누구도 물꼬를 틀어 바꿀 수 없다. 훌훌 벗고 가을볕을 백우(白雨)처럼 눈부시게 맞으며 계절을 만끽한 어제, 세월교도 숨통이 터졌다. 스펙트럼처럼 나를 스쳐간 여러 빛깔의 연인들을 그려보며 애틋한 예술인들을 돌아본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1912-1996). 통영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뚝뚝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을 하고
눈은 폭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줄줄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서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근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우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나타샤-슬라브어권의 여성이름, 나탈리야의 애칭,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아이
마가리-이상적인 세계 , 聖의 공간
*백석-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 1936, 회식자리에 나갔다가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길에 지나가는 여인들이 자지러질 정도의 미남,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 에게 이별은 없어, 기생과 사랑이 탐탁지 않아 부모는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 첫날밤 자야에게와서 만주로 도망가자. 만주에서 지은 시 나와 나타 샤와 흰당나귀, 잠시동안 이별은 영원한 이별,해방되고 자야는 이미 서울 로, 대한민국 3대요정중 하나인 대원각 세워 엄청난 재력가 폐암1999사망, 내가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
*사랑의 힘, 곁에 있어 행복한 사람을 다시 생각하며 오늘 자서전반을 마칩니다.
ㅡ2024. 7.4 흐린 하늘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