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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 01
구원의 확신이란?
먼저 구원의 확신을 말하기 전에 왜 구원의 확신이 필요한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행17:31]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음이라."고 하니라.
딤후3:14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3:15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딤후1:12]그런 연유로 내가 이러한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믿은 분을 알고, 내가 위탁한 것을 그 날을 대비하여 그 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몇차례에 걸쳐서 그리스도인이 확신안에 거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 구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
복음을 전하든 성경을 가르치든 그리스도인으로써 고난을 감수를 하든..
자신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말할 수 있겠는가?
즉 구원의 확신은 성장을 위한 첫 걸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종종 구원의 확신으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얼마되지 않은 분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오래 다녔던 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 교회에 몇십년 다니셨던 분들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믿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 있으세요?" 라고 물으면 당황하거나 확신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흔하다.
마치 믿음과 구원의 확신은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복음을 모르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정답은 아니다.
[눅4:41]또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소리질러 말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하자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 마귀들이 주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더라.
[약2:19]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즉 마귀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것과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믿고 떠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교파들이 있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여호****, 신**, 하나***** 등 신흥 종파와 교주를 중심으로 모이는 수많은 교회들이 그러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다면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단히 복음에 대해 말하면.
복음의 정의는 간단하다.
고전 15:2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15:4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의 구원은 이 내용으로 받는다.
이 구절을 믿지 않는 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갈1:6~8]나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이로부터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이단들은 대부분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가르침이나 교리가 없다.
왜냐면 만일 자신의 신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한다면 교주의 말이나 자신들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교단의 확장이나 수입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종교에서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종파는 거의 없다...
자신들의 신도들이 궁극적인 목적(구원, 천국등)을 자신의 교주나 교회가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고 간단히 받거나 이루어진다면, 교주의 말이나 교회에 잘 출석하지 않을테고 더불어 헌금도 잘안내고 봉사도 잘 안하여 조직이 유지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이단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물질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헌금을 많이 내야 구원이나 상급이 보장된다던가 자신들의 회원을 증가 시키기 위해 전도 등 여러가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과 희생을 요구한다.
[갈2:4]이는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온 까닭이라.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더라.
즉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하는 많은 경우 대부분 "변개된 복음" 즉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
이 변개된 복음은 여러가지 형태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하는 모든 일체의 종교 행위"를 말한다.
최소한 구원을 받는 믿음(복음을 믿는 믿음)은 행위가 포함된 믿음이 아니다.
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복음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한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가 용서된 것을 믿는 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죽어도 자신의 죄는 앞으로 용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
어떻게 복음을 믿는다고 할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It is finished)고 말씀하셨다.[요19:30]
무엇을 끝내셨는지 아는 것이 복음이다.
많은 이들이 말씀을 알고 나의 행위와 믿음이 더하여져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차 세계대전때 일부 일본군들이 필리핀의 작은 섬들에서 전쟁이 끝난 소식을 듣지 못하고
30년이나 굴속에서 나오지 않아 헬기로 전단지를 뿌리며 전쟁이 끝났으니 어서 나오라고 외치는 방송을 본적이 있는가.
전쟁이 끝난 소식을 듣지 못한 일본 군인이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일본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좋은 무기나 식량이 아니다.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기 위해 죄를 이기기 위한 선한 행실이나 종교행위 심지어 큰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변치 않는 과거의 단순한 사실
"우리의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되었다"가 바로 복음 즉 기쁜 소식이다.
구원을 얻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선물이다.
[엡2:8]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through)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노력하여 얻는 것은 댓가이다. 하지만 선물은 댓가가 아니다.
롬4:4~5 이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 보수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빚으로 여기지만,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보혈을 흘리셨고 그 보혈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 흘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흘리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족하셨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더 이상의 피는 안 받으신다. 더불어 어떠한 우리의 선한 행위도 받지 않으신다..
[딛3:5]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엡1:7]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를 통하여 구속(redemption:몸값을 치름)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두번째는 구원은 받았으나 의심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초신자 같은 경우 아주 흔하다..
처음 복음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아 잠시 기쁨으로 충만한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되고 하늘 나라의 보장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아주 기뻐한다.
하지만 얼마후 고의나 실수로 죄를 짓게 되고 이것으로 인하여 심한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심지나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이런 짓을 할까 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즉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하는가 라는 의구심에 시달리는 것이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옥의 실체에 대해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
혹시라도 내가 지옥에 가면 어쩌나 라는 두려움과 겹쳐서 구원을 의심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하지만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믿었던 사람의 경우라면 결코 복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말씀을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을 잃은 것은 아니다.
왜냐면 구원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한 가지 예로 든다면
어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하자..
그는 이전에 믿었던 복음과 더하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사람이 구원을 잃은 것인가. 아니다.
어떤 노인이 침해에 걸려 그가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가 예수님을 부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구원에 전혀 영향을 줄수 없다.
즉 구원을 받은 것과 구원의 확신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왜냐면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순간 주님의 몸 즉 한 일부분이 된다. 만일 내가 거기서 떨어져 나간다면
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온전하신 주님의 몸이 훼손되는 것이다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각 사람이 서로의 지체가 되었느니라.』
내가 우리 부모님이 나를 때리고 벌한다고 내가 우리 부모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할지라도
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할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이라는 기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구원은 나의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공로로 유지할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공짜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항상 무엇인가를 얻고자 할때 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호의를 배풀면 그것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아무 댓가 없이 1억이란 돈을 내 통장에 입금을 해주었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아주 기뻐하다가 그 돈에 대해 의심한다.
이 돈을 다시 뺏어 가거나 아니만 무엇인가 댓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원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다가.. 내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하나님의 호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 구원을 다시 가져가실 것 같다.
이런 경우 구원을 의심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은 다시 구원에 대해 다시 정리하게 되고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임을 다시 인식하고 확신을 하게 된다.
의심하는 기간은 괴롭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잘못된 해석(교리,성경) 등으로 인하여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1. 예정론
잘못된 교리중 하나로 창세전에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은 이미 예정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이들은 복음의 모든 가르침은 받아 들이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예정되었는지 예정되지 않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못한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은 예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고 죽었는데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 너는 예정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경우 참으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예정론은 이미 문제가 많은 가르침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예정론을 믿게 될 경우 이들은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수많은 장로교인들 중에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복음을 전할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교회에 나오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생기고 그로인하여 구원받을 경우는 많다.
하지만 교회에 나온다고 예정이 된것이거나 자동으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죄에 대해,심판에 대해,구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는 아무리 교회를 오래다녀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만일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정론으로 때문에 무장해제 당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단 확장에는 기여할수는 있지만 진정한 복음의 전파는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은 "죽어봐야 안다"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믿음안에 있는지 모르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2. 성경을 잘못된 적용(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지 못함 )하여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마10:22]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많은 이단 (여호와의 증인 등 )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중 하나가 윗 구절이다.
이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온갖 박해를 받는 것도 마다하고 열심히 예수를 전한다. 그 이유는 끝까지 견디어야만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국어 실력만 있으면 우리는 쉽게 이 구절의 너희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10:6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10:7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즉 끝까지 견디어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이들은 복음도 이스라엘에게만 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 만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성경의 대상은 유대인들, 교회, 이방인들이 있고
시기적으로 구약, 신약, 예수님의 초림과 휴거, 7년대환라, 메시아(천년) 왕국, 새하늘과 새땅
등등이 있다. 수많은 시기적으로 다른 메세지가 있다.
그래서 수많은 이단들이 가장 즐겨하는 방법이 대상과 시대를 아무렇게나 적용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항상 자신이 믿고 싶은데로 해석하고 믿는다.
이들은 "유대인"과 "교회"와 "천국 복음"과 "은혜복음"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하나님의 심판석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나더 대표적인 구절을 하나 살펴보자
[약2:20]오 허황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
이 구절은 일반 교회에서 가장 즐겨 하는 구절중 하나이다.
교회에 열심이 없거나 헌금이 적을때 이구절을 주로 가르친다.
이러한 구절은 바울이 말한 교리와 모순이 된다.
[롬4:5]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목사들은 바울이 말한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 즉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갈3:2]내가 너희에게서 알고자 하는 것은 오직 이것이니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더냐? 아니면 믿음을 들음으로써냐?
[갈2:16]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분명히 바울이 말한 믿음은 행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생기는 믿음이다.
이러한 교리적 모순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한가지더 부연 설명하면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니란 점이다.
믿음이란 항상 대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에 최초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람이다.
창 15: 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그는 분명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우리와 같은가?
그가 예수님을 죽음심과 부활을 믿고 의롭게 되었는가? 그는 다음의 약속을 믿고 의롭게 되었다.
창 15:5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다면 그 별들을 세어 보아라."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더라
이처럼 우리는 믿는다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믿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윗구절을 믿고 의롭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또한 우리에게 한 약속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니란 점이다.
이처럼 야고보가 말한 믿음의 내용은 복음을 믿는 믿음이 아니며, 또한 쓰여진 대상도 이방인인 우리가 아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교회시대의 은혜의 복음을 전한 것
[갈2:8](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 분께서 나에게도 역사하시어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롬11:13][딤전2:7][딤후1:11]
사도 야고보는 바울에게 계시된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기 전 자신의 동족에게 보낸 편지이다.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역사적으로 사도 야고보는 AD40년에 야고보서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사도로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잘못된 교리를 말한다.
행15:13 그들이 말을 끝내고 조용해지자, 야고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15:19 그러므로 내 판단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말고
15:20 다만 그들에게 글을 보내어 우상으로 더럽혀진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삼가하게 하자는 것이라.
이러한 미완의 가르침들은 나중에 바울 서신에 의해 정리되고 다시 바로잡는다.
고전10:25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먼저 우상들에게 바쳐진 후 팔았다고 한다)
10:26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
10:27 만일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너희를 잔치에 청해서 너희가 가고 싶거든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라.
예수님의 승천후 초기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으며 교회는 유대인들로만 이루졌으며 이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하지만 스텐판 순교이후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되어지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졌으며 교회는 유대인들에게서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진다.
이러한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적 서신이 야고보서이다.
이러한 시대가 바뀌어지는 과도기적 서신에는 복음서와 야고보서 요한계시록등이 있다.
성경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책이 아니다.
[벧후1:20]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벧후3:16]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많은 경우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확신에 거하지 못한다.
3 잘못 번역된 성경으로 인한 경우
벧전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개역성경)
윗 구절은 개역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어보면 분명히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구절을 신뢰한다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은 절대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전을 정확히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벧전2:2]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kjv 2:2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구원"이란 단어가 없다.
이 것은 우리가 올바로 번역된 성경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는다 하여도 잘못된 성경 구절을 알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잘못된 성경", "잘못된 해석", "잘못된 적용"은 구원을 못받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올바로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어느 성경이 가장 정확히 성경인지 알고 공부해야 한다.
정리
구원은 최선을 다해 달려 결승점에 도착해야 주는 면류관이 아니다.
구원은 경주장의 선수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자신이 경주장의 선수인지 구경꾼인지도 모르고 신앙을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한탄할 일이다.
구원의 확신을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마귀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생명이 있는자는 그 생명으로 인하여 무엇인가 드러나게 되있다.
구원받은 이를 판단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지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뒤 그가 말씀을 찾느냐 정도로 짐작할 수는 있다.
구원받은 사람이 전혀 말씀에 관심이 없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그는 출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교리는 아니다. 왜냐면 수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에 변개된 개역성경으로 구원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변개된 말씀에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난 사람이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침례가 아닌 세례를 받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냐?며 그들의 출생을 의심한다.
즉 행위로는 어떤 사람도 그들의 거듭남을 증명할 길이 없다.
왜냐면 행함의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말이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소" 이런 판단만큼 어리석은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구원을 행위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런 주장이다.
어찌되었던 거듭남의 출생은 변화는 급직적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진적인 것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개과천선을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크다.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믿음은 볼수 없는 것을 볼수 있게 하고, 미래의 일들을 알게 한다.
예수님의 영은 예언의 영이다.. 그 영이 내 안에 거하게 된다.[요한계시록 19:10]
이로 인하여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알게된다.
기존 교회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하는 사람을 교만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얼마나 잘 났다고 구원을 확신해??~~"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오히려 구원을 의심하거나 구원을 행함으로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교만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는 부족하니, 그 위에 자신의 "선한 행위", "참믿음", "겸손","순종","열매" "참된 회개", 등등 온갖 좋은 것들을 더하여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것보다 더 교만함이 어디있겠는가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진 요리에 양념으로 자신의 "똥"을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빌3:4-8)
이상 몇가지 구원의 확신을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언급했다.
물론 이 외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의 기본 단계이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나는 그분의 자녀가 아니라고 의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더하여 당신이 부모에게 불효하다가 태어난 것을 무효화 시키고 다시 엄마의 뱃속으로 집어넣을수 도 없다
누구도 어머니 뱃속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거듭남도 그러하다. 우리는 어떻게 거듭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 태어났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요3:7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니라.
구원의 확신은 자신감이나 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느냐? 의심하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나 권세나 현재 일이나 다가올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8~39)
For I am persuad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pow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ure,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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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좋은 글입니다. 제 블로그에 스크랩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첫째:마음의 기경이 되어야한다.
둘째:자기를 진단 해야한다...자기가 어느정도 병자인지(죄인)
셋째:왜구원을 받아야되는지
네째:자기의를 완전히 버려야한다. (교파의빽그라운드.교리.자신의 의가 숨겨져있는 직분.모태신앙의굴레.소속교회교인수자랑.교회건물자랑)등
다섯째:성경으로돌아가서 성경속거울로 자신을 진단해야한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께 갈구한다...그리고 .나를구원해주소서..하고.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만나 상담한다..너희가 성경에서영생을 얻을 줄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성경은 곧 내게대하여 증거 한 것이로다..
반드시그답이 성경속에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죄을 벗고보니
저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