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꾸러미
내 눈엔 모자만 보여
강지향 화정지회
제가 어릴 때 엄마는 이쁘다는 말 대신 놀리는 말을 더 자주 하셨어요. 그중 하나가 너는 얼굴이 커서 모자가 안 어울린다는 말이었어요. 한번은 유치원 졸업식 때였어요. 졸업식에 선생님이 가운과 모자를 씌워주시는데 제가 키가 커서 마지막 차례라 남은 거를 썼어요. 하필 제 모자가 유난히 작았나 봐요. 졸업식장에 등장한 저를 보자마자 엄마가 작은 모자를 씌워 놨다고 선생님께 난리를 쳤어요. 엄마 말에 의하면 제가 작은 모자 때문에 시뻘건 얼굴을 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네요. 졸업 사진을 보면 얼굴은 빨갛고 울상을 하고 있어요. 그 뒤로 저는 ‘나는 모자가 안 어울리지….’ 생각하며 살았어요. 지금까지도 편하게 못 고르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모자예요.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 보니 모자가 나오는 이야기가 많네요. 어릴 때 모자에 얽힌 사연이 있어서 모자가 나오는 책이 더 눈에 들어왔나 봐요.
주인공들에게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모자가 등장하는 책으로 엮어 보았어요.
《내 모자야》
임선영 글|김효은 그림|창비|2014
토끼는 숲속에서 모자를 발견해요. 기다란 왼쪽 귀가 왼쪽 구멍에, 길쭉한 오른쪽 귀가 오른쪽 구멍에 아주 쏙 들어가요. “정말 완벽한 모자야!”라면서 토끼는 기뻐해요. 모자를 썼는데도 오른쪽 귀와 왼쪽 귀를 따로 움직일 수도 있어 너무나 신나 해요. 그림을 보니 토끼가 발견한 것은 모자가 아니라 바지네요. 바지를 뒤집어쓰고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토끼의 모습에 저도 같이 기뻐요.
토끼는 친구들에게 모자를 자랑하지만 친구들은 예쁘다고 해주지 않아요. 멧돼지는 그건 모자가 아니라 바지라네요! 나비마저 멧돼지 말이 맞다고 해요. 토끼는 더 우기고 싶지만 “그럼 이 주머니는 왜 거꾸로 달렸겠냐? 여기에 뭘 담을 수 있겠어?”라고 멧돼지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려요. 주머니에 담은 낙엽이 토끼 얼굴 위로 우수수 떨어져요. 모자로 토끼 표정이 가려져 있지만 어쩜 눈물을 글썽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속상해하고 있는 토끼를 호랑이가 편들어줘요. 이 모자는 바지를 닮은 모자라고 해요.
“뭘 넣는 주머니가 아니라, 뭘 버리는 주머니지. 버리면 안 되는 걸 버리고 싶을 때, 주머니에 넣으면 그만이야. 엄청나게 맛없는 당근 같은 거 말이지. 그럼 잠시 후 주머니에서 빠져나가겠지? 그럼 그건 네가 버린 게 아니야. 이 모자가 버린 거지.”
호랑이의 말에 토끼는 눈치 빠른 모자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해요. 호랑이는 천재 같아요. 화나고 속상한 마음은 내가 버리긴 힘들잖아요. 토끼와 호랑이는 어떤 장난을 하면서 남은 하루를 보낼까 고민해요. 토끼의 창피하고 화났던 마음은 주머니에서 벌써 술술 빠져나갔나 봐요.
“좋아, 다 좋아!”
외치면서 호랑이와 어깨동무하고 가는 모자 쓴 토끼의 뒷모습이 아주 홀가분해 보여요.
《선생님은 몬스터》
피터 브라운 글, 그림|서애경 옮김|사계절|2015
커비 선생님 발소리는 쿵쿵, 목소리는 쩌렁쩌렁. 바비는 커비 선생님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어요. 그림 속 바비는 수업 시간에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돌아다녀요. 커비 선생님이 화를 내고 목소리가 큰 것은 바비 때문인 듯 보여요.
우연히 바비는 공원에서 선생님을 만나요. 바비가 어색해서 숨고 싶은 순간 선생님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요. 선생님이 물려받은 아끼는 모자래요. 바비가 모자를 잡아주자 커비 선생님은 “오, 바비, 넌 정말 최고야!”라며 활짝 웃어요. 커비 선생님과 바비는 공원에서 오리들과 꽥꽥 놀이도 하고, 바비의 비밀기지에 가서 종이비행기도 날리면서 함께해요. 헤어질 때가 되니 커비 선생님의 모습은 처음 책에 등장했던 모습이 아니에요. 시 〈풀꽃〉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구절이 떠올라요.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비가 처음에 ‘몬스터’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의 모습은 모자가 잘 어울리는 예쁜 선생님으로 차츰 변해가요. 늘 말썽인 바비였지만 모자를 잡아줘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커비 선생님이 멋져요.
다시 학교에서 만난 바비와 커비 선생님이 보여요. 바비는 커비 선생님과 조금 친해졌다고 해서 바로 자기 모습을 바꾸지 않고 여전하네요. 이런 바비가 천진난만해서 좋아요.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존 클라센 글, 그림│서남희 옮김│시공주니어│2013
작은 물고기는 모자를 쓰고 있어요. 눈빛이 불안해 보여요. 모자는 작은 물고기가 커다란 물고기한테서 슬쩍 가져온 거라네요. 커다란 물고기는 모자가 사라진 것도 모를 테지만, 모자가 사라진 걸 알게 되어도 자기가 가져간 줄 모를 거라고 하죠. 작은 물고기는 물풀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에 숨으러 가요. 거기에 가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요. 커다란 물고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기 모자를 훔쳐 간 작은 물고기를 뒤쫓아요. 작은 물고기가 믿었던 붉은 게가 작은 물고기의 행방을 손가락으로 알려줘요.
큰 물고기가 쫓기 시작하니 큰 사달이 날 것 같아 작은 물고기의 도망을 왠지 응원하게 되네요. 작은 물고기는 모자를 훔치는 게 나쁘다는 건 알지만 그냥 갖겠다고 해요. 어쨌든 커다란 물고기보다 자기한테 딱 맞게 잘 어울린다면서요. 모자가 앙증맞아서 큰 물고기보다는 작은 물고기한테 잘 어울려 보이긴 해요.
작은 물고기가 숨었던 물풀에서 큰 물고기는 자기 모자를 되찾아 쓰고 나와요. 작은 물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풀 숲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상상을 하게 돼요. 저의 상상은 이래요. 작은 물고기는 잠자는 큰 물고기의 모자를 훔칠 정도로 대범해요. 물풀에서 모자 주인과 맞닥뜨렸을 때도 “아니야, 내 거야! 이건 내 모자야!”라면서 바락바락 우기다가 빼앗겼을 것 같아요. 작은 물고기도 딱 어울리는 모자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나비를 잡는 아버지》
현덕 글│김환영 그림│길벗어린이│2001
바우와 경환이는 소학교를 졸업한 친구 사이예요. 바우는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는데 경환이는 상급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집에 와 있어요. 바우가 송아지를 데리고 풀을 먹이고 있는데, 멀리서 경환이가 나비를 잡으며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가 들려와요. 경환이는 동물 표본 숙제를 한다며 며칠간 나비를 잡으러 다니는데, 제대로 잡지를 못해요.
어느 날 바우 손에 잡혀 있는 나비를 경환이가 달라고 하면서 다툼이 일어나요. 바우는 경환이가 나비를 쫓는다며 바우네 참외밭을 못 쓰게 만들어 놓자 화가 치밀어 싸워요. 바우 아버지는 바우에게 경환이네 가서 사과도 하고 나비도 잡아주라고 해요. 바우네는 경환이네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어서 경환이네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요. 바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잘못은 없어 보이는데 나비 잡을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화를 내는 아버지가 더 야속하기만 해요. 바우가 산에 올라 보니 멀리서 누군가 나비를 잡는 모습이 보여요. 경환이네 머슴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바우 아버지였어요. 바우 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휘두르며 나비를 잡으려 애쓰고 있어요. 아버지는 걸음도 성치 못하고 게다가 모자로는 나비가 쉬이 잡힐 것 같지 않아요. 아버지는 바우에게 모질게 말해 놓고 미안한 마음이 커서 일하다가 말고 아쉬운 대로 모자를 벗어 나비를 잡는 거겠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바우는 아버지의 정답고 서글픈 마음을 그대로 느껴요. 벗어든 아버지의 모자 위로 나풀나풀 잡힐 듯 말 듯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엄마의 초상화》
유지연 글, 그림│이야기꽃│2014
표지에 곱게 화장한 할머니가 우아한 모자를 쓰고 있어요. 마치 패션의 완성은 모자라는 듯 모자에 힘을 주고 있죠. 책장을 넘기면 왼쪽엔 작가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엄마의 일상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오른쪽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려졌던 상상치 못한 미영 씨의 모습이 있어요. “엄마는 파마머리로 성긴 세월을 감추고 미영 씨는 멋진 모자로 성긴 마음을 감싸요.”처럼 엄마와 미영 씨의 모습을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묘사하고 있어요.
멋쟁이 모자가 있으면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게 되죠. 그래도 부족하게 느껴지면 액세서리도 하고 구두와 가방까지 구색을 맞추게 되죠. 화려함은 엄마가 놓쳤던 세월들을 어느 정도 감춰줍니다. 여행을 꿈꾸던 엄마는 드디어 결심을 해요. 엄마는 액자를 뚫고 나와 미영 씨가 됩니다. 자신의 여행 가방 외에는 짐스러울 게 없는 미영 씨는 낯선 곳에서 홀가분합니다. 미영 씨는 낯선 여행지에서 자유롭고 편안해 보여요. 마지막 펼침면 왼쪽에는 작가가 그려 준 엄마 초상화가, 오른쪽에는 여행지에서 그려온 미영 씨의 초상화가 보여요. 다르지만 하나뿐인 엄마이자 미영 씨예요. 엄마이자 미영 씨의 앞으로의 일상이 계속 반짝반짝 빛이 나면 좋겠어요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