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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원 방법
(우리 조상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불신자들이 성경을 믿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중 기독교의 배타성 때문에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되는가? 혹은 예수님이 오시기전 인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보통의 교인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안믿었기 때문에 모두 지옥에 갔다는 전혀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간단한 질문에 대해 성경에서 찾아 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성경의 대부분이 유대인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우리민족의 직계 조상이다. 그후 노아의 자손 3명은 크게 황인종과 백인종 흑인종으로 나누어지고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 민족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졌다.
그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사도행전 전반까지 성경은 거의 유대인들의 역사와 예언이 기록된다.
물론 다니엘이나 이사야, 계시록처럼 세계사적인 역사와 예언이 기록되지만 그것도 유대인에 관련된 경우이다.
어째든 성경에 우리 민족과 기타 다른 민족들은 바벨탑 사건 이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 조상들에 대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이방인들(우리조상)의 구원을 논하기 전에 성경에는 "육신" "혼" "몸"의 구원과 많은 다른 심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구원
성경에서 "구원"이라고 해서 모두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영의 구원)
[고린도전서 5: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주어 그 육신은 멸망케 하여도 그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라.
(혼의 구원)
[벧전1:9]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잠23:14]너는 그를 매질해야 하리니, 그리하면 그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해 내리라.
(몸의 구원)
[창47:25]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께서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구원하셨으니 우리가 내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고 파라오의 종들이 되겠나이다." 하더라.
(원수들로부터의 구원)
[민10:9] 만일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너희를 억압하는 원수를 대적하여 싸우러 나갈 때에는 경고 나팔을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요 또 너희는 너희의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라.
(물로부터의 구원)
[벧전3: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
(장애로부터의 구원)
눅18:41~42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더라.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눈으로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시니
(마귀의 속임수로 부터의 구원)
딤전2:15 여자가 자녀를 낳을 때 구원을 받으리라
* 문맥에서 보면 여자가 자녀를 낳음으로 여러가지 죄(마귀의 속임수)에서 부터 멀어지질수 있음을 말한다.
(둘째 사망)
[계21: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특히 첫째 사망 (육신의 죽음)으로 부터의 구원과 둘째 사망(혼의 죽음) 즉 지옥으로 부터의 구원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성경을 단순히 지옥으로 부터의 혼의 구원으로만 해석한다면 성경에는 엄청난 혼란이 생길것이다.
즉 구원을 받는다고 했을때 구체적으로 " 무엇으로 부터 어디로 구원을 받는지?" 항상 염두하여야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수 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11가지 구원이란 글 참조
http://cafe.daum.net/dispen/RHNp/177
먼저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방법 특히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임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 모두에게 같은 것을 명령하시지 않으셨으며 동일하게 다루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신의 구원이든 혼의 구원이든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우리 조상의 직계로 분류되는 아담과 노아까지의 하나님의 다루심을 살펴 보자.
1 . 에덴동산의 경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다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창2:16~17"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freely)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이 죽음이 육신이나 혼의 죽음(둘째 사망)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 즉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을 말하는 것인데 왜냐면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즉시 몸이 죽거나 혼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았다.
결국 영의 죽음은 몸과 혼의 죽음이 들어오게 만들었으며 그의 자손들은 모두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다.
* 영의세계 참조
http://cafe.daum.net/dispen/Nezv/37
이것을 원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하지만 성경에서는 원죄란 말은 없다.
즉 어떤 사람도 원죄로 인해 지옥에 가거나 백보좌 심판석에서 원죄를 추궁 당하지는 않는다.
오직 몸으로 지은 죄들만을 책임진다
[롬5:12]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윗구절은 원죄가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지어 그의 영이 죽음으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사망은 혼이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원죄란 무엇인가? 참조
http://cafe.daum.net/dispen/RHNp/194
이 에덴의 경륜은 다른 시대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구원 받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잃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 점이다. 즉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구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아담은 완전한 존재였고 구원을 받을 필요성이 없었다 단지 그 상태를 잃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하는 것도 아주 쉬운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만 않으면 된다.
왜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만드셨는가? ,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먹을 것을 알고 만드셨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처럼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사탄, 인간, 천사 등)을 창조하시는 순간 자신의 전지전능은 제한된다. 즉 피조물의 자유는 창조주의 제한인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안 먹고는 창조주의 의지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아담의 의지 아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맘대로 하는 전지전능이라면 창조주는 원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 전지전능으로 원하는 것을 간단히 이루면 된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해 요구하고 원하시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가 참조
http://cafe.daum.net/dispen/RHNp/181
이것 외에 아담에게는 어떠한 제약이나 계명, 율법, 명령이 없다. 선악과를 따서 만지고 놀던 거짓말을 하던 그 어떠한 행위도 죄로 여기지 않았다.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신 것이다.
하와가 신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지닐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순간까지도 하와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였다. 왜냐면 그런 맘을 먹었다 하더라도 선악과만 안 먹으면 됐기 때문이다.
즉 그는 어떠한 행위나 맘을 먹어도도 죄가 아니고 죽지 않는다.
단 선악과를 먹으면 안된다.
참고로 인류의 죄는 하와 때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남편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들어왔다. 만일 아담이 죽은 하와를 버렸다면 아담은 에덴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될 것이고 인류 존재하지 않거나 새로운 하와를 주셔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면 인류는 죄가 없는 존재로 자식을 낳으면서 영원히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결코 믿음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은 행위로 죽은 것이다
* 참조 : 아담은은 타살인가 자살인가?
http://cafe.daum.net/dispen/RHNp/166
결국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끝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이 죽음(영의 죽음)의 결과 누구든 첫째 사망(육신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몸으로 지은 죄들을 용서받지 못한 혼은 둘째 사망(지옥)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죽은 상태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아담과 같이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롬5: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선악과)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육신적)사망이 군림하였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라.
[고전15:22]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영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분명히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알게하는 열매를 먹어 영을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선악과가 육체를 죽이거나 혼이 지옥을 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직 혼과 몸이 악을 선택하여 죄를 용서받지 못했을때 몸이 죽은 후 혼이 지옥에 가는 것이다.
- 선과 악의 지식이 없거나, 혹은 선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어린 아이들이나 정신지체아들이 같은 경우 이들에게는 선과 악의 지식이 없다. 오직 본능에 충실히 살아간다. 즉 이들은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 분별할 줄 모른다. 이러한 이들에게는 지금의 세상 법도 죄를 물을수 없다. 유치원생이 칼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그 아이를 교도소에 보내지 못한다 이처럼 죄를 인지하느냐 못하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죄를 모르는 이들의 혼은 지옥의 위험에 처해지지 않는다.
신1:39 또한 너희가 먹이가 되겠다고 말했던 너희의 어린 것들과 그 날에 선과 악의 지식이 없는(no knowledge between good and evil) 너희 자녀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그들로 그것을 소유하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어린 아이들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의 후손이긴 하지만 이들에게 아직 이러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책임이나 죄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유일하게 이들과 의인 여호수아와 갈렘만이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즉 선과 악의 지식이 없는 이들은 여호수아나 갈렘과 같은 의인들의 부류에 속한다는 점이다.
다른 한 예가 있는데 다윗의 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어린 아들이 죽었다. 그가 죽자 금식을 멈추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하12:23 그러나 이제 그(다윗의 아들) 아이가 죽었는데 어찌하여 내(다윗)가 금식하겠느냐? 내가 그를 다시 데려 올 수 있느냐? 내가 그에게로 갈 수는 있어도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구절에서 다윗이 내가 그에게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이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이가 죽어서 낙원에 갔을 것으로 믿었고 자신이 낙원으로 갈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자기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갈수 있어도 아이는 자기에게 올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 왜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를 먹는 것을 금지하셨는가 ? -
창3:22~23 보라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니 이제 혹 그가 자기손을 내밀어 생명 나무의 과실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함이라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어 보내어 그가 취함을 입은 그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즉시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는데 그 이유는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 되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아담이 영원히 사는 것을 염려 하셨을까?
만일 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아담이 먹었다면 아이러니 하게도...
"영이 죽은 상태에서 영원히 몸이 산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걱정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있다. 과거의 무자비한 독재자들이 지금도 치리한다고 생각해 보면된다.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그가 그토록 갈만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도 노예로 착취당하거나,살인자들이나 강도 강간범들이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을 영원히 산다면 이들을 영원히 격리 시킬수 도 없다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해지지 선해지지 않는다.
죽은 영을 지니고 육체적으로 영원히 사는 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마지막 백보좌 심판 앞에는 지옥에서 있던 혼이 부활하여 심판석 앞에 선다.
그 결과에 따라 불못에 부활한 혼이 혼이 던져진다.
즉 이 불못은 죽은 혼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저주의 몸으로 부활하여 가는 곳이다.
[요5:29]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들은 몸이 영원히 살지만 저주의 부활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땅에 죄가 가득차는 것을 염려하셨다
어찌되었던 이땅에서 아담에게 생명나무를 금지시켜 육체적 죽음을 허락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배려인 것이다.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죄들을 지으며 살고 있었을 것이며, 지금 이세상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즉 죄인이 죽는다는 것은 의인에게는 엄청난 축복인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이면서도 한편으로 죄들을 단절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과학을 발전시켜 생명을 연장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이 땅은 노아의 홍수전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즉 육신이 영원히 산다면 수많은 이들이 죽음을 간구할 것이다.
- 아담은 구원 받았는가?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의 직계 원 조상 아담의 구원에 대해 성경을 찾아 보면 몇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창5:5]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육신적 죽음)
[욥31:33]만일 내가 내 죄악을 나의 품에 숨김으로써 아담처럼 내 허물을 덮었다면,
[눅3:38]카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요,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요, 셋은 아담의 아들이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
[롬5: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육신적) 사망이 군림하였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라.
윗 구절을 살펴보면 아담이 구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담이 허물을 덮었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의 한 동물을 아담을 위해 죽이시는데, 아담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였다.
아무죄가 없었던 한 짐승(아마도 양일 것이다)이 아담 때문에 죽은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혼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셨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행위로 죽었듯이 교회의 경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대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점이다.
에덴 시대도 선악과를 먹는 행위로 죄가 시작되었는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고, 믿었지만, 고의로 선악과를 먹는 행위로 죽었다. 즉 아담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와를 버릴 수가 없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분명한 알아야 할 점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죽음은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을 경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 즉 영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2. 에덴 이후 와 노아의 홍수 사이의 경륜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을 다루시는 방법은 먼저 에덴에서 아담을 쫓아내어 생명나무를 못먹도록 하여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을 막으셨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는 악을 거절하고 선을 선택하여 죄를 이기기를 원하셨다
a 하나님의 요구에 인간은 응할수 있는가?
칼빈의 5대 강령 중 "전적인 타락"이란 교리가 있다. 이 가르침은 인간은 원죄로 너무나 타락하고 무능하여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교리이다. 이 가르침이 옳다면 우리는 한가지 큰 모순이 생긴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기 전 무죄상태에서 왜 타락을 했는가" 라는 것이다. 즉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타락하여 원죄로 인하여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다. 무죄 상태에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수도 있듯이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응할 수도 거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킬수 도 없는 명령을 주시고 그것을 못 지키면 그것에 대해 심판하시는 것이 과연 성경에 기록된 공의로운 하나님이신가? 라는 것이다. 더구나 아담이 선악과로 그 후손들이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으로 태어난다면 왜 아담에게 후손을 허락하셨는가? 라는 문제도 발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실때는 그것을 인간은 응할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명령했을때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 있으며,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습득한 인간에게 악을 거절하고 선을 선택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인간은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이후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요구에 응할수 없는 존재라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해서는 안된다. 즉 할수 없는 것을 요구하고 그것으로 책망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주고 틀리면 빵점을 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견해나 욕심을 더 신뢰하여 스스로를 속인다는 것이다.
[전7:29]보라, 이것이 내가 알아낸 유일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계략들을 고안해 냈다는 것이라.
[약1:14~15]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결국 에덴이후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이 습득한 "선과 악을 아는 지식"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을 거절하기를 바라신다는 점이다.
이것은 새하늘과 새땅 전 백보좌 심판까지 모든 시대에 적용 된다.
사람의 혼이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셨던 방법은 "죄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였다.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을 소유한 모든 시대와 민족에게 유효하다.
창4:4~7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많은 언약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가르키면 아벨은 예수님의 예표인 양의 새끼를 바쳤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카인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인에게 경고한 “네가 바르게 행하면 ”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구절은 말 그대로 죄를 다스리라는 것이지 양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추측을 교리로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너무나 강조하다가 보니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들은 하다못해 예수님의 예표를 통하여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각박증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아벨이 도둑질이나 나쁜짓을 하면서 양을 바쳤다면 아벨은 받으시지 않으셨을 것이며 그 제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마9:13]너희는 가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배우라.
[창6:3]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않으리니, 이는 그도 육체임이라. 그래도 그의 날들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당시 하나님께서는 카인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인류에게 어떠한 특별한 방법으로 인류를 다루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더 이상 다투시기를 포기하시고 그들을 이땅에서 멸절하시기로 결정하신다.
창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창6:3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않으리니, 이는 그도 육체임이라. 그래도 그의 날들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6:9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요구에 응한 유일한 사람이였으며 그는 죄를 거절하고 의를 행하였던 사람이였다.
노아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양을 바쳤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양을 많이 바치더라도 그의 행위가 악하면 그에게 구원은 없다. 또한 노아는 제사법을 포함한 율법을 받은 적이 없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다투었던 일은 앞서 카인에게 하나님께서 바르게 행하고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셨던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카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기로 결정하신것 같다.
홍수 이전과 이후의 경륜을 나누는 이유는 “혼의 구원”에 관한 방법이 달라자기 때문이 아니라 “육신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를 “육체의 구원을 받는 방법”의 한 분깃이기 때문이다. 홍수 이전에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사람은 한명 뿐이 없었다. 즉 노아의 가족들은 의인이기 때문에 홍수의 멸망을 비켜간 것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노아의 가족이였고 그들이 방주를 탔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육신의 목숨을 건졌다고 혼의 죽음을 모면한 것은 아니다. 노아의 자식 중 함이 죄를 지었음을 암시하는 내용과 그를 저주하는 내용이 나온다, 즉 그가 혼의 구원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노아의 홍수로 멸망당한 수많은 사람들(수십억이 넘는다고 한다.)
이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지옥에 갔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선입견에 의한 오류이다.
노아의 가족들이 의인이어서 목숨을 건진 것이 아니듯 노아의 방주에 들어기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죄인이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임산부의 아기들이나 선과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육신은 모두 죽었다.
때로는 육신의 죽음이 혼의 죽음을 피하는 한 방편이 될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육신의 죽음이 반드시 죄와 연관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3:4] 또 실로암에서 망루가 무너져 죽은 열 여덟 명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들이라고 생각하느냐?
창9:11 내가 너희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육체(혼이 아니다)가 홍수로 인한 물들로 멸망(지옥이 아니다) 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땅을 멸망시킬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즉 이 육체적 멸망은 육체적 죽음이지 결코 혼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구원받은 이들조차 육신을 멸망시키기도 한다.
[고전5:5]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주어 그 육신은 멸망케 하여도 그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라.
이 예수님의 질문은 대한 답은 "아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홍수로 죽은 아이들보다 덜 죄인이어서 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륜을 나눌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아의 홍수로 죽은 수많은 죄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민족적인 심판은 대부분 "혼에 관한 구원이나 심판"이 아니라 "육신의 구원이나 심판"이다.
이 심판은 개별이 아니라 단체적이다.
이러한 심판은 영원히 지옥에 가느냐 영생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육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3. 노아의 홍수 이후와 바벨탑 이전의 경륜
홍수이전과 이후의 경륜과 바벨탑 사건의 경륜을 나누는 이유는 혼을 어떻게 구원하는 가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육체의 삶이 크게 변화되기 때문에 나눈다.
홍수 이후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고 지구는 사계절이 생기는 등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임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경륜이 달라짐에 따라 인류의 생활 방식은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 경우이다.
창11:4 "가서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되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 그리하여 우리가 온 지면에 멀리 흩어지지 않게 하자." 하더라.
11:5 주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시려고 내려오셨더라.
11: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백성이 하나요 그들 모두가 한 언어를 가졌기에 이런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하기로 구상한 일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이 시기는 인류는 한 민족으로 한 언어였다.. 이들은 제정일치 국가의 님롯이란 독재자는 엄청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이러한 체제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도시와 탑을 쌓는다. 지금 영어로 세계 공용어로 만들고 수 많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경쟁적으로 지으며 인류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인류에 대해 하나님의 경영방법 즉 경륜은 이들이 힘이 모이지 않도록 막으시는 것이다. 왜냐면 성경 말씀처럼 이러한 인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예전 한 기업의 상상만 해라 우리가 만들겠다라는 모토를 가진 기업이 있었다.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 PC 인터넷 유전자 조작 등 핵무기 등 인류의 힘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문명을 만들었고 더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죄 짓는데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다.
노아의 홍수로 인류를 멸절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들의 힘만 분산 시키기 위해 언어를 나누신다. 하지만 인류는 영어라는 세계 공용어를 만들고 UN등 수많은 세계단체를 만들어 쌓기 위해 하나로 힘을 모으고 있다.
4. 바벨탑 이후와 십자가 이전(이방인)- 양심의 경륜
경륜의 변화는 혼의 구원에 대한 변화가 아니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경륜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이다. 세대적 진리를 마치 시대별로 구원의 방법이 다른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륜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한 변화이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류 전체를 다루시기를 그만두시고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러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일방적인 약속을 하신다.
아브라함은 아랍민족의 조상이기 때문에 순수 유대인이라고 볼수 없다. 즉 아브라함은 이방인으로 볼수 있으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구약이 시작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다루심은 이방인들을 다루심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 시기의 하나님의 다루심은 카인에게 말한내용과 거의 바뀌어 진 것이 없다.
한 예로 아브라함은 비겁하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아비멜렉이란 이방 왕에게 속였고, 아비멜렉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와 동침하려 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경고한다.
창20:2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에 대해 말할 때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서 사라를 취하니라. 20:3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취한 여인으로 인하여 네가 죽은 사람이 되리니, 이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내임이라." 하시더라. 창20:4 아비멜렉이 그녀에게 가까이 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아뢰기를 "주여 주께서는 의로운 민족도 죽이시나이까? 창20:5 그가 '그녀는 나의 누이라.'고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이까? 그녀 자신도 말하기'그는 나의 오라비라.' 하였나이다. 나는 마음의 온전함과 내 손의 무죄함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더라. 20:6 또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정녕, 나는 네가 네 마음의 온전함 속에서 이 일을 행한 줄 알았으므로, 나도 너를 막아 내게 죄를 짓지 않게 하였나니, 내가 너로 그녀에게 접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위 내용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도 모르고 율법도 받지 않은 이방인이 스스로를 마음이 온전하고 무죄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신다.
즉 이 당시 하나님의 선민 유대인도 없으며 아무도 율법을 받지 못했지만 얼마든지 의롭게 살수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루심 즉 양심의 경륜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6. 율법이후와 십자가 이전의 경륜 (유대인) - 율법의 경륜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 중에 유대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이시고 그들에게 많은 약속과 율법을 주신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자와 저주하실자들을 율법을 통하여 명확이 알려주셨다.
[신27:15]"새기거나 부어 만든 어떤 형상도 주께 가증한 것이니 장인의 손으로 만든 것을 은밀한 곳에 세우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멘." 할지니라.~~~~
[신28:20]주께서는 네 행위들의 사악함과 네가 나를 버림으로 인하여 네가 행하려고 네 손을 대는 모든 일에, 네가 패망할 때까지와 또 네가 속히 망할 때까지 네게 저주와 괴로움과 질책을 내리시리라.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유대인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육신과 혼의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신다.
즉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육신은 생명과 부를 얻고, 혼은 구원을 얻는다.
구약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벌레나 짐승으로 취급했고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믿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고 율법도 없기 때문이였다.
자연계시 외에 하나님을 올바로 알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을 통하는 방법 뿐이였고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분명히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 모두 멸망한 것은 아니다. 앞서 그들에게는 율법을 대신할 이전부터 다루시는 방법이 즉 양심의 경륜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예가 여러차례 걸쳐 나온다.
[행10:22]그들이 말하기를 "백부장 코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며
여기서 이방인 코넬료가 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방이였다. 이 사람은 추측컨데 나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부르는가 의인이라고 부른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수 없다고 하는데 의인이라고 부른다.
이 구절에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코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신다.
그런데 만일 베드로가 불순종하거나 사정이 생겨 복음을 전하지 못해 듣지 못했다면 이 코넬료는 지옥에 갔겠는가?
아님 코넬료 같은 사람이 당시 이 지구상에 한명 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바울의 입장에서 복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전에 단 한번도 계시되지 않았던 은혜의 복음이 바울에게 신비로 계시되었다.
이러한 경륜의 변화는 혁명적이였다. 왜냐면 이전의 경륜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이방인은 양심을 지켜야 했고 유대인은 율법을 지켜야 했다. 어찌되었든 행위로 구원을 얻었다.
[욘4:11]자기들의 오른쪽과 왼쪽도 분별할 줄 모르는 십이만 이상 되는 사람들과 많은 가축들이 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부당하냐?" 하시니라.
(마 12:41,) 『,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파로 회개하였기 때문이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위대한 이가 여기 있느니라.』
율법을 받지 못한 니느웨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 회개를 하여 구원을 받는다. 이들은 백보좌 심판에서 유대인들과 같이 부활하여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않아 심판을 받는 유대인들을 정죄한다.
이방인 나라 니느웨는 율법을 지키거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지 않았다..
이들은 양심에 따라 죄에 대한 회개로 구원을 받았다.
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외치라. 이는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 닿았음이라." 하셨으나
욘 3:8 사람이나 짐승이나 굵은 베를 쓰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게 할지니, 정녕, 그들 각인으로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에 있는 난폭함에서 돌이키게 할지니라.
니느웨의 수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거나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뉘우치고 죄악에서 돌이켰다.
즉 선악과를 먹은 이후 혼의 구원에 관한 방법은 거의 변화되지 않는다.
이 내용을 바울은 이렇게 정리한다.
롬2:6 그 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2:8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2: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처음 이 메시지와 상응한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로마서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세세한 율법은 지킬수는 없지만 양심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지킬 수 있었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결코 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즉 이방인들은 여전히 양심의 경륜 안에 있었다.
어째든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듯이 양심대로 행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겔3:20]또한 의인이 자기 의로부터 돌이켜 죄악을 범하면 내가 그 앞에 장애물을 놓으리니 그가 죽으리라. 이는 네가 그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기에 그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그가 행한 그의 의는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나 나는 네 손에서 그의 피를 요구하리라.
3:21 그렇지만 만일 네가 의인에게 경고하여 그 의인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가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살리라. 너도 네 혼을 구하였느니라.
[겔18:24]그러나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악인이 행한 모든 가증함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그의 모든 의는 언급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범한 그의 허물과 그가 지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18:26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그 안에서 죽을 때 그가 행한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
18:27 또 악인이 돌이켜 그가 범한 악에서 떠나 합법적이고 옳은 것을 행할 때 그는 자기 혼을 구원하리라.
18:28 그가 숙고하고 돌이켜 그가 범한 그의 모든 행악들로부터 떠났기에 반드시 살리니, 그는 죽지 아니하리라.
[겔33:18]의인이 자기 의로부터 돌이켜 죄악을 저지르면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 그러나 만일 악인이 그의 악에서 돌이켜 적법하고 옳은 일을 행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살리라.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도다." 하는도다. 오 너희 이스라엘 집아, 내가 너희 각자를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위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분명히 구약은 자기 의로 구원을 얻는다 즉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고 구원을 받거나 멸망한다.
a. 믿음에 대한 오해
미래의 약속을 믿는 믿음(반드시 행위가 동반되어야 함)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믿는 믿음(행위를 동반할수 없음)
많은 사람들은 히브리서 11장을 언급하면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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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을 통하여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에 의한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차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떠나가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으며
11:29 믿음으로 그들은 마른 땅을 가듯이 홍해를 통과하였으나 이집트인들은 그렇게 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윗구절을 인용하여 모든 시대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항상 믿음으로 할때는 믿음의 내용과 대상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면 모든 믿음이 같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믿음은 아무렇게나 만들어 지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께서서 계시 즉 말씀이 있어야 한다.
[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
롬3:1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3:2 모든 면에서 많으니,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음이니라.
노아가 홍수의 경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이 순간 그는 홍수로 부터 구원받았는가? 아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그는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방주를 만드는 행위는 물로 부터 구원받는 것이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즉 그를 구원시키는 동기가 믿음으로 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진정 물로 구원한 것은 그가 방주를 만드는 행위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더라도 방주에 들어가면 살수 있다. 성경 어느 구절에서 노아의 가족들이 믿음이 있었다는 내용이 없다. 즉 노아의 가족들이 의인이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방주에 탔기 때문에 홍수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들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계시를 하셔 믿음을 소유할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즉 계시가 없어서 믿음을 소유할수 없었던 사람들....즉 유대인이 아닌 다른 나라 민족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히브리서에 나와 있는 믿음은 모두 미래를 믿는 믿음 즉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행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약의 믿음 즉 복음을 믿는 믿음은 어떠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과거의 일이다.
과거는 어떠한 행함으로도 결코 바꿀수 없다. 즉 단지 믿는 것 이외에 더이상 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율법을 믿는다라는 말은 율법을 행한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사실 율법은 지키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구약에 모든 의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믿은 것을 행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다.
겔33:20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도다." 하는도다. 오 너희 이스라엘 집아, 내가 너희 각자를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하리라.
이 원칙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 시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7. 예수님의 침례와 십자가 이전 (메시아 사역)
이 시기는 거의 4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 복음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마치 전 시대에 적용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기간은 구약이다. 결코 마태복음 앞에 신약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신약으로 이해하면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하에 계셨고 율법을 다 지키셨다. 이 시기는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시기인데 율법의 경륜에서 메시아 경륜 즉 왕국으로 넘어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시아는 거부되어졌고 그로 말미암아 메시아 왕국은 연기된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마4:17]그 때부터 예수께서 전파하기 시작하여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시더라.
이 메시지는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이 유대 왕국을 예비하기 위한 왕국복음이다.
성경에서 가장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성경의 문맥과 쓰여진 대상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
마1:21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
마2:2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 분께 경배드리러 왔노라."고 하니라.
윗구절의 자기 백성은 유대 백성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메시아가 통치하는 지상왕국 즉 천국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함이 필요하다.
마7:21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 천국(하늘 왕국 Kingdom of heaven)의 정의 : 우리가 알고 있는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메시아가 통치하는 지상왕국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나라의 개념은 성경에서 낙원이나 셋째하늘에 가깝다.
즉 복음서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에 관한 내용이며 이방인들인 우리들에 언급은 거의 없다.
즉 이스라엘에게 예언된 메시아 왕국을 선포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사야서에 언급된 죄값을 치르는 어린양에 관한 예언 마저도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말씀이다.
[마10:6]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5:24]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시니
사53:8 그가 감옥과 재판에서 끌려갔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선포하리요? 이는 그가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음이요, 그가 내 백성(유대인)의 허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았음이라.
복음서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잘 이해하여야 한다.
a. 오해 구절들
모든 시대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다는 교리의 구절들을 살펴보자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이 구절은 이러한 교리를 주장하는 대표 구절이 된다.먼저 "부분적 진리"가 "전체의 진리"가 될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말이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진리이다. 하지만 모든 시대에 진리는 아니다.
한 예로 창 5: 23에녹의 모든 날들이 삼백육십오 년이었으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창세기의 에녹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갔는가? 물론 이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주장할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입기 이전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받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이 두 구절의 상반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서로 모순이 아니라 다른 시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했을때 그는 "도마"이다.
요14: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제자들) 알고 또 그 길도 너희가 아노라." 하시니 도마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알 수 있나이까?"라고 하니
여기서 "너희" "우리"는 누구인가? 모든 인류인가? 이 구절은 먼저 도마에게 자신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는 길임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도마 앞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는 방법은 자신을 메시야로 믿으라는 것이고 다른 길은 없다고 말씀하셔야만 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열심히 착하게 율법을 잘 지켜야 아버지께로 갈수 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설령 율법을 지켜 구원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된다. 지금 하나님의 경륜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지금 약속하신 메시야가 앞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마에게 향한 메시지는 영적으로 우리에게도 해당될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적인 적용이다.
여기서도 은혜의 복음은 없다. 왜냐면 예수님이 아직 피를 흘리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 한명도 예수님의 피를 믿고 구원받는 이들은 없다.
즉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것"과 "은혜 복음을 믿는 것"은 같은 믿음이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믿는 것이다.
하나는 "메시아 왕을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구주를 영접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도마에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을때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말한 말씀은 은혜 복음은 아니다.
여전히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의 왕국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진리지만 이 말씀으로는 거듭나거나 구원받을 수 없다.
도마는 여전히 대속으로 죄를 용서받을수 없다. 지금 도마는 예수님을 대속주로 믿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죽으시고 난뒤 부활을 믿지 않았고 책망받았다.
이 시기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명령을 준행하여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이 시기 한 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더 이해가 될 것이다.
막10:17 그 후 주께서 길에 나가시니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주께 무릎을 꿇고 묻기를 "선한 선생님, 내가 영생을 상속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리이까?"라고 하니
21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쳐다보시고 사랑하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있는 보물을 가지게 되리니 그런 후에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더라. 22 그러나 그는 그 말씀에 슬퍼하고 근심하며 가니 이는 그가 많은 재산을 가졌기 때문이라. 23 그때 예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재물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고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의 말씀에 놀라더라.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아, 재물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고 하시니
윗구절이 단순히 비유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이 부자 청년은 복음을 믿어 구원 받을 수 없다. 이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재물을 버리고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을 따를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지 않는다. 예수님 이 땅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따를 수도 없다. 또한 지금 부자들도 은혜 복음을 통하여 얼마든지 쉽게 구원을 받는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이 메세지는 부활의 복음이 아니다. 이 메시지가 진리이긴 하나 그 당시 이 메세지로 구원받기는 쉽지 않았다. 제자들이 오는 세대에서 복을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부활의 복음을 믿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막10:27 그때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되겠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일백 배로 받을 것이요 또 영생을 상속받으리라
우리는 영생을 상속받지 않는다. 우리는 거듭난다. "거듭나는 것"과 "영생을 상속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이 "길","진리""생명" 되신 예수님을 도마는 이미 알고 있었고 따르고 있었다.
즉 이 구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부활의 복음에 관한 메시지가 아니다.
원뜻은 예수님 당시 모든 것을 버리고 메시야를 따라가야 하는 행위로 영생을 상속받는 실제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즉 특정시대에 특정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이다.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또 이 구절에서 구원받을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는 내용을 사람들은 모든 시대에서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구원받을수 있는 이름은 이전에도 주신적이 없고 이후에도 없었다. 이것이 전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번도 대속할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그렇다고 죄를 짓지 않은 이들을 지옥에 보냈다는 말씀은 아니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은 죄를 지은 죄인이다.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이러한 구절처럼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라고 주장하기 좋은 구절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이 모든 이라는 단어를 잘 이해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모든은 예외없이 모두가 아니다.
모두라고 해서 이 구절에 아기들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아기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마가복음 10:14] 예수께서 그것을 보시고 몹시 언짢아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마태복음 18:3]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회심하지 아니하고 또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나 천국은 갈수 있는가?
문맥상 그렇지 않음을 잘 알것이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이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1차적으로 바울은 믿지 않는 로마에 있는 시민들을 염두해 두고 서신을 썼다.
여기에는 아기들이나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최소한 바울의 글을 읽는 사람은 최소한의 지적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이곳에는 바울은 자신의 서신이 노아나 욥과 같은 의인들은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이곳 로마에는 거의 의인은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앞장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죄인임을 자각하도록 찔림을 준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제한된 모든 사람"이다.
그리고 제한된 시기의 모든 사람이다.
천년왕국과 영원시대로 들어가면 여기서의 모든 사람은 다 빠진다.
누군가 천년왕국 시대나 영원시대로 들어가서 이구절을 읽어주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애놋에게 이구절을 읽어주며 당신은 모든 사람에 포함되므로 하나님께 갈수 없소 라고 말할수 있는가?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와 제한적인 진리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세상을 창조하셨다."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등등
과거의 사실들은 보편적인 진리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제한이 없으며 변동이 없으며 해석의 여지가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어느 특정 시대나 대상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이러한 진리들은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식일을 지켜라, 절기를 지켜라, 행위로 구원을 얻으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등등...
성경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즉 어떤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뚫는 창을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고..
어떤 구절에서는 어떤 것도 막을수 있는 방패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두 내용은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시간적 차이 혹은 지역이나 대상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모든 것을 뚫는 창이 있었고 오늘부터는 모든 것을 막는 방패를 창조하는 것이다.
아니면 제한된 지역이나 대상에게 국한 시키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서는 창이 우선이며, 강원도 지역에서는 모든 것을 막는 창이 우선이라고 정하면 된다.
여기에 답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100년 전까지 복음을 전해들은 적이 없다..
이들은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그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롬1:19)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롬2:15)
로마서 1~3장에서 말하고자 한 결론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결국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즉 이 로마서에서 바울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결국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 심판은 물론 백보좌 심판이란 점이다.
심판을 받는다고 모두 지옥을 간다고 오해하면 안된다...
로마서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즉 백봐좌 심판석에 생명책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생명책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 생명책은 복음을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인 것이다.
아담의 타락이후부터 새하늘과 새땅 이전의 모든 시대에 있어 구원받는 방법은 거의 동일하다..
로마서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단지 참고 선을 행하여 구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의인들의 기록들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쉬운 삶을 살지 않았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가 해탈을 얻기 위해 고행을 했던 것처럼 의인들의 구원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였다.
로마서 3:7절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참고 선을 행하여야 한다.
7. 은혜의 경륜 (오순절 이후와 휴거 이전)
이 시기는 하나님의 다르심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오직 예수그리도의 부활과 대속을 믿기만 하면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단번에 받는 것이였다. 이 사실을 바울은 어떻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해야 했겠는가?
율법도 잘 지키고 예수님도 믿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겠는가?
지금 바울은 율법 무용론을 말해야 하고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노아의 홍수가 나기 전 노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믿으라 하였는가 아니면 율법을 지키라고 말했는가 그는 열심히 배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야 산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가 있다.
이처럼 바울도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비가 내려 홍수가 내린 뒤 노아가 다시 배를 만들라고 하는가?
아니다.
이처럼 복음의 경륜이 끝나면 다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이방인들은 양심대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
은혜의 경륜이 휴거로 끝이 난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보여주면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수 없다고 가르칠 것인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것인가?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할 것인가?
즉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복음의 진리는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시기가 있고 대상이 있다.
전도서 3: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으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심긴 것을 뽑을 때며 ~~~
다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시기에 관하여 살펴보면...
유대민족을 제외한 이방민족들은 구원에 대한 방법은 변화가 없다.
양심에 따라 죄를 깨닫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이 죄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어기는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른 민족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저주를 받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다.
성경을 오해하는 이들이 실수 하는 부분이 이부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기점으로 예수님 이전에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예수님을 모르고 죽은 이들은 모두 지옥에 같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리는 이슬람교의 깃발처럼 한손에는 코란과 한손에는 칼을 들고 믿지 않으면 죽인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며 아주 비합리적인 종교중에 하나로 전락시켜 버렸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복음을 쉽게 말하면 당첨된 로또 번호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돈을 버는 방법은 그리 쉽지가 않다. 사업을 하든지 월급쟁이를 하든지 각자에게 주어진 액수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벌어야 행복 성공했다라고 한다.
만일 우리에게 당첨된 로또 번호를 안다면 그리고 그 액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값없이 알려줄수 있다.
우리는 로또 번호를 듣지 못한 이들에게 당신들은 이 번호를 몰랐으니 모두 실패한 거이요 라고 말할수는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방법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오직 믿음으로 어떠한 선한 행위도 없이 아무런 조건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은혜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복음을 듣지 못한 은혜의 경륜안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많은 기독교인들은 단순하게 생각한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얻으니 복음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보편적인 기독교 안에서의 교리이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라는 이방인(이탈리아인) 군대의 백부장이 나온다. 이사람은 이방인이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구제하는 등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이르러 기억함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면서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즉 지금의 경건하게 살면서 선을 행하지만 복음을 모르는 사람의 유형이다. 지금 고넬료가 죽으면 구원을 얻지 못할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인정하신 의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갈 것인가? 앞서 말한대로 아기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기전 선과 악을 구분하기 전까지는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넬료 같이 경건하게 산 사람 같은 경우는 어떠한가.
고넬료는 복음을 못들었지만 의인이다. 하지만 이 고넬료는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었다.
즉 구원이라고 다 같은 구원이 아니다. "짐승의 피로 율법을 지켜 얻는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얻는 구원" 즉 "거듭남"은 완전히 다른 구원이다.
천년 왕국에 수 많은 이방 민족들이 구원을 받아 왕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교회는 새 예루살렘에 거한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특별히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신 이유는 복음을 통해 더 나은 구원을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인 것이다.
이 구원은 단순히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 즉 양자가 되는 것이며, 이로써 예수님과 형제가 된다. 즉 피조물의 생명이 아닌 창조주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이 구원은 다른 세대의 구원과 전혀 다른데
엡3:2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
3:3 이것은 그 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이며 (내가 전에 간략하게 쓴 것과 같으니
3:4 너희가 읽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게 되리라.)
3:5 그것이 성령으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지금 계시된 것처럼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으니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 그의 약속에 동참자가 된다는 것이니라.
3:7 이로써 그 분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역사하신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엡2: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2:5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2:7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자하심 가운데 우리를 향한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려 함이니라.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골1:25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노라.
1:26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1:27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
[히2:11]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으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고전15:23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롬8:15]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4: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시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히 11: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어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사 우리가 아니고서는 그들이 온전케 되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 시대의 은혜의 풍성함은 어떤 경륜과도 비교될수 없으며 어떠한 행위도 없이 유일하게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을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은혜의 경륜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휴거로 끝이 난다.
이후 다음과 같이 몇가지 경륜으로 나누어진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한다.
- 휴거-
고전15:52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15: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15: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살전4:14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4:17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많은 이들이 교회가 환란을 통과할 것을 믿고 있다.
하지만 간단히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면 한가지 크나큰 모순이 생긴다.
환란 기간동안은 행위로 구원을 얻거나 지켜야 하는 기간인데 만일 행위가 구원을 유지 못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체가 된 이들이 다시 떨어져 마귀의 자식이 되는 것인가?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나 권세나 현재 일이나 다가올 일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
[고전6:15]너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엡5:30]이는 우리가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임이라.
참조 : 거듭난 사람이 짐승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http://cafe.daum.net/dispen/RLEg/274
- 그리스도의 심판석 -
거듭난 살아있는 성도들은 하늘로 변화되어 올라가거 죽은 성도들은 부활한다.
고후 5:10,『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백보좌 심판석이 아님)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롬14:10]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이후 하늘에서는 은혜시대에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서 그들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다.(앞서 말한대로 구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심판도 여러가지가 있다) 이 심판은 불못에 던져질지 정하는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각 사람이 행한 행위에 대한 상급에 대한 심판이다.
고전3:12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으면
3:13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3:14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3:15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 대환란의 경륜 -
휴거가 일어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 시간은 알수가 없다. 보통 즉시 대환란이 시작된다고 믿지만 근거는 없다.
어찌 되었던 야곱의 환란이라고 부르는 대환란의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기간은 7년이다.
이 시점은 적그리스도가 희생제와 성소를 부수면서 시작된다.
단 8:11~13 정녕, 그는 자신을 군대의 대장에게까지 높였으며, 그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희생제도 없어지고 그의 성소의 처소도 허물어졌도다. 한 군대가 그에게 주어져서 죄과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희생제도 반대케 하며 그 숫염소가 진리를 땅에 던지고, 마음대로 행하며 번성하였더라. 그때 내가 한 성도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말하였던 그 어떤 성도에게 또 다른 성도가 말하기를 "매일 드리는 희생제와 멸망의 죄과, 즉 성소와 군대를 내어 주어 발 아래 짓밟히게 하는 환상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하니단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천삼백 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깨끗하게 되리라." 하였더라.
이젠 의로운 행위와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절대 복음을 믿는 ale음이 아니다. 이미 복음이란 버스는 떠났다) 이 시대는 짐승표를 받지 말고 짐승에게 경배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롭고 착한 사람이더라도 짐승표를 받는다면 그는 구원을 장담할수 없다.
이 시기는 2천년전 예수님께서 3년간 사역을 하시던 시대와 사도행전 초기 시대와 매우 비슷하다.
상당수의 교회들이 교회의 대환란 통과를 말한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수 없다고 말하거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물론 은혜 시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거나 행위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문제는 지금이 그 환란시대인가 이다...
환란시대와 교회 시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환란 전 교회 휴거를 부인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부분에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쟁이 있거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바코드와 같은 것이 등장하면 지금이 환란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회는 유기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몸이다. 즉 유기체는 일부가 짤라지거나 혹은 일부가 죽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몸이 아니다.
환란 통과를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로보트로 생각한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의 공로로 아무 댓가 없이 구원을 얻지만 기타 모든 시대는 그러하지 못하다. 모든 이단 교리는 간단하다. 대상과 시대를 바꾸면 된다.
이 시대는 다른 장에서 많이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하겠다.
어찌 되었던 은혜의 경륜을 제외한 모든 시대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
지금 이 환란 시대는 2가지가 필요하다.(여기서 예수의 믿음은 은혜 복음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계14:12]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더라.
마25:32-33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 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 그리하여 양들은 그의 오른편에, 염소들은 그의 왼편에 세워 두고
이일은 환란이 끝나고 재림 때 일어날 일들인데 이방인족들에게 복음을 믿고 안믿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을 잘 대해주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민족들을 심판한다.
9. 천년왕국의 경륜
이 시대는 참으로 특별한 시대이다.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직접 이땅을 왕으로써 통치하신다.
믿음이 전혀 필요없다. 왜냐면 보이기시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히11:1)
http://cafe.daum.net/dispen/Nezv/45 13장 왕국에 관한 내용 참조
이사야11:1~14
11:6 또한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11:8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
11:9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렘31:33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맺을 언약이 되리니, 그 날들 이후로 나는 내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31:34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주를 알라."고 더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모두가, 즉 그들 가운데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기 때문이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할 것이며 그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
이젠 율법, 복음나 양심에 따른 행위도 불필요하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완전한 법으로 통치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구약의 신정 통치처럼 공의롭다.
하지만 아담의 육신을 지니고 이 땅에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은 괴로울 수도 있다.
그들의 죄의 성품이 그들을 충동질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쇠막대기(철장)로 그들을 다스린다.
(계 2: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이 질그릇같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 12:5)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모든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올라 가더라.』(계 19:15)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
이 시대의 구원은 단순하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의로운 통치기간도 영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들이 천년이 지날쯤 예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굴복하고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계 20:7 그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계 20:8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가서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계 20:9 그들이 땅의 넓은 데로 올라가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도성을 포위하니,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더라.
천년왕국 마지막에 왜 민족들은 반란을 일으키는가? 참조
http://cafe.daum.net/dispen/RHNp/172
아마도 이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이다.
10. 백보좌 심판의 경륜
계 20:11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계 20: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계 20:13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계 20:14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0:15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단 12:2 땅의 흙 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
(요 5: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앞서 설명한 대로 은혜의 경륜을 제외한 모든 경륜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구분점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다. 우리의 양심과 모든 종교가 하나같이 선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저주의 부활로 영원한 불못에 처해지기 싫다면 악을 거부하고 선을 행하여야 한다. 만일 자신이 없다면 지금 복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
11. 새하늘과 새땅의 경륜
아담이후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고 선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살겠고 죄인은 저주의 부활로 불못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사65:17]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66:22]주가 말하노라.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씨와 너희 이름도 항상 있으리라.
[벧후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
[계21: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면
아담이후 은혜시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는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영생을 얻거나 불못에 던져진다.
하나님이 다루시는 한 경륜은 중복되거나 겹쳐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시대는 양심의 경륜과 복음의 경륜이 중복되는 시기이다.
지금도 어린아이들과 어딘가에 복음을 듣지 못했지만 창조주를 두려워하고 양심적으로 살고 있는 의인이 있다면 그는 백보좌 심판에서 자기 행위대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은혜의 복음을 듣는다면 절대 선한행위로 구원받으려는 그런 무모한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롬1:17]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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