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마산(距馬山, 209m): 부천시 소사구와 인천광역시 남동구, 부평구와 경계에 위치해 있는 해발 209m산이다.
산의 형상이 큰말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총면적은 112.5ha 이며 동쪽으로 성주산과 이웃하고 있다. -옮겨온 글-
△관모산(冠帽山 162m): 인천 남동구 장수동에 관모산(冠帽山:162m)이 있다. 인천대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 많이 알려진 곳으로, 이는 멀리 수원 광교산에서 시작된 산 뿌리 ‘한남정맥’의 작은 가지에 해당한다. 곧 한남정맥이 인천으로 뻗어오게 되면 소래산부터 시작이 되는데, 그 줄기가 주안산(만월산)을 거쳐 북으로 올라간다. 이 때 소래산과 주안산 사이에 관모산과 거마산(距馬山:209m)이 있어 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모산과 거마산은 서쪽으로 비리고개, 동쪽으로는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중 관모산은 그 자체가 머리에 쓰는 ‘관’이라는 뜻이지만, 원래 발음은 우리말 ‘갓모’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갓모’는 원래 이름이 ‘갈모’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갓 위에 쓰던 것을 말한다. 산의 모양이 갈모처럼 생겼다 해서 갓모산이라 불리던 것이 한자화 되면서 관모산이 된 것으로 향토사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거마산은 ‘큰 말[馬]이 뛰는[距] 모양’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사실 관모산이나 거마산이 그런 모양인지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원래 이들에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뜻이나 발음의 우리말 이름이 있었을 가능성도 많다. 다만 이들이 워낙 작은 산이다 보니, 『동국여지승람』 등 옛 기록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유추해낼 방법이 없다. 관모산 기슭에는 조선 중종 때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한강과 황해 바다를 연결하는 운하를 파려고 하다가 암석에 막혀 중단된 곳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는 ‘무너미’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옮겨온 글-
△상아산(象牙山 151m): 인천 남동구 장수동 산 78에 자리한 높이 151m의 산이다.
산의 형상이 코끼리어금니와 같이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옮겨온 글-
△소래산(蘇萊山 299.4m):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299.4m이다. 인천 남동구 장수동 산 65번지 일대가 정상석 주변 반경100m이다. 행정동과 법정동으로 볼 때 소래산 정확한 위치는 인천 남동구 장수동 산 65번지이다. 단지 소래산 산림욕장이라고 소래산 극히 일부만 시흥시 대야동에 있다. 근교 산 정상에서에 맛볼 수 없는 낙조 경관이 최고이다. 소래란 지명은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냇가에 숲이 많다는 설과 솔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지형이 좁다는 등의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년)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둥성의 래주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던 뒤부터 소정방의 소(蘇) 자와 래주의 래(萊)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래포구 등 근처 지역에 "소래"라는 명칭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옮겨온 글-
△성주산(聖柱山 216,5m):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와 시흥시 대야동에 걸쳐 있는 해발 216.5m 산이다.예전에는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렀는데,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만 하여도 벌막 쪽에서 소가 앉아 있는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시흥 쪽에서는 이 산의 골짜기를 댓골[大谷]이라 부르고 산 이름을 댓골산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1918년간행된《조선지지자료》에는 성주산과 화오개산[華梧峴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성주(聖柱)란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을 뜻한다. 하우고개·여우고개·마리고개 등의 고개와 든전물·작은 마리골·창골·도티굴·뒷골 등의 골짜기, 깊은구지·솔안말·구지말·소새 등을 포괄한다.
-옮겨온 글-
▶산행일ː 2024년 05월 30일(목)
▶산행지ː 성주산(216.5m) 소래산(299.7m) 상아산(150.8m) 관모산(160.8m) 거마산(210.3m) 뒷산(210m)
▶코스ː 중동역-송내공원-뒷산-거마산-대공원-관모산-상아산-돌계단-소래산-목계단-성주산-부천역
▶난이도ː B+
▶누구랑ː 부산 번개 팀 2명(철인)
▶시 간ː 12:05∼16:33(휴식.점심.목욕포함 04ː26분)
▶거 리ː 약 12.20㎞ (오르내림포함 약 13.57km)
▶날 씨ː 흐림고. 구름. (구름조금 & 미세먼지조금)
◈교통편◈
▶갈때ː구포역(08:16)→광명역(11:00 도착)→광명역(11:15-환)→구로역(11:36 환승)→중동역[11:54착 1번출]
▶올때ː부천역(16:10)→구로역(17:07환)→광명역(17:22)(저녁)→광명역(부산행19:00출발)→구포역(21:55)도착
△김재로 묘소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청송 심씨와의 합장묘로, 인천광역시 남동구 운영동 만의골 소래산에 위치한다.
그 인근에는 정조대에 영의정을 지낸 아들 김치인(金致仁)의 묘소도 있다. 1990년 11월 9일에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재로(金在魯, 1682~1759)는 숙종과 영조대에 활약한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정파적으로는 노론(老論)의 영수 역할을 하였다.
영조의 신임이 매우 깊었는데, 그가 죽자 영조가 직접 그의 집에 찾아가 조문을 하고, 제문(祭文)도 손수 지었을 정도였다.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저술로는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예기보주(禮記補註)』, 『금석록(金石錄)』 등이 유명하다.
운연동 만의골 소래산(蘇萊山) 등산로 입구에서 200미터 올라가면 청풍김씨(淸風金氏)의 묘역이 있는데 그의 무덤은 그 가운데
가장 윗편에 위치하고 있다. 묘소 뒤로 곡장(曲墻 :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을 두르고 봉분에는 호석(護石)을 둘렀으며,
봉분 앞으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묘갈이 있다.
묘갈은 높이 196㎝, 너비 64㎝, 두께 23㎝인데, 뒷면과 좌 · 우면에는 그의 관력과 생애가 정리된 음기가 있다.
이는 1761년(영조 37)에 건립된 것으로 남유용(南有容)이 비문을 지었고, 서무수(徐懋修)가 해서로 글씨를 썼다.
묘소 앞 국가유산 안내판 하부에는 또 다른 표지석이 위치하고 있다. 표지석에는 1982년 8대손 김지영(金智永)이
중수했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으로 판단하건데 주요 석물이 이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장대석(長臺石)으로 구분한 아래의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 정면으로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석양(石羊)이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 석양의 주둥이가 일부 훼손되어 있다.
♣.영혼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영혼이다.영혼 없이는 인생의 시험과 고난에 바스러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초월적이지 못한 채로 물질주의자들의 가치관에 억눌려 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현실주의를 가장한 비관적 세계관에 고통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