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吟 [丙子胡亂憂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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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主方深會稽恥
誰將神策奏中興
南陽龍臥人無識
玉署唯存粥飯儈
감회를 읊다 [병자호란 때 나라를 근심하는 시]
임금께 바야흐로 회계의 수치가 깊은데
누가 신묘한 계책으로 중흥을 아뢰겠는가
남양의 와룡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옥서에는 오직 죽반승만 남아 있네
● 회계(會稽)의 수치 :
청나라 군대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군신의 예를 요구하는 등 굴욕적인 강화를 거세게 요구하여 결국에는 인조(仁祖)가 항복한 것을 가리킨다. 춘추시대 월나라 구천(句踐)이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싸우다가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치욕적인 화의(和議)를 체결한 고사가 「사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 踐世家)」에 보인다.
● 남양(南陽)의 와룡(臥龍) :
후한 말기에 제갈량(諸葛亮)이 남양의 초가집에 은거하고 있을 적에 그의 친구 서서(徐庶)가 유비(劉備)에게 제갈량을 천거하면서 "제갈량은 바로 사람 가운데 누워 있는 용[臥龍]이니, 그를 만나 보지 않으렵니까?"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 옥서(玉署)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 사적(史籍)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부로 옥당(玉堂)이라고도 한다. 사헌부·사간원과 더불어 삼사(三司) 라 하였다.
● 죽반승(粥飯儈)
죽과 밥만 많이 먹는 중이란 뜻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출전] 正峯集 卷一
[출처] 沃川全氏壽堂公派實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