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사람들을 운집시켜 세 과시를 하는
어느 단체의 멤버가 제게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다고 말을 하기에
제가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 일이 구원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지금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이나 주제에 관해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는 방법에 대한 설교가 드뭅니다.
교회가 전도라는 미명으로 교회회원으로 등록시키고는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릴 수도 있는데 성경은 그와 같은 죄가 엄청나게 크다고 지적합니다.
옛날에 공산당들이 구덩이에다가 양민을 밀어 넣고
총살시킨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사람의 영혼을 살릴 실력이 없다면 차라리 전도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전도는 누가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면 돌들로
소리치게 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교회가
아니면 전도가 안 되고 부흥이 안 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복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자신을 먼저 가르친(디모데전서) 다음에
충성 된 자들에게 부탁(디모데후서)할 수 있는 자신의 때가 되면 사람이 옵니다.
도로의 표지판을 바꿔놓는 건 차가 돌아오면 되지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고 자신도 안 가고 남도 못 가게 한다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그런 죄를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18장은 말씀하시기를 실족케 아니할 수는 없어도 실족케 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로다(7절)하십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는 가장 무서운 죕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 늘 평안이 없고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걸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은 항상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는 줄로 착각합니다.
엄청난 일을 하는 줄 알고 속고 있는데 이와 같은 미혹이 무섭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한 영혼이 더 큽니다.
보이는 천하의 모든 사물의 합계보다 한 영혼의 값이 훨씬 더 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 욕심으로 인한 실수 때문에 한 영혼을 죽여 놓으면
내가 천하에 있는 모든 만물을 다 하나님께 드려도 갚지 못하는 겁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 바로 영혼을 실족시키는 죄입니다.
그런 실수는 제게도 있고 여러분에게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이 왜 아말렉을 그토록 싫어하셨을까?
씨를 말려 버리라고 하실 만큼 왜 그들을 혐오하셨을까? 그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가나안땅을 향하는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명하여 몰살시켜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씨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켜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진로방해가 그만큼 무섭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지금 암 투병을 하면서
몇 만인가 몇 십만인가 회원들에게 나름대로 아침마다 말씀을
내면서 보람을 갖는 한 목사를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답답해서 자신의 구원의 시간을 주심을 왜 모르는가 하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행진해 갈 때에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민족들은 거의 다 살려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협조하는 민족은 하나님께서
하나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민족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기어코 죽여 버립니다.
끝까지 추적해 죽이는데 씨를 말려 버리고 마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려 사망을 안고 볼 못으로 가는 운명인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거듭나서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선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단이 왜 하나님 앞에 원수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그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해서 그만 실족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교회도 잘 짓고, 사람도 많이 끌어 모으고, 본 떼 나는 일도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칭송 받고 박수 받는 일도 많이 하라고 장려를 합니다.
그러나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 그때부터 발광을 합니다.
마귀는 인간을 참소하여 하나님과 이간시키고 정죄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 없는
곳과 진리와 상관이 없는 곳 곧 생명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학살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들과 말씀을 나눌 때에 3가지 질문을 꼭 합니다.
하나님과 무슨 관계인가? 그 다음에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없이 설교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로마서를 통해 요한복음을 익히고 그 다음에 히브리서에 도전하세요.
하다하다 안 되면 밤중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듯 제게 찾아오세요.
그 다음에 요8:45 보십시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진리를 말하므로 하는 말씀을 다시 말하면 영적이므로 하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말씀을 하시니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성경에 쓰인 문자적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다, 진리(?)다
큰소리로 떠들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신 이 호 로고스의 말씀이
살아 있는 영과 생명으로 다가오는 사실을 모르고 믿지 못하는 걸 봅니다.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쉽게 믿으나 바울과
같이 육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영이시라고 하면 난감해 합니다(고후5:16)
교회에서 육신으로 보이신 예수만 믿으니 어느 사이비 단체에서는 어느 인간이
자신이 예수의 영을 가진 약속의 목자라고 지금 사기꾼 노릇을 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은 지금 현재 상태로 죽으면 두말 할 것도 없이 둘째 사망 불 못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이 말씀은 이외로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을 보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겁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민족은 약속에 있어서
대기자들의 신분으로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 안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처음에는 너희가 아브라함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하시고,
아브라함이 너희의 아비가 아니라 마귀가 너희 아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다음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했는가요?
혹시 교단에 속한 것은 아닌가요? 어느 큰 교회에 속한 것은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이 다 여호와의 집에 심기운 감람나무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시1:3) 그러한 생명나무의 가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요8:50절을 보십시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사람의 특징은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주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하십니다.
근데 그 말씀이 무엇이기 때문에 내 말을 지키면 이라고 말씀하실까요?
바로 진리(참 실제)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요8:55절입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해야죠. 나는 참 하나님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요.
그게 바로 영생입니다(요17:3) 그러나 주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몰아넣는 것은 거짓말쟁입니다.
계22:15을 보면 이와 같이 거짓말하는 자는 성 밖에 있으리라(15)고 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모르는 겁니다.
첫댓글 복음을 통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존재의 떨림이 없으면 결국 울림(관심)이 없고, 울림이 없으면 결국 헤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분명 복음을 통하여 생명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인스턴트 양식(교훈)은 아무런 설렘도 없고, 울림도 없다는것을 압니다.
그런의미에서 김요한의 breakfast는 제가 때론 삼천포에 빠져도 다시 설렘으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앞에 나아갈수 있도록 돕는 "생명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아멘!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