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김 세 지
요즘 일기 ‘예보’는 일기 ‘중계’에 가깝다. 교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면 얼른 시스템에 접속해 빗금을 그려 넣기라도 하는 걸까? 심지어 내가 한발 빠를 때도 있다. 이미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예보 화면엔 노란 해가 뻔뻔하다. ‘기상청 직원이 화장실에 갔나?’ 궁금할 정도다. 하긴 유례없는 기상 이변으로 아예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그들에게 매번 정답만을 닦달하는 것도 무리이긴 할 것이다.
티핑 포인트*를 넘기면 기후 재앙이 올 것이라는 목소리에 공감하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빙하기 이래 가장 더웠다는 올여름 내내 주야장천 에어컨부터 틀어대기 바빴던 내 모습에 이미 길들어 버린 편의에 대한 인간의 관성을 과연 멈출 수 있을지 회의가 생긴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빙하가 녹는다고 해도, 마치 이웃 행성에서 지구의 친척 집에 다니러 온 사람처럼 굴다가, 늘 먹던 배춧값, 시금칫값이 요동쳐 이대로면 김치도 먹을 수 없게 될 거라 하니 그저 달갑지 않은 정도에 불과했던 이런 변화가 불안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변하는 것이 날씨만은 아니다. 나 때는 대학에 가서나 휴대전화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몇백만 원씩 하는 최신형 스마트폰를 가진 초등학생도 많다. 아이는 그런 친구가 부러워 자기는 왜 가질 수 없냐 묻는다. 운전하다 길을 건너면서 주변도 보지 않고 전화기만 보며 좀비처럼 걷는 학생들을 보면 애가 탄다. 놀이터에 놀러 나와서도 게임을 하느라 전화기를 놓지 못한다.
애당초 우리 아이의 휴대전화는 전화와 문자만 되는 소위 벽돌폰이었다. 주말에만 할 수 있는 게임은 별도의 태블릿을 사용한다. 언제든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아이는 불만이 많다. 좋지 않은 줄은 알지만, 아예 못 하게 하면 친구들과 어울리질 못할 같고, 적당한 선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이 기계 하나면 요즘은 못 할 것이 없다.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몰라도 되는 것을 알아버리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들에 휩쓸려 버린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로만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종종 있다. 꿈을 물으면 절반 이상이 ‘돈 많은 백수’라고 말한다지 않는가?
절대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그런 아이의 성정을 알고 툭툭 때리며 약 올리는 친구 때문에 아이가 속상해한다. ‘바보 같이 맞고만 있었냐! 너도 똑같이 때려주지 그랬냐!’ 솟구치는 마음의 소리를 꾹꾹 누르고 솔로몬 같은 답을 찾으려 내 인생 전체를 뒤집어 탈탈 털어 보지만, 건질 것은 없다. 내가 어릴 적 집과 학교에서 배우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가치를 그대로 들이대기에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한 답을 요구하는 것만 같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는 절대 친구랑 나눠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했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거라 배웠지만 전염병의 공포 앞에선 그것이 정의에 가까운 듯 보였다. 고작 8살이었던 아이가 이 말을 어떻게 소화 시켰을지 염려스럽다.
아이들에게 짐 옮기는 걸 도와달라며 유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흉흉한 뉴스도 들려온다. 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전문가는 낯선 어른이 도와달라고 하면 주변 어른에게 미루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안감에 아이를 붙잡고 신신부탁을 하고 보니 뒤늦게 씁쓸함이 밀려온다. 남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어떤 사람은 절대 돕지 말라니 아이에게 관상 보는 법이라도 가르쳐야 할 판이다. 아이들이 남을 돕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착한 일 했다며 달려와 “엄마! 엄마! 내가….” 하며 자랑을 늘어놓으면, “오구오구, 내 새끼! 그랬어?” 엉덩이 토닥이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닌가?
‘사람 안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이 왜 생겨났을까? 그만큼 자각하고 실행하여 결국은 변화를 만드는 일이 몹시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변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절망적이다. 사람은 분명 변할 수 있는 존재라 믿고 싶다.
고집으로는 당할 자가 없던 내가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가 찾은 평생의 단짝이자 세기의 라이벌이었다. 챔피언 타이틀이라도 걸린 듯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만 같던 둘도 어느덧 눈치껏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하고, 울컥 올라오는 화를 깊은숨 한 번으로 토스하고 ‘억지 미소 모드’로 변경도 가능해졌다. 나의 잔소리를 모두 결투 신청으로 받던 남편은, 이제는 말 뒤에 숨은 속내도 보아주는 망원경을 카드 할부로 몰래 지르기라도 한 사람으로 변했다.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을 깎아가며 이룬 변화는 결코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스스로 변화해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우연히 스친 한 문장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좋든 싫든 변화는 필연적이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뒤처지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켜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 하교한 아이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수학 시간에 어려운 분수를 배우며 유독 두 학생이 이해를 못 하더란다. 선생님은 그 두 학생을 위해 두 시간 동안 열강을 하셨단다. 그동안 다른 아이들은 반복되는 설명에 지쳐버린 것이다. 선생님과의 전화 상담 날, ‘감명받았다, 힘내시라, 응원하겠다’ 하니, 수화기 너머 선생님 목소리가 순간 멈칫한다. 다른 학교에서 똑같은 일로 항의 전화를 받으신 적이 있다며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힘이 난다고 하신다. 스승으로서 본분을 다하고도 받은 상처에 조금의 위로가 되었길, 흔들리지 않는 스승으로 남아주시길 바란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어느 토요일, 안과 검진을 받기 위해 아이와 병원을 찾았다. 콩나물시루 같은 대기 의자도, 진료순서를 보여주는 화면도 빽빽하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체념하고 기다리다 보니 생각보다 일찍 진료를 마쳤다. 병원을 나서자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발이 묶여 있다.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 맞다! 비가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았는데….’ 멀리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오면서 우산을 챙기는 걸 깜빡한 것이다. 종일 내릴 비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속절없이 기다릴 순 없었다.
우산을 파는 편의점도 거리가 있고, 같은 건물에 있는 상점이라곤 약국뿐이다. 약을 타며 기대 없이 “여기 우산은 안 팔죠? 흐흐” 괜한 신소리를 했다. “네…. 없어요.” 직원인 듯 보이는 아주머니는 비 쏟아지는 바깥을 한번, 나를 한번 번갈아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다 옆에 서 있던 아이를 훑는 눈빛에 순간 독립투사 같은 결의가 스친다. 아이까지 비를 맞을까 걱정이 되셨나 보다. “제 우산이 있는데, 쓰고 가져다주시겠어요?”
크리스천이라고는 하지만 교회도 안 나가고, 나 아쉬울 때 화살기도로만 하나님을 찾는 내게 천사라도 보내신 걸까? 퇴근 시간이 1시이니 그때까지 가져다 달라신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빗속을 나섰다. 비는 곧 그쳤고, 우산을 돌려 드리려니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빵집에서 따끈한 빵을 샀다. 다시 약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사람은 이렇게 마음을 나누면서 사는 거지. 신난다, 그치?” 이런 온기들이 아이의 가슴에 심지가 되어 꺼지지 않는 불꽃을 피우길,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전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소망하며 아이와 찡끗 눈을 맞춘다.
언제 어떻게 변할 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우리는 변화할 수 있는 힘과 또한 변치 않을 용기가 있지 않은가?
*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 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임계점).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이상 상승하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 하며, 이 티핑 포 인트를 넘어버리게 되면 인간의 탄소 배출량이 0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으로는 더 이상 기온 상승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 탄소 발자국 : 활동, 제품, 회사 또는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대기에 추가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계산된 값 또는 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