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혁명을 예언한 역술인 백운학

[지종학]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출처 : 중앙일보, 2015.03.16, 전영기·한애란 기자

1961년 4월 말이었다. 나는 거사를 위한 비밀 준비를 진행 중이었다. 병력 투입을 위한 부대별 출동 계획이 완성돼 가던 때였다. 일요일 아침, 육사 8기 동기생인 석정선이 청파동 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게 “사업이 잘 안 되는데, 백운학이한테 좀 같이 가자”고 했다.

백운학은 관상을 잘 보기로 이름난 역술인이었다. 자유당 말기에 국회의원 당선과 장·차관 취임을 맞혔다고 해서 정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낭산(郎山) 김준연의 3대 국회의원(1954년) 당선을 예언했다고도 알려졌다.

백운학

나는 “안 가”하고 손사래 쳤다. 그러자 석정선이 “야, 네가 지프차가 있잖니. 그것 좀 태워 달라는 소리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프차에 석정선을 태우고 집을 나섰다. 석정선은 정군운동(整軍運動)을 같이했다가 그해 2월 나와 함께 군복을 벗었다. 하극상 사건의 주동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정군운동은 1960년 9월 영관급 장교 16명이 최영희 합참의장을 찾아가 정군의지를 따져 물은 사건이었다.

예편 뒤 나는 혁명 작업에 뛰어들었다. 석정선에게도 거사에 참여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못하겠다”며 빠졌다. 나는 “비밀을 지키라”고만 단단히 일렀다.

이후 석정선은 자동차 두 대를 사서 운수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그 사업은 자잘한 사고가 자꾸 났다. 그 때문에 백운학을 찾아간 것이다.

김종필과 석정선

백운학은 종로 5가 제일여관 안채를 빌려 쓰고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술집 마담처럼 보이는 여자 손님 네댓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돌아와 석정선이 방으로 들어갔고 백운학은 안방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지켜봤다.

그런데 백운학이 석정선은 보지 않고 자꾸 나를 쳐다보더니 대뜸 날 향해 소리를 쳤다.

“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됩니다 였다.

“뭐가 됩니까?” 내 물음에 그가 큰 목소리로 답했다.

“아, 지금 준비하는 혁명….”

“아니 여보쇼! 누굴 죽이려고 엉뚱한 소리를 합니까!” 나는 백운학 입에서 흘러나온 혁명이란 단어에 깜짝 놀랐다. 행여 누가 들을까 무서워 딱 잡아뗐다.

백운학은 그런 나를 보고 허허 웃더니

“지금 때가 됐습니다. 다들 원하는 일입니다. 국민 모두 변화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마음 놓고 하십시오. 아무 놈도 말리지 못합니다. 됩니다!” 그는 웅변하듯 말했다.

내 얼굴 어디에서 혁명의 기운이 묻어났기에 관상가가 이를 꿰뚫어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백운학의 얘기에서 나는 민심을 읽었다. 관상은 운명의 정기를 추적한다.

나는 서둘러 백운학의 말을 끊었다. “그만 하쇼. 앞에 앉은 사람이나 잘 봐주쇼.”

그제야 백운학이 앞에 있는 석정선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러더니 “이 사람, 사복 입고 왔지만 중령 아니면 대령 출신인데, 그 바퀴 달린 거 그만 처분하지”라고 했다.

석정선은 자신의 정체를 아는 데 깜짝 놀랐다.

자리를 뜨려는데 백운학이 다시 날 바라봤다.

나는 그에게 “두 번 다시 그 얘기 하지 마쇼”라고 주의를 줬지만, 그는 대답 없이 껄껄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넌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어. 돼, 돼. 다들 올 게 왔다고 할 거야. 방해할 사람 없으니 해.”

관상쟁이까지 혁명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다니. 흉중에 은근한 자신감이 더해졌다.

그 무렵 군대가 혁명을 일으킬 거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지만, 군 수뇌부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사고(思考)의 나태와 집중력 부족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다.

군복 입은 군인들이 다방에 삼삼오오 모여 “혁명해야 한다” 떠들어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5월 16일이 오기 전 거사 계획이 새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5.16혁명 당일, 박정희와 차지철

백운학이 내게 천기를 누설한 건 그때 한 번만이 아니었다. 5·16 거사를 일으킨 지 얼마 안 된 61년 7월이었다.

중앙정보부장이던 나는 백운학을 저녁자리에 불렀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혁명 성공을 일찌감치 내다본 인물이니 박정희 의장도 한번쯤 만나볼 만하다고 여겼다. 서울시청 뒤편 다옥동(현 중구 다동)의 요릿집이었다.

시중 들던 종업원 두 명을 잠시 물리고 백운학이 박 의장에게 말했다.

“각하, 한 20년은 가겠습니다. 소신껏 하십시오.” 그 얘기를 들은 박정희 의장은 빙그레 미소만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다음엔 어떻느냐”고 물었지만, 백운학은 그 질문엔 입을 다물었다.

자리가 파한 뒤 나가는 길에 백운학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이상한 괘인데요. 그 무렵에 돌아가실 것 같아요. 험하게 돌아가십니다.”

나는 그 얘기를 박 의장에게 끝내 전하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은 소리라고 그때도 생각했다.

18년 뒤 10·26 그날이 닥치고 나서는 더 놀랐다. 불길한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위 글의 백운학은 별호이며 본명은 이종우(1927-1979)다.

원조 백운학은 구한말 고종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했다는 박유붕(1806~66)이다.

이종우는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10대 후반부터 마곡사, 해인사, 통도사 등을 다니며 고승 대덕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하면서 운명학에 대해 심취하게 된다. 특히 주역과 관상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친분이 있어 신입사원 면접 때 참관했다는 주인공이다.

또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세무공무원 시절 찾아와 상담할 때 “당신은 사업을 할 사람이니 공무원 그만 두라”고 조언했으며, 사업을 하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을 태준에서 태수로 바꿔주고 "당신은 토(土)의 기운을 태어났기 때문에 흙을 만지면 큰 부자가 될 겁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로 인해 정태수는 세무공무원을 그만 두고 광산과 부동산업에 뛰어들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는 생전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많이 해서 많은 재산을 모으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쟁이 제 앞날 못 본다."는 말처럼 1979년 52세 때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말았다.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지력과 통찰력이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https://youtu.be/CTxQCUyrEvY

[청담성]

백운학 옹이 52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했군요 . 하필이면 1979년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