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염부주지는 ‘불교의 극락과 지옥설을 부인하는 유학자 박생이 어느 날 밤 사자를 따라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상면하여 문답하고 돌아오던 중 깨어보니 침상일몽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가사를 정리하다가 병이 들어 죽었는데, 이웃 사람이 그가 염라대왕이 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이다. 명나라 성화 초, 조선의 세조 연간에 경주에 박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을 힘써 공부하여 일찍이 태학관에 들어갔으나 과거에 한 번도 합격하지 못해 항상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뜻과 기상이 높고 품위가 있어 권세를 보고도 굽히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오만하다고 여겼으나, 보통 대화할 때는 순박하고 진지해서 마음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어느날 밤에 그는 꿈을 꾸엇는데 꿈속에 염마왕(염라대왕)이 나타나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염마왕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염마왕이 되었는가를 설명했다.
박생은 일찍이 불교와 무격 그리고 귀신 등의 모든 설에 의심을 품고 중용, 주역의 「계사」를 읽고서 자기의 학설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순후하여 불교 신도와도 사귀게 되었다. 어느날 그는 한 스님과 천당과 지옥의 설에 대해 물었으며 스님은 결정적인 답을 하지 못하고 다만 죄와 복은 지은 데 따라 응보가 있다는 설로써 대답하였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전2편(全二編)과는 아주 계열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즉 앞의 세 작품이 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룬 작품인데 반하여 이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일종의 관념소설(觀念小說)이라 할 것이다. 전 3편(全三編)과는 달리 이 작품의 공간적인 배경을 지옥에 잡은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이 작품에서 논의된 문제들, 즉 화제는 통치자(統治者)·종교(宗敎)·민풍(民風)등 당시의 시사문제로는 가장 절실한 화제들이었고 또한 새로운 은상경향으로서의 성리설(性理설(設))에 관한 문제들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실한 시사문제를 논의하는 무대를 지옥으로 꾸몄다는 것은 곧 그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세계가 지옥과 같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옥같은 현실세계를 보다 나은 세계로 개선하기 위한 작중화자의 논설은 곧 작가 자신의 웅변이요, 그러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주는 감명도 그만큼 인상깊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라 하겠다.
박생은 또 윤회에 관해 물었다. 임금이 대답하였다.
“나는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나라에 충성을 다 바치며 힘을 내어 도둑떼를 토벌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죽어서 마땅히 여귀가 되어 도둑떼를 죽이리라’하였는데, 죽은 뒤에도 그 소원이 남아 있었고, 충성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흉악한 곳에 와서 군장이 된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내게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전세의 인간에서 부모나 임금을 죽이는 일을 한 대역이나 간흉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의지해 살면서 내게 제어를 받아 그릇된 마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하루도 이 땅의 군장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들으니, 그대는 정직하고 뜻이 굳어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지조를 굽히지 않으셨다 하니, 진실로 달인이십니다. 그러나, 그대의 그 뜻을 세상에 한 번도 펴보지 못하였으니, 마치 형박이 티끌이는 벌판에 버려지고,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것과 같습니다. 양장을 만나지 못하면 누가 지극한 보물을 알아 주겠습니까?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시운이 이미 끝나서 장차 이 자리를 떠나야 하겠고, 그대도 역시 명수가 이미 다했으므로 곧 인간 세상을 하직해야 합니다.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이는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임금은 이내 잔치를 열어 박생을 극진히 환영하였다.
임금이 박생에게 삼한의 흥망 고사를 물으므로 박생은 일일이 이야기하였다. 화제가 고려의 건국에 이르자 임금은 탄식하며 서러워하기를 두세 번이나 하더니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백성들이 비록 두려워하여 따르는 것 같지마는, 마음속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일이 지나 쌓이면 마침내 큰 일을 일으킵니다. 덕망이 없는 사람이 권력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됩니다. 하늘이 비록 순순히 말하지 않을지라도 행사로써 보여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게 합니다. 상제의 명은 실로 엄합니다. 대체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령은 하늘의 명령입니다. 천명이 가버리고 민심이 떠난다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한들 어찌 되겠습니까?”
잔치를 마친 뒤 임금은 박생에게 왕위를 물려 주기 위하여 이내 손수 선위문을 지어 박생에게 내려 주니 이러하였다.
“우리 염주 땅은 실로 장려가 유행하는 나라이므로 우왕의 발자취도 이르지 못하였고, 목왕의 말굽도 미친 적이 없었습니다.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독한 안개가 공중을 막고 있으며, 목이 마르면 더운 김이 오르는 구리쇳물을 마셔야 하고, 배가 고프면 불에 쬐어 말인 뜨거운 쇳덩이를 먹어야 하니, 야차 ․ 나찰이 아니면 발 붙일 데가 없고, 도깨비 패가 아니면 기운을 펼 수 없는 곳입니다. 화성은 천리를 뻗어 있고 철산이 만겹이나 되는데, 민속은 강하고 사나우니, 정직하지 않으면 그 간사함을 판단할 수 없고, 지세는 굴곡이 심해 험준하니 신위가 아니면 그들을 교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느꺼웁다! 그대 동국에서 온 박○○는 정직하고 사심이 없으며,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함장하는 자질을 갖추어 있고 발몽의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달함이 비록 살아 계실 동안에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 실은 죽은 뒤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영원히 믿고 의지할 분이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마땅히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법으로 정제하여, 백성들을 지극히 착하게 만들어 주시고,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세상을 옹희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늘을 본받아 법을 세우고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위하시는 일을 본받아 내 이제 이 자리를 그대에게 드리노니, 아아! 그대는 삼가실지어다.”
<남염부주지>와 <영호생명몽록> : 인물은 역시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밖에는 같은 설정이요 성격이다. 사건 또한 구성의 기본은 흡사하나 여기서는 그 전개과정에 있어 <영호생명몽록>이 <남염부주지>를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그 반면 배경의 경우 같은 설정이되 <남염부주지>는 그 철학적 이론의 전개 등 사상성이 훨씬 뛰어난다.
令狐生冥夢錄(영호생명몽록)
<영호생명몽록>는 송 고종 12년(1142)에 살았던 강직한 선비 영호선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웃집 부자인 오로가 병들어 죽은지 사흘만에 후하게 재를 올려서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저승을 비꼬는 시를 짓는다. 그 죄로 저승사자에게 잡혀갔지만 염라대왕 앞에서 당당하게 항변하여 풀려난다. 돌아오는 길에 저승 감옥을 구경하여 송나라 진회가 벌 받는 것을 목격한다. 꿈에서 깬 후에 이웃집 부자의 생사를 확인해보았더니 부자는 다시 잡혀가 죽었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