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5월 3일, 약관의 낭만주의 시인 존 고든 바이런(1788-1824)은 친구와 같이 다다넬스 해협의 세스토스에서 반대편의 아비도스까지 헤엄쳐서 건넜다. 1시간 10분에 걸쳐 직선거리 1.2km의 해협을 헤엄쳐 건넌 것인데 실제 거리는 물살에 밀려갔기 때문에 6km 이상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가 이 해협을 건넌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의하면 이 바다에는 애처로운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헤로(Hero)’는 사랑과 성(性)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모시는 아름다운 여사제였다. 잘생긴 젊은이 ‘레안드로스(Leandros)’는 헤로에게 반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사랑을 주저하는 헤로를 유혹했다. “당신이 모시는 아프로디테 여신은 사랑의 여신입니다. 당신이 여태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처녀인 걸 알면 그분이 비웃지 않을까요?” 레안드로스의 목소리와 ‘논리’에 헤로는 맥없이 설복당했다.
문제는 둘 사이를 ‘헬레스폰트 해협’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 헤로는 해협 서쪽(유럽 쪽) ‘세스토스’ 언덕 위 아프로디테 탑에서 살고, 레안드로스는 해협 동쪽(터키 쪽)인 ‘아비도스’에 살았다. 오늘날 ‘다다넬스 해협’이라고 불리는 헬레스폰트 해협은 지중해와 터키의 내해라고 할 수 있는 마르마라 해를 연결한다. 배를 타고 지중해 동쪽 에게 해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길이는 61㎞, 넓은 곳은 폭이 6㎞이나 좁은 곳은 1.2㎞ 정도이다. 폭이 좁은 곳은 그만큼 물살이 급하다고 한다.
사랑을 허락받은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헤엄쳐 헤로에게 갔다가 새벽이면 다시 건너왔다. 헤로는 레안드로스가 캄캄한 밤, 바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탑에 등불을 켜두었다. 여름 내내 계속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밀회는 날이 차지고 겨울이 오면서 비극으로 끝난다. 폭풍이 닥친 겨울밤, 레안드로스는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 바람은 저 멀리 아프로디테의 탑 꼭대기에 헤로가 켜놓은 등불도 꺼트렸다. 캄캄한 바다 가운데서 길을 잃은 레안드로스는 등불마저 꺼지자 힘이 빠졌다. 그날따라 등불이 꺼진 걸 몰랐던 헤로는 다음날 아침, 해변에 떠밀려온 연인의 주검을 보았다. 헤로는 절망에 빠져 탑에서 뛰어내려 연인의 뒤를 따라갔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그 해협을 건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 모험을 좋아하는 바이런이 과감하게 이에 도전하여 이를 해낸 것이다. 그래서 1810년 5월 3일, 22세의 영국 청년이 친구와 함께 세스토스에서 다다넬스 해협으로 뛰어든다. 그는 차가운 해협의 거센 물살을 헤치고 나갔다. 저 멀리 러시아 남서부 카프카스 산맥 꼭대기의 눈 녹은 물은 흑해를 지나 보스포러스 해협의 이스탄불 앞바다를 거쳐 마르마라 해까지 참으로 멀리 흘러왔으나 아직은 차가웠다. 다다넬스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들어간 후 따뜻한 햇볕을 받아야만 오늘날 여행자들이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로 올라가는 것이다.
해협으로 뛰어든 청년은 약 한 시간 뒤에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아비도스 해변에 올라섰다. 그는 나중에 “거리는 짧았지만 물살을 감안하면 4마일(6.4㎞)은 될 것이다. 3주 전에 시도했을 때 물이 차가워서 한달을 연기했는데, 여전히 차가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이 청년은 물에서 나와 “세스토스에서 아비도스까지 헤엄친 후(Written After Swimming From Sestos To Abydos)”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라는 제목의 시집에 지중해, 특히 그리스의 여러 장소와 인물, 신화의 주인공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시와 함께 실렸다. 이 시집은 즉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 인기를 끌어 ‘슈퍼 베스트셀러’, ‘초대박’을 터뜨렸다. 시인은 이 성공에 자기도 놀라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배를 타고 지중해를 여행하던 바이런은 이 해협에 이르자 사랑을 찾아 매일 밤 물살 빠른 이 바다를 헤엄쳐 건넜던 레안드로스 흉내를 내본 것이었다. 영국에서 이미 “에로틱한 연애사건도 많이 저지른 청년”으로 이름났던 젊은이가 저지를 만한 행동이었다.
바이런은 이처럼 어떤 이들은 멋있고 아름답게 보지만, 어떤 이들은 무모하고 소영웅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일들을 일평생 저지르다가 세상을 떠났다. 대중들은 그의 ‘낭만적 행동’에 열광했으나 그와 동시대 영국 시인들로 역시 낭만파로 분류되는 워즈워스나 콜리지는 그를 “괴물”, 혹은 “악마적”이라며 외면했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에, 헨델이 음악에, 루벤스가 화폭에 아름답고 슬프게 묘사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을 바이런이 희화화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 풍자적인 시는 바이런 자신의 수영 기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레안드로스가 그의 연인인 헤로를 방문하기 위해 헬레스폰트를 가로질러 수영하는 것을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바이런은 두 번 수영을 시도했고 1810년 5월 3일 그는 에큰헤드(Eckenhead)라는 동료와 함께 수영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런은 능숙하고 자랑스러운 수영 선수였다. 그가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성공하는 것을 방해한 핸디캡(절름발이)은 물에서는 핸디캡이 아니었다. 이 특별한 위업은 Don Juan의 Canto II와 그의 친구인 헨리 드루리에게 보낸 재미있는 편지에서도 언급되었다. 바이런은 드루리에게 수영하는 데 1시간 10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시의 원문과 번역문을 전재한다.
Written After Swimming From Sestos To Abydos
세스토스에서 아비도스까지 헤엄친 후 쓰다
If, in the month of dark December,
만일, 어두운 12월에,
Leander, who was nightly wont
레안드로스가 밤마다
(What maid will not the tale remember?)
(어느 처녀가 이 이야기를 모르랴?)
To cross thy stream, broad Hellespont!
그대의 시냇물인 널따란 헬레스폰트를 건넜다면!
If, when the wintry tempest roar’d,
만일 겨울 폭풍우가 포효할 때,
He sped to Hero, nothing loth,
그가 헤로에게로, 기꺼이 서둘러 헤엄쳐 갔다면,
And thus of old thy current pour’d,
그리고 이처럼 옛날에도 그대의 파도가 거셌다면,
Fair Venus! how I pity both!
아름다운 비너스여! 나는 이 두 사람이 어찌나 가엾은지!
For me, degenerate modern wretch,
현대의 타락한 지식인인 나로 말하면,
Though in the genial month of May,
5월의 온화한 날이었는데도,
My dripping limbs I faintly stretch,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내 사지를 맥없이 뻗으며,
And think I’ve done a feat to-day.
오늘 내가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노라.
But since he cross’d the rapid tide,
그러나 레안드로스는 급류를 거슬러 해협을 건넜다고,
According to the doubtful story,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 말해 주는데,
To woo,—and—Lord knows what beside,
구애하기 위해서, - 그리고 - 그 밖의 일은 주님만이 아시리,
And swam for Love, as I for Glory;
그는 사랑을 위해 헤엄쳤으나, 나는 영광을 위해 헤엄쳤으니;
’Twere hard to say who fared the best:
누가 더 나은 일을 했는지는 멀하기 어려우리:
Sad mortals! thus the Gods still plague you!
죽어야만 하는 슬픈 인간들이여! 이렇게 신들은 여전히 그대들을 괴롭히나니!
He lost his labour, I my jest:
레안드로스는 그의 노고를 잃었고, 나는 나의 장난기를 잃었으니:
For he was drown’d, and I’ve the ague.
왜냐하면 그는 익사했고, 나는 학질을 앓게 되었으니.
그의 쾌거는 후에 터키에서 매년 4월에 다다넬스 해협을 건너는 수영대회로 발전되고 올림픽에서 수영이 종목으로 채택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며 여러 해프닝을 일으키며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게 된 바이런은 나중에 그리스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기에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죽었으나 사후에도 그리스인들에게서 커다란 존경을 받고 있다.
헬레스폰트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물살이 빠른 해협을 건넌 멋진 남자 둘! 그 둘의 이름은 레안드로스와 바이런이었다. 전자는 픽션(신화)이었고 후자는 실제였다. 흑해에서 흘러오는 찬 물결에 그들의 ㅂㅇ도 꽤나 쫄아들어 있었으리라.
(바이런의 초기 시에 흥미가 있어 인터넷을 검색하여 복사하고 붙인 다음 가필하여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