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1987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6.29 민주선언한 날이고 또 윤석열씨가 대권 후보자로 첫 공식 발표를 하는 날이니 정치에 문외한인 제가 생각해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도 되는 날이라고 봅니다.
6월 마지막 주 화곡 모임 날. 꼭 화곡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발 근육에 이상이 생겨 걷지도 못하고 두문불출한지 4주. 그리고 5주째 되니 간단하게 외출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화곡에는 꼭 가고 싶었습니다.
20일 이상 걷지 못하고 집에 누워 지난 삶을 뒤돌아보니 그간 가족 이외에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는 분들은 화곡 식구였어요. 애착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정성어린 집념으로 참여했다는 뜻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심하게 아파보거나 죽을병에서 회복이 되고나면 철이 든다더니 아직 제가 겪고 있는 증세의 원인도 모르고 언제 다시 라켓을 잡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더욱 간절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국화부와 개나리부는 성원이 안 되어 모임이 취소되었고 장년조 형님들을 뵈러 유선생님과 함께 목동으로 갔습니다. 모두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우리가 어디를 가면 이렇게 극진한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첫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게릴라성으로 쏟아 붓는 빗줄기는 우박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고 형님들과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못하지만 매 주 꼭 참석하시는 윤복희 형님이나 신정일 형님. 김유희 형님. 먼곳에서 오시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는 정재교 형님은 15만원을 장년조에 찬조. 이수은 김지나 목영자 이종례 형님 네 분은 게임 막바지에 굵은 비를 맞고도 명랑한 기분으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제가 30년 전, 화곡에 가입해서 맨 처음 형님들을 뵈었을 때 형님들은 지금 현재 제 나이보다 더 훨씬 젊으셨으니 얼마나 탄탄한 미를 갖췄는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나이 듦이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공평합니다. 아무리 가꾸어도 그 나이에서 오는 절대성은 바꿀 수 없습니다. 저도 10년 후면 얼추 형님들의 모습이 되겠죠. 10년이면 금방이라는 것을 살아봐서 잘 압니다. 저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한 형님들. 기가 막히게 랠리를 열 번도 더 하십니다. 저도 형님들처럼 건강한 70~80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약간 소강상태가 되자 형님들은 모두 현대 41타워 40층에 있는 빕스로 가서 점심을 드셨습니다. 김지나 형님께서 회원들을 위해 크게 돈을 쓰셨고 우리도 덩달아 빛나는 모습으로 함께 했습니다.
형님들은 대부분 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 온 인연입니다. 사람이 모였으니 그동안 희노애락,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젊은 시절에는 오라는 곳도 많고 할 것도 많아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잠깐 잊을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래 함께 해 온 인연의 소중함을 잘 실천하고 사시는 것 같아 참, 좋아 보였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지구상의 하나뿐인 존재이지만 혼자 살다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의 영혼들 중에서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우리도 80세 넘어 매 주 안 만나면 안 될 정도의 소중한 벗들이 옆에 있을 것인지, 3시간 넘게 차를 다섯 번 갈아타고 기어코 보고 싶은 친구들을 봐야겠다는 열정으로 화곡에 참석할지, 아니면 메타버스에 푹 빠져 가상의 친구들과 컴에서 만나 데이트 하며 살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생각 많은 날이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주 보며 삽시다.
2021.06.29 송선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