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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7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신앙 온도 2도 올리기!
본문 : 누가복음 24장 32절(13~35절)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새번역>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나 한파가 찾아오는 한겨울이라고 해도 우리 몸의 온도는 큰 변화 없이 정상 범위인 36~37.5℃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보통 36.5℃를 평균적인 체온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나이, 성별 등에 따라서 체온이 달라지긴 하는데 그래도 정상범위를 벗어나진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체온은 자율신경계가 알아서 조절하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라면 늘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 인체의 신비로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37.5℃에서 조금만 벗어나 0.3℃이상인 37.8℃만 되어도 미열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38도가 넘어가면 발열, 40도 이상이면 고열로, 겪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0도 이상 올라가면 정말 몸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든 상태가 됩니다. 고작 2~3도 정도 오른 것뿐 인대 우리의 몸은 왜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열은 몸이 바이러스나 세균과 싸우는 면역 반응의 증상으로, 몸의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기 자체는 걸릴 수 있지만 독감이나 폐렴으로 이어지게 되면 가장 무서운 질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망원인 1~3위에 늘 위치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열이 올라도 위험하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열이 올라야 하고, 뜨거워져야 하고, 어느 유명 아이돌의 노래 가사 ‘불 타 오르네’처럼 활활 불타오르는 것이 목표인 영역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기폭제가 되는 날이 바로 지난 주일이었던,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 주일이야말로 우리의 신앙 온도를 2도 이상 올려 줄 아주 중요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후 우리의 신앙 온도가 최소한 2도 이상 올라야 합니다.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달라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매년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매년 신앙 온도를 상승시킬 기폭제가 되어, 언젠가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바로, 그 경험을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24장 32절, 새번역>
오늘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단어인 ‘마침’ 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침 그 날에’, 바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한 그 날이었습니다. 부활한 그 날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여인들이 찾아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이 두 사람을 포함한 제자들에게 알린 바로 그 날입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포함해서 몇 명의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그 뿐! 그저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 외의 제자들도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각 자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제자들 중 두 사람도 베드로처럼 자신의 고향인 엠마오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 여름 밤의 꿈’ 같았던 지난 3년에 대해서 소회를 털어놓으면서 허탈한 발걸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첫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미 몇 번이나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음으로’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부활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조차 부활을 믿지 못하니 그저 허탈함과 허무함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들의 성장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활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한 때 뜨거웠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언제나 차가웠던 중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예수님은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부활로 이어져야 할 부활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를 위한 부활이기에 믿어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니, 일단 믿어 보시는 것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까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이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사실상 신앙생활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차가운 대화만이 가득한 자리에 누군가 동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차가움의 순간 가장 필요한 존재는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동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안타깝게도 가려져 있었습니다. 말씀도, 부활도 믿지 못하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제가 예수님이라면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제자들을 꾸짖을 것 같은데, 우리 예수님은 신기하고 놀랍게도 아주 재미난 질문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당신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 받는 이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러자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글로바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어 서서 황당하다는 듯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능청스럽게 대답하십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두 제자는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는 듯 며칠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두 제자는 실제 그 자리에도 가보지 않고,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지금 고향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지난 3년간 하신 말씀은 믿지 못하면서, 제자들의 말은 직접 보러 가지 않고서도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도 바로 이 부분이 문제라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대답을 이어가십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설명해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특강이었을 것입니다. 시간가는 줄 몰랐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엠마오까지 약 12키로정도, 일반적인 걸음 속도로 약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런데 그 2시간 30분이 소위, 순삭 되었습니다. 어느덧 엠마오에 도착하자 두 제자는 마음이 다급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동행했던 사람은, 예수님은, 더 멀리 가는 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제자의 아주 중요한 행동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누가복음 24장 29절, 새번역>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 ‘만류’가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강권하여 우리 집에 묵으시도록 초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기 위하여, 예수님께 더 시간을 내어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만류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최선’입니다. 할 수만 있는 대로 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께 더 시간을 내어 드릴 때, 우리는 지금부터 펼쳐지는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못 이기는 척 하시면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하실 때 드디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십니다. 바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그 식사의 자리를 재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제야 두 제자는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 순간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늘 그러셨던 것처럼 지금도 함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몰라 뵈었던 것입니다. 3년 동안 함께 하셨던 분을 도무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떼어주신 빵을 입에 넣자마자 알게 된 것입니다. 눈물 젖은 빵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예수님은 사라지셨습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냉랭했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나머지 11제자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놀랍게도 이미 돌아온 그 예루살렘에는 11제자와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모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비슷한 일을 겪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이런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누가복음 24장 34절, 새번역>
그래서 두 제자도 자신들이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곧 이어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입장으로 더욱 더 고조가 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두 제자를 포함하여 이 많은 이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에게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차가웠던 심정도 지금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보다 2도 이상은 올라 이제 미열을 거쳐, 발열을 지나 고열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무엇을 했기에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마음이 뜨거워진 것을 서로 간증하게 된 것일까요? 지난 3년보다, 오늘 이 하루가 더 강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 하신대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나누어 주셨던 모든 말씀이 진실이었음을 부활로 증명하셨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그 말씀들에 대한 차가운 반응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온도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셨고, 죽으셨고, 살아나셨습니다.
더 이상 의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부족한 자신들에게 여전히 기회를 주고 계시는 크고 놀라운 사랑에 감격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후회와 원망과 허탈함을 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오늘도 그 예수님은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셨습니다. 벌써 1주일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서 여전히 방황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향해 다시 한 번 더 권면하시며 이제 그만 그 차가움을 끝내고, 뜨거움을 시작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미신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셔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의 차가움은 뜨거움으로 바뀌고 우리 신앙의 온도는 2도 그 이상으로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달 내내 말씀드렸던 그 말씀을 오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이 필요하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 ’말씀’ 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오로지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시작하셨고, 말씀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주셨을 때 제자들은 뜨거움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빵을 떼어주시는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두 제자도 명확하게 고백했습니다. 길에서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 자신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비단 그 두 제자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아마 전세계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지금도, 오늘도, 이 순간에도 고백하는 말일 것입니다. 마치 보일러 스위치를 켠 듯,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만드는 버튼이 되고,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연료가 되고, 그 뜨거움을 보관하는 보온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온도가 2도 올라간 것이 다시 차가워지지 않도록 그 2도 상승을 그대로 유지시켜 줄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입니다. 부활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욱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입니다. 역시 말씀입니다. 누가 뭐래도 말씀입니다. 말씀이 기초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이 예배의 연속이길 원한다면, 주의 움직이는 교회로 살기 위해서는 다시 말씀으로 시작하고, 말씀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부활 후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말씀으로 초청하고 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축복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편 1편 1절, 새번역>
이 험한 세상 지날 때에도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편 119편 50절, 새번역>
어디로 가야할지 오늘도 방황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새번역>
오늘 다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깨닫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새번역>
말씀을 통하여 예수에 대해서 더욱 더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31절, 새번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바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동일한 일을 경험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함께 다시 일어나서,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쓰러지고 넘어지더라도 손 잡아 줄, 동역자들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혼자라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차가움은 손에 손을 맞잡음으로 다시 따뜻함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혼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동역자가 있습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예배 드리며, 함께 찬양하며,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동역자가 있습니다. 부활 주일을 보내며 뜨거워진 마음으로 세상 가운데 나가셨다가 한 주 만에 다시 너무도 차가운 마음으로 변화되신 분이 있으십니까? 여기 그런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있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입니다.
부활 주일이 1주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부활 그 후 지금 우리의 신앙온도는 어떻습니까? 냉랭하십니까? 따뜻하십니까? 차갑습니까? 뜨겁습니까? 오늘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말씀으로, 다시 동역자들과 함께 신앙 온도를 2도 올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예수를 닮아가는, 이 땅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부활 후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손잡고 함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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