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輓詞) [ 계동 전경창 선생을 애도하며 ]
박사(博士) 이봉춘(李逢春)
聞訃曾揮淚
題詞意更悽
新阡玄霧鎖
故國夕陽低
寂寂寡妻哭
哀哀猶子啼
依依風雪曉
千里客魂迷
부음을 듣고 눈물을 뿌리고
만사를 지으니 생각이 더욱 처참(悽慘)해라.
새 무덤은 검은 안개에 잠겼고
고향은 석양 아래서 나지막하다.
슬프고 슬피 홀로된 아내의 통곡 소리
애통하게 우는 조카의 울음.
희미하니 풍설이 섞어 치는 새벽에
천 리를 가는 나그네 혼이 헤매는구나.
[출처] 국역 계동선생문집 [國譯 溪東先生文集]
이봉춘 [ 李逢春 ]
개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근회(根晦), 호는 학천(鶴川). 아버지는 처사인 이희성(李希聖)이고, 어머니는 양근김씨(楊根金氏) 어모장군(禦侮將軍) 김세필(金世弼)의 딸이며, 익성군(益城君)김이갱(金以鏗)의 손녀이다. 이황(李滉)의 족자(族子)로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5년(선조 8)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로 임명되어 전적(典籍)에 이르렀으나 오랫동안 친환(親患)을 돌보느라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1581년 부친상을 당하였다.
이후 벼슬에 뜻이 없어 오랫동안 산림에 묻혀 살았고, 영덕현감(盈德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만년에 성균관 직강(直講)이 되었으나 스스로 세인과 어울리지 못함을 알고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봉춘은 성품이 대범하고 관대하여 평생 동안 이론을 제기해 높은 체하거나 시속을 따라 지조를 더럽히는 일이 없었다. 저서로는 『학천유집(鶴川遺集)』 1책이 있다.
참고문헌
『학천유집(鶴川遺集)』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봉춘 [李逢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