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3대에 걸친 명당찾기를 소개한 바 있다. 김모씨는 조부와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17년을 명당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김모씨 자신이 너무 몰랐을 뿐 아니라 명당에 대한 욕심이 앞섰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욕심이 앞서면 눈앞이 가려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불과 500평 남짓의 선영 한 편에 고조할머니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인근은 고총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거기다 잡풀까지 우거져 지형 지세를 분간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다행히 여러 묘지들 사이로 겨우 묘 하나 쓸만한 공간이 남아있었다.
그곳은 선영 내의 땅이지만 주변에 파묘한 흔적이 있어서 비어 있었던 것이다.
잡풀을 베고 보니 파묘한 장소 옆으로 묘 한기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비록 명당이라 할 수는 없지만 김모씨의 낙제점 묘들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곳이다. 산세는 봉긋봉긋 이어지면서 부드럽고 양지바른 곳에 토질이 양호한 곳이다. 안산 너머의 물길 또한 세 줄기가 합수되는 곳이다.
거기에 묘 바로 밑에까지 차가 진입할 수 있으니 관리도 쉬운 곳이다.
한마디로 망자의 체백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후손도 편안한 곳이다.
길지가 멀리 있었던 것 아니고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모르고 17년을 헤매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김모씨는 이 땅을 활용하기로 하지만 문제는 묘를 1기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모씨가 현재 관리하는 묘는 고조부부터 부모님까지 8위 5곳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장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모씨는 자신의 헛된 욕심으로 그동안 조상님들께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를 이곳으로 옮겨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죄책감이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단, 화장을 해서 납골하는 방법이 아니고 유해를 모두 정성스럽게 모시고 싶다는 것이다.
오랜 궁리 끝에 여덟 분 모두를 가족묘를 만들어 이장하기로 한다.
큰 틀의 방식은 하나의 광중을 판 다음 생석회를 이용해 총 12기를 모실 수 있는 내광을 만드는 방법이다.
직계 조상을 모두 이장하고 남는 곳은 후일 자신들의 유택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니 대가족 묘인 셈이다.
이러한 장묘방식은 필자도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설계부터 신중을 기해야 했다.
첫째 날
광중 파기
잡초가 무성한 곳을 정리하고 보니 원형의 평탄한 모습인데, 중심 부분이 볼록한 형태였다.
土肥卽氣厚라 했으니 볼록한 지점을 광중의 중심으로 하고 산줄기 흐름을 따라 卯坐酉向 하기로 했다.
설계도면은 다음과 같다. 후손이 없어 돌보는 이 없는 작은 증조부 묘도 이장하기로 했으니 총 9위를 모시고, 남는 3곳은 추후 사용하기로 했다.
표피를 걷어낸 후 금정틀을 좌향에 맞추어 고정한다. 금정틀을 사용하는 것은 광중을 정교하게 파기 위한 것이다. 광중을 팔 때 장비를 사용하면 땅의 균열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작업으로 광중을 파는데, 단면의 토색과 토질이 매우 양호했다.
생석회 혼합
체를 이용해 고운 흙을 체집한 후 생석회를 혼합한다. 내광을 회곽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인데, 생석회는 유골을 보존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조선시대 왕실이나 사대부가들이 사용하던 방법이다.
실제로 생석회를 사용한 곳은 황골로 보존되어 유골의 상태가 양호한 것을 볼 수 있다.
내광 만들기
내광의 생석회를 규격에 맞게 다시 파낸다. 이때 바닥은 생토가 나오게 한다.
땅 기운을 오롯이 받으면서 결로현상으로 인한 습기가 자연스럽게 땅속으로 배수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12기의 내광을 만들었다. 각각의 내광은 생석회로 4면이 둘러싸인 형태가 되었는데, 생석회가 굳으면 콘크리트보다 견고하게 된다.
생석회는 유골을 황골로 변화시키는데 탁월할 뿐 아니라 물이나 나무뿌리 등의 침투를 차단할 수 있으며, 벌레 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최상의 장묘방식이 된다.
생석회가 굳기를 기다리면서 광중을 비닐로 덮어 짐승이나 벌레 등이 들어가지 못하게 조치한다.
둘째 날
이장해온 선대 묘 안장하기
고조부부터 순서대로 유골을 내광 속에 안장한다.
내광 규격은 60×30×40cm로 하여 육탈된 유해를 안장하였다. 만약 육탈이 안 된 상태라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이장해야 한다. 육탈은 보통 5~6년 지나면 이루어지지만, 묘터가 좋지 못한 경우는 좀 더 오래 걸리게 된다.
즉, 물이 찼거나 혹은 땅이 찬 경우에는 육탈이 더딜 수 있다. 이번 사례는 모두 육탈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가장 최근의 묘는 부친으로 8년 전에 묘를 썼다.
유골 상태를 보면 오래된 고조모가 가장 양호했다. 고조모 묘는 현재의 작업을 하는 곳에서 10m 위쪽에 있었는데, 전반적인 풍수의 조건이 무난한 곳이었다. 이것을 보면 지리의 영향이 유골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조부와 증조부모는 유골이 많이 상한 상태였고 김모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조부모, 부친, 모친의 유해는 불량한 상태였다. 이는 묘터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모친은 골바람이 부는 곳에 물이 길게 빠져나가는 곳이었고, 부친과 증조부모는 산기슭 밭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조부모는 습한 곳에 풀이 무성하여 봉분을 덮을 정도였다. 작은 증조부 또한 무맥(無脈)의 야산에 숲이 무성해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묘터가 좋지 못한데, 장사 지내는 방식조차 부실했기 때문에 유골의 상태가 불량했던 것이다.
안장한 내광 위에 횡대 덮기
각각의 내광에는 한지로 마감한 후 횡대를 덮는다. 횡대는 내광에 맞게 잘라서 사용하면 된다.
횡대 위에 다시 회반죽을 넣고 다진다. 횡대로 인해 내광 속 유해는 생석회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게 된다.
만약 생석회와 유골이 접촉하면 석고처럼 굳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횡대 위의 생석회는 30cm 이상을 덮었다.
하단의 남은 자리는 생석회를 사용하지 않고 흙으로 마감하여 후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추후 사용할 때는 봉분의 하단부를 걷어 흙을 파낸 후 안장하면 된다.
봉분을 헐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喪事는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다.
봉분의 잔디를 새롭게 사초한다는 생각이면 된다.
광중에 흙을 채우고 봉분을 만든다. 봉분은 원형으로 할 경우 면적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사각형으로 하기로 했다.
봉분 위에 비닐을 덮어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땅은 한번 파면 생토와 달라서 빗물의 침투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봉분 만들기
김모씨는 그간 벌초 등의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봉분 주변에 부직포를 깔고 자갈을 깔았다. 그러면 봉분만 벌초하면 되고 잡풀이 없어 관리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성묘 가는 것에 부담이 없다고 하니 묘소로 인한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된 것이다.
맺음말
이러한 방법으로 조상 묘를 이장한다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좋은 묘터에 직계 조상을 모두 모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김모씨는 자신의 평생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하며, 두 번 다시 이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모씨, 17년간의 고단한 여정이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다만 이런 대가족 묘가 우려되는 점은 터를 정하는 곳이 어느 정도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좋지 못한 곳에 가족묘가 자리했을 경우 동기감응으로 인해 후손 모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묘를 이장하는 것은 신중,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땅이 좁은 국토에서 묘지로 인한 산림 훼손을 최대한 줄일 수 있고 먼 친척까지도 한 장소에서 성묘하며 화합을 다질 수 있으며, 동기감응의 시너지 효과까지 극대화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된다.
https://youtu.be/cWTshihu3d4
첫댓글 저의 조상님을 한곳으로 이장 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여 오든중
교수님의 글을 보고 참으로 감명깊게 보았읍니다,
하나 옂쭙겠읍니다, 광중에 생석회를 시공하고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내광을 파야 하는데 몇시간후에 작업하면 좋은지요?
교수님 강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생석회로 작업했을 경우 다음날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충분히 굳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업자들이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당일 하기도 하는데, 반드시 회다짐을 견고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광작업이 안정적입니다
그럴 경우 2~3 시간 후에 하면 됩니다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내광을 만들고 나서 송판으로 사각틀을 만들면 더 좋아지지 않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