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관상가는 사람의 관상을 볼 때 7초만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 말투 등을 종합하면 상대방 인품과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데,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백제의 도읍지 부여는 금성산과 백마강이 어우러져 배산임수를 이룬 곳이다.
부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북리를 지나 성왕 로터리로 진입하게 된다.
이때 처음 마주하는 것이 로터리에 있는 성왕 동상이다.
성왕은 백제의 26대 왕으로 아버지 무령왕과 함께 백제의 중흥을 이끈 명군이자 성군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파하여 일본서기에 자세히 기록될 정도였다.
성왕은 재위 16년 되던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를 한다. 천도를 단행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웅진보다 사비가 군사적으로 유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도 16년이 지난 554년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하며 전사하고 만다.
성왕 동상은 2005년 국비지원을 받아 문화관광부에 있는 성왕의 영정을 모델로 제작되었다. 성왕 영정은 2004년 그려진 것을 참고했다고 한다. 성왕 동상은 부여군민의 자긍심 고취와 함께 백제의 도읍지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방법이었다.
성왕 동상은 용머리가 장식된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머리에는 금제관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콧수염은 팔자 모양, 턱수염은 가지런한 모습이다.
처음에는 황금빛이었으나 20년이 지난 현재는 잿빛으로 퇴색되었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현재의 성왕 동상은 근엄한 것 같지만 가느다란 눈매와 두터운 눈꺼풀에는 근심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은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영정 속 표정은 눈이 크고 입술은 후덕하여 자애로운 모습인데, 현재의 동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필자가 부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성왕의 동상을 보고 느낀 것은 표정이 어둡고 결연한 표정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근심이 깊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미술과 조형물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좀 더 진취적인 기상으로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참고적으로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용상에 앉아 책을 들고 미소를 띤 인자면서도 근엄한 모습으로 보는 사람마저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성왕 동상과 700m거리의 부여군청 앞에는 계백장군 동상이 있는데, 말을 타고 오른손을 든 모습이다. 하지만 장군이 탄 말은 조랑말 수준에 지나지 않아 계백장군마저 초라한 모습이다. 이렇게 작은 말에 탄 장수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또 장수가 오른손을 든 것은 진격을 멈추는 제스처이고 말의 시선조차 땅을 보고 있으니 멈추려는 동작이 틀림없어 보인다.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 용맹한 기상은 찾아볼 수 없으니 계백장군이 저승에서 통탄할 일이다.
부여를 상징하는 두 영웅의 모습에서 부여의 현재가 오버레이(overlay) 된다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
부여는 현재 인구 7만 정도로 작은 도시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백제의 도읍지로서 중국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는 오래전 사라지고 말았다.
부여가 옛도읍지로서의 영화를 되찾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부여의 관문에 자리한 성왕의 동상과 계백장군의 동상부터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https://youtu.be/4Q3-DJv_2h0
첫댓글 부여에 오래된 동상도 역사입니다
바꾸려면 예산이 소요되고 또 시끄러울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