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음성이 세 번 임했는데
그 때마다 죽으심을 앞두고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먼저는 세례를
받으실 때이고(마3:17) 그 다음에는 별세를 보이신 변화산이었습니다(마17:5)
그리고 마지막 요12장의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썩듯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실 때에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12:28)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떤 과정을 따라 영광에 이르게
될지를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주의 종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요12:26)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까(요12:32) 이에 무리들이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묻습니다(요12:34)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영원하다는 이 사람들의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모릅니다.
인간적인 생각만 하므로 유대인은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 같은 슈퍼스타의 인간 메시야를 바라고 있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아직 예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는 말은 듣긴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왜 죽어야 하느냐’ 따지고 묻습니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보혜사 성령이
그분의 이름으로 오셔서 그리스도로서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어쩜 지금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어떤 과정과 절차를 통해 우리에게 임재하셨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 분을 주로 모시고 섬기는지 모르고 두루뭉술하게 예수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십니다(요12:36) 우리는 주님께서 불러내어서 그 안에 모인 무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성령으로 한 단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묶인 무리들입니다.
거기서 주님과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지칭할 때에 fellowship이란
말이 상당히 친근하고 좋은 것 같으나 인간들만의 교제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위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fellowship이 교제(코이노니아)란 말이고, 하나란 말이고, 참이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교제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넘겨주십니다.
하나가 된 상태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분깃이요, 상속인데 그 날 곧 오늘 날에는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나타나십니다.
이런 비밀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우상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학습을 다시 하기
위해서 굉장한 고생을 합니다. 지금 여기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왜 병이나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할까요? 짧은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지식을
알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거의가 중병을 주십니다. 병석에서 밀린
숙제를 하고 있는 겁니다. 중병을 앓는 기간 동안에 천국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분이었구나!
나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셨고 나의 장래를 위해 이런 복을 마련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이를 믿고,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로 건너가게 됩니다.
만일 사명이 남아 있다면 다시 회복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제가 오래 전에 한 친구 목사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드렸는데 그 분은 제 로마서와
요한복음과 히브리서 강해를 활용하여 15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적잖은 부흥을
일으켰는데 그만 60세가 안 되어 주의 부름을 받고 어느 기도원에서 금식하다가
순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한국에 들어와 장례를 집례하고 떠나면서
그의 미망인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금 목사님이 최고의 경지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남은 목사님의 뜻을 따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몇 개월 전에 그 분이 안식년을 얻어 제가 있는 사역지로 와서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에 그가 히브리서를 건너가지 못한 이유를 꾸짖듯 나무랐습니다.
그건 당신이 교회 부흥의 욕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므로 히브리서가
당신을 받아 주지 않는 거라고 말을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느 유명한
교회의 교회 성장에 대한 세미나에 참여하는 걸 보고는 이미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실용주의에 젖어 있는 전문설교자의 길로 가는구나하고 체념을 했습니다.
그 교회 부목사가 일러 준 말에 의하면 그가 심정지의 소식을 듣고 기도원에
달려가니 성경과 제 요한복음과 로마서와 히브리서 강해 테이프만 가방에 담겨
있더라고 했습니다. 제가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그의 묘소에 들려서
내가 당신을 주님께로 보냈나 보네요. 기어이 히브리서를 건너라고 강요한 게
당신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나 보네요. 이제 편히 쉬세요. 남은 일은 내가 하리라
하고 제 심경을 담은 쪽지 하나를 비문 옆에 끼워 두고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분은 더 이상의 발전의 가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려 가시듯 그 선에서 최선의 이미지를 보이도록
기도원에서 순직하게 해서 그의 명성도 보전하고 남은 교회도 살리셨습니다.
이거다 저거다 말마시고 한 알인 채로 그대로인가 십자가에 맡겨진 여러 알인가를
묻고 싶습니다. 참 회개는 영광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이 있듯 진정한
회개와 세례(침례)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맞바꾸기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진리의 성령에 의해 주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의 영에 실려 자신을 오대양 육대주로 흩어 뿌릴 수가 있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는 허영에 대한 욕심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로서 어떤 절차와 방법과 원리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그 영광에 나아가는가를 계속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항상 목마른 사슴마냥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