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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 이야기
본문 : 민수기 26장 59절(57~65절)
아므람의 아내의 이름은 요게벳인데, 그는 레위가 이집트에서 얻은 딸이다. 요게벳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다. <새번역>
출애굽을 위한 첫 단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를 만나러 갔던 모세와 아론은 생각지도 못한 거절을 당하고 패배감에 빠져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고집을 부려 쉽게 내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하셨지만, 그래도 모세와 아론은 생각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충분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동족들로부터 저주 섞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다시 미디안 광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출애굽기 5장 21절, 새번역>
하지만 모세는 이 말을 듣고는 원망의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고,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해 주면서 다시금 모세를 위로하시고, 힘을 허락하십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강한 손에 밀려서, 그들을 내보내게 될 것이다. 강한 손에 밀려서야, 그들을 이 땅에서 내쫓다시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는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 <출애굽기 6장 1~3절, 새번역>
하지만 이러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여전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으로 하여금 두려워 말 못하는 모세의 입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금 힘을 내서 바로에게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의 나라에서 내보내라고 하여라." <출애굽기 6장 10~11절, 새번역>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에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이스라엘 자손도 저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출애굽기 6장 12절, 새번역>
그런데 모세의 이런 반복되는 소위 ‘찌질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며 성경을 넘기는데 너무도 재미있는 기록이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이 모세와 아론의 족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성경이 알았던 것은 아닐까 재밌는 상상을 해봅니다. 저는 모세의 행동을 보면서 계속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왜 하나님은 저런 모세를 사용하려고 하시는 거야? 대체 모세가 어떤 인물이기에? 다른 사람은 없는 거야?' 근데 제 속으로 했던 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해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마치 왜 모세인지 많이 이들에게 설명하며 설득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구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족보가 뜬금없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조상은 이러하다. <출애굽기 6장 14절A, 새번역>
모세는 야곱의 세 번째 아들 레위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레위지파=제사장'에 대한 특수성은 출애굽 이후에 정해진 것이지 모세의 출생 당시에는 다른 아들들과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레위는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았는데 우리는 둘째인 고핫과 딸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그 고핫은 4명의 아들을 낳았고, 고핫의 장남이 바로 ‘아므람’입니다. 아므람은 모세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이 아므람이 결혼하게 되는 대상이 바로 우리가 '요게벳의 노래'를 통해 잘 알게 된 인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입니다. 그런데 요게벳은 아므람과 어떤 사이인지 아십니까? 바로, 아버지 고핫의 여동생, 즉 자신의 ‘고모’입니다.
아므람은 자기의 고모 요게벳을 아내로 맞아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 아므람은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 <출애굽기 6장 20절, 새번역>
놀랍지 않습니까? 당시 시대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처럼 사촌 간의 결혼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고모와 조카의 결혼이 성경에 등장하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놀라운 사실을 여과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아므람은 고모와 결혼을 했을까요? 먼저 요게벳에 대한 성경기록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므람의 아내의 이름은 요게벳인데, 그는 레위가 이집트에서 얻은 딸이다. 요게벳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다. <민수기 26장 59절, 새번역>
레위는 아들들은 모두 가나안에서 낳았고, 요게벳만 이집트에서 얻은 듯 합니다. 그렇게 고센 땅에 와서 낳은 딸 요게벳은 당시 고센 땅에서는 마땅히 결혼할 대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촌 중에서도 남편을 찾지 못했던 요게벳은 그래서 둘째 오빠인 고핫이 낳은 장남 아므람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요게벳의 나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레위가 이집트에서 얻은 딸이었기에 오빠들과는 나이 차가 있었을 것이고, 아므람과의 나이 차는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전에는 흔히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5살 정도 밖에 나이차가 나지 않는 삼촌도 있고, 동시에 사촌 형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제일 막내 삼촌과의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므람과 요게벳은 고모와 조카 사이였지만 결혼 할 수 있는 적령기에 있는 남자와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 정착 후 다른 민족과의 혼인이 쉽게 이어지던 문화와는 다르게 아므람은 이집트 여인이나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얻지 않고 같은 레위 가문의 요게벳을 아내로 택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장 1절은 그 사실을 굳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출애굽기 2장 1절, 새번역>
이 구절을 보고 있으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위해 자신의 심복 엘리에셀을 자신의 고향, 자신의 친척집으로 보낼 때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창세기 24장 2~4절, 새번역>
아므람 역시 이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집트에서 태어났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민족들과 결혼을 하더라도, 자신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같은 혈통과 같은 가문을 선택하여 결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혈통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역시 탁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레위가 이집트에서 낳은 딸의 이름을 '요게벳'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레위는 이집트에 오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팔았던 동생 요셉으로부터 용서를 경험하게 하셨던 하나님! 요셉을 통하여 일하신 놀라운 하나님! 흉년 가운데에서도 부족함 없이 인도해 주신 하나님! 그래서 이집트에서 낳은 딸의 이름을 요게벳, 즉 '여호와는 영광이시다' 란 이름으로 짓게 된 것입니다. 요게벳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므람 역시 '고귀한 백성' 이란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므람과 요게벳은 그들의 이름처럼 바로의 통치 하에 태어난 아들을 죽여야 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이런 믿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고귀한 백성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믿음으로 그 부모는 석 달 동안 아기를 숨겨두었습니다. 그들은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3절, 새번역>
바로 이런 가문에서 태어난 존재가, ‘모세와 아론’입니다.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해 버린 절망의 시대, 유대인이지만 도무지 하나님을 찾지 않던 세대, 도무지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꺼져가는 희망의 때에, 이런 믿음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나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 요게벳의 이름처럼 하나님이 영광이 되심을 경험하며, 아버지의 이름처럼 고귀한 백성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명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하나님의 때에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세와 아론이 우리의 눈에 보기에는 부족했지만 이제 곧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행보를 보여 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등장한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통하여 왜 모세와 같은 사람을 사용하시는지에 대해 우리를 설득시키시고 이제 다시 본격적인 출애굽의 행보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입이 둔한 모세에게는 든든한 지원군 아론이 함께 합니다. 이제 고집을 부리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표징과 이적을 이집트 땅에 행하실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출애굽에 성공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주, 여호와임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7장 4~5절, 새번역>
그리고 이 말씀을 의지하여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놀라운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일어나게 됩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성경에 또 하나 특별하게 등장하면서 우리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말씀을 전해 드리면서 오늘 설교를 끝내려고 합니다. 바로 모세와 아론의 나이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이고, 아론의 나이는 여든세 살이었다. <출애굽기 7장 6~7절, 새번역>
80세의 모세와 83세의 아론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행보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붙들면 나이를 초월하여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월 한 달 ‘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신앙’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그 마지막 이야기로 모세의 부모였던 ‘아므람과 요게벳’ 가정을 나누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이집트 통치 하에서도, 이집트 문화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누구하나 무엇이라고 할 것 없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레위 가문의 남자와 여자로의 결혼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선택은 ‘모세와 아론’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일꾼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므람과 요게벳도 처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를 나일강에 띄울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모세를 사용하심으로 ‘출애굽’이었습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선택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게 된 첫 단추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그 때보다 더 치열하고 악하고, 어둡고, 복잡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화는 무엇이든 다 삼켜 버릴 사자의 입을 하며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내던져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성경 말씀은 그 빛을 잃은 듯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짠 맛을 잃어버려 아무데도 쓸 데가 없어 바깥에 내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힌 당하는 소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오늘도 그 때처럼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시대의 ‘아므람과 요게벳’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택을 하는 이를 찾고 계십니다. 그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찮은 선택 같아 보여도, 나 하나, 우리 가정 하나, 우리 교회 하나 이런 선택을 한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우리는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하여 회복과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가정은, 그리스도인들은 2025년의 아므람으로 ‘고귀한 백성’이며, 요게벳으로 ‘하나님의 영광’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고귀한 백성 여러분, 다시 첫 단추를 잘 끼워봅시다. 무엇보다 가정으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내가 살아나 가정을 살리고, 가정이 살아나 교회를 살리고, 교회가 살아나 세상을 살리는,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가 됩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고귀한 백성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그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 거기에 서서 듣고 있던 무리 가운데서 더러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고, 또 더러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12장 28~30절, 새번역>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여전히 이 소리를 들려 주고 계십니다. “너는 나의 영광이다! 가정은 나의 영광이다. 교회는 나의 영광이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첫 단추를 새롭게 끼우며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하여, 먼저 그 길을 걸어 가셨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를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분명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 귀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자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 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 아멘
결단 찬양 -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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