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넷플릭스 시리즈 “VIVANT”를 봤다.
평범한 종합상사맨인 주인공은 국가 비공식 특수요원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해외에서 아버지와 헤어져서 고아로 자랐다. 헤어진 아버지는 테러집단 우두머리가 됐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암살하기 위해서 테러집단에 잠입한다. 테러집단은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테러를 한다. 아이러니하게 테러로 번 돈은 고아들을 위해서 쓴다.
주인공과 헤어진 아버지는 고아 지원에 혼신을 다 한다. 고아들은 테러리스트들과 너무나 행복하게 지낸다.
시리즈를 보고 형식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에 대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테러집단은 실체적 정의에서 보면 악이다. 고아들을 돕는다는 절차를 보면 절차적 정의에서 선일 수도 있다. 고아들 입장에서 테러리스트는 실체적 정의이다. 절차적 정의로 본다면 악이다. 그래서 절차적과 실체적 정의가 동시에 만족 되야 정의라고 보는 것이 맞다.
위키백과에 검색하면 절차법은 “실체법의 운용절차, 특히 권리·의무의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규정)을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범인검거에서 절차법을 따라야 한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 해야하고 인권도 보장해 줘야 한다. 요즘 사회 트렌드는 절차적 정의가 강조되고 있다. 무수한 절차적 정의를 만들면서 이슈화 시키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흉악범의 인권을 왜 보호해 줘야 하는 지 모르겠다.
회사의 실체적 정의는 무엇인가? 연속·지속 가능성이라고 본다. 회사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회사에는 회사, 직원, 주주, 소비자(가계, 기업, 정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다. 우리는 이해관계자의 절차적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에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테러리스트가 고아들을 지원해 주는 정의의 오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부 직원들이 속해 있는 집단이 테러적인 도구를 활용해서 혜택을 받고 있다면 이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가? 그 집단을 과연 주주와 소비자가 정의롭다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고아들은 언젠가 고아원을 나올 것이다.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길을 가는 고아는 테러집단이 정의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 안 할 것이다. 둘 다 고아원이 없어진다면 정의에 대한 논란도 없어진다.
대신증권노동조합은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에 대해 좀 더 깊게 고민해 봐야한다.
첫댓글 노동운동도 이해관계자와 사회내에서 있어야 하죠. 산업혁명, 현대화 과정에서 악덕 기업주가 있는 것이지 지금 어느 시대인데. 그래서 노동법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신노조가 중심을 잡고 노사문화를 이끌어 나가야 직원과 회사의 이익이 확대될 것 같네요^^
회사가 망하길 바라는 것처럼 악담을 하는 것은 대다수 직원에게 호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점/본사를 떠나서 비 조합원도 지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원래 실체적 정의를 정의로 보았는데 그게 입맛에 따라 오용되고 곡해되다보니까 형식적인 면에서 제어해야겠다 해서 절차적으로 통제하려 해서 절차적정의가 대두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끔식 본말이 전도되어 주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해서 둘 다를 충족해라 라는 것이죠.
소속감과
사명감
그리고 소속된 조직의 정의를 위한 노력
소속된 개개인 모두 여러가지 면으로 풍족하길 원할것이고, 본인이 소속된 조직이 영원하고 큰 발전이 되길 원하는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없어지면 끝이니까요~
힘든시기 잘 극복 합시다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럭하고ㅎㅎ
어려울수록 서로돕아야죠
역지사지
상대방을 죽이겠다고 쓰는 글은 나쁜 글입니다.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이어야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왠 넷플릭스 했는 데 끝까지 읽으니까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노동운동도 실체적정의와 절차적정의가 모두 충족되는 내에서 해야합니다.
회사 이해관계자, 비노조원, 일반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관습적 범위내에 있어야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