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위로
중학교 이 학년 신록이 무성히 빛나던 유월이었다. 점심시간을 마칠 즈음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다. 고향 남해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가는 길에 나를 데리러 왔다. 배를 타고 차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하얀 천으로 된 천막이 여러 개 있고 손님들이 많았다. 돌아가셨다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맞이했다. 어리둥절한 나를 고모와 어머니가 와락 안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유난히 사이가 좋은 할머니의 죽음에 심한 충격을 받을까 염려한 식구들의 배려였다. 병풍 뒤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미동도 없었다. "아가야~이" 하고 일어나 껴안을 할머니는 눈도 뜨지 않았다. "할무니" 하고 흔들어 보았다. 차고 딱딱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정신이 아득했다. 세상에 행복만 가득하다고 알았던 내가 처음 경험한 큰 슬픔이었다.
결혼 후 둘째 아이 돌이 지나고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장례 때는 어머니 뒤에 숨었고, 그 아이 약혼식 무렵 어머니 마저 가셨을 때는 깊은 슬픔과 연민으로 오래 힘들었지만 속으로 삭일 수 있었다. 시부모님 가실 때는 남편과 함께여서 나는 늘 조연이었다.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주연 노릇을 해야 했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들대로 아버지와 헤어지는 슬픔의 무게가 크기에 나까지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른으로 처신해야 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불의의 사고도 아니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한 것도 아닌 팔십 후반부에 맞은 죽음이니 슬품에 넋 놓을 처지가 아니었다. 젊어 헤어지는 것은 살아갈 일이 아득하고 추억 때문에 까무러치지만 노년의 이별이라고 그 슬픔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살아온 긴 세월의 기억 때문에 힘든 건 마찬가지다. 죽음이란 완전한 단절이고 돌이킬 수 없는 끝이니까. 담담한 척 버티기엔 나 역시 나이 들고 지쳐 있었다. 은퇴 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여 많은 시간을 거의 함께 했기에 홀로 남는 것은 지독한 허기였다. "여보, 뒤에 손이 안 닿네." 하면 기꺼이 뒤트임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주던 그의 부재에 발목이 꺾여 주저앉는다. 기다리는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면 적막강산이다. 잘 챙겨 먹고 건강 챙기라는 주변의 위로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아이들의 걱정에 의연한 척 해보지만 무얼 먹는다는 행위가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쌀을 씻을 대면 꼭 식충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를 위해 무얼 만들어 본 기억이 없다. 항상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남편은 관을 통해 조금씩 들어가는 영양주사액에 의지하다 갔는데, 꾸역 꾸역 뭘 먹는다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두 달이 되어갈 쯤 병이 났다. 철썩철썩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같기도 하고 쏴쏴 증기 기관차가 출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왼쪽 귀에서 들 렸다. 그 이명은 잠시도 쉬지 않고 꼭 이틀 계속되었다.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고, 걸어봐도 가라앉지 않았다. 누우면 더 크게 들렸다. 잠은 잠시도 잘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병원으로 뛰어갔다 이명이야 여러 원인이 있지만 스트레스 경우니 견뎌보라는 것이었다. 낫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병이란다. 나름대로 우선 섭생을 잘 해보기로 했 다. 영양주사를 맞고 딸이 쇠꼬리를 고아 오고 보약을 짓고 법석을 떨었다.
그 무렵 일본 나가사키 문학기행이 잡혀 있었다. 남편도 그 여행을 함께 가고 싶어 했기에 혼자 가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비행기 여행이 귀에 좋지 않을 거라 마음을 접었는데 이비인후과 주치의는 염려하지 말라면서 두 손 들고 추천하였다. 딸도 이른 새벽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등을 떠밀었다.
기독교의 첫 기항지 나가사키는 기독교 박해와 원폭 투하로 두 번의 슬품을 겪은 도시다. 나가사키에 도착해서 오는 날까지 흐리거나 진눈깨비가 내려 마음이 더 우울했다. 운젠 순교지는 착잡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소설의 표현과 영화의 장면이 겹치면서, 유황 온천의 열탕 고문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부정 못 하고 신앙을 지킨 그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엄살을 부리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과 영화 [사일런스]의 배경인 소토메는 핍박에 쫓겨 산속으로 숨어 신앙을 지킨 잠복 크리스천의 마을이었다. 신부가 세운 성당 앞에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 이 바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 낮이 익다.
남편이 가고 두 주가 지난 새벽이었다. 늘 설치는 잠이 설핏 들었을 때 꿈을 꾸었다. 딸을 데리고 남편과 여행을 가서 막 도착한 참이었다.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여행객들 틈에 우리는 옷도 채 같아입지 않았는데 남편은 벌써 수영복 차림으로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힘차게 하늘로 솟아올라 포물선을 만들며 다시 물속으로 멋있게 들어가는 돌고래처럼 헤엄처 나갔다. 다시 뛰어오르며 유유히 아름답게 저 수평선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운동을 그렇게 힘차게 하는 사람이다 아닌데. "얘, 너 아빠가 언제 배워서 저렇게 접영을 잘하냐?" '글쎄, 엄마, 아빠는 개구리헤엄밖에 못 하는데. "얘, 그만 가라고 소리 질러라. 위험하다." 은 그는 어쩌면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노을 지는 아름다운 수평선을 향하여 유유히 헤엄쳐 가는 걸까. 남편이 내게 잘 살라고, 레테의 강을 지나 바다에 잘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
꿈에 본 꼭 그 바다였다. 일행들은 예쁘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나는 조그맣게 소리 내 불렀다. '여보.." 볼엔 눈물이 흘렀다 돌아오는 길섶에 세워 있는 침묵 기념비엔 "인간이 너무 슬픈데, 주여, 바다는 저토록 푸릅니다."라고 쓰여 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김유정
수필<낙타의 등>
수렁에 빠져 있다가 봄과 함께 소생하고 있다.
삶은 참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