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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30.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버젓이 프로이드를 가르치면서 "성서적 또는 성경적 내적치유라고 이름을 붙이고 " 우리 치유원에만 오면 다 해결됩니다."라고 치유의 기준도 없이 치유됬다고 하는데 대하여 기준을 제시하고저 하는 마음이다.
상처란 :
1. 인간에게는 네 가지 마음의 영역이 있다.
- 내가 알고 남도 알 수 있는 부분,
- 나만이 알고 남은 모르는 부분,
-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아는 부분, 그리고
-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부분이다
2. ‘상처’라는 말은 건강의 기준이 무너진 상태로 ‘상처 난 감정’이라는 말.
3. 사람의 내면 지, 정, 의 중, 상처를 받는 부분은 ‘균형이 깨진 감정’.
4. 트라우마,
충격적인 외상적 사건으로 경험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이 조절이 불가능,
이로 인해 감정은 우리를 이전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상.
외상은 예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들어 버리면서도 반복적인 상처를 만듬.
상처의 시작 :
1. 원죄로 인한 상처
-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뒤틀리기 시작
- 영혼의 상처가 생기므로 자동적으로 육신의 상처를 불러옴.
- 죄는 인간에게 많은 상처를 남김.
- 원죄처럼 유전되는 상처
2. 죄의 유전으로 인한 상처
불행한 가정 환경
- 결손 가정
- 과잉보호: 불신감의 표현, 선택을 통한 자신감을 박탈하고 결국 열등감을 갖게 함.
- 조건적 행위: 네가 무엇을 해야 내가 이것을 해주겠다는 식의 교육
- 비교: 강한 거절감의 표현, 언제나 열등감으로 끝.
- 자기 좌절감 : 배변 훈련
- 학대
상한심령 :
- 상처를 마음( 감정 )에 품고있는 상태.
-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처의 감정
-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이든지,
- 아니면 상처 위에 세워진 가치관이나 영향력을 받은 감정
- 사랑과 용납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용납이 철회 되었을때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
- 인간들의 마음이 상해있고 ,상한 심령이 인간들 속에 자리 잡고,
- 살아오면서 그 상처로 인해 생긴 아픈 경험들을 자꾸만 마음에 축적.
- 쌓여진 아픈 마음들은 점점 썩어 병이 들었습니다.
-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쓴 뿌리가 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와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균형이 깨지면 사람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영혼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성경에서는 상한감정이라고 한다.
상한 감정의 증상 :
두려움, 놀램,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자포자기, 분노ㅡ원망, 불만, 불평, 용서 못함, 원한, 쓴 뿌리, 적개심, 과거의 사건의 경험의 상처들, 우울증, 슬픔, 의기소침, 억압, 담담함, 부정주의, 좋은 것 대신 나쁜 것 택하여 확대함, 피해망상, 패배감, 실패감, 자기방어, 공격태세, 다툼, 황포, 시비,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죽음, 자살, 흑암, 시기, 질투, 자기의의, 자아, 의심, 불신앙, 혼동, 복잡다단한 생각, 기도 말씀 훼방, 주의산만, 망상, 공상 ,나쁜 기억, 강박관념, 게으름, 나른, 나태함, 무기력, 교만, 거만, 자존심, 자만심-사과도 않 받음, 거짓겸손, 가식, 이중인격, 거짓말, 중상모략,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 완벽주의, 은혜, 숨김, 기만, 도피, 외모를 취함, 고집, 경쟁의식, 음란한 생각, 행동, 울분, 억울함, 의분, 의협심, 적개심, 미움, 증오, 정욕, 과식 욕, 세상욕심, 수치감, 부끄러움, 없신여김, 경멸함, 비판, 비난, 불행감, 당 짓는 것, 외로움, 버려짐, 사악함, 교활함, 기쁨이 없음, 육신과 마음의 허약, 우유부단, 결단력 부족, 불분명, 끈기 없음, 수다떪, 부자유, 부적합한 감정, 열등감, 궤팍함, 신경질, 짜증, 기억력 상실, 망각증, 무관심, 냉담, 무분별, 언 감정(frozen),자기 벽에 갖힘, 악습, 낭비벽, 도박, 약물중독, 알코올 중독, 자신 없음, 감사치 않음, 사랑치 못함, 순종불가 , , 등이다.
* 인문학 ( 심리학, 정신과) 에서는 이것을
- 기분 장애와
- 치료가 필요하다는 성격 장애로 구분 하고 있다.
-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치료는 한계가 있다.
* 나의 견해 ( 나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성도들의 간증) 는 인간을 죄로 묶어 파괴하려는 흑암의 영들( 사탄, 마귀, 귀신)의 공격이라고 본다.
- 완전한 치료가 가능하다.
* 감정 안에는 좋은 감정과 상처 난 감정이 있는데, 좋은 감정에 의하여 지배 받기 보다는, 많은 경우 상처난 감정에 의하여 강하게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된다.
* 흑암의 영 ( 사탄, 마귀, 귀신 ) 은 끊이 없이 생각 ( 감정 )속에 파괴( 부정적, 의심, 거짓)적인 생각을 넣어 지배한다.
로마서 1:
28.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29.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
30. |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31.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
창세기 ( 1 : ) 하와의 생각 속에 의심의 마음을 넣어준다.
마태복음 (13: 25-26).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태복음 (12: 43~45)에 "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렇게 귀신은 생각과 가정이 있음을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막 (7 : 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요한복음 (8 :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 13 : 2)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 5:19-21 )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마귀가 주는 이 악한 생각을 성령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 마귀가 들어와 성령을 속이게 하였습니다. 마귀는 다윗 속에도 들어가 힘을 과시하는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 팔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넣었습니다.
* 상기 언급한 상한 마음은 마귀가 관계를 갈라놓아 지배하고 멸망시키려고 생각( 마음, 감정) 에 넣어 주는 술책으로 보아야 한다.
거할 곳이 없게 하라 (마 12:43-45)
[요약] 귀신이 하는 일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육체적인 질병과 심리적 질병과 물질적 환난을 가져다 준다. 귀신이 거하는 거처는 더러운 곳이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여 정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귀신의 거처는 물 없는 곳이다. 물은 말씀이요 성령이므로 항상 은혜 충만해야 한다. 귀신의 처소는 어두운 곳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마음을 밝게 해야 한다. 귀신의 거처는 적막한 곳이다. 침체된 곳에 귀신이 침범하는 것이니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소리가 충만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이 시간에 “거할 곳이 없게 하라”라는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삶에서 눌리고 고통당하는 분들이 많아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병균이 있을지라도 그 병균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주지 않는다면 그 병균은 사람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원수 악한 영들이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지만 그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거처를 주지 않는다면 결코 다가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은 마귀의 부하입니다. 귀신이 하는 일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많은 육체적인 질병과 심리적 질병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각종 해로운 것에 중독자가 되게 하고, 도둑질, 살인, 강도, 간음 등 대부분의 범죄의 원인이 되고, 가정과 사업을 파탄 시키고 심지어 극한 마음을 주어 자살의 원인도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귀신의 역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이 귀신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귀신을 허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생활 잘하면서 매사에 마귀를 대적하며 중요한 것은 귀신의 거처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은 살기 좋은 처소를 만나면 거기에 들어와서 둥지를 틀고 떠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귀신의 거처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면서 귀신을 온전히 물리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귀신이 거하는 거처는 어디일까요?
1. 귀신의 거처는 더러운 곳입니다.
본문에 “더러운 귀신이” 그랬습니다.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곳을 좋아합니다. 막 5장을 보면 군대귀신이 나가면서 예수님께 애원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무저갱에 보내지 말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율법에 돼지는 부정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돼지고기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한 곳이 귀신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욕심과 죄악의 장소가 되면 안 됩니다. 향내 나는 곳에 봉접이 오고 구렁냄새 나는 곳에는 쇠파리가 오듯이 마음이 더러우면 귀신의 처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추한 온갖 탐욕과 불법과 죄악과 우상을 청소해 내야합니다. 귀신의 거처가 사라지면 귀신은 멀리 떠나가게 됩니다.
일곱 귀신에 들렸던 여인 마리아도 회개하고 예수 앞에 나오자 예수님께서 그 악한 귀신을 깨끗이 쫓아내주셨습니다. 회개해 보세요.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회개할 때 열이 내리거나 냉이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치의 질고도 떠나가고 환경도 변하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외형적인 현상은 하나님이 손길이 임함과 동시에 귀신이 떠나가는 현상입니다.
계18:2에 세속의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바벨론이 예수 안에서 무너질 때 귀신도 함께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영적 사역을 하려면 더욱 깨끗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 사단의 도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귀신의 거처는 물 없는 곳입니다.
다시 본문 43절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그랬습니다. 물 없는 곳은 문자 그대로는 사막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이처럼 귀신은 사막과 같은 심령을 찾아 거기서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사막화되면 안 됩니다. 물은 말씀이요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귀신은 절대 들어와서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 충만한 마음에 들어왔다가는 잠시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빛을 싫어하듯이 귀신도 밝은 빛이 비치는 심령에는 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오늘도 물 없는 곳은 어디인가? 어느 심령이 은혜 떨어졌는가? 어느 심령이 말씀이 없는가? 어느 심령이 사막 같이 황폐해졌는가? 두루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은혜 없는 마음에 가장 거하기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보혈 없는 마음을 찾아다닙니다. 마음이 사막과 같이 메마를 때 얼마나 악한 영들이 작란을 칩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다해 은혜 받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통계학자요 목회자인 조지 바너는 많은 사람들이 벤치워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벤치만 따뜻하게 데우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의자만 데우고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잘 믿는다는 미국교회에 벤치워머가 90%나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예배에 나왔지만 사모함도 감격도 없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남도 없다면 그는 벤치워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이기려면 벤치워머가 되지 말고 우리의 심령을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히 채워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빈 집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주인 된 집이요, 성령으로 가득한 집이요, 찬송으로 가득한 집이어야지 빈 집이 되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와서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말씀과 성령으로 활활 타오르는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귀신의 처소는 어두운 곳입니다.
유1:6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처소는 어둔 곳입니다. 어둡다는 것은 밤과 같은 물질적인 어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귀신의 처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두움을 물리치고 마음을 밝게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밝은 마음을 가지면 악한 영이 거할 수 없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 어두웠던 시절이 많습니다. 실연, 사망으로 인한 이별, 성폭행 당함, 중대한 사고, 시험에서 낙방, 괴롭힘 당함, 억울한 일 당함, 갑작스런 실업, 과중한 채무, 사업의 실패, 과중한 스트레스 등을 갑자기 당하는 경우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로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될 때 그 상처를 타고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놀래거나 심적인 충격을 받을 때, 부정적인 관념을 통해서, 혈기 부릴때,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민할 때, 자포자기 할 때, 죽음을 너무나 슬퍼할 때, 제사 지낼때 등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지킬만한 것은 마음이며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재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귀신은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위로를 통해 치료함을 받고 해처럼 밝게 살아야 합니다.
4. 귀신의 거처는 적막한 곳입니다.
막5:3에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했다 했습니다. 무덤을 무서워 마세요. 기독교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무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실재로 무덤에 귀신이 거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곳에 공연히 의미 주면 안 됩니다. 의미를 주면 줄수록 마귀가 그 심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덤을 말씀한 것은 무덤이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말이 없는 곳입니다. 소리가 없어요. 예배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찬송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진리를 말씀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는 마귀를 명령하는 소리도 없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합니다.
이처럼 무덤 같은 심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만일 당신의 입이 벙어리일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귀머거리가 되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까? 귀신은 우리의 기도소리가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까이 다가옵니다. 소리 내어 찬송하고 기도하는 곳은 영적 활기가 생기기 때문에 귀신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교는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불교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체험을 강조하는 뉴에이지도 소리가 없거나 작습니다. 귀신은 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소리가 큽니다. 소리가 있는 교회일수록 활기가 넘칩니다. 천국도 소리로 가득 찬 곳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소리가 없는 사람은 악령이 주는 온갖 잡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이 없고 순한 사람에게 귀신이 잘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수가 갑자기 적어졌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소리를 내면 살아요. 그러나 소리가 들어가면 죽어요. 소리를 내보세요. 발성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신앙생활해 보세요. 찬양 테이프도 틀어놓으세요. 찬송에 맞춰 몸도 움직여 보세요. 삶에 활기가 넘치고 심령에 성령의 불이 붙습니다. 더러운 심령은 깨끗해지고 악한 영들이 소리치며 나갈 것입니다.
이러기에 묵상을 좋아하는 서구인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따라 하다가 사단의 미혹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성기도가 없는 묵상은 문제점이 많습니다. 묵상은 발성기도가 뒷받침 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았는데 악령의 시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령을 이기려면 신앙생활을 더 활발하게 하고 더 강하게 해야 합니다.
멜테리가 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도팀이 어떤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그 마을에서 토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 신을 전하고 싶다면 예수가 우리 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 그러자 전도팀은 제사장에게 “마을 사람들을 다 모으라. 그러면 하나님과 너희 신 중에 누가 더 센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1천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전도팀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명령했습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지어다!” 그 순간 토착신 제사장의 우두머리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 나도 여러분의 신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신의 제사장으로 늘 신들과 대화를 해왔는데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떠나라고 명령할 때 이곳에 모였던 가장 큰 귀신부터 가장 작은 귀신까지 예수가 더 이상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면서 다 달아나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내게 느껴지는 체험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하면 마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치유란 ? :
1.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건강의 기준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로 회복
2. 창조주 (하나님)와의 관계를 회복,
- 하나님과 나
- 나와 나
- 나와 환경
현재 치유 방법
가 그룹 : 치유의 정의, 범위가 모호.
1. 무의식 ( 모태까지) 에 저장된 쓴 뿌리를 생각해 내어 토설한다
( 프로이드 이론에 근거 )
2. 용서를 권유
3. 위로와 지지와 공감을 해준다.
단기 결과 :
- 카타르시스로 가슴이 뻥뚤린 것 같고, 날아갈 것 같이 시원함
문제 ( 장기결과) :
- 원상 복귀됨
- 가족치료 대두
- 인간의 ( 죄인 ) 위로, 지지, 공감은 한계가 있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함.
- 동일한 위로를 받으려는 응석받이가 됨( 징징됨 )
- 죄에 의한, 사탄(마귀, 귀신 등 흑암의 영)의 공격, 도전 지배를 전혀 간과함.
_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님( 세상 학문 프로이드 이론 근거 )
나 그룹 : 치유의 정의, 범위가 모호.
1. 무의식 ( 모태까지) 에 저장된 쓴 뿌리를 생각해 내어 토설한다
2. 용서를 권유
3. 위로와 지지와 공감을 해준다.
4. 축사 ( 몸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귀신을 쫒아냄 )
(예 : 본인: 신라시대 조상이 귀신을 섬긴 것이 이제껏 문제를 일으키며 안 나간다고 함)
단기 결과 : “가” 그룹과 동일하나, 축사 후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간증이 있음.
문제 : 가 그룹과 동일하나. 축사의 치유가 100% 일어나는가는 의심.
성경 :
치유의 정의, 범위가 명확.
- 영혼 :
말라기 (4 : 2) 말씀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시편 (119 : 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스가랴 ( 3:17).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리라
스가랴 (10: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이사야 (32:15) 에 그 답이 나타나 있습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이사야 (51: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이사야 (53:4-5)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8:10~12)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 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나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찬송이 있지요. 이 예언은 우리 사막 같은 심령이 성령이 임하시면 축복의 낙원이 된다는 예언입니다. 우리 심령에 샘이 흐릅니다.
요한복음 (7:38-39)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
베드로전서 (2: 24) 말씀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해 구원받고 치료받는다.
그런데 주님은 진정 공의로우셔서 벌의 면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이 공의는 더욱 적극적이 됩니다. 즉 진정 공의로우시기에 우리의 죄성 까지도 남김없이 성령으로 처리하여 주시고 나아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로 의로움을 가득히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진짜 공의입니다. 어떤 왕도 이렇게는 못합니다
- 육신 :
하바국 (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시편 (147 :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
시편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잠언 (3: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전도서 (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단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렘 (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출애굽기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신명기 (7: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 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상한 자들의 상태 :
- 죄에, 과거에 묶여 있다 ( 죄에 과거에 지배를 받는다).
- 상처는 육신 또는 신념체계 안에서 강한 요새를 형성한다.
- 상처는 죄와 연결( 맞물려)되어 있다.
- 그렇기에 상처를 안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죄성의 문이 열리기 시작.
- 죄 ( 사탄, 마귀, 귀신 등 흑암의 영 )의 지배하에 지냄.
치유 방법 :
1. 하나님께 나오라.
-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은혜를 경험해야 됩니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 이다
먼저 아픔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위로로 상처의 빈자리를 채울 것인가를 배워야 됩니다.
이사야 (42:1)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고백이 필요
말라기 (3 :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그랬습니다. 여기 황충이란 나무나 곡식이나 풀을 하나도 없이 다 뜯어 먹는 무서운 메뚜기 재앙입니다. 예수계 나와 잘 섬기면 (십일조 하면) 이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황충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죄에요. 이 죄가 우리의 심령을 얼마나 뜯어 먹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좀 파릇파릇 살아나려고 하면 침범해서 뜯어먹어 버리고 또 뜯어먹어 버리고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말라기 (3 :12 )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처럼 우리의 마음에 임하시고 왕 노릇 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우리마음을 노크하시고 계십니다. 나의 왕으로 크게 환영하고, 내 자리 ( 내의지, 계획, 생각 )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잘 섬기고, 잘 경외하여야 한다.
2.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
빌립보서 (3: 13 -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히브리서 (10: 38) “오직 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9 :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 19 ;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고 명령 하였습니다. 권고가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사야 (43 : 17 -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고 명령하십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Forget the former things and do not dwell on the past. 여기 dwell이라는 뜻은 거주하고 같이 산다는 뜻이고, 또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붙잡혀 같이 짝하고 산다는 뜻이지요.
3. 죄를 회개하고, 흑암의 영을 (사탄, 마귀, 귀신)쫒아내라.
회개하는 생활을 할 때에 마귀가 도망갑니다.
마귀는 회개하는 심령을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합니다. 회개하면 성령이 임하니 성령이 임하면 마귀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왕상 (18 :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시편 (142:1-2)“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 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여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 하는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이사야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사야 ( 66: 2)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여기 “권고”라는 말은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신다.
반복적으로 죄를 지을 때, 그것이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인데, 통로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말하는 것,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
골 (3: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했습니다.
요일 (2:15-16) 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2:43-45) 죄가 반복되어질수록 귀신의 영향력이 더 강해진다. 나중에는 더 강한 귀신들이 들어와서 지배할 수 있다.
12:43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아 물이 없는 곳에서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12:44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돌아와보니 그 집이 여전히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깨끗이 청소되고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12:45 그 때, 그 더러운 영이 나가서 자기보다 훨씬 더 악한 일곱 영을 데리고 왔다. 그 영들 모두 그 사람에게 들어가 살게 되어,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이렇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6:22-23) 신앙고백 후 베드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누가복음 (13:10-18)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진자 - 회당안에 있었으나 귀신이 들려 있었다.
누가복음 (22:31-34) 베드로 -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함
사도행전 (5:1-11 ) 아나니아와 삽비라(사단이 가득)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두려워함
고전 (5:1-13) 아버지의 아내와 근친상간 - 마귀 유혹에 빠져서 교회 안에서 행함
고후 (2:10-11) 바울은 사단의 속임수를 알지 못해 신자들이 겪을 위험을 기록
에베소서 (4:26-27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 마귀로 틈(장소)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6:10-17) 전신갑주를 입으라 - 입는 목적은 사단의 화살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믿는 사람들이 입어야 할 전신갑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마귀와의 전쟁터에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처를 입는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우리를 감싸지 않는다면, 무장되지 않은 부분이 공격을 당할 것이다.
딤전( 3-6 )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조심하라.
딤전 (4:1-3) 마음을 속이는 것 - 우리 내면에서 작용한다는 것
딤전 (5:15 ) '사단에게 돌아간' 신앙인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딤후 (2:26) 사단이 믿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분명히 그를 노예로 만들어 자기 뜻을 좇게 하려는 것이다.
야고보서 (3:14-16) 시기나 다툼, 이기적 욕심 - 이런 것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
야고보서 ( 1:15) 우리 마음속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게 되어 있고, 죄는 태어나면 반드시 자라나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최후는 사망이다.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깨우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마귀는 떠나가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벧전 ( 5:6-9 )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 - 삼키다 : 먹어치우다
요한일서 (2: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하셨는데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맞물린다 라는 것입니다.
- 요계 (21: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가 우리를 지배해 종으로 삼고 범죄하게 하고 저주와 멸망의 길로 끌고 간다.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가 성령으로 임하시면 죄가 피해지고, 죄가 다스려진다.
감당할 수 없는 질풍 같은 마음이 다스려지고, 저주가 물러가고, 마귀가 물러간다.
4. 용서하라
-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나면 상처받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처를 안 받으려고 나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내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
분노는 하나님이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 분노하도록 만든 정상적인 정서적 감정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들 중 하나지만, 그러나 만일 분노심을 계속 품게 된다면, 마음이 황폐하게 된다.
증오의 가시를 뽑아내는 유일한 약다. 나의 원수를 축복할 때 나를 괴롭히던 증오의 가시가 뽑히고 내 심령에 평강과 안식이 임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23-25)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
마귀에 궤계에 놀아난다.
하나님이 예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마 5:23-25; 호 6:6; 암 5:21; 사1:11-18).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8:18).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할 때 매인 것이 풀린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8:23-35). 만약 용서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주시리라.
눅( 6: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37)주님은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라는 원칙을 세워주셨다.
롬 ( 8:6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2:9-10)“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먼저 용서하셨고(롬 5:8)
롬 ( 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주님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버릇을 이제 그만두고, 네 행동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구원 ( 생명) 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이 생명을 지키고 성숙시키고 누리기( 자유 ) 위하여 이생명을 자신이 파괴하는 분노(미움-살인)를 버리고 용서를 명 하셨다.
고후 (2:10-11; 엡 4:26-27). 용서 않고 금방 분을 삭이지 않으면 마귀의 궤계에 놀아난다
벧전 (2:22-23).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다
이사야 (48:22; 57:2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가. 용서할 수 있는 방법
1) 용서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한다(롬8:26).
2)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준 내용과 그 때의 감정들을 주님께 토해내는 기도를 한다 (시142:2).
3) 상처입은 심령에 예수님의 보혈이 뿌려지도록 기도한다.
4) 상처입은 심령에 성령님의 생수가 부어지도록 기도한다.
5) 용서를 선포한다.
6) 자신과 상대방을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한다.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고통은 원한이 되고, 그것은 피해자를 과거와 가해한 사람에게 묶어 매는 쇠사슬이 된다.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배신감과 관계의 파괴가 따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아픔과 원한이 더욱 크다. 상처 주는 행위가 계속되면서 원한은 쌓여가고 상처의 골이 깊어간다.
먼저, 상처 입은 자아는 흔들린다. 어떤 형태의 가해이든 그것은 자아에 대한 공격이 되고 공격당한 자아는 점점 수치스런 자아가 된다. 피해 입은 사람은 처음에는 가해자를 비난하지만, 계속된 가해는 자신을 비난하게 만든다. 위의 사례처럼 피해자는 “나 같은 사람은 아무 쓸모 없습니다.”라고 자신을 비난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피해를 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둘째로 상처 입은 자아는 흔들린 가치관을 갖게 된다. 상처는 삶을 유지해 주던 긍정적 생각들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자신과 세상과 하나님에 대한 다른 이해를 갖게 한다. 이제까지는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고, 세상은 살만하고 호의적이었는데 이제는 무서운 곳이 되고,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은 공평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셋째로 상처는 영혼을 침해한다. 억울하게 당한 고통은 삶을 더 이상 고귀하고 신성하게 보게 하지 않는다. 폭력은 가정을 더 이상 신성한 곳으로 여기지 않게 한다. 결혼서약은 더 이상 거룩한 계약이 아니다. 상처는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손상을 준다.
이처럼 치료받지 못한 사람은 상처의 포로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힘들다. 진정한 치료가 일어나지 않으면 외형은 달라져도 가해구조는 그대로 남아 계속 피해자들을 만들어낸다. 상처의 치료 없이 진정한 용서가 힘들고, 용서 없이 온전한 치료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한 용서가 일어나려면 먼저 손상 입은 자아가 치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를 할 수 없는 상태, 즉 상처 입은 연약한 자아 상태에 머물게 됨으로 용서가 불가능해진다. 그럴 경우에 용서가 강조되면 강요된 용서, 성급한 용서, 혹은 거짓용서가 되어 상처는 치료되기 보다는 더욱 더 상처를 입고 피해를 입게 된다.
부당한 대우 혹은 억울한 피해로 인한 상처의 골이 깊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상처도 아닐 뿐만 아니라 힘이 없었기 때문에 당한 상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그렇기에 먼저 수치스런 자아의 치료가 우선이다. 상처가 자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아는 이미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수치스런 상태가 되었다. 수치스런 자아는 먼저 인정과 이해받음이 필요하다. 상담에서 상담자를 통하여 자아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면 자아는 자기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수치감은 조건 없이 제공해주는 선물, 즉 은총을 통해 치료된다.
둘째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분노의 감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억울하게 고통당할 때의 반응인 분노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그것은 상대가 자기를 무시해도 자기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자기 존중과 자기 방어의 표현이다. 그러나 가해가 지속되면 분노는 억압되어 좌절감으로 바뀐다. 피해자가 마음 놓고 분노를 표현하면 억눌린 자아가 살아날 뿐만 아니라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셋째로 억울한 피해로 망가진 자아에 대한 애도가 필요하다. 상처로 자아의 본래의 모습은 일그러졌고, 영혼은 침해 당했고, 가치관은 흔들렸다. 원한으로 힘들었던 것에 대한 애도는 상처와 가해자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 줌으로 새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어느 정도 상처가 치료된 사람은 자신의 원한을 대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가해자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이해력도 증진된다. 치료받는 동안 피해자는 자신도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과 사람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그는 가해자의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가해자에게 용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용서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용서는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원한 감정의 극복과 가해자에 대한 보복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에는 감정적, 인지적 및 행동적 요소들이 포함된다. 용서의 감정적 요소에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 복수심, 그리고 원한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감소 혹은 극복되고 대신 동정심이나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 증대되는 것이 포함되고, 인지적 요소에는 가해자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통하여 가해자를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봄으로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판단 대신 긍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포함한다. 행동적 요소에는 복수와 같은 부정적 행동이 아니라 도와주고 싶고 화해와 같은 긍정적 행동이 포함된다. 용서를 통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 부정적 판단, 그리고 부정적 행동이 사라지고, 대신 가해자에 대한 긍정적 감정, 긍정적 판단, 그리고 긍정적 행동이 나타난다.
용서는 사건이라기보다 과정이다. 용서는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의지적 행동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없애는 과정이다. 용서는 경우에 따라 아주 오래 걸리는 길고도 먼 여행과 같다. 용서는 가해자와 상관없이 피해자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고 가해자에 대한 긍정적 혹은 호의적 감정과 태도를 갖는 개인적 심리내적 과정인 동시에, 가해자의 참회, 가해자의 용서 청구, 가해자와의 상호 작용, 나아가서 관계의 회복도 포함하는 대인관계적 과정이기도 하다.
용서는 어느 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과정 중에 때론 조금씩 때론 많이 일어난다. 첫째로 용서는 용서의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어떤 형태의 복수도 포기하고 용서하기로 결정했다면 이미 용서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 만일 가해자를 다른 관점에서, 즉 그를 정죄하지 않고 인간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기 시작했다면 이미 용서는 일어나고 있다. 이 때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셋째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하여 친절, 너그러움, 그리고 사랑을 표시하게 되면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용서가 이루어지고 있다. 용서의 과정에서 이런 표시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신을 정죄하거나 용서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용서의 과정은 전진과 후퇴, 반복과 심화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용서는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용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상처 입은 자아를 치료하고 용서를 결정하고 실천하다보면 어느 날 원한의 감정이 사라지고 가해자에 대한 호의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용서는 노력의 결과로 이뤄지는 것이라기보다 치료받고 용서를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놀라움과도 같다. 치료받은 자아는 상처입기 전의 자아보다 더 건강한 자아가 되고, 용서하는 자아는 치료받은 자아보다 훨씬 조화롭고 소중한 자아가 된다.
교회는 용서하고 용서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이 점을 잘 반영해 준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마태 6:12)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이 구절들은 인간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의 조건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절들은 수평적 차원인 인간의 용서와 수직적 차원인 하나님의 용서가 공동체 안에서 상호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앙 공동체는 용서의 공동체이다. 신앙공동체는 용서를 선포하고 가르치고 훈련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5. 성령 충만을 받으라, 치유가 일어난다.
출애굽기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사야 (57 :18).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이사야 (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에레미아 (30: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에스겔 (11: 18-19).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호세아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누가복음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스가랴 (3 :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사도행전 (3:16)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6. 성숙하라
사람이 한 번 들여 놓은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 마다 습관이라는 것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의 힘으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결심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깊이 남아있는 상처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치유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성령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므로 반드시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변화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주관적으로 하시되 내가 협력하는 것이지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 어떻게 성령님에게 협조해 드릴 수 있는가를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가. 무엇보다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든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우리의 인생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려면 무엇보다도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은 그냥 생각나고 떠오르고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그 부분이 패여서 길이 되듯이 생각에도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잘못 만들어져 있으면 항상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협조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목적은 이같이 그릇된 생각을 내어놓고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입니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 판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마음 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잘못된 생각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거듭났지만 머리가 공백상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거짓 교훈과 악한 지식들로 저장된 속 사람이 있습니다.
나. 하나님과 대화할 때 감정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도를 한다.
먼저 대화를 통해서 잘못된 생각을 찾아낼 수 있고 드러날 수 있습니다. 상담이나 셀 모임에서의 교제는 대화를 통해서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담자가 되시며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는 성령님과 대화함으로 악한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대화는 기도인데 이 기도를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해야 합니다. 즉 내가 성령님께 말하고 나면 반드시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내가 구할 것을 다 아뢰었다고 기도의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말고 성령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실 것을 사모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치유는 감정적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치유는 반드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이란 생각의 뒤를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입니다. 감정의 만족에 그치지 마십시오. 생각의 변화가 결국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그 두 번째는 하나님과 대화할 때 감정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함께 계시는 것이지 기도의 내용을 정죄하기 위해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감정일지라도 솔직히 말씀 드릴 때 성령의 빛이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하고 깨끗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작은 사랑의 행동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사랑의 행동실천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생기고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은 결코 한 번에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에게 작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행할 때 치유 받은 사건들은 계속해서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진리는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배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주님에게 못 들었다면 우선 여러분처럼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작은 인사라도 나누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우울함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라. 교회공동체 안에 들어가 치유를 경험한다.
갈라디아서 ( 6 : 2)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야고보서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무엇보다 창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언어를 주님의 언어로 바꿔야 합니다. 이 언어는 서로 용납하고 반응하며 따듯함이 오가는 언어입니다. 우리 언어가 바뀔 때 우리는 모두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계속 배우고 알아간다.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과 읽은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 성경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들어있는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심지어 심리적인 문제와 그 해결책까지도 성경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내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써 나의 내면의 상처까지도 치유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약을 하면.
- 말씀으로 채우고 말씀따라 산다,
-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 찬양으로 채워라
- 전도하라
- 기도하라
회복 ( 축복을 누리는 삶) :
이사야 (11: 6-9), 낙원의 회복(Paradise Regaining)이라고 하는 회복된 낙원의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라는 대단히 황당하고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이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기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평강’(Shalom)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일어난다면, 어느 사회,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서 일어날 것이다(천국은 원래 한 개인의 삶의 변화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사야 ( 35 :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했습니다.
성경 기록의 신기한 것이 처음에는 사막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복으로 바꾸어지죠?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막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축복을 시사한 것입니다
이사야 (65:17)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 :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그러면 내 안에 상처가 치유될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까요?
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에게는 변화도 성장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치유는 나를 오랫동안 고통 속에 몰아넣은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내가 지금까지 어두움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음을 자각하게 합니다.
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은 사람들은 예전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람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전에는 무조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미워했는데 그도 어쩔 수 없는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이제는 미워하거나 분노의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다. 가정이 살아납니다.
상처는 대부분 성장기의 가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상처가 치유됨으로 인하여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되어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라. 마음의 상처 치유로 건강한 영성을 선물로 얻게 됩니다.
분노하는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마음의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상대적으로 사랑이 증대됩니다. 치유는 바로 주님이 들어와 역사하시는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 정신의 건강과 육신의 건강을 얻게 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정신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영과 육이 하나이기 때문에 영혼이 건강하게 되면 육신의 건강도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1997년 미국의 타임지에 “믿음과 치유”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마음의 치유능력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실었는데 내용은 신체는 영에 지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기도를 열심히 하면 기도할 때 체내에서는 모르핀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통증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병을 이기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영혼과 정욕( 죄성, 자아, 육성) 싸울 필요가 없는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그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성령이 임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천국이란 하나님의 정권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 3 : 12 )절에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만약 누가 당신 앞마당에 쓰레기를 던져 버린다든가 당신이 옷에 더러운 것을 찍어 버린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것을 지키고 보호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귀가 그들의 마음속에 더러운 상상이나 미워하는 생각이나 어둡고 답답한 감정을 쏟아 부어 주는데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천하고 슬푼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태도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며 빛나고 생명이 넘치는 나라를 담도록 만들어진 그릇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들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 원망과 증오의 쓰레기를 부어 넣을 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물리칩시다. 우리 성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몸(인격)을 거룩하게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성령님의 권능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고, 살아 갈 때에 우리는 능히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1). 겸손하여야 마귀를 이깁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음으로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 마귀가 도망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순복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함이 없이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3). 내가 마귀를 대적하여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십니다.
마귀의 일을 마귀의 일인 줄도 모르고 속고 있는 사람은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일은 사단아 물러가라 하며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십자가의 보혈로 쫓아 버려야만 승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 시간에 참석하고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하나님도 내게 가까이 한 걸음 다가오는 법입니다.
5). 손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도둑질하는 손을 찍어 버리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손도 찍어 버리고, 죄악을 멀리 버리고, 성결한 생활을 할 때에 마귀, 귀신, 악한 영들이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6).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성실한 생활, 진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간교한 자는 두 마음을 품고 마귀의 앞잡이, 사용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을 성결하게 정직하게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첫댓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십자가의 전달자로서 하나님 역사의 위대한 주인공~~
홍해의 물이 갈라지며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여호와닛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