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
윤 춘 화
치과 치료는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의자에 누우니 수건이 얼굴을 감싼다. 기계 소리에 주먹을 꼭 쥐게 되고 발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불안감이 밀려온다. 내가 협조를 잘해야 빨리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아픈 것은 꾹 참고 시키는 대로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긴 터널 끝에 보이는 햇살처럼 반갑다.
위의 어금니를 빼고 오랫동안 이가 없이 살았다.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뺀 자리가 굳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크게 불편함이 없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모른 척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래전 치료한 아래 어금니가 아파 치과를 갔더니 이를 빼야 한다고 한다. 조금 아플 때 갔어야 했는데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일을 키웠다. 치료를 받는 김에 윗니도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드디어 치료가 끝났다. 거울로 보니 이전에 있었던 이처럼 자연스럽다. 뿌듯함도 잠시, 새로 심어진 이 옆에 있던 이들이 뻐근하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방해받지 않고 있다가 새로운 이가 들어오니 옆에 있던 이들이 놀란 것 같다. 새로운 이가 아파야 할 것 같은데 옆의 이가 아프니 나도 당황스럽다. 계속 이렇게 아프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긴다. 내가 새로 심어지는 어금니가 되기도 하고 기존의 어금니들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이가 될 때는 혹시 내가 이 모임에 폐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많았다. 반대로 될 때는 처음 오시는 분들이 좀 더 편안하게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도서관 강좌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문학회에 입회하였다. 함께 공부하며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었지만 모임에 들어간다는 건 다른 의미가 있었다. 첫 모임은 어색함으로 긴장했지만 설렘도 있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지만 혹시나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기존 회원들을 따스하게 맞아주었고 글쓰기 공부를 할 때마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자 원래 함께했던 것처럼 스며들어 갈 수 있었다.
올해에도 새로운 회원들을 맞이한다. 첫인사를 들으면서 나의 처음을 떠 올리며 긴장하지 않도록 큰 박수로 환영한다. 처음이라 어색할 수 있겠지만 함께 하다 보면 원래부터 함께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질 날이 올 것이다. 평안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 전 가정에도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직장을 따라 서울로 간 아들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며 인사를 시키고 싶다고 한다. 다들 결혼을 안 하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알아서 짝을 찾아 데리고 오니 감사한 일이었다.
새로운 인연은 좋기도 했지만 뻐근함과 어색함도 함께 있었다. 처음 ‘어머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어색한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가 결혼할 때는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기에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친정어머니는 엄마라고 했기 때문인지 어머니라는 말은 더 어색하게 들렸다.
아들에게 편하게 연락하던 일이 혹시나 같이 있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집에 다니러 오는 날이 줄어들고 집에 와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 느낌이 들 때면 괜스레 심술이 나기도 했다.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도 ‘나하고는 저런 사진을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어머니 심술은 하늘에서 낸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러다가는 내가 고약한 시어머니가 될 것만 같았다.
그즈음 교회에서 열리는 시어머니 장모 학교에 참여하였다. 가정을 이루는 아들을 잘 떠나보내야 함을 새기고 아들과 예비 며느리의 장점을 적으며 심술보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법적인 딸 며느리에게 예의를 지키며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의 시어머니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인사를 오고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고 상견례를 했다. 아들과 달리 다정하게 말을 걸고 세심하게 살펴주는 예비 며느리가 고맙다. 오빠는 연락도, 사진도 보내는 것 같지는 않다며 새해 인사와 함께 둘이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함께 아들 흉을 보며 뻐근하고 어색하긴 했지만 조금씩 식구가 되어 가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어금니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문학회도 반갑게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들과 예비며느리도 네 식구가 아닌 다섯 식구가 자연스러운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새로운 인연이 귀한 인연이 되어 오랫동안 함께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