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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2,35-40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미사 참석하시는 분들은 전라방팀 입니다. 여기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제일 정확한 답은 주님이 불러서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장소는 내가 오고 싶어 오는 곳이 아니에요. 겉으로 보면 예약하고 신청하고, 사람들이 꾸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거죠. 제가 배티성지에 있을 때 이런 이야기 자주 드렸었죠. 여러분들 가운데 아마 어저께까지 오려고 하다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일이 있어서 못 온 사람도 있을 것이오, 또 어저께까지 안 오려고 버티다가 오늘 아침에 끌려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곳은 팔십여 분의 성인 유해와 십자가 보목이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올 수 있는 데가 아니라는 얘기죠. 하느님께서 꼭 필요한 사람만 불러내는 데예요. 그리고 부르셨으면 뭔가 주실 게 있겠죠? 불러내고 아무 말도 안 하면 이상한 사람이죠. 여러분들은 오늘 선택받아 왔다는 것이 믿고 미사 중에 은혜를 청합시다. 여러분들 꿈꾸시죠? 꿈 중에서 제일 좋은 꿈이 무슨 꿈일까요? 우리 신자들은 천국 가는 꿈이겠죠. 어느 봉쇄 수도자가 꿈속에서 천국을 갔대요. 거기 자기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와 있는 성인들의 생활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실망한 거예요. 천국에 들어가면 다 성인이죠?, 엄청 기대했는데, 세상에! 이 세상이랑 똑같더래. 아침 5시 일어나자마자 기도 한 시간, 미사 드리고, 노동하고, 공부하고 반복이야. 재미가 하나도 없어. 한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물론 기쁘게 살았지만, 그래 천국 가면 이제 기도하는 일도, 노동하는 일도, 밥하는 일도 없겠다 기대렸는데, 똑같더래. 그래서 꿈에서도 실망을 하고 깨어나서 수도원 원장한테 가서 물었대요. ‘원장님, 제가 어제 천국 가는 꿈을 꿨는데 여기랑 똑같대요.’ 원장이 실망했냐 물으니, ‘예 실망스러웠습니다. 천국이 왜 이렇습니까? 똑같아요. 어떻게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랬더니 원장이 하신 말, ‘형제여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천국 안에 성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 안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좀 어렵죠? 다시 한번 얘기할게요. ‘천국 안에 성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 안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내가 몇 주 전에도 평일 강론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다’ 그랬어요. 하느님은 이 세상에 우리들이 살면서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맛보기 하라고 조금씩 다 보여줘. 연옥은 어떤 곳일까? 부부가 싸웠어. 한 달 동안 말 안 해. 미움은 사라졌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려니 자존심이 상해.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불편해. 밥을 먹어도 서로가 눈치 봐야 하고 이런 게 연옥이라고 그랬잖아요. 지옥은 그야말로 분노로 차 있는 사람들은 지옥에 있는 거죠. 천국은 뭐 말할 필요도 없죠. 똑같은 환경에서도 천국을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옥을 사는 이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마음이 괴로우면 거기가 지옥이었음을 우리는 다 여러 번 체험하고 살았어요. 저도 마찬가지고 다 체험하고 살아요. 가정에서도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교우 사이, 사제와 신자 사이도 어떤 상태냐에 따라 천국도 되고 연옥도 되고 지옥도 되죠. 지금 우린 천국일까요? 저를 미워하세요? 나도 여러분 안 미워해요. 여긴 천국이에요. 맞죠. 연옥도 아니고 천국이에요. 진짜 천국이에요. 주변 환경도 천국이지만 천국이 맞아요. 또 오늘같이 온 여러분들도 서로 천국이니까 같이 왔잖아요. 불편한 관계면 어떻게든지 왕따를 시키고 안 데려와요 천국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들 매일같이 천국처럼 살고 싶으십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을 중심으로 천국을 살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제껏 한 많은 얘기 중에 섞여 나왔던 얘기지만, 제 강론의 특징은 반복이라고 그랬어요. 아주 뼈에 파고들 때까지 저는 반복을 합니다. 해설하는 형제님은 천국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항상 감사하는 것’이요. (대답) 항상 감사하는 마음만 갖고는 부족해요. 감사라고 하는 것도 뭔가 바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기초가 되어있지 않으면 자기 감정 따먹기 뿐이 안 돼요. 예수님께서 테살로니까 1서 5장 16절에서 18절에서 어떻게 감사하라 말씀하셨죠? 그냥 감사가 아니라 Always, 항상 그러니까 어렵죠. 감사할 일이 생기면 감사해요. 성당 안 다니는 사람도 천지신명에게 감사하든 돌멩이에 감사하든 조상하게 감사하든, 감사할 건더기가 생기면 누구나 감사하고 살아. 그런데 집이 쫄딱 망하고 부도가 나는데 감사가 돼요? 아이가 길 나가다가 차에 치여서 중환자실에 있는 감사하는 마음이 나와요? ‘아유, 그래도 목숨만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이말 나오지 않아요. 오늘 복음에는 천국을 살 수 있는 방법 세 가지가 확실히 나와요. 그게 기초예요. 첫 번째 2독서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것이 천국을 사는 첫 번째 방법이에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핵심은 뭡니까, 순명이었어요.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그때 나이가 75세예요. 안정된 모든 삶을 포기하고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 목소리 하나만 듣고, 그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을 향해서 떠나는 것이 쉬운 것 아니에요. 갔더니 거기가 가나안 땅인데, 세상에 뭐가 젖과 꿀이 흘러, 먼지만 풀풀 나는 박토야. 오히려 그전에 살던 유프라테스 강가가 훨씬 더 기름진 땅이었어. 그래도 한마디, 아브라함의 입에서는 ‘왜 이리로 보냈습니까?’ 하는 말 없어요. 또, 나이 100살이 됐는데 천사가 변장한 손님 대접 잘해서 그 늙은 나이에 아내가 임신해요.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사악을 주죠. 그런데 자식 줄 때는 언젠데 도로 내놓으라고 그래요 성서에 보면 끝까지 죽이려고 해요. 순명해요. 분부하시니 그대로 떠났고 분부하시니 자식 죽이려고 했어요. 상상도 못 할 믿음, 순명이에요. 순명하면 천국을 체험해요. 순명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순명하면 치유가 일어나고, 순명하면 영적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순명. 힘들죠. 저도 한평생 사제 생활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순명이에요. 그런데 처음부터 어려운 순명을 하다 보니, 두 번째 순명도 어렵고 하기 싫지만, 첫 번째 한 것이 아까워서 두 번째는 또 해야 해. 세 번째 순명은 더 어려워요. ‘아 싫어요. 신부가 나 하나 뿐이여, 주교님은 내가 만만하게 보여요?’ 하며 거절하고 싶지만, 첫 번째 두 번째 한 게 너무 아까워 세 번째를 또 해야 해. 이렇게 하다 보니 아브라함의 믿음만큼, 그 순명만큼은 안 돼도, 아브라함과 나중에 대화하면 그래도 꿇리지는 않겠다고 생각해요. 오늘 아브라함은 그랬어요. ‘하느님께서 설계사가 되시고 건축가가 되셔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주실 천상 도시를 바라보면서 나는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살았거든. 약속받은 것을 당장 손으로 얻지는 못해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지만, 이 지상은 믿는 자들에게는 타향이요, 우리는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죠. 히브리서 11장 13절에 보면 ‘하느님께 순명한 모든 이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라고 나와요, 돈으로 살다가 라던가, 취미 생활하다 죽었다는 말 안 나와요. 이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는다’ 이 말이 숨 끊어지기 전에 마지막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이에요. ‘여보, 나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어. 내 걱정하지 마.’ 자식들한테 ‘애들아, 이 아빠는 하느님 믿음으로 살다가 간단다. 걱정하지 마. 더 큰 집으로 가는 거야. 이제 문 열고 가면은 하느님 기다리고 계셔. 너희도 언젠가는 만날 터인데 왜 걱정하니.’ 물론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이 현실에 무관심하여지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발 하늘을 먼저 생각하라는 거예요. 하늘을 먼저 바라보고 그다음에 땅을 바라보라는 그 얘기예요. 내가 지난주 강론 과수원에 떨어진 사과 주워 먹는 돼지 얘기했죠? 돼지는 코로 묻혀 있는 것만 먹지, 사과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나무를 절대 안 쳐다봐요 은총 받기는 누구나 다 좋아해. 은총 받으면 다 신이 나는데 그 은총 주시는 분은 안 쳐다보는 거예요. 그냥 말 한마디로 ‘하느님 쌩큐’ 하고 끝내버려,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순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첫째 자리에 좌정하고 앉아 계실 때 그때 은총의 비가 내리는 것이죠. 자식이 하느님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가 있고, 아픈 내 몸뚱아리가 하느님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가 있고, 내 돈이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가 있을 때는 그게 바로 우상숭배예요. 우상숭배의 정의가 뭡니까? 하느님 밀어내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새끼든 내 아픈 몸뚱아리든 돈이든 취미 생활이든 다 우상 덩어리예요. 우상의 개념은 그거예요. 하느님 밀어내는 것. 우리는 하늘을 먼저 쳐다봐야 합니다. 제가 요즘 느티나무 카페에 구름 사진을 많이 찍어 올려요. 사목할 때는 하늘을 많이 못 봤어요. 바쁘니까, 찾아오는 신자들 보느라고 땅만 보고 살았어, 배티에서는 하늘 보고 내려가면 자빠져, 안 넘어지려고 계속 밑에만 봤어. 사제관에 가도 뒷문을 열면 산이 있으니까 또 하늘이 안 보였어요. 여기 보면 너무 하늘이 이뻐요. 구름이 성모님 모습도 만들고 예수님 모습도 만들어지고. 오죽하면 내가 여러분 사는 동네도 요즘 구름이 이렇게 이쁘냐고 그랬어요. 우리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또 세상의 길손이죠. 지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 악착스럽게 살지 말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었어요. 손해 볼 때 있으면 손해 보라는 얘기입니다. 손해 보게 한 그 인간, 마음 아프게 한 그 인간 네가 심판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하느님이 알아서 심판하실 겁니다. 심판하려고 지지고 볶는 시간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것을 궁리하라는 뜻입니다. 어느 자매가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 세상 욕심이 생길 때마다 연도에 자기 이름을 넣어서 기도했대요. 그랬더니 모든 게 쉽게 포기되더랍니다. 연도는 사실은 죽은 자에게만이 아니라 산 자에게 필요한 기도예요. 연도에다 자기 이름을 넣어보세요. 눈물 펑펑 나요. 헛되고 헛된 걸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고 살아가는가. 여러분이 지금 마음이 행복하지 못하다면은 살아가면서 원인은 딱 하나예요. 아직 포기 못 하는 게 많기 때문에 그래요. 행복은 내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시작이 돼요. 마지막 한 조각이라고 그랬어요. 기쁨의 기적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욕심의 마지막 한 조각을 내 던지세요. 육신의 치유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내 몸에 있는 병까지도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세요. 제 강론 중에 말씀드렸었어요. 저는 거의 18년 이상을 잘못된 수혈로 C형 간염 바이러스랑 같이 살았어요. 얼마나 우리 천주교 의료진들을 원망하고 살았는지, 정말 억울했어요. 수술받다가 잘못된 피가 들어온 거예요. C형 간염 바이러스 중에서도 악성이야. 그때 여의도 성모병원에 똑같은 피를 받은 사람이 다섯이었는데 네 사람은 수혈받고 난 다음에 칠 년 안에 다 죽었어. 간경화, 간암으로. 나 혼자 끈질기게 살았죠. 그런데 언제 이것이 언제 간암으로 갈지, 언제 간경화로 갈지 몰랐어요. 할 수만 있으면 내 핏줄 다 뜯어버리고 싶었고, 새 피로 심장 바꾸고 싶었죠. 그런데다가 내 팔자가 조용히 본당 신부 할 팔자는 아니잖아? 감곡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빚은 수십억이고, 매일같이 몇천 명씩 찾아오는 순례객 만나줘야지. 입에서 단내가 나고 의사들은 큰일이 난다고 일을 줄이라 했죠. 하지만 줄일 수가 없었죠. 또 피정한다고 1년에 100번 이상 피정 지도 나가야죠, 방송 나가야죠. 아무튼 시한부 인생으로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18년 동안 내 안에 있는 수백만 마리의 바이러스를 정말 저주하고 살았는데, 한 번도 얘랑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지. 그래서 그날 십팔 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죠. 바이러스에게 ‘우리 인사가 늦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약속했어요. ‘오늘부터 내가 너 미워하지 않을게. 내 몸의 일부로 인정할게.’ 18년 만에 내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인정한 거야. 그리고 내가 부탁도 했어요. ‘내 부탁이 있다. 나 조금만 좀 더 오래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아직은 할 일이 있어.’ 바이러스와 화해한 그 날 그렇게 많이 울어보기 처음이었어. 실컷 울고 나니까 너무 속이 시원해 그리고 자유로워. 그다음부터는 나는 자랑스럽게 자랑은 아니지만, 간염 환자라고 그랬어요. 그전까지는 창피해서 숨기고 살았어. 내가 간염 환자 되기 전에 큰 기쁨은 내 피는 오형이라 아무한테나 줄 수 있는 거였죠 1년에 열 번은 헌혈했어요, ‘사제의 깨끗한 피, 필요한 사람 주자.’ 그런데 간염 걸리고 난 다음부터 한 번도 못 한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 배티 떠나기 전에 신약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완치가 됐어요. C형 간염은 다 죽었는데, 죽고 나니 내가 또 미안한 거야. 같이 살자고, 동거하자고 그래놓고 죽였으니 말이야. 무슨 약이 얼마나 좋은지 딱 4주 먹으니 수백만 마리가 0 마리로 나옵디다. 사실은 C형 간염을 가지고 살 때는 거의 매일매일을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내일 아침에 또 눈이 안 떠지면 어떨까 그런 마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충실히 살아야지. 그런 마음은 아마 아브라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저는 뒤돌아보면 생각이 납니다. 두 번째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해 두고 사는 것이 바로 천국에서 사는 지름길이에요. 성경에 나오죠? 하늘나라는 도둑이 들어오는 일도 없고 좀 먹는 일도 없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무엇 하나 만족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는 환경에, 내가 볼 때는 감사할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오염되지 않으면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을 하늘에 떠 있는 별 보듯이 가끔 봐요. 그렇죠? 그러면 우리는 굉장히 충격받아요. 나보다 훨씬 더 가진 것도 없고 실제로 말을 들어보면 나 같으면 벌써 자살했어 할 정도로, 저렇게 기구하게 인생을 살아왔을까 저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왔을까 하는데도 정말 기쁘게 살아, 그리고 감사하면서 살아, 가식이 아니고, 위선이 아니라 정말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그런 것을 보면 부끄럽죠. 나는 훨씬 더 많은 걸 가지고 사는데도 한 번도 절절히 감사하다는 마음 가져본 적이 없어. 입에서 감사라 하고 봉헌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한 번도 봉헌한 적이 없단 말이야. 입으로만 그냥 립서비스만 하고 살았지, 하느님에게. 내 거 포기한 적 한 번도 없었단 말이죠. 영적 재물은 하늘나라 창고에 재물을 쌓아두라고 했는데, 위로 올라가는 영적 재물은 뭐냐? 몇 가지만 소개하면은 첫 번째 정성 된 미사와 기도입니다. 두 번째는 따뜻한 말 한마디 이웃에게 던지는 겁니다. 세 번째는 숨은 선행입니다. 네 번째는 다정한 미소를 이웃에게 보내는 겁니다. 한번 웃어보세요. 마지막으로는 사심 없는 봉사. 이것을 많이 쌓아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 갈 수 있다는 얘기죠. 마지막 세 번째는 천국 가는 길은 오늘 복음에 나와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제가 피정 때 참 많이 얘기합니다.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라.’ 아침에 눈 뜨면 제가 피정 때 강론 때 뭐 하라고 그랬어요? 아침에 눈이 떠서 잡소리와 의식이 내 머리를 지배하기 전에 그냥 침대에 누운 채로 내가 눈 떴다고 할 때 제일 먼저 내가 내 몸에다 축성하라고 했지요. 네, 십자성호로 축성하는 거예요. 우리 믿는 이들이 깨면서 첫 번째 해야 하는 것은 내 몸을 십자성호로 축성하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첫 번째 기도는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밤중에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신문이 안 나서 그렇지 수백 명이래요. 그 일에 나는 예외라고 누구도 장담 못 해. 아침에 눈이 떠져야 나는 사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기도는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오는 기도는 ‘주님 오늘 하루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만일에 목숨이 하루밖에 안 남아 있다면 얼마나 열심히 살까요. 1분 1초 어떻게 헛되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남은 그 하루 중에 내가 묵주신공을 굴린다면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이거예요. 하루밖에 안 남아 있다고 한다면 평일 미사 가서 영하는 성체에 눈물이 펑펑 날 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영화는 성체구나. 사형수들이 마지막 성체 영하듯이 눈물 흘릴 거예요. 성경을 읽어도 내가 마지막 내 눈으로 통독하는 성경 구절이구나. 어디 분심 잡념이 듭니까? 성경을 쓸 때도 내가 오늘 마지막 내 손으로 쓰는 하느님 말씀 필사구나. 성인 되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어떤 분은 되고 싶다, 또 어떤 분은 너무 어렵고 무섭다고 해요. 천국 갈 만큼만 살면 다 성인이라고 그랬잖아요? 무슨 특별히 고행하라는 게 아니에요. 성인 성녀들이 어떻게 살았느냐? 간단해요. 지금 이야기해 드렸죠.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산 분들이 바로 성인 성녀, 천국에 가신 분들이에요. 하루하루가 모여지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 되겠죠. 저녁에는 항상 감사 기도로 끝내요. ‘주님, 많이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오늘 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주님 허락하시면 내일 아침 햇빛을 보게 해주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종말 신앙이 사라지면 그리스도교가 아니죠. 매일매일을 마지막처럼 사는 삶에서 삶의 활력과 생기가 생깁니다. 오늘 보면 주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오신다고 그랬잖아요. ‘주님’ 대신에 ‘죽음’이라고 하는 단어로 바꿔봅시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 옵니다.’ 맞아요. 아침에 차 같이 마시던 사람이 저녁에 중환자실에 누워있잖아요. 지금 우리 한국은 사형 제도가 없어졌지만, 교도소에만 사형수들이 있는 거 아니죠. 우리는 모두 다 사형수들이에요. 사형 일자가 언제 집행이 될지 모를 뿐이지, 먼저 가고 나중에 갈 뿐이에요. 오십 년 후까지 살아남을 사람 한번 손 들어 봐요. 천국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고 그랬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첫 번째 아브라함처럼 순명해야 된다. 두 번째는 영적 재물을 천국 창고에다 쌓아두자. 세 번째로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자. 우리 머릿속에 있는 하늘은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우리 각자 안에 있습니다. 하늘을 갈망하면서 영적 재물을 하늘에 쌓아둘 때, 하늘을 기다리면서 깨어 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임을 믿습니다. 아멘 ♣2022년 연중 제19주일 (8/7)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고맙습니다 ~❤
아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