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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학풍수지리연구소(코리아풍수컨설팅)
 
 
 
카페 게시글
풍수칼럼 조선의 8대 명당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대안 제시
지종학 추천 1 조회 171 25.03.15 00:0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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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3.17 16:41

    첫댓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읽는 영광을 가지게 됩니다. 교수님의 넓으신 헤안과 풍수적 사고에 존경을 표합니다. 풍수를 공부하는 학인으로써 조선팔대명당에 대하여 들어보기도 했고 관심도 있기에 의문점에 대하여 질문드려 봅니다. 우선 대표적인 예로 청풍김씨 김징 묘소에 대하여 질문드려 봅니다.
    1. 현무정이 있는가?
    관찰사 김징 묘소가 좋은 자리라 하시니 질문드립니다. 그 묘소에서 제대로 된 현무정이 있는지요?
    2. 와혈로 봄이 마땅한가?
    교수님께서는 김징 묘소를 와중미유에 해당하는 혈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빈약하긴 하지만 유혈로 짐작케 하는 모양의 용이 길게 나온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와혈로 본다면 당판이 너무 기울어 와혈의 특징인 횡대는 커녕 기운이 멈출만한 어떤 형태의 땅의 작용이 없어 보입니다. 또한 와혈이라 하기엔 沈窩로 보아야 할텐데 그렇게 본다 해도 가까이 붙은 본신용호가 너무 높고 험하게 우뚝 솟아 위압감마져 드는걸로 보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유혈의 형태로 보았고 용호가 너무 위압적인데다가 당판도 기울었고 그에 비해 용이 너무 초라해 혈적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죠. 안산은 뚜렷한 모양도 없이 기울어 좌향을 제대로 정하기조차

  • 25.03.17 16:49

    어럽더군요. 용이 빈냥한데다가 흘러내리는 모양도 이상하구요. 제 추츶이긴 합니다만 이 자리에 묘를 조성할 때 복토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3. 청풍김씨 청풍부원군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김여광의 양자인 김계(繼)의 묘소를 살핀 후 김인백 부인묘를 보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장하기 전의 김극형( 의왕의 초장지를 알 수는 없지만)의 묘소가 큰 작용을 했다고 보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여러 주장이 있지만 오봉산 하의 안동권씨 묘소야말로 제대로 된 와혈의 자리로 볼 수 있고 또한 김극형 묘소가 의왕에 소재했다가( 증손자인 김재로가 세운 신도비문을 참고해 보면) 현 충주시 봉황리로 이장되었으니 적어도 그 자리가 증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었기에 그런 견해를 가집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김징의 묘소는 전혀 자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안동원씨 묘소를 좋게 보며 거기에 더해 김극형의 초장지에 주목하는 견해죠. 교수님의 고견을 구해 봅니다.

  • 작성자 25.03.17 17:55

    @hyunjae 제 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1. 김징 묘는 횡룡으로 되면서 분기점에 작지만 봉우리를 일으켰기에 현무정이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점은 입수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2. 김징 묘를 와혈이라 본 것은 좌우 용호를 포함한 국세까지 포함해서 말한 것이고
    미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유혈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이점은 미시적으로 보는 것과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의 관점 차이기 때문에 귀하의 말도 맞습니다.
    3. 김징 묘 아래 부분은 전순부분인데,천연적인 상태입니다.
    대부분 이 부분에 후손이 묘를 쓰지만 이곳은 비어있는 상태라 온전히 전순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순 아래는 예전에 작은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4. 안동권씨 할머니 묘는 제 글에서 지적했듯이 횔룡의 분기점에 아무런 봉우리가 없습니다.
    봉우리가 없다는 것은 용맥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탯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묘 뒤에는 용미를 길게 달아서 용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지점은 인작일 뿐입니다.
    김극형의 초장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에 답변드릴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 25.03.18 09:33

    @지종학 답변 감사드립니다.
    1. 김징묘는 횡혈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현장에서 보면 우선룡으로 보이지만 횡혈은 아니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2. 와혈로 보기엔 혈장이 위치한 룡이 너무 크다고 보죠. 오히려 유혈의 혈상에 너무 위압적인 용호가 거슬리네요.
    3. 김징묘소는 보토의 흔적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역력하더군요. 세번을 답사했는데 그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죠. 전순 아래의 샘이라고 볼수는 없고 물이 솟는 것은 확인했지요.
    4. 안동권씨묘소를 빼고는 이 가문의 부흥을 말하기 어렵겠죠. 오히려 김징 묘소는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비록 조선8대명당에는 들지 못할지라도 안동권씨 묘소는 배울 점이 많은 와혈의 특성을 가진 좋은 자리로 봅니다.
    5. 제가 김극형의 초장지를 언급한 것은 청풍김씨들의 발음이 치자 항렬까지 내려갔는데 그 발음의 원천을 김징 묘소로 볼 수 없었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김극형 묘소는 고손들에 의해 봉황리로 이장되었기에 적어도 초장지에서 발음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지기 때문이죠.

  • 25.03.20 06:19

    공부 잘 했습니다 . 건강하십시요.

  • 작성자 25.03.20 10:14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 25.03.21 16:05

    제 견해로는 8대명당 선정도 문제가 있지만 대안에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광산김씨 김반의 후손들이 번성하긴 했는데 그 두 가문이 김익희와 김익겸의 후손인 것은 분명한 바
    1. 김익희의 후손에서 두명의 상신이 나오는데 김상복은 김반의 5대손인데다가 김희는 6대손까지 멀어진 후의 일이지요. 즉 계대가 너무 벌어진 셈이죠. 바꿔 말하면 김상복이나 김희의 영달에는 김반 보다는 김진옥(김상복의 조부,) 김희의 묘소는 김진망(증조부)의 묘소가 작용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2, 김익겸이 약관에 강화도에서 폭사한 후 부친인 김반이 체백을 수습해 전민동의 묘를쓴 후 어린 두아들 만기와 만중이 장성해서 그 영향을 받은 후 대제학에 오르고 손자인 진규나 증손자인 양택이 연거퍼 대제학에 오르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전민동의 김반묘역을 보면 상하장인 김익겸과 김반의 묘소가 둘자 혈적하다고 볼 수 없겠죠. 혈이 그렇게 상하로 바짝 붙어서 만들어지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즉 둘 중에 김익겸 묘소를 졍혈로 보면 될것입니다. 김반묘소는 겨우 여기나 취할 정도이니 큰 자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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