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다 그래
이 남 순
고교 친구 열댓 명이 매달 날을 정해 두고 모인다. 일정이 여의찮아 근 반년 참석하지 못했다. 그 마지막 모임에서 한 친구가 건강하게 오래도록 만나자고 빨간 등산화를 내게 선물했는데, 아직껏 신어본 뒷말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멀리 광주에 사는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애석한 소식을 들은 터라. 다정한 친구 얼굴이 더 보고 싶다. 오늘 모임은 과수원 친구네서 값이 다락같다는 박달대게를 주문해서 먹기로 했단다.
일찌감치 출발한다. 가다가 농지가 있는 읍사무소에 들러 여성 농민 바우처 카드를 신청하기로 했다. 신청 서류에 주민등록 번호 쓰는 것을 보던 직원이 웃으며 해당이 되지 않는다며 중지시킨다. 일흔까지 신청을 받는다며 나이가 지났단다.
일흔이 넘으면 일도 하지 말고 죽든 살든 시쳇말로 ‘니 맘대로 하세요.’인지 모를 일인가, 하는 생각에 “아니 그만 살란 말인가? 늙은이 대우 나라도 불공평하네.” 하고는 어이없어 웃었다. 여직원도 따라 웃는다. 법이 그렇다니 별수는 없지만, 가당찮은 처우에 못내 서운 씁쓸하게 발길을 돌린다.
모이기로 한 친구 집으로 간다. 주인 없는 집에 먼저 온 친구들이 반겨 맞는다. 주방 싱크대 위에 큼직한 스티로폼 상자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먹을 게 상자인 듯하여 열어보니 살짝 언 게가 한가득 담겼다. “어떻게 저 많은 것을 데우지?” “불을 때서? 가스에… ” 객들 부질없는 논의가 분분하다.
집주인 친구가 사과 배달하고 돌아왔다. 그 친구는 역시 살림꾼이다. 거침없이 커다란 솥에 채반을 턱 놓고 대게를 얼기설기 수북하게 올리더니 큼지막한 스테인리스 양푼을 덮어서 게를 찐다.
때맞춰 중년에 홀로되어 가업을 너끈히 이어오는 싱크대 공장 김 사장이 들어서면서 “와! 오늘 100% 참석이네, 야들아, 우리 누구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여든다섯까지는 오늘처럼 모이자.” 한다. “그래그래 좋지! 그래야지.” 이구동성이다.
그 사이 솥은 진한 게 향을 토해내고 거실에 널찍한 두레상이 두 친구 손에 들려 나와 펴진다. 큰 쟁반에 넉넉하니 때깔 좋은 박달대게가 모락모락 김을 품어내며 앙그러지게 상에 오른다. “와!” 환호 소리에 게는 저마다 앞 접시로 옮겨 앉는다. 장갑 낀 손도 입도 바쁘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 “우리 오늘 게 맛 좀 알아보자.” “그래그래 너무 좋다. 언제 우리 이런 호사 누렸나.” “늘 자식, 남편, 가족 생각에 귀하고 맛난 것들 마음 편히 내 입에 넣기나 했었나,” “하루쯤은 다 내려두고 우리만 생각해 보자는 마음에 비싼 박달대게 곗돈으로 주문했으니 맛있게 먹어보자.” 준비하고 자리 마련한 친구가 말한다. “잘했군, 잘했어!” “그래, 그래 오늘은 우리, 우리 날이다!” 한소리를 낸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았지, 친구들아, 이제는 오늘 같은 날 자주 만들자.” 부잣집 며느리로 층층시하 일 부자로 힘겹던 시집살이 겨우 면한 친구, 눈물 글썽이며 하는 말이다. 청상과부로 외아들 키운 보상을 평생 며느리에게 구하다 가신 시어머니 빈자리가 미운 정이 들어서인지 허전하다는 친구가 한 같은 넋두리를 한다. 너나없이 가슴을 털어놓는다.
“이 비싼 박달게를 이렇게 편하게 먹어보기는 처음이네!” 너나없이 한마디씩 하는 말에서 자식, 가족 생각에 차마 참고 견뎌내며 어미로 며느리로 아내로 산 여자 일생, 그 공명共鳴이 찡하게 가슴을 울린다.
쥔네 솜씨 부린 반찬과 은은한 바다 향 머금은 게 속에 쪽파 송송 썰어 넣은 따끈한 비빔밥이 게딱지에 담겨 상에 오른다. 모임 재미 같은 고소한 참기름 향 밥맛에 일순 시름도 잊은 듯 조용하다. 엄마 생각나게 하는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 뜨끈하게 속을 다독인다.
대 농갓집 며느리 그 친구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우리는 호강한다. 늦게 온 김 사장 고객 부름으로 먼저 자리 뜬다.
설밑이라 다 바쁘다며 차 한잔 마시고 일어서자더니, 분위기에 취해서 자리 떨 생각이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쪽 창에 햇살이 환해질 때까지 두어 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난다.
갔던 길을 돌아오면서 까마득하게 살아온 날을 떠올려 본다. 부모 슬하에선 알뜰살뜰 다정다감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어른이란 이름이 붙여지면서, 산 날들은 어리석고 둔하여 실수투성이로 저 세월을 버르집어 놓으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푸른 날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살아야 살아온 날처럼 회한 없이 민망스럽게 살지 않을지, 아직도 모르기에 자신 없다. 걸어온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지는 않다.
읍사무소 앞을 지난다. 나이가 들었다고…, 누구를 위한 무슨 법제에 배제되는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도 내세울 만한 것 하나 없으니 아쉬운 마음에 하릴없이 걸어온 길이 아닌 다른 길,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그 가보지 않은 길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길을 갔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혹여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그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을지 모르겠다.
슬하를 떠나서는 누구를 위해 산 삶인지, 자신을 묻어두고 남편, 자식, 가족이 언제나 먼저였다. 나만 그럴까. 아내로 어미로 사는 삶이 아니랴, 싶은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시내로 들어서니 차가 밀린다. 점심 맛나게 먹은 그것이 목에 걸려 집 양반 저녁상에 올리려고 마트 회 판매대 앞에 선다. 설밑 세찬 준비하느라 늘어선 카트 줄이 길다. 줄 선 아낙 얼굴, 친구 얼굴, 내 얼굴 다 같게 느껴져 얼비친다.
섣달 길잖은 해가 서산에 걸렸다. 마치 낯선 곳을 다녀온 듯하다. 집을 향하는 마음이 바쁘다. 왠지 모르는 허전한 마음을 지는 해 고운 노을이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등 다독여 주는 듯하다. 오늘은 휴식 같은 날이었다.
친구들아! 나를 내려두고 가족을 위해 사는 삶이 이제 더 익숙해지지 않았니? 그래도 오늘처럼 우리끼리 모여서 참 잘 살았다고, 잘 산다고, 잘 살 것이라고……. 서로서로 다독다독 살아보자. 뭐, 산다는 것 다 그래…….
*.易地則皆然 : 사람의 처지나 경우를 서로 바꾸어 놓으면 그 하는 것이 서로 다 같게 된다는 뜻. 맹자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