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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시조론
한글사랑과 저항정신의 운문적 구현의 세계
이정환(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한글을 목숨 삼은 영원한 조선 사람
외솔은 말씀했다. 첫째 원칙은 정실보다 앞선다. 둘째 한글이 목숨이다. 셋째 꾀배기가 되지 말고 어리배기가 되라. 넷째 말과 글과 얼은 하나다. 다섯째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선 사람이다. 모든 일에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한글을 목숨과 동격으로 보면서 외솔 선생은 한글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꾀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리배기가 되어 꾸준히 자신의 일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무엇보다 말과 글과 얼이 하나라는 것을 뼈에 저리도록 자각한 끝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조선 사람임을 천명하면서 조선 사람으로서의 사명에 일평생 충실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유지인가? 요즈음 사람들도 이 다섯 가지 말씀을 골수 깊이 새길 일이다. 정신의 위의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통틀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의 비극과 저항의지를 노래한 이육사 선생은 시를 써서 문명을 떨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애오라지 민족의 독립을 위한 목적으로 시를 썼다. 어떻게 하면 일제로부터 독립을 할까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광야」, 「절정」,「꽃」,「청포도」와 같은 명편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외솔 선생도 마찬가지다. 혹독한 옥살이를 하면서 그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 시조를 썼다. “얼굴은 잿빛이요, 사지는 거미발이라/고픈 배 움켜 안고, 추워서 벌벌 떤다/게다가 때때로 매 맞으니, 생지옥이 예로다”라고 함흥형무소를 생지옥으로 표현했다. 이육사 선생이 모진 매질을 당한 끝에 1944년 최후를 맞은 곳은 북경 옛 일본헌병대 감옥소라고 한다. 그곳에서 순국한 것이다.
두 분의 유사점이다.
2. 청정한 저항의 얼과 시조 목소리
이제 청정한 저항의 얼과 목소리가 한껏 느껴지는 외솔 선생의 작품을 보자. 편편이 시대를 초월해서 가장 강렬하고 본원적인 저항의 자세와 목소리를 견지하고 있다.
바람 불던 그 어느 날, 우리 임 가고 나니,
산천은 의구하나 쓸쓸하기 그지없다.
동천에 높이 뜬 달도, 임 찾는가 하노라.
임이여, 어디 갔노, 어디메로 갔단 말고?
풀 나무 봄이 오면, 해마다 푸르건만,
어쩌다 우리의 임은, 돌아올 줄 모르나.
임이여, 못 살겠소, 임 그리워 못 살겠소.
임 떠난 그날부터, 겪는 이 설움이라
임이여, 어서 오소서, 기다리다 애타오.
봄맞이 반긴 뜻은, 임 올까 함이러니,
임일랑 오지 않고 봄이 그만 저물어서
꽃 지고 나비 날아가니, 더욱 설워하노라.
봄물이 출렁출렁, 한강에 들어찼다.
돛단배 올 적마다, 내 가슴 두근두근
지는 해 서산에 걸리니, 눈물조차 지누나!
강물이 아름아름, 끝 간 데를 모르겠고,
버들가지 추렁추렁 물속까지 드리웠다.
이내 한 길고 또 길어, 그칠 줄이 없어라.
-「임 생각」전문
이 작품은 제목까지 포함해서 무려 “임”이 열한 번 등장한다. 임 곧 조국에 대한 염원이 그만큼이나 간절하기 때문이다. 천번 만번 목청껏 불러도 그 한을 풀길 없었던 것이다. 임은 바람 불던 그 어느 날 떠났다. 너무나 쓸쓸하였기에 동천에 높이 뜬 달마저도 임을 찾는가 여기고 있다. 풀 나무 봄이 오면 해마다 푸르지만, 돌아올 줄 모르는 임이다. 못 살 일이요, 그리움을 달래 길이 없다. 설움덩이를 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애가 탄다. 봄맞이 반긴 뜻도 새봄과 함께 임이 올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봄이 그만 저물어서 꽃 지고 나비가 날아가 버려서 더욱 서럽다. 한강에 들어찬 봄물이 출렁출렁하여 돛단배 올 적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녀린 희망의 실오라기라도 잡을 듯해서다. 그러나 그것도 그뿐이다. 강물이 아름아름하여 끝 간 데를 모르겠고, 버들가지 추렁추렁 물속까지 드리웠는데 한은 길고 또 길어서 그칠 줄 바이없다. 절절한「임 생각」을 통해 그러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과 정서는 아무래도 시조 형식이 제격임을「임 생각」을 읽으면서 절감한다. 이 작품의 강점은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동천에 높이 뜬 달, 풀 나무 봄, 봄맞이 반긴 뜻, 봄물이 출렁출렁 한강에 들어찼다, 돛단배, 강물이 아름아름, 버들가지 추렁추렁 물속까지 드리웠다” 등의 구절에서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희망의 끈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기만 하면 언젠가 밝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시조에 가슴이 홧홧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에서 3년간 옥고 치를 때 써나간 뜨거운 조국애, 한글 사랑도 같아서 그저 고개 숙여지는 조선 솔빛 외길이다. 봄물은 그때나 이제나 ‘출렁출렁, 한강에 들어찼다’. 물빛이야 더 푸르겠지만 나랏일은 여전히 위중하고 복잡하다. ‘버들가지’ 또한 ‘추렁추렁, 물속까지 드리웠건만’ 서해 쪽이나 동해 쪽이나 마구 들이치는 파도가 높아지니 말이다. 마침 ‘서해 수호의 날’ 인데, 서해 쪽에서 밀려드는 시름은 여러 겹으로 깊어지고 있다. 물은 ‘출렁출렁’ 버들은 ‘추렁추렁’ 맞은 꽃봄. ‘봄이 그만 저물’기 전에 그 임은 돌아오려나. 부디 헌걸차게 다시 서길!
위의 글은「임 생각」을 두고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한 정수자의 논지다. 개성적인해석으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옥고 치를 때 써나간 뜨거운 조국애, 한글 사랑도 같아서 그저 고개 숙여지는 조선 솔빛 외길”로 외솔의 나라와 한글 사랑에 의미 부여를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노 없는 조각배를 한바다에 놓았더니
몹시도 사나웁게 바람 물결 부딪친다.
두어라 물결치는 대로 가본들 어떠리.
-「감우」전문
「감우」에서는 시인의 외로운 초상이 어른거린다. 즉 “노 없는 조각배”다. 조각배를 한바다에 놓았더니 몹시도 사나웁게 바람 물결이 몰려와 부딪치기를 거듭하고 있다. 위태로운 고초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에도 시의 화자는 “두어라 물결치는 대로 가본들 어떠리”라고 순리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감우」를 두고 유성호는 “운명에 역행하지 않고 그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겠다는 견고한 의지를 품고 있다. 민족의 난경 속에서 새로운 감우를 노래한 외솔시조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라고 보았다. 적확한 해석이다.
방어진 바닷가에 바둑같이 깔린 돌이
모 하나 볼 수 없어 동글동글 맨질맨질
묻노라 동해파도여 몇 만 년이나 갈아 왔노.
우루루 밀려와서 철썩 부딪쳐 땅을 핥고
솨! 하고 물러가서 또 다시 밀어오니
아마도 저 물결 가운데 큰 뜻이 계시나봐.
-「방어음풍」중에서
「방어음풍」은 외솔시조 가운데 보기 드물게 섬세한 필치를 보인다. “방어진 바닷가에 바둑같이 깔린 돌이/모 하나 볼 수 없어 동글동글 맨질맨질”이라는 대목은 “방어진”이라는 구체적인 장소 설정으로 시작하여 돌들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면서 저토록 “동글동글 맨질맨질‘한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동해파도에게 대체 “몇 만 년이나 갈아 왔”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루루 밀려와서 철썩 부딪쳐 땅을 핥고/솨! 하고 물러가서 또 다시 밀어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 물결 가운데 큰 뜻이 계”심을 불현듯 자각한다. 바다 물결을 통해서 “큰 뜻”을 떠올린 일은 예사로이 지나칠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외솔정신의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조의 시인이라는 면모가 구체적으로 체현된 현장이다.
현암산 동록에 장군석이 서잇으니
촌민이 세전하되 을지문덕 묻엄이라
잃엇던 우리 님 자최 인제 예서 찾았네.
세월이 얼마관대 형적조차 아조 없다
거룩하 장군 묻엄 어이 이리 황락한고
어즈버 조선에 일이니 예사인가 하노라.
묻노니 돌사람아 고금사를 네 알리라
두어말 일러내어 이내 가슴 틔어주소
여전히 대답 없으니 더욱 답답하여다.
만고여일 현암산아 만고여일 잘 잇거라.
거룩한 님의 공덕 우리 어이 잊을소냐.
뒷날에 다시 오아서 기념비를 세우리라.
-「을지문덕묘」전문
을지문덕 묘는 평안남도 강동군 승호리에 있다고 한다.「을지문덕묘」에서 외솔은 “만고여일 현암산아 만고여일 잘 잇거라”라고 노래하면서 “거룩한 님의 공덕 우리 어이 잊을소냐”라는 마음으로 “뒷날에 다시 오아서 기념비를 세우리라”라고 마음먹는다. 유성호는 “젊은 외솔이 민족정신에 눈뜨는 상징적인 성소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즉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산 경험의 근원이 된 셈이다.
외솔 선생은 민족의식의 형상적 반영으로서 시조를 창작했다. 이 점을 두고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민족과 한글과 시조의 트라이앵글”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적절한 해석이다. 외솔 선생의 시조는 실로 엄혹한 역사와 그 궤를 함께했다. 그래서 유성호는 또한 “나라 사랑과 근원 지향의 운문적 절조”의 세계로 보고, 일제 강점기 저항문학이 시조라는 양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실물적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전통적 어법이 많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지금 읽어도 실감실정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이채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반룡산 좋다 하여, 유산차로 예 왔느냐?
성천강 맑다 하여, 뱃놀이로 예 왔느냐?
아니라, 광풍이 하 세니, 지향 없이 왔노라.
벽돌담에 둘러서, 열 길이나 높아 있고,
겹겹이 닫힌 문에, 낮밤으로 지켜 있다.
지상이 척척 곧 천리라 저승인가 하노라.
-「함흥형무소」전문
「함흥 형무소」를 보라. 선생의 절조가 오롯이 드러나 있지 않은가? “반룡산 좋다 하여, 유산차로 예 왔느냐?”라고 묻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장강 성천강이 맑다 하여 뱃놀이로 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대의 광풍이 너무나도 드세어서 그 어떤 지향도 없이 끌려온 것일 뿐이다. 그렇게 외솔 선생은 시대의 죄수가 되어 열 길이나 높은 벽돌담에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겹겹이 닫힌 문을 향해 지상이 척척인데 천리처럼 느껴져 저승 같기만 하다고 읊조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족운동의 결과로 빚어진 투옥 과정과 그에 따르는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의 옥중시조를 가능케 해준 원질이었다고 평가한 유성호의 시각은 주목할 만하다.
또 한 편의 옥중시조를 보자.
아랫목은 식당 되고, 윗목은 뒷간이라
물통을 책상하여, 책으로 벗 삼으니
봄바람 가을비 소리, 창밖으로 지나다.
앉으니 해가 지고, 누우니 밤이 샌다
보느니 옛글이요, 듣느니 기적이라
궁금타, 세계사 빛이 어드메로 도는고?
벽력같은 기상 호령, 놀라서 일어나니,
네 벽만 둘러 있고, 말동무 하나 없다
외로운 독방 고생은, 새벽마다 새롭네.
쓸쓸한 감방 속에, 홀로 앉았으니,
창밖에 까치 소리 아침볕에 분명하다
오늘이 며칠 날인고, 기쁜 소식 오려나?
-「나날의 살이」전문
봄바람 가을비 소리가 창밖으로 지나는 것을 들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을까. 그 심경이 충분히 헤아려진다. 앉으니 해가 지고 누우니 밤이 새고 있고, 보느니 옛글이요 듣느니 기적이라면서 궁금타 세계사 빛이 어디로 드는지 생각한다. 영어의 몸이면서도 세계사의 빛을 떠올리고 있는 점이 놀랍다. 선생의 기개와 스케일을 엿본다. 이어서 벽력같은 기상 호령에 놀라서 일어나니 네 벽만 들러 있고 말동무 하나 없어서 외로운 독방 고생이 새벽마다 새로운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쓸쓸한 감방 속에 홀로 앉았으니 창밖에 까치 소리 아침볕에 분명해서 오늘이 며칠인가 하면서 혹여 기쁜 소식이 오지 않을까 못내 고대한다. 수인이면서도 꿋꿋이 자존을 지키며, 나라 걱정과 세계사의 흐름을 예의주시 중이다. 대인의 풍모
다.
기다린 나머지에, 큰아들 편지 왔다.
종이에 넘친 말뜻, 위안과 소망이라.
그렇다, 이 몸 튼튼함이 최후 승리 된다고.
뜻밖에 차입 왔다, 셋째아들 이름일세.
면회는 못하니까, 왔단 소식 전함이다.
아이야 무엇 하러 또 왔나, 아비 위해 힘쓴다
-「통신」전문
「통신」은 절절한 가족애를 읊고 있다. 첫째 수 큰아들의 편지에서는 “종이에 넘친 말뜻, 위안과 소망”임을 절감하고 “그렇다, 이 몸 튼튼함이 최후 승리 된다고.” 하면서 몹시 느꺼워하는 마음을 리듬감 있게 노래하고 있고, 둘째 수에서는 셋째 아들의 차입을 통해 면회는 할 수 없지만 또 다시 찾아온 그 정성에 감격한다. 부성애가 남다르다. 유성호는 옥중시조를 두고 다가올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견고한 수납, 민족의식의 발견과 깨침, 옥중에서 부단한 정체성 확인 같은 주제로 집중되어 엄혹한 역사와 궤를 함께한 외솔 선생의 생애가 작품마다 실감 있게 녹아 있다고 보았다.
어두운 새벽 일어 창밖을 내다보니
새도록 오는 눈이 천지에 가득 찼다.
물통에 얼음을 깨어 수건 싸서 낯 씻다.
-「사철」중에서
봄여름 가을겨울을 여덟 수로 노래하고 있는데 “겨울” 편이다. 어두운 새벽녘에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새도록 오는 눈이 천지에 가득 찼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물통에 얼음을 깨어 수건 싸서 낯”을 씻는다. 종장의 움직임은 단순한 세수가 아니다. 물통의 얼음을 깨어 수건에 싸서 낯을 씻는 일은 의지를 다잡고 다지는 의연한 모습이다. 정신의 위의를 세우고자 하는 절조의 발현이다. 단순한 진술이 아닌 것이다.
1945년 8월 17일 생지옥과도 같은 함흥형무소를 나선 외솔 선생은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고 나서「해방」이라는 시조 한 수를 썼다.
백두산 높은 봉에, 서운이 에두르고,
삼천리 골골마다, 생명 봄 돌아왔다.
삼천만 합심, 협력하여, 무궁나라 터 닦세.
-「해방」전문
「해방」은 광복의 기쁨을 단시조로 적고 있다. 먼저 민족의 명산 “백두산 높은 봉에, 서운이 에두르”는 것을 떠올리면서 “삼천리 골골마다, 생명 봄 돌아왔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찬탄한다. 무궁나라 터 닦는 일을 합심 협력으로 시작하자고 권유한다. 1945년 그 이후 우리나라가 놀라울 만큼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난제가 산적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진실로 합심, 협력이 최우선임을「해방」을 통해서 깨닫는다. 당리당략을 떠나 우리 사회 전반에 외솔정신이 널리 구현되었으면 한다.
외솔 선생은 한힌샘 주시경 선생을 만남으로써 일평생 한글연구와 보급에 몸 바치게 되었다. 추모시조「한흰샘 스승님을 생각함」은 모두 12수 연작시조다. 그 중에 열째 수를 보겠다.
믿은 님이 가셨으니 믿던 마음 아득해라
아득한 가운데도 한 줄기 빛이 난다
님 예던 바른 길 있으니 아니 예고 어이리.
-「한흰샘 스승님을 생각함」중에서
스승의 가르침이 알뜰살뜰하셨을 것이다. 그러한 “믿은 님이 가셨으니 믿던 마음 아득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아득한 가운데도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을 감지한다. 님 예던 바른 길 있으니 아니 옐 수 없음을 절감한 것이다. 한글 강습, 한글계몽운동 활동 중에 스승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유지를 받들겠다는 다짐을 시조로 녹여내고 있다. “가다”라는 뜻을 지닌 “예다”라는 시어를 쓴 점이 눈길을 끌고, 아득한 상황 속에서도 번갯불 같은 한 줄기 빛을 직시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시금 자신의 소명을 깊이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 글에서 언급한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문장부호 반점을 구절마다 여러 차례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시조의 특장인 구의 개념에 대한 인식의 결과일 수도 있고, 호흡의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외솔 선생의 기품과 절조가 은연중 스타카토처럼 표기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나 울림을 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단조로운 선율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방안으로 반점을 적극 활용했을 법하다. 외솔 선생은 이를 통해 구의 역할, 구의 중요성을 은연중 강조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내 고향은 병영이다 경상도 좌병영이
날 길러 준 이 고장이 언제나 나의 그림
그림을 한 아름 안고 또다시 들렀세라.
십칠 세 홍안소년 책보 끼고 떠났더니
칠십 세 흰머리로 못 잊어 다시 왔네.
길거리 닫는 아이야 너는 누구 소자인가.
저 집이 초등학교 옛날에 배움털세.
서당을 피하고서 옮아들은 일신학교
양숫자 처음 배우던 일 아직도 선하구나.
-「고향 생각」전문
「고향 생각」은 누구나 가지는 고향 사랑,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조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이 있다. 이채로운 가락의 펼침이다. 첫수 초장이 완성형의 문장이 아닌, “고향은 병영이다 경상도 좌병영이”라고 놓여서 긴장감을 주다가 그 다음 중장으로 급박하게 이어지면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날 길러 준 이 고장이 언제나 나의 그림”이라는 문장이 뒤따라 나오면서 미묘한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장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림을 한 아름 안고 또다시 들렀”기 때문이다. “십칠 세 홍안소년”이 책보를 끼고 떠난 뒤 “칠십 세 흰머리로 못 잊어 다시 왔”으니 굉장한 격세지감이다. 그래서 “길거리 닫는 아이”가 누구일까 심히 궁금한 것이다. 옛날 배움터, 일신학교를 바라보면서 “양숫자 처음 배우던 일”을 선히 기억한다. 누구에게나 귀소본능이 있다.「고향 생각」은 흰머리로부터 다시금 홍안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편에 여실하게 녹아 있는 시편이다.
강산이 아름답고 풍월도 빛났는데
말씨가 유창하고 글자가 훌륭하다
그 중에 시인이 있어 배달마음 읊더라.
여보게 젊은이들 남의 해만 좋다말고
우리 집 곳집속의 묵은 보배 끄어내지
이 겨레 마음의 고향 여기런가 하노라.
저녁에 돌아와서 편안히 한번 읊고
아침에 일어나자 또 다시 외어본다
고인을 모신 양하여 마음깊이 느꼈네.
-「병풍에 쓰인 외솔시조」전문
「병풍에 쓰인 외솔시조」는 “강산이 아름답고 풍월도 빛났는데/말씨가 유창하고 글자가 훌륭”한데다 “그 중에 시인이 있어 배달마음 읊더라.”라고 한 뒤 “여보게 젊은이들 남의 해만 좋다말고/우리 집 곳집속의 묵은 보배 끄어내지/이 겨레 마음의 고향”이 여기임을 확신한 것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저녁에 돌아와서 편안히 한번 읊고/아침에 일어나자 또 다시 외어본다”라면서 “고인을 모신 양하여 마음깊이 느꼈”음을 고백한다. 나라 사랑, 한글 사랑, 시조 사랑이 이보다 더할 수가 있으랴? 숨겨진 보배인 시조를 일반인들은 너무나 모르고 있다. 아예 관심이 없다. 시조교육은 국가정책으로 삼을 만한 일이건만 교육당국이 무관심하다. 다만 시조를 창작하는 시조시인들만 죽자 사자 쓰고 있다. 시조 인구가 적잖지만 파급효과는 미미하다. 초·중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예전보다 시조 작품 수록이 현저히 줄어들어버렸다. 몇몇 시조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반에 외솔정신의 확산으로 국민 전체가 시조문학을 애지중지할 그날을 앞당기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일 때다. 간절한 마음의 총합인「병풍에 쓰인 외솔시조」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외솔정신은 현재진행형이다.
3. 영원히 사위지 않을 고난 속의 한 줄기 빛
옥중시조가 창작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외솔 선생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서 지금도 여전히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요즘 시조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이들은 외솔 선생의 한글사랑과 “고난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바라본 그 정신을 본받아야 마땅하다. 그 빛은 영원히 사위지 않을 것이다.
창작 환경을 어찌 일제 강점기에 비할 수 있으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한글이 제자리를 잡았다. 풍요로운 한글의 바다에 뛰어들어서 우리의 시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얼마나 천착에 힘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물통에 얼음을 깨어 수건 싸서 낯 씻”는 일은 일제강점기 옥중의 상황만은 아니다. 그 정신을 받들어 우리 시대를 시조정신으로 견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일어나서 “얼음 세수”를 하며 골방에서 좌정하고 창작에 전념할 일이다.
이 글에서 “한글 사랑과 저항정신의 운문적 구현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외솔 시조세계를 살폈다. 새삼 느끼는 일은 외솔정신, 외솔시조를 거울삼아 정신의 위의를 시조로 세우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라는 자각이다. 시조를 사랑하는 이라면 외솔정신을 통해 창작의지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다른 조국애와 한글사랑으로 저항정신의 운문적 구현을 이룬 외솔시조를 본보기 삼아 시대정신을 천착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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