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예이 거리
글 德田 이응철(隨筆家)
뜨거운 후라이 팬을 생각한다.
8월 한 달, 대지는 과장하면 커다란 후라이팬 위와 같고 우리는 그 위에서 인고하며 더위를 이겨낸 셈이다.
가을의 대명사 구월이 시작된지 닷새째가 된다. 아직도 녹녹히 폭염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느 작가가 써올린 글
첫머리 읽고 갑자기 헤어지는 아쉬움에 젖기도 했지만, 아뿔싸! 헤어지는 주인공은 여름내내 괴롭혔던 폭염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기도 했다.
오늘도 문우들 만나고 돌아오니 가을날이다. 주방에서 아내가 죽 펴놓고 혼자 점심을 먹고 있다. 어제 샘밭장에서 덤까지 얹어 준 가지를 쪄 놓은 게 아닌가! 반찬 양념 직전 수순이었다. 가지 요리가 우리나라 여름 채소요리 중에 가장 싫어하는 요리라는 쇼킹한 정보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창밖은 꾸물대는 날씨가 제법 서늘한 갈바람을 몰고 와 한층 기분이 좋아졌다.
양푼에 쪄놓은 것은 무엇인가? 얼핏보니 고구마 같기도 하나 고구마는 아니다. 탄력이 없이 쭈글쭈글하다. 통으로 찐 가지가 아닌가! 예전에 엄니는 밥할 때 호박잎처럼 밥 위에 놓고 쪄서 양념을 하셨다. 물론 아내도 가지나물 무침을 할 모양이다.
다가서서 한 개를 닁큼 들었다. 갑자기 찐 고구마 먹 듯 한입을 베어 물었다. 물컹했다. 평생 처음 찐 가지를 양념없이 먹어본 것이다.
큰 부담이 없었다. 다시 한 입 먹었다. 달착지근했다. 껍질이 좀 질기나 속은 매우 말랑말랑했다. 전혀 씹는데 부담이 없었다.
유년기 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생生으로 가지를 먹은 적은 있는데, 언젠가부터 솔라닌이란 독毒이 있어 절대 날로 먹는 게 아니라고 누누이 설명하던 요리사의 준엄한 얼굴이 떠오른다. 금기-. 다시 한 입을 베어 먹는다. 아무 저항감이 없다. 아름다운 보랏빛은 쪄서 사라졌지만 간이 제법 맞다. 부드럽다. 껍질 말고 물컹하여 씹을 것조차 허락하지 않지만, 색다른 섭취 방법이란 자긍심에 신비롭기까지 했다.
요즘 장場에 가면 자주 사온다. 가지의 효능은 대단하다, 저렴하다. 언젠가 양구에서 관사 땅에 가지 다섯 폭을 심었는데 어찌나 계속 달리는지 그래서 귀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가지는 13세기 신라 때 부터 재배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여름채소 오이,가지,호박,감자는 모두 성질이 차다. 여름 한 철 맛있게 볶아 각종 양념에 무쳐 여름 삼복을 이겨낸다. 가지의 경우 혈압을 내려준다. 혈액 속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내려주고, 뇌졸중 위험을 감소시킨다. 황산화 물질인 안토시안이 검정쌀보다 두배나 높다고 한다. 이런 반찬은 거의 양념에 의하지만 오늘 나의 경우 군고구마 먹듯 그냥 하나씩 베어물어도 역하지 않았다.
달착지근해 자꾸 손이 간다. 달려온 아내가 희한한 표정으로 통가지 찐 것을 군고구마처럼 먹고 있는 내 표정을 계속 체크한다.
왜 이상하게 보는 걸까? 으례이 양념에 잘 묻혀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빗나간 것이리라.
지난번 건강검진에 기름기에 익힌 음식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간기능을 해소해 주며 특히 골다공증 예방에 그만이란다.
채소 가지(茄子)ㅡ.텃밭에 키우는 많은 작물 중 가지만큼 키우기 쉬우면서도 영양가 많은 채소도 없다고 한 영양사 말이 떠오른다. 물컹한 식감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채소라고 했지만, 오늘 나는 좋다. 맨입에 다 먹었다. 맵지도 않고 짜거나 쓰지도 않다. 간도 맞다.
갑자기 마치 새로운 요리를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업된다. 유레카-----하고 대낮에 나도 모르게 벌컥 소리를 질렀다. 아내도 다 비운 접시를 보며 짜고 맵고 달게 한 것보다 좋다고 영양학적으로 나를 동조하고 웃는다.
구월 초닷새에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양념없이 베어먹는 여름채소를 처음 실천에 옮긴 그는 누구인가! 다음 주에 장에 가면 짙은 보라색 가지를 구매하리라. 책 한 페이지를 넘기며 얌얌한 입을 달래기위해 용예이 거리가 생긴 셈이다. 무엇보다 섭취방법이 개선된 느낌이라 더욱 좋다. 물론 세대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영양을 고려한 식단을 고려해야 한다.
아내는 오늘도 나의 애들 같은 발상이라고 폄하 하지만, 유레카를 부를 수 있을 만큼 상상력과 창의력의 맛을 동원했다고 자부한다. 취하는 방법을 달리한 날, 기름에 익히지 않은 가지들이 노폐물을 배출하며 위胃에서 편안히 박수를 보내고 있으리라.(끝)
*용예이 거리ㅡ예전 엄니가 장에사서 애들 심술을 달래기 위한 간식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