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 너희도 처음부타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리라.(요한복음 15:26~27 한글킹제임스성경)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며 위로자이신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위로를 베푸시는 상담자입니다.(이사야 9:6) 그러므로 성령은 보혜사가 아니라 위로자입니다. 또 다른 위로자는 어떠한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신천지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동방번개단 양향빈)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요한복음 16:7~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서 나타날 것이라.(골로새서 3:1~4)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탈교회와 배교에 뒤틀려 있는 라오디케아시대의 기독교계를보면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성령의 인격적인 임재, 이것은 항상 진리를 시험하는 척도이며, 교회사에서 에베소교회처럼 첫사랑을 잃음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카폴릭 공인이 이뤄졌으며 라오도케아교회에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음으로 WCC와 WEA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라는 현실입니다. 만일 다른 기준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기준만으로 그리스도인의 특징들을 논해야 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영이 유일한 기준이며 그 근거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베드로후서 1:21) ‘세상이 그를 보지도 못하며 또한 알지 못하기 대문이라.(요한복음 14:17)’에서처럼 성령의 임재는 세상과 기독교가 하나가 됨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만일 성령의 임재가 세상과 기독교가 정치적인 합작이나 문화적인 기독교나 자선사업적인 것이라면 세상은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기독교를 대체할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라.(로마서 5:5)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았을 때 몽유병환자처럼 아무런 의식없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유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의식이 없이 비정상적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단 한번도 맛보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과연 기도할 때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입니까? 당신은 성경을 볼 때 아무런 감화가 없는 것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6:19)’입니다. 소위 유신진화론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성경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영적인 복 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 희락을 누리는 것 역시 차후에 뒤따릅니다. 로마서 5장은 이미 로마서3장에 하나님의 의가 있으니까 5:5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만일 결혼은 했는데 혼인신고만 하고 별거를 한다면 어떻게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차라리 사실혼을 결혼이라고 말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죄에 대한 깨달음에서 구원의 복음 가운데 단지 구원파처럼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만 받아들였다면 정작 이 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위해서 온 진링의 영인 성령을 주의하지 않거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구원만 받으면 되지.’하면서 하늘나라 티켓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안주해버린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실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매우 성경적인 분별위에 진단하는 것입니다. 무천년주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적인 해석은 모든 것을 내세의 구원에만 맞춰져 있으므로 실제적인 믿음의 삶에서 구원만 받으면 되지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실제적인 삶을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주재적 구원론인 행위구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옳게 분별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익숙한 것에 머무르고 나에게 맞다고 착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았을 때 다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복음을 들었다면 거기에서 모든게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로마서 8:16)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지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성령의 증거함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결코 감정이나 경험에 있지 않고 오직 복음의 말씀 안에 터잡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23) 신앙감정이란 믿음과 감정을 뒤섞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 있다면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내적 증거들을 기록된 말씀으로 점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사주의자들이 그토록 교회 안에서는 열정적인데 교회 문밖만 나서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또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분께서 따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요한복음 14:16)
우리는 성령에 대한 엄중한 진리를 대면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에게 영원히 거하신도고 말씀합니다. 즉 성령이 들어갔다 나갔다가 아닌 성령의 내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승천의 결과로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누가복음 2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