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2장22-23절)
누가 거짓말쟁이냐 하고 제목을 붙이려니 너무 도전적이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쟁이 곧 적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 안에 기름부음으로 계신 분이 우리 구주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들이 재림 예수에 대하여는 알려고 하는데
생명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시는(coming) 그리스도는 잘 모릅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죄 사함을 받고 우리와 한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잘 몰라요.
그건 적그리스도에게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듣긴 들었음에도 내주하심이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은 지식이 아니고 실제(fact)입니다.
그래서 계시가 없는 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와 재림예수만 주장합니다.
유대 종교는 지금도 메시아가 오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유대 종교와 같이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일단 하늘에 앉혀 놓으면 자기들의 속이 편하겠지요.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이 최대한으로 멀어야 좋습니다.
인간의 죄의 본성은 최대한 하나님을 멀리 두고 싶어 해요.
원시적인 종교관은 가지고 태어났으니 하나님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하늘에 계신다고만 우겨대는 겁니다.
하나님을 하늘에만 앉혀놓고 자기 속에 오신 그 아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며 사탄의 회당입니다(계2:9)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지요.
사람들이 교회만 나오면 다 같은 동료이며 친구인줄 알아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번 들어보세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이름 안에 있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면 할수록 신(?)이 났는데 성령이
임한 이후로는 자기 자랑을 하면 할수록 그 분이 책망하십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세속적인 이야기라든가 시시한 잡동사니를
늘어놓으면 성령이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입이 뻣뻣해 집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입심 사납게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 속을 조사(fact check)해 보아야 합니다. 안을 들여다봐야 해요.
입술의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농담 한 마디 잘 못해도 성령이 싫어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휘발성이 강해 잘 못된 생각이나 말로 인해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떠나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빛의 자녀냐 어둠의 자녀냐? 분별의 기준입니다.
사람을 볼 때에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니라.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니라’(요8:44) 하셨는데 거짓말을 하는
아비를 둔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거짓의 아비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대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을 분별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그들 중에 곡식이 희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잘 보면서,
우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아주 세밀하게 보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교회 심판이기에 교회 안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심판할 가치가 없어요. 이미 끝났으니 다시 볼 가치가 없어요.
근데 이 세상을 보아 심각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보고 매우 심각하다고 여깁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라는 이름 안에서 존재한다고 사도요한은 미리 경고합니다(요2:19)
어떻게 저토록 거짓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는가? 진리를 모르니 그렇겠지요.
거짓말이란 윤리와 도덕적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면 양심이 벌써 판단해서 고발을 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진리를 모르면 거짓이 뭔지 몰라요.
우리 육체 안에(in the flesh) 오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요일4:2)
거짓말쟁이가 누구냐? 바로 우리 안에 임재하신 아버지와 아들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래서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는 주님의 기도를 부정합니다(요17장)
이를 부정하는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본질상 아버지와 하나 되기 싫어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에 넘어가는 겁니다. 이전에 매우 솔직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 나서 목사님 제 마음은요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아니다‘는 말보다는 누군가 ’기다‘라고 해 주는 말이 더 좋아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 속에 든 형상이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의 기본이 사고팔고인데 돈에 대한 욕심이 없으면 돈을 못 법니다.
일단 사람이 돈을 벌려면 욕심이 충만해야 합니다.
형제고 뭐고 인정사정 살피지 않고 몽땅 팔아 돈을 사야 마침내 부자가 되겠지요.
부자들은 그 욕심으로 인해 돈의 형상을 안고 교회로 들어옵니다.
돈의 형상을 끌고 들어왔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이 형상의 싸움입니다(계13장)
엉뚱한 생각이 자꾸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 속에 다른 형상이 들어가 있는 거죠.
예컨대 드라마를 한 번 보면 그들의 형상이 뇌 속에 들어와 박힙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으뜸으로 섬기고 또 언젠가는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 하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을 무엇이 움직입니까?
그 사람 속에 있는 형상이 움직입니다. 형상이 우리를 끌고 다닙니다.
무엇에 몰두하게 되면 그 일이 형상화 되어서 생각이 머리에서 뱅뱅 돕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루만 헛된 일에 분요하고 나면 그만 기도가 잘 안 돼요.
하루만 그렇게 해도 기도가 안 되는데 몇 년 동안 방탕하고 나면 돌아오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냥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시고 손을 쓰십니다.
그게 바로 징계입니다. 없으면 사생아지요.
하나님은 기어코 그 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자신의 이미지가 좋게 여겨집니다.
이미지가 좋아지기 때문에 더욱 주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이 행동을 유발합니다.
아들을 부정하면 아버지는 자동으로 안 계십니다.
아들을 시인하면 당연히 아버지도 계십니다.
아들이 내 안에 계심을 시인하면 아버지도 함께 계십니다.
아들이 내 안에 계심을 부정하면 아버지도 계시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사생아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씨가 없는 무정란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도 책임질 자가 없습니다. 고아지요.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을 외쳐도 사람들이 징그럽게 안 믿습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안 계시면 다른 일에 더 골몰하게 됩니다. 푹 빠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아버지께 아무리 맡기려 해도 안 됩니다.
먼저 아들을 영접하여 마음속에 모시고 믿고 시인해야 합니다.
아들이 계시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지
아들이 아버지를 먹여 살리는 집안은 잘못된 집안이지요.
중요한 것은 먼저 아들이 계시고,
그 다음 아버지가 계시는 신앙 위에 확고히 서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주님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절대로 아버지는 우리를 손해 보도록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기본구원이 제대로 되어야 그 위에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인생을 절대 낭비시키지 않으십니다.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결코 부끄럼을 당하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구원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부끄럼을 당합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현물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복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들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그 분들 안에 함께 거하고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따라 생명을 얻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당당히 나아갈 수 있다면 맹수들이 둘러싸도 겁낼 일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23절에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옮기는데 그 준비가 얼마나 철저합니까?
만약 대통령이 우리 집에 와서 살면 그냥 와서 살겠어요?
첨단 장치를 설치하고 추운데 보일러도 좋은 것으로 교체하고,
경호동도 짓고 집을 크고 멋지게 고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밥을 먹으면 혼자만 먹겠어요?
여럿이 나눠 먹으려고 할 것 아닙니까?
또 도둑을 지키면 자기 방만 지키겠어요?
그래서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들과 아버지를 모시는 겁니다.
일단 우리 안에 모셔 놓고 보십시다. 그 다음부턴 그 분들이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첫댓글 아멘!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