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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목)~5월2일(금) 21박23일 ■ 포르투갈 완전 일주 포르투갈 9박10일 여유있는 일주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 4박5일 5구간 총 100키로 도보 순례 ■ 스페인 마드리드, 살라망카, 세비야, 코르도바, 톨레도 인솔자 : 버미 010-4030-9136 포르투갈, 스페인, 산티아고 순레길 렌트카 자유 여행 |
■ 인천 - 스페인 인천 - 마드리드(2박) - 살라망카(1박) - 사리아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 (4박5일, 100km) 사리아(2박) - 포르토마린(1일차) - 팔레스 데 레이(2일차, 3박)) - 아르수아(3일차) - 라보꼬아(4일차)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5일차) - 포르투칼 포르투 ■포르투갈 포르투(3박) - 코임브라(1박) - 오비도스 / 파티마(1박) - 까보다로카 - 리스본(2박) - 라고스(1박) - 파로(1박) -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 세비야(2박) - 론다 - 코르도바 - 시에라 / 톨레도(1박) - 마드리드 - 인천 |
■ 여행 기간 출발 : 2025년 4월 10일(목) 귀국 : 2025년 5월 02일(금) 21박 23일 ■ 여행 예산 항공비 포함 780만원 |
■ 포르투갈 완전 일주 요즘 핫하게 떠오른 포르투칼의 이름난 명소를 9일간 방문합니다 포르투 도루 강변에서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겨보세요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라고스와 파로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세요 봄 햇살이 따스할 리스본의 골목길을 하나하나 걸어보시고, 카톨릭 신자라면 꼭 한번은 방문해야할 파티마 성당에서 성모님을 맞이하세요 ■ 산티아고 5구간 100KM 순레길 체험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하기전 5구간 100km를 5일간에 걸쳐 체험합니다 이 구간은 산티아고 순례길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구간입니다 개인적인 체력, 긴 순례시간으로 비록 전 구간을 종주하지는 못하지만, 늘 꿈꿔왔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체험하고자 하시는 분은 더없는 기회가 되실겁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기간중 모든 짐은 차량으로 이동해 드립니다 단지 하루 순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편안하게 걸으시면 됩니다 ■ 스페인 패키지 여행으로 스쳐 지나갔던, 그래서 꼭 한번은 다시 찾고 싶었던 마드리드와 세비야, 론다를 여유롭게 둘러보세요 |
■ 여행안내 |
■ 항공편 : 카타르항공편 이용시 - 항공편은 출발 확정 시기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출국 : 인천 출발 : 4월10일(목) 01:20/ 도하 도착 05:45 - 2시간10분 대기 도하 출발 07:55 / 마드리드 도착 14:25 귀국 : 마드리드 출발 : 5월 1일(목) 출발 16:10 / 도하 도착 23:55 - 2시간45분 대기 도하 출발 5월2일(금) 02:40 / 인천 도착 17:35 ■ 숙소 *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시 숙박하는 5박을 제외하고 전일정 4성급 호텔이나 4성급 아파트형 숙소에서 숙박합니다 1. 4성급 호텔 또는 4성급 호텔 - 2인1실 트윈룸 또는 더블룸 2. 4성급 아파트형 호텔, 4인1실(2룸), 주방설비 3.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중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5박) ■ 식사 1. 호텔형 숙소 숙박시 조식 제공 (사리아 호텔 2박 숙박시 조식은 인근 레스토랑에서 개별 매식합니다) 2. 아파트형 호텔 숙박시 조식은 제공되지 않습니다(주방시설 구비, 개별 취사) 3. 중식, 석식은 개인 매식 또는 취사식 ■ 출발 인원 인솔자 2명 포함 16인 마감 - 9인승 미니밴 차량 2대 ■ 여행 경비 총 금액 : 780만원 (항공료 포함) 인솔자 포함 14인 성원시 출발 확정하며 예약금 200만원을 입금 부탁드립니다 (항공권 구입비 포함) 입금 계좌는 출발 확정시 만들어지는 카톡 단톡방을 통해 공지합니다 잔금은 여행 출발일 7일전 공지된 계좌로 지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여행중 포함 사항 1. 인천-마드리드 왕복 항공권 2. 전일정 9인승 전용차량 2대 3. 전 일정 숙박비 4. 호텔형 숙소 숙박시 조식 제공 (아파트형 숙소 숙박시 조식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 불포함 사항 1. 자유시간중 개인 투어시 시내 교통비, 입장료 2. 현지 생활 경비 : 평균 1일 30유로 / 총 100만원 예상 (식대, 물, 음료, 부식구입등 개인 기본 경비) 3. 아파트형 숙소(주방시설) 숙박시 조식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4. 산티아고 순례길 사리아 2박 숙박시 조식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 여권 만료일은 출발일 기준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합니다 |
■ 특별약관 규정 본 여행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14-4호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의한 표준약관 위약금보다 특별 약관 위약금 규정이 우선시 되니 아래 특별약관 위약금 규정을 반드시 확인하신 후 신청 부탁드립니다. [취소시 위약금 규정] 여행자는 여행 출발 전에 카페에 통지하고 여행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단, 다음 각 호의 구분에의 하여 해당 금액을 위약금으로 배상합니다. 1. 항공권을 구입한 후 전자항공권을 수령한 경우 취소시 : 항공사 위약금 + 대리점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2. 여행출발 50일전~30일전까지 통보 시 : 현지 경비 금액의 20% + 항공사 위약금 + 대리점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3. 여행출발 30일전~20일전까지 통보 시 : 현지 경비 금액의 30% + 항공사 위약금 + 대리점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4. 여행출발 20일전~10일전까지 통보 시 : 현지 경비 금액의 50% + 항공사 위약금 + 대리점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5. 여행출발 10일전~여행 당일 통보 시 : 현지 경비 금액의 80% + 항공사 위약금 + 대리점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6. 공통 : 항공권 구매후 취소시 취소 일자에 상관없이 카페 수수료 3만원을 부과합니다. 7. 단, 취소 일자와 무관하게 대기자가 있어 대체될 경우 항공사 위약금과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 + 카페 수수료 3만원, 칭창열차 기차표 구입액만 공제합니다 ※ 항공사 위약금과 발권/취소 수수료 4만원은 항공권을 카페에 구매 대행을 의뢰하여 구입한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 항공사 위약금은 취소, 환불 요청시 발권한 대행사에 문의후 안내드립니다 ※ 본 여행은 카페지기가 운영하는 "세계로 자유투어" 여행사의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 여행일정표 |
4월 10일(목) 제 1일 인천 - 마드리드 |
■ 인천 - 마드리드 : 카타르항공 4월9일(수) 10시 인천공항 제1청사 3층 출국장 8번 출입구로 들어오셔서 좌측 벤치에서 미팅합니다. 출국 : 인천 출발 : 4월10일(목) 01:20/ 도하 도착 05:45 - 2시간10분 대기 도하 출발 07:55 / 마드리드 도착 14:25 ■ 공항 도착후 숙소 이동 휴식 이후 마드리드 자유시간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침대 식사 : 조식, 중식 - 기내식 / 석식 - 자유매식 |
제 2일 마드리드 |
■ 전일정 자유시간 - 주요 관광지 인솔자 안내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마드리드에서는 주차및 교통 문제로 렌트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10세기경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는 마헤리트라 불렀다. 이 성은 마드리드가 수도로 된 후에는 왕궁이 되었고, 동시에 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1083년 카스티야왕 알폰소 6세가 이를 탈환하였으나 이때는 국왕의 임시숙소에 지나지 않았다. 1561년 펠리프 2세가 당시의 강대한 왕국을 다스릴 중앙정부 청사를 건설하면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톨레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전도 바야돌리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17세기 초에 일시 궁전이 바야돌리드로 옮겨졌던 때를 제외하면, 마드리드는 그 후 일관해서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구(舊)시가는 17∼18세기에 건설되었다. 1808년에는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로 유명한 5월 2일의 시민저항이 있었고,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보복이 있었다. 구시가의 중심은 라푸에르타델솔(태양의 문)이라 부르는 타원형 광장이며, 서쪽으로는 왕궁 및 부속 왕립 무기고와 통하고, 남서쪽으로는 17세기에 야외극장이었던 마요르 광장이 있다. 그 앞쪽의 세바타 광장에서는 아침에 채소와 식료품 시장이 열린다. 태양의 문 북쪽을 동서로 활처럼 휘어 뻗은 호세안토니오가(街)와 동쪽으로 뻗은 알칼라가에는 은행 ·호텔 ·클럽과 고급상점들이 집결하여 중심 상점가를 이룬다. 태양의 문 동쪽은 거의 남북으로 프라도가(街)가 뻗고, 그 동쪽에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가는 다시 레코르테스 ·카스티야 ·헤네랄리시모 등 여러 거리로 이어져 관공서와 고급주택지를 이룬다. 구시가를 둘러싼 신시가는 19세기 후반의 철도 개통을 전후해서 주택지 ·공장 등이 들어서고 교통시설이 갖춰진 지역이다. 마드리드는 정치도시로서 궁전이 있었을 뿐 산업은 미미하였으나, 1936∼1939년의 스페인내란 후 에스파냐 정부가 내전에 의한 파괴의 복구 과정에서, 주변 농촌으로부터 많은 건설노무자를 받아들인 것이 마드리드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공장이 많이 들어섰고, 전기기계 ·항공기 ·오토바이 등의 기계공업과 식품가공 ·제지 ·화학 등의 여러 근대공업이 발달하였다. 정보산업으로서 출판 ·인쇄업종도 바르셀로나로부터 이전해 왔다. 푸에르타 델 솔 (Puerta del sol) 태양의 문'이라는 뜻을가진 성문으로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중세시대 성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마드리드 주요 관광지가 주변에 위치하며 마드리드 관광지의 거점을 이룬다. 주변에 에스파냐의 백화점 체인 엘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를 비롯하여 상점, 음식점, 카페테리아가 많다. 광장에는 말을 탄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있다.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침대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
제 3일 마드리드 - 살리망카 |
■ 조식후 살라망카로 이동 - 약 3시간 살라망카 살라망카는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 살라망카주의 주도이다. 카스티야이레온 자치지역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토르네스강 유역의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살라망카 대학과 관광업이 살라망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한다. 살라망카 구시가지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2년에는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 살라망카에 처음 정착지를 세운 것은 켈트계 부족인 바카이 (Vaccaei)인 또는 베토네스(Vettones)인들이었다. 기원전 220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살라망카를 점령했다.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후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로마제국 시대에 ‘은의 길’로 알려진 로마 도로상에 자리잡은 살라망카는 지역의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세기 경 살라망카에 로마교가 세워졌다. 로마제국의 몰락 이후 알란족이 살라망카 지역을 지배했다. 그 후 비시고트족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이 시기에 살라망카에 주교좌가 설치되었다. 712년에 아랍의 장군인 무사 이븐 누사이르(Mūsá ibn Nuṣayr)에 정복당한 살라망카 지역은 기독교도 왕국과 무슬림 왕국 사이의 격전지가 되었다. 11세기에는 레콩퀴스타(국토수복운동)를 통해 살라망카 지역이 다시 기독교 세력의 품에 들어왔다. 1218년 레온의 알폰소 9세가 살라망카 대학에 왕실 헌장을 수여했다. 살라망카 대학은 1134년에 처음 개교했고, 적어도 1130년부터 공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알폰소 9세의 후원 아래 살라망카 대학은 곧 유럽 최고의 교육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절정은 16세기로 전체 인구 24,000명 가운데 6,500명이 대학생이었다고 전해진다. 살라망카 대학의 번영이 곧 살라망카의 번영을 의미할 정도였다. 특히 살라망카 학파는 중세 법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학은 이 무렵 유럽 각지에서 명망 있는 학자들을 영입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자신의 신대륙 발견에 대해 이곳에서 강의했고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에서 수학했으나 수료하지는 못하고 1501년 귀향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악명높은 정복자(콩키스타도르) 코로나도의 프란시스코 바스케스가 이곳 살라망카에서 태어난다. 17세기에는 카스티야 왕국 전체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살라망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다시 부흥하였고, 바로크양식의 신(新) 살라망카 대성당과 도시의 중앙광장이 지어졌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반도전쟁의 와중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로 살라망카시의 서쪽 지역이 크게 파괴되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살라망카는 실질적인 수도의 기능을 했다. 프랑코는 살라망카의 도시명을 헤네랄리시모(Generalissimo)로 개명했다. 내전이 끝난 후에도 살라망카에는 얼마간의 정부 기구가 남아있었다. 살라망카의 경제는 대학교와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농업과 축산업, 건축업, 제조업 등의 분야도 어느 정도 중요성을 지닌다. 2007년 기준으로 고용인구의 83%가 서비스 분야에 종사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5% 수준이었다. 살라망카 구시가지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2년에는 벨기에의 브뤼허와 함께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 살라망카의 구시가지는 영화 산업의 중요한 촬영지로 이용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492, 낙원의 정복’과 밀로스 포먼 감독의 ‘고야의 유령’, 정치 스릴러 ‘빈티지 포인트’ 등의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침대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
제 4일 살리망카 - 사리아 |
■ 조식후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 출발지인 사리아 이동 - 약 5시간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 100km, 총 5일 순례길 여행중 짐은 차량에 두시고 간식과 물만 들어있는 작은 배낭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아침에 출발하면 차량은 약속된 중식 포인트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걷기가 불편하신 분은 언제든 차량으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위치한 기독교(가톨릭) 순례길이다.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로, 약 800km에 이른다.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순례길의 '순례(巡禮)'는 종교의 발생지 또는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여 참배하는 행위를 이른다. 9세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오늘날의 순례길이 생겨났다.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를 칭하는 스페인식 이름이며, 영어로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불어로는 생 자끄(Saint Jacques)라고 한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했다. 교황의 칙령에 따라 성스러운 해(산티아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간 지은 죄를 모두 속죄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받는다고 한다. 이 순례길은 11∼15세기에 가장 번성하다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쇠퇴했다. 그러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가 출간된 이후 더욱 유명세를 탔다. 또한 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숙소 :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식,석식 - 자유매식 |
제 5일 - 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 사리아 - 포르토마린 (23km, 8시간) |
사리아 - 포르토마린 (23km, 8시간) 많은 마을을 통과 할 것이므로 물과 음식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마을에는 Barbadelo, Peruscallo, Morgade, Ferrerios, A Pena, Mercadoiro 및 Vilcha가 포함됩니다. 이 구간부터는 순례자가 카미노가 시작될 때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을에는 이들을 위한 많은 숙소(알베르그)가 있습니다. 포르토 마린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이며 이 마을은 1,600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상당히 큰 마을입니다. Miño 강 위에 로마 다리가 있습니다. 마을은 1962년, 댐이 건설 된 후 수몰 되었습니다. 수몰된 마을의 유적은 새로운 마을로 하나씩 옮겨 놓았습니다. 수위가 낮은 건기에는 오래된 마을의 유적이 여전히 보입니다. |
숙소 :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중식, 석식 - 자유매식 |
제 6일 - 산티아고 순례길 2일차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21km, 7시간) |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23km, 8시간) Palas de Rei로가는 23km의 도로는 약 8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전반 순례길은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중, 후반부터는 대부분 평평한 지역입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길을 따라 마을을 찾을 수 있으므로 물을 채우고 음식을 얻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Gonzar는 처음으로 들어가는 마을이고, 이름에 "Castro"가 있는 일련의 작은 작은 마을이 따릅니다 : 작은 로마네스크 교회가있는 Castromaior, Castro Lardeiros와 Castro Simone. Palas de Rei 경로를 따라 다음 마을이 있습니다. Hospital de la Cruz, Vantas de Naron, Ligonda, Eirexe, Portos 및 O Chacotes. Palas de Rei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이지만 과거의 그림자 일뿐입니다. 8세기에 요새가 이곳에 있었고 Visigothic 왕 Witiza의 궁전이 있었습니다. |
숙소 :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중식, 석식 - 자유매식 |
제 7일 - 산티아고 순례길 3일차 팔라스 데 레이 - 아르수아 (29.5km, 9시간) |
팔라스 데 레이 - 아르수아 (29.5km, 10시간) 29.5km의 경로는 9시간 내에 완료 할 수 있습니다. 갈리시아의 다른 구간과 마찬가지로, 가는 길에 많은 작은 마을이 있으며산티아고에 접근하면서 이 마을은 순례자가 필요한 것들을 더 많이 충족시킵니다. San Xulian do Camino는 가장 먼저 지나가는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San Julian에 헌정 된 교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팔로 타 (Pallota)로 가는 아스팔트 트랙이 있으며 우회전하여 Outeiro da Ponte로 내려갑니다. 폰테 캄파 나와 마토 카사노바는 간식과 물을 채우는 것 외에는 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더 내려 가면 N-547 도로를 따라가는 Campanilla가 있습니다. 이전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었던 Lobreiro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습니다. Seco 강을 건너 로마 다리를 건너 Furelos로 들어갑니다. Melide는 15 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벽화가있는 San Pedro 교회를 볼 수있는 더 큰 도시입니다. 다음으로 Boente de Baxixo, Castaneda, Ribadiso da Baixo, Ribadiso da Carretera를 지나 Arzua 마을에 도착합니다. |
숙소 :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식, 석식 - 자유매식 |
제 8일 - 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 아르수아 - 라보꼬야 (29.5km, 10시간) |
아르수아 - 라보꼬야 (29.5km, 10시간) 카미노의 마지막 날은 가장 힘든 날이기도합니다. 이 구간의 길이는 30km 일뿐만 아니라 고도도 상당히 변합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O Pedrouzo (Arca de Pino)의 길에서 멈추고 다음날 아침 산티아고로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 이 날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여러 촌락을 통과하게됩니다. 첫 번째 주목할만한 곳은 작은 18 세기 예배당이있는 Santa Irene에있을 것입니다. Arca do Pino와 Amenal을 지난 후, camino는 San Pelayo에 헌정 된 Sabugueira의 교구 교회가있는 Labacolla로 계속됩니다. |
숙소 : 3성급 게스트하우스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식, 석식 - 자유매식 |
제 9일 -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 라보꼬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10km, 3시간) - 포르투(2시간30분) |
라보꼬야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10km, 3시간) - 포르투 Monte del Gozo (Mount of Joy)는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처음으로 전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내리막 길을 조금만 내려 가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세인트 제임스 사도의 유적에 도달합니다. 일부 순례자가 Camino de Finisterre의 바다에 도달하기 위해 3-4 일을 더 걷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순례를 끝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갈리시아 자치지역에 있는 도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 이 성당은 성야곱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9세기 이래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 목적지가 돼 왔다. 1985년 구도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콤포스텔라 성당이 있는 오브라도이로 광장 주변에 시 청사, 수도원, 대학교 등 중세시대 건물들이 많다. ■ 포르투 이동 (3시간) - 호텔 체크인 후 자유 시간 및 휴식 |
숙소 : 4성급 아파트형 호텔 4인1실(2 베드룸), 주방 시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0일 포르투 |
■ 전일정 자유시간 - 주요 관광지 인솔자 안내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포르투에서는 주차및 교통 문제로 렌트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포르투 영어로는 오포르투(Oporto)라고하며 더욱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리스본 북쪽 280km 지점에 위치하며, 현재 수도인 리스본에 버금가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다.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우로 강(Douro river) 하구에 위치하며 오래전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포루투갈이라는 나라명은 이곳 도시에서 유래한 것이며, 수백년의 전통적 문양과 양식을 간직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이 남아있다. 대항해시대를 지나자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옮겨가면서 포르투는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그때문에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고 도시의 모습은 고스란히 남하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매우 오래된 도시로 분류되며 도시 곳곳에는 보존의 가치가 높은 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평가된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면서 최근 다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소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포르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찔한 높이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돔 루이스 다리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히베리아 지구 영화 해리포터에 영감을 준 렐루서점 상벤투역, 리베르다드 광장, 도우로강 |
숙소 : 4성급 아파트형 호텔 4인1실( 2베드룸), 주방 시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취사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1일 포르투 |
■ 전일정 자유시간 -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포르투에서는 주차및 교통 문제로 렌트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
숙소 : 4성급 아파트형 호텔 4인1실( 2베드룸), 주방 시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취사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2일 포르투 - 코임브라 |
■ 조식후 코임브라 이동 - 약 2시간 코임브라 코임브라는 포르투갈 중부에 있는 도시로 코임브라주의 주도이다. 몬데구강이 코임브라 시내를 지난다. 1290년에 세워진, 유럽의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코임브라대학이 있다. 리스본과 포르투 사이,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코임브라는 1255년까지 포르투갈의 수도였다. 로마인들은 몬데구강 옆의 언덕에 있는 이 도시를 에미니오라고 불렀다. 그 후 도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코임브라는 코님브리가 대신 교구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711년에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에 도착했고 도시 이름은 쿨루미리야로 바뀌어 북쪽의 기독교인들과 남쪽의 아랍인들 사이의 중요한 교역 장소가 되었다. 12세기에 코임브라는 이미 도시의 구조를 갖추었다. 도시는 알타 또는 알메디나라고 하는, 귀족과 성직자가 사는 상부 도시와 바이샤라고 하는 상업,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구분되었다. 16세기 중엽부터 도시의 역사는 코임브라대학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었다. 19세기에서야 비로소 도시는 담으로 둘러싸인 성 너머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은 멜루가 시행한 개혁으로 아예 사라졌다. 19세기 전반기는 코임브라에 어려운 시기였다. 프랑스 군대가 침입해왔고 종교 교단이 폐쇄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코임브라는 영광을 되찾았다. 1856년에 전신이 최초로 등장했고 1864년에는 철도가 운행을 개시했고 11년 뒤에는 몬데구강 위에 철도 다리가 놓였다. 1911년 전기트램이 구시가지와 변두리를 이어주었다. 이것은 도시 성장의 서곡일 뿐이었다. 몬테스클라루스, 아헤가사, 쿠메아다, 칼랴베 같은 새로운 지역이 생겼다. 산타크루스가 확장되었고 코임브라대학을 넓히기 위해 알타드코임브라 주거지역이 없어졌다. 코임브라의 경제활동은 대부분 약 2만 명의 학생을 가진 코임브라대학에 의존하고 있다. 이밖에 쇼핑, 테크놀로지, 건강과학산업, 금융 서비스, 로펌 등이 중요한 경제 활동 분야이다. 코임브라에 대형 병원이 2개 있다. 코임브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명한 회사들이 여럿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크리티컬소프트웨어와 시베르비트사, 기계전자엔지니어링 회사인 액티브스페이스테크놀로지, 머신투머신컴퍼니, 제약회사인 블루파마, BASI 등이다. 코임브라 교외에서 임업 외에 원예업, 포도원, 가축 사육 등이 이루어진다. 페드루누네스연구소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시 당국은 코임브라혁신공원을 통해서 혁신을 촉진하고 연구 개발에 매진하는 회사들을 지원한다. 코임브라는 매월 7일과 23일에 신선한 제품을 판매하는 야외 장터를 연다. 코임브라에는 코임브라쇼핑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대형 쇼핑센터가 있다. 코임브라는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도시라 불려왔다. 이곳에 포르투갈에서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코임브라대학이 있다. 이 대학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국제적인 대학으로, 총 학생의 10%가 외국인 학생이고 모두 70개국의 학생들이 재학한다. 코임브라대학은 시내 중심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골목을 통해 언덕길을 올라가면 코임브라대학종탑이 있는 건물에 다다른다. 코임브라대학종탑은 코임브라대학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18세기에 세워졌다.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이 종탑은 마치 등대처럼 우뚝 서 있다. 코임브라대학 안에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다. 마차두드카스트루국립미술관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관 중 하나이다. 이 미술관은 유명한 조각가 마차두 드 카스트루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이 미술관은 1913년에 세워졌고 2012년에 새 건물이 또 지어졌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세계유산에 포함되었다. 이 미술관에는 조각, 회화, 장식 예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마차두드카스트루국립미술관 옆에 코임브라새성당이 있다. 코임브라새성당은 제수이트회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1598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1698년에 문을 열었다. 성당의 전면에 제수이트회의 네 성인 상이 새겨져 있다. 이 성당은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 옆에 코임브라대학과학박물관이 있다. 코임브라대학 북쪽에 산타크루스교회가 있고 그 옆에 코임브라시청이 있다. 그 부근에 망가정원이 있다. 포르투갈어로 자르딩다망가라고 하는 이곳의 건축물은 1528년에 지어졌으며 포르투갈에 있는 초기의 완전한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 코임브라 숙소 체크인 후 자유시간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취사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 |
제 13일 코임브라 - 오비도스(2시간) - 파티마(1시간) |
■ 조식후 오비도스 이동 - 약 2시간 포르투갈의 작은마을 오비도스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 쌓인 오비도스 관광 ■ 중식후 성모발현지 파티마 이동 - 약 1시간 파티마 파티마는 포르투갈 산타렘주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로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전세계 가톨릭 순례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대성당이 건립되어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큰 십자가를 꼭대기에 꽂은 높이 65m의 탑이 있다.성모마리아의 발현으로 봉헌된 파티마 대성당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된 파티마 성지 파티마 대성당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에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파티마의 기적 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빙성을 인정하였고 바티칸의 명으로 성지로 정하였다. 1928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바실리카식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 10월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로사리오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15개의 제단과 1952년 설치된 대형 오르간이 있다. 아일랜드 성체 안치기(聖體安置器)는 아일랜드의 주요 종교작품으로 1949년 기증되었다. 건물 앞 거대한 광장에 성모 마리아 출현 예배당(The Chapel of Apparitions)과 64m 높이의 탑이 있다.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장소가 대리석 기둥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성당 묘소에 파티마의 기적을 목격했던 당시 세 사람의 무덤이 있으며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내용가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되어 있다. 1982년 5월 파티마 기적을 연구하고 되새기기 위한 바오로 6세 목회센터를 세웠고 2007년 세계에서 4번째 큰 성삼위성당을 지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순례 여행지로 특히 성모 발현일인 매년 5월 13일과 10월 13일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 파티마 호텔 치크인 후 자유시간, 휴식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 |
제 14일 파티마 - 까보다로카(2시간) - 리스본(4시간30분) |
■ 유럽의 최서단 땅끝마을 까보다로까 이동(1시간) 까보다 로까리스본 북서쪽 지점에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다. 높이 150m에 달하는 화강암의 절벽 위에는 등대가 있어 항로 표지가 된다.유럽의 최서단인 까보다로까는 멀리서 들어오는 배들을 관찰하기 좋았던 곳으로 포르투칼 해양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끝없는 수평선이 하늘과 맏닿아 있어 푸르름만 보이는 곳, 말 그대로 당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까보다로까에서 해안 절벽에 올라 대서양 관망 ■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이동(4시간30분) 리스본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테주강(타호강)의 삼각 하구 우안(右岸)에 위치한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유럽대륙 대서양 연안 굴지의 양항(良港)이기도 하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동부의 알파마 지구에는 성(聖)조지성(城)이, 서부의 벨렝 지구에는 본래 성채였던 벨렝의 탑, 바스쿠 다 가마를 기념한 고딕양식의 수도원 및 아주다 궁전(현재의 외무성)·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고, 1290년에 창립된 대학이 있다. 시가지는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중앙부는 바이샤라고 부르는 저습지로 거의 전지역이 지진 후에 재건되어 상업·행정기관이 이곳에 집중한다. 동부는 본래 페니키아인·로마인의 거리였던 옛 시가지, 서부는 신 시가지이고 또 최근의 시가지 확장은 북부로 펼쳐 나가고 있다. 독·부두 등 항만시설은 테주강 우안을 따라 30km에 걸치고, 그 북동부에 곡물·냉장창고 및 시멘트·정유·철강·코르크제품 등 공장이 자리한다. 어항은 벨렝 서쪽에, 대서양 각지를 잇는 여객항은 시 중심부에 위치하나, 1966년에 테주강에 가로놓인 현수교(懸垂橋:2.3km)가 완공되어 강의 좌안(左岸)에도 철강·화학·조선 등 대공장이 건설되어 발전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C)는 1994년도의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했다. ■ 리스본 도착후 호텔 체크인 자유시간 코메르시우 광장 바다같은 태주 강위에 아름답게 떠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 석양 무렵의 코메르시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5일 리스본 |
■ 전일정 자유시간 - 주요 관광지 인솔자 안내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리스본에서는 주차및 교통 문제로 렌트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화려한 건물 제로니모스 수도원(외관) 조망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마누엘 1세 때 짓기 시작한 건축물로 세계에서 마누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 일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과거 포르투갈에 강한 지진이 있었는데 튼튼한 내진설계로 수도원은 건물에 약간의 타격만 있었다고 한다 테주강의 공주라 불리웠던 벨렘의 탑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타워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리스본 항구에서 등대 역할을 했던 4층의 건물로 타구스 강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목적의 탑이다. 그렇지만 탑의 1층은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여, 지하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에두아르도7세 공원 1912년 영국의 에두아르도(에드워드) 7세의 리스본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리스본 시가지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로시우광장 :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공식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정식 명칭은 '동 페드로 4세 광장' 이지만 로시우 광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6일 리스본 - 라고스 |
■ 포르투갈의 남부 휴양지 라고스 이동 - 약4시간 라고스 라구스는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 지방에 위치한 도시다. 항해사 질 이아네스의 고향으로,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역사적 출발지였다. 한때는 유럽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포르투갈 내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 중 하나로, 피에다드곶 등의 관광 명소와 함께 활기 넘치는 여름 유흥지로도 유명하다. 라구스는 포르투갈 남부의 도시로, 알가르브 지방 벤사프림강 하구와 대서양을 따라 위치해 있다. 4개의 교구(freguesias)로 나뉘어 있으며 그 중 최대교구의 인구가 약 2만 2,000명 정도이다. 도시의 인구는 방문 관광객 및 계절 한정 거주자의 유입으로 여름철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인구 대다수가 해안을 따라 거주하고 있고, 관광 및 서비스 분야에 종사한다. 반면 내륙 지역은 인구가 적은 편으로, 이 중 대부분은 농업과 임업에 종사하고 있다. 라구스는 포르투갈 대항해시대의 역사적인 출발지로서, 항해사인 앙리 왕자의 고향이자 한때는 유럽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알가르브는 물론 포르투갈 내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중 하나로, 다양한 해변, 피에다드곶 등의 관광 명소는 물론 바, 레스토랑, 호텔 등 활기 넘치는 여름 유흥지로도 유명하다. ■ 라고스 호텔 체크인 후 휴식, 자유시간 |
숙소 : 4성급 원룸형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주방시설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7일 리스본 - 파로 |
■ 포르투갈의 남부 휴양지 파로 이동 - 약 1시간 파로 파루는 포르투갈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로 파루주의 주도이다. 알가르브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파루국제공항이 있어 리스본, 포르투에 이어 포르투갈의 제3 관문이다. 자연공원인 석호에 의해 보호받는 항구로 요트들이 드나든다. 바다 가까이에 파룰섬이 있고 바닷가에 쿨라트라해변, 바헤타해변, 파루해변 등이 있다. 항구가 있고 풍부한 어장이 가까이에 있는 파루는 와인, 석유, 수산가공물 등의 중요한 거래 중심이었다. 바크르 벤 야히아가 875년부터 931년까지 파루를 지배하는 왕조를 창설했고 알가르브 지방에 공국을 세우고 요새를 쌓았다. 1217년에 십자군이 재정복 기간 중에 도시를 약탈했다. 그들은 파루를 내륙지역과 분리한 다음 1249년에 포르투갈 왕 아폰수 3세 아래서 파루를 정복했다. 유대인 공동체의 인쇄술 덕분에 포르투갈 최초의 인쇄된 책이 15세기에 파루에서 간행되었다. 파루는 1540년에서야 시의 권리를 받았다. 1577년에 교구청이 실베스에서 파루로 옮겨왔다. 1596년에 영국 에식스의 백작 로버트 데버루가 스페인의 카디스를 공격하기 위해 나섰고 파루는 그의 군대에 의해 약탈당하고 유린당했다. 미제리코르디아교회와 상페드루교회만이 살아남았다. 귀중한 교구 도서관의 장서들은 옥스퍼드로 보내졌다. 1722년과 1755년에 알가르브 지방에 지진이 발생하여 파루가 파괴되었다. 마지막 지진 후에 알가르브라구스왕국의 정부는 1756년에 덜 파괴된 파루로 이전되었다. 1808년에 나폴레옹 군대가 쥐노 장군의 지휘 아래 파루를 장악했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 그들을 몰아냈다. 파루의 구시가지는 항구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 파루시청, 파루성당, 벨마르수궁 등과 시가지로 들어가는 문인 아르쿠다빌라가 있다. 파루성당은 13세기 말에 브라가대주교에 의해 봉헌되었다. 이곳은 16세기 이래 파루교구의 교구청이었다. 1596년 에식스 백작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다. 이 성당은 포르투갈의 국가적 기념물이다. 파루성당 옆에 파루박물관이자 항해자 엔히크왕자 고고학보석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16세기에 성모승천수녀원으로 지어졌다가 19세기에 교단 폐쇄로 수녀원이 문을 닫자 1960년대에 박물관이 되었다. 이 박물관 건물은 1948년에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르네상스양식의 우아한 건축물이다. 파루박물관 옆에 구 맥주박물관이 있고 파루성벽이 구시가지 둘레를 싸고 있다. 성벽 끝에 있는 아르쿠두헤포조는 아치형 문이다. 최초의 성벽은 로마시대에 쌓아졌고 오늘날 남아 있는 파루성벽은 9세기에 작은 무슬림왕국의 왕자 벤 베크르가 통치할 때 쌓아졌다. 아르쿠두헤포조 북쪽에 있는 벨마르수궁은 1912년에 유명한 건축가 마누엘 조아킹 노르트 주니오르가 설계하여 지어졌다. 구시가지의 북쪽에 자리한 카르무교회는 알가르브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 중 하나이다. 이 교회는 1713년에 안토니우 페레이라 다 실바 주교에 의해 세워졌다. 이 교회 한쪽에 뼈의 예배당이라는 뜻의 카펠라두스오수스가 있다. 이 예배당의 내부 벽에는 해골이 무수하게 박혀 있다. 파루의 요트항 가까이에 하말류오르티강 해양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1889년에 세워져 알가르브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선박과 항해 장비, 어업에 관한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내 리베르다드광장에 알가르브 지역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1962년에 문을 열었고 전통적으로 어업과 농업, 수공업 등에 쓰이던 도구와 복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실물과 함께 많은 사진이 수집되어 있어 이를 통해 알가르브의 민속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파루 시내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진 에스토이에 19세기에 지어진 에스토이궁이 있다. 이 궁은 1977년 국가적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에스토이궁은 호텔로 쓰이고 있고 궁 앞에 드넓은 정원이 있다. 에스토이궁 서쪽에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밀레우의 로마 유적이라고 하는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건축물 일부가 남아 있다. ■ 파로 호텔 체크인 후 휴식, 자유시간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8일 파로 - 세비야(4시간30분) |
■ 조식후 세비야 이동 - 약 2시간30분 세비야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이다. 과달키비르강(江) 어귀에서 87km 상류 연안에 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중심지로 번창하고, 그 뒤 서(西)고트(5~8세기)·무어(8~13세기)의 지배를 받았고, 12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모은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의 탑 등이 건조되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했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보수적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 세비아 도착후 호텔 체크인, 자유시간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2룸,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19일 세비야 |
■ 전일정 자유시간 - 주요 관광지 인솔자 안내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세비야에서는 주차및 교통 문제로 렌트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세계 3대 대성당 중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성당으로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다. 12세기 후반에 이슬람사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다. 오랜기간동안 건축된 만큼고고딕, 신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섞여있다. 스페인광장 (Piazza di Spagna)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 꼽히는 광장이다. 1992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장에는 아니발 곤살레스 동상을 거점으로 넓게 펴진 광장과 정중앙에 광장을 장식하고 있는 분수가 볼만하다. 과달키비르강가의 세비야를 지킨 망루 황금의 탑 히랄다는 '바람개비'라는 뜻으로 12세기 말 이슬람교도 아르모아드족이 만들었다. 원래는 이슬람사원의 첨탑이었으나 헐지않고 그대로 사용하다가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이 플라테스코 양식의 종루를 설치했다. 28개의 종과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 종루에서 보는 세비야의 풍경이 멋있다. 세비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높이가 98m나 된다. 탑의 웅장한 크기로 건설하는 데만 약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탑 위로 올라가 세비야의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2룸,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20일 세비야 - 론다(1시간30분) - 코르도바 |
■ 조식후 론다 이동(약 2시간) 론다 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 론다. 작은 도시이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협곡과 그 위로 우뚝 솟은 건축물들이 만들어 내는 장관은 가히 압도적이다. 세비야에서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론다. 아슬아슬 공중을 산책하듯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색다른 스페인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누에보다리 120 깊이의 협곡 밑바닥까지 닿은 거대한 다리는 전 세곈 모든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장소이다. 론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론다는 언덕위에 지은 요새 도시이다.평균해발이 700m가 넘는 자연 요새라고 말 할수있다.안달루시아 지방들이 다 그러하듯 론다 역시 게르만족 서고트족이 모여 살다가 8세기경 아랍민족의 지배를 받았기에 아랍문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또한, 론다는 세비야와 함께 투우의 고장이다. 특히 론다의 투우장은 178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라고 한다. ■ 중식후 코르도바 이동 (약2시간30분) 코르도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중앙부, 과달키비르 강 하안(河岸)에 위치하는 도시. 8세기 초 이슬람 교도에 의해 정복되어 756년에 수립된 후, 우마이야 조(朝)의 수도가 되었다. 8~10세기가 황금시대로, 이슬람 세계의 학문과 예술 중심지의 하나였다. 1236년 그리스도 교도에 의해 멸망당하여 그 번영은 종말을 고했다. 아브드 ∙ 앗 ∙ 라흐만 1세(Abd al-Rah-man Ⅰ, 재위 756~788)에 의해서 785년경 창건된 『코르도바의 대모스크』는 이후 몇 번에 걸쳐서 확장되었지만, 스페인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그외 시내에는 알카사르, 로마 시대의 다리와 보루(堡壘), 고고미술관, 파티오(중정[中庭])를 갖춘 흰(白)벽의 민가가 있는 아름다운 구(舊)시가 등이 있다. ■ 코르도바 호텔 체크인 휴식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제 21일 코르도바 - 톨레도 |
■ 조식후 톨레도 이동 - 약 4시간30분 톨레도 톨레도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지역에 있는 도시다.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제국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독교, 이슬람, 유태인 문화가 발달했던 ‘3개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에 이어 542~725년에는 서고트족 왕국의 수도였으며 서고트 종교회의가 열린 곳이다. 검 생산으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관광 기념품으로 많이 팔린다. 톨레도는 카르페난 부족의 마을로 톨레툼이라 불렸으나 기원전 193년 로마군대가 켈트족 연합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후 로마제국에 합병됐다. 로마인들은 톨레툼에 광장, 성벽, 공중목욕탕, 수로 시스템을 건설했다. 톨레도의 로마시대 광장은 히스패니아에서 가장 큰 것으로 길이 423m, 너비 100m에 달했다. 이곳에서 주요 휴일에 마차 경주가 벌어졌다. 관중석은 15,000명을 수용하는 규모였다. 로마시대 톨레도는 지방의 수도가 아니었지만 비중이 큰 도시였다. 3, 4세기 성내에도 대저택이 들어섰고 성 밖에도 대별장이 들어섰다. 톨레도 구도심에는 로마시대부터 사용하던 지하실, 골목길, 우물, 목욕탕, 고대 송수관이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서고트족시대인 400년과 527년 톨레도에서 종교회의가 개최됐다. 톨레도는 서고트 왕들의 주요 거소였다. 테우디스 왕은 546년 톨레도에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법령을 발표했다. 아타나길드 왕은 568년 톨레도에서 사망했다. 이처럼 왕들이 톨레도에 머물렀지만 톨레도는 이베리아 반도의 수도가 아니었다. 테우디스 왕과 아타나길드 왕 모두 세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우비길드 왕 시대에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 세력이 미쳤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이 도래하기 전까지 톨레도는 이베리아 반도를 통할하는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다. 톨레도에는 많은 성당과 교회, 수도원, 병원, 미술관, 박물관, 유대교 회당, 무덤, 모스크, 성, 궁전, 요새, 탑, 망루, 성문, 다리 등 역사 유적이 있다. 그중에는 60구의 왕자, 수녀 등의 미이라가 양호한 상태로 보관돼 있는 산 안드레스 교회도 있다. 소설 ‘돈키호테’ 초판이 발행된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정부는 소설에 나오는 주요 지역을 잇는 길을 만들었다. 돈키호테 길로 명명된 8개의 길 가운데 2곳이 톨레도에 있다. 톨레도는 전형적으로 겨울이 추운 아열대기후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강수량은 적으며 가을과 봄에 집중된다. 1월 아침 최저평균기온은 1.3°C, 7월 낮 최고 평균기온은 34.6°C에 달한다. ■ 톨레도 호텔 체크인후 자유시간 - 주요 관광지 인솔자 안내 (시내교통비, 입장료 개인 지불) |
숙소 : 4성급 호텔 2인1실 트윈 또는 더블베드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석식 - 개인매식 또는 취사식 |
5월01일(목) 제 22일 톨레도 - 마드리드 공항 - 인천 |
■ 조식후 11시 마드리드 공항으로 출발 - 약2시간 ■ 공항 도착 후 항공편 체크인 귀국 : 마드리드 출발 : 5월 1일(목) 출발 16:10 / 도하 도착 23:55 - 2시간45분 대기 도하 출발 5월2일(금) 02:40 / 인천 도착 17:35 |
식사 : 조식 - 호텔식 / 중식 - 개인매식 / 석식 - 기내식 |
5월02일(금) 제 23일 인천 도착 |
인천 도착 5월2일 17:35 인천 도착 |
식사 : 조식, 중식 - 기내식 |
첫댓글 함께 합니다~
동행 감사드립니다
아희외1인 신청합니다
아희님과 지인분의 신청 감사드립니다 ^^
참석자 : 6명
인솔 : 버미, 보라놀님
남 :
여 : 로즈마리님, 천사님 2명
동행 : 아희님외 1인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