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칸 고택 살펴보기
오늘은 경주 최부자 고택을 가는 날이다. 경주역에서 탄 택시 안에서는 경주빵의 원조가 황남빵이다 아니다로 토론이 시시콜콜하다. 기사님이 좀 아는 척하는 부분이 있지만, 오늘은 여행 첫날 기분 좋은 날이니 눈 감아 준다. 일십오만 원을 내면, 하루 경주 시내를 완전 정복 시켜주겠다고 한다. 우린 다음 코스가 양남 주상절리라 최부잣집까지만 부탁하니 기대에 못미치는 눈치다. 입구에 내리니 오른편에 '요석궁'이란 반가 한정식집이 으리으리하다. 겉으로만 봐도 음식값이 비쌀 것 같아 주눅이 든다. 그래도 옛날 반가의 한정식이라니 구미가 당겨서 자세히 보니, 자미 1인분이 69,000원이고 천미 1인분은 120,000원이다. 필자 같은 필부필부가 선뜻 들어서기에는 다소 부담이 된다. 그것도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니, 꿈 깨고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해야겠다.
다음은 '대몽제'라는 최씨 가문의 저온 숙성 가양주 교촌 도가가 있다. 진열된 항아리 속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항아리에 한지로 뚜껑을 만들어 아주 예스럽다. 경주시 광산구 평동에서 찹쌀을 직접 재배해서 숙성시킨다고 한다. 어쩐지 안동 소주보다 일본의 사케보다 훨씬 맛이 깊을 것 같다. 시음의 친절을 베푼다면, 한 병쯤 사줄 수도 있겠는데 아쉽다. 관광객의 이기적인 생각은 꾹꾹 눌러두어야겠지.
흔히 경주 최부잣집이라고 불리는 고택은 1700년경 아흔아홉 칸으로 건립된 경주 최씨의 종가이다. 조선시대의 양반 집이 잘 보존되어 있으나, 사랑채와 별당은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조선 중기 무렵부터 12대 동안 만 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최부자 고택은 우선 사랑채에 '용암고택(龍巖古宅)'과 '대우헌(大愚軒)'과 '둔차(鈍次)의 편액이 방마다 걸려 있다. 용암고택은 용의 정기가 스며드는 집이라는 뜻이고, 대우헌은 '크게 어리석다'는 뜻으로 독립운동가인 최준 공의 조부인 최만희 공의 아호이다. 사리사욕을 따지지 않는 공적인 헌신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둔차는 '재주가 둔하다'는 뜻으로 최준 공의 부친인 최헌식 공의 호이다. '둔한 2등'이라고 직역되며, 1등만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이다. 역대 선조의 호를 통하여 부자이지만,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채 측면에 영어, 일어, 중국어, 한글로 새긴 네 개의 간판이 각각 걸려 있다. '육훈(六訓)'이라고 쓴 여섯 가지 행동 지침이다.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게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백 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사랑채 마루가 비교적 넓지 않은 걸 보니, 통나무를 쓰니 그렇게 긴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에 이해가 된다.정원 문화는 정원은 소박하고 후원이 훨씬 넓고 품격이 높다.
(사랑채 정원)
(대청마루)
(안채 정원과 굴뚝)
(안채 정원과 장독대)
(본채와 행랑채 사이 일광문)
(수채 구멍(물이 흘러 내려가는 길)
(하수도같은 장치로 집안의 물이 집밖으로 나가는 물길)
(툇마루에 놓인 이 물건은 무엇인지 모름)
(후원이 잘 꾸며져 있다)
(화장실인데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다)
최부잣집에서 나오니, 큰 내가 흐르고 있으며 징검다리와 월정교가 운치를 더해 준다. 월정교는 야경이 멋지다는데, 다음 코스를 향해 아쉬움을 두고 카카오 티를 부른다.
첫댓글 동네 부자는 노력과 운과 때가 맞으면 가능하지만 나라 부자는 하늘의 도움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동네 부자는 부자가 된 것은 자신이 남들보다 머리가 뛰어나고 재주가 많아서 됐다면서 대부분 오만방정을 떨면서 옛날 거지 생활할때 생각을 못하고 자신보다 갖지 못한 자들을 업신여기면서 인색한 짓을 해 남들의 빈축을 받지요 이런 꼼생이 부자는 돈을 모을 줄만 알아서 일수놀이나 고리대금을 하면서 몇푼 더 생기는 것에 즐거움을 갖지요.그러나 하늘이 낸 부자는 자신의 능력보다 하늘이 도와줬다면서 겸손하게 물질을 관리할줄 알아요.세상에는 권력으로 좋은일을 할 수 있고 돈으로 선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경주 최부잣집은 아마도 후자 쪽이겠지요.나라에는 부자가 있어야 가난뱅이도 곁들여서 살 수 있고 가난뱅이만 있으면 인심이 고약해져 어디서 돈 융통할 수가 없어요.길을 가는 3명중에 모두 빈털털이보다 한 사람이라도 가진 게 많아야 안심이 되듯 돈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이숙진 작가님은 글도 잘쓰시고 생각하는게 매우 진득하신 보기드문 작가에요
선생님, 긴 댓글 감사합니다. 경주 최부잣집은 참으로 본받을점이 많더군요.
저의 외가도 의성사촌에 아흔아홉칸 조부잣집이었는데, 그 명맥을 이어가지못하고 말았어요. 만석지기를 12대까지 지킨다는건, 그 종가의 교육이 보통 훌륭해서는 불가능하지요?
질 높은 겸손을 배우고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