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미소 짓다
신 동 선
계절이 바뀌던 어느 날 옷 정리를 하던 중 구석에서 오래전 작은 수첩을 보았다. 수첩 속에는 빛바랜 이십여 년 전의 바람이 적혀 있었다. 읽는 순간 왜 그런지 가슴이 쿵 내려앉고 머리가 핑 어지러웠다.
오래된 수첩을 꺼내 본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고, 표지를 넘기며 젊은 시절의 속마음과 마주한 순간 안타깝고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삼십 대에도 이런 마음이었네.’ ‘어느새 이십 년 세월이 훌쩍 흘러왔네….’
그사이 두어 번 개인성형외과와 종합병원 성형외과에 문의하며 성형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지만 차마 실행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삼 남매를 보살피고 지켜줘야 한다는 단 하나의 마음뿐이었다. ‘긁어 부스럼 만들어 누구에게라도 짐이 되면 절대 안 되지.’ 되뇌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후로도 몇 년에 한 번씩 무슨 일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심란해질 때면 콤플렉스가 솟구쳐 올랐다. ‘모두가 사는 게 팍팍하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아이들 성장하는 데 보태고, 노후도 준비해야지…,’ 간절한 속내와는 달리 현실은 늘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더 많았다. 그게 벌써 이십 년도 넘은 일이라니!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굳은 표정과 두툼한 뱃살을 가진 평범하고 못난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웃어도 예전처럼 환하지 않았고, 셀카는 망설이다 못 찍게 된다. 그럴 때면 속으로만 조심스럽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도 변하고 싶다. 조금만 다르게 바뀔 수 있다면….”
성형수술.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용기보다 앞서는 건 늘 자책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괜히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면 어쩌나.’,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데 굶어서라도 살을 빼야 하나.’, ‘겉모습보단 마음이 중요한 거지.’ 공허한 말들로 애써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거울 앞에서는 한숨 쉬고 어깨를 구부렸다.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 전 아이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끼리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하고 싶었던 거 이제 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성형수술, 엄마가 몰래몰래 검색해 보고, 휴대폰으로 의사 리뷰도 보고, 그런 거 다 봤거든. 우리가 비용 다 알아보고 준비했어.”
순간, 목이 메었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오히려 더 애틋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 안 해도 예쁘다.’라는 말 대신, “지금도 하고 싶다면 하자.”고 말해 준 삼 남매의 격려와 선택이 눈물 나게 고마워 할 말을 잃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수십 년의 망설임이 봄눈처럼 녹았다.
수술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 침대에 누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따뜻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겉모습 바꾸는 게 뭐가 대수냐.’ 하지만 이 수술은 단지 몸매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나 자신을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
오래 품고 있던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일이 쇠뿔도 단김에 빼듯 순식간에 진행되다 보니 뒤이어 오는 통증과 부작용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예전의 회복 잘 되던 생기 있는 피부가 아닌 것을 간과했다. 성형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의 약값에 계속 놀라고, 부작용에 대처하느라 급하게 서울을 오가는 횟수는 또 몇 번이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하루 만에 서울을 다녀오고, 비상시에 대처할 의료 기술이 있는 시절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이것저것 아이들이 챙기고 해결해 줄 만큼 성장해 있으니 또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통증에 나도 모르게 으윽 신음이 새어 나오지만, 통증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활기차게 앞으로의 삶을 즐기고 싶다.
거울 속의 내가 달라졌다. 체형은 남들은 모를 정도로 미미하게 달라졌지만, 그보다 더 변한 것은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될 수 있으면 아침은 제철 음식 재료로 건강식을 챙기고,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고 싶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내 변화를 함께 응원해준 가족이다. 그들의 격려와 사랑이 없었다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을 것이다. 성형수술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이 다시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이끌어주었다.
나는 이제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다. “반가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