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해서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반성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야,
적어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반성의 결과는, 미숙한 것이 무수히 떠 오를 터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반성 후에,
반성한 일에 대해서 자신(自信)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지 어떤지에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는 목적은,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1주간의 반성은,
이른바 원인의 발굴이며, 원인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에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해도,
그 이후의 실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自信)을 가질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난도 아니루다도 깊게 수긍했다. 킨비라가 말한 대로였다.
문제는 반성 후의 생활이며,
이것이 제멋대로 된다면, 아무리 반성해도 아무 가치도 없었다.
킨비라의 걱정은, 아난도 아니루다에게도 들어맞았다.
세 사람은 침묵에 빠져,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에 잠겼다.
숲 속은 저녁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이들은 밤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모닥불 준비나 식사 준비도 아랑곳없이 생각에 잠겼다.
먼저 아난이 입을 열었다.
" 킨비라가 걱정하는 것은 나나 아니루다도 같다고 생각한다.
의지 문제는 나 역시 킨비라보다도 약하다.
그러나 그 문제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정말로 알 수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들은, 아ㅡ 나빴다' 하는 것만으로,
지금과 같이, 원인 추구를 위해 뼈를 깎는 반성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
서로가 결점이나 해온 일에 대해 진지하게 파내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성의 태도만으로도,
이제부터의 생활에, 자신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부터의 생활은 어디까지나 미지수이며,
이 미지수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한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떠냐?
잘못의 원인은, 확실히 뿌리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잘못은,
자기를 항상 냉정히 하는 것을 잊어먹고
그때그 때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일상의 세세한 생활 속에 있어도,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고 해 나가면,
그리 걱정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 아난이 말하는 대로다."
킨비라는 밝은 얼굴로 대답하였다.
아난이 지적한 것처럼,
이때까지의 킨비라는, 반성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붓다 입문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성하고,
이렇게 반성해 보니, 자기의 결점이 도처에서 얼굴을 내밀어,
참을 수 없는 굴욕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인생은, 해 보지 않은 일은 알 수가 없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것 저것 생각해 보아도,
십중팔구까지는 기우로 끝나는 일이 많다.
그는, 아난의 말을 듣고서, 생각을 고쳐, 해 보자고 마음속으로 맹세하였다.
아니루다도 같았다.
그 역시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물러날 수는 없다.
첫째 그의 경우는, 형인 마하 나마를 제쳐 놓고 나온 몸이다.
이제 와서 뻔뻔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 세 사람 모두 열심히 하자."
아니루다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곧 일어나서 나무를 주으러 숲 속 깊이 들어갔다.
그들의 생활은 완전한 야숙이다.
이슬이나 비를 막을 천막도 없고 도구도 없었다.
먹는 것은 날 것 그대로가 아니면 굽거나 풀잎으로 싸서 쪄 먹는 것이다.
걸식하기 위해 농가 문전에 서면,
시주하는 사람도 이것을 알고 있어서 생쌀은 절대로 시주하지 않는다.
취사가 되면 곧 입에 넣을 수 있는 것만 주는 것이다.
고구마나 야채류는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시주한다.
하권 p261~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