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기술을 바라며
강 경 화
자주 이용하는 <다음 카페>에서 수필 선생님의 <즐거운 병원 길>이라는 글을 읽었다. 병으로 병원 가는 길이 번거롭고 때론 두렵기까지 하지만, 마지못한 길임을 나 역시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병원 길이 즐겁다고?’ 의아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니 차츰 마음이 놓이면서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난다. 심한 허리 통증으로 몇 군데 병원을 다니시다가 우연히 찾은 한의원에서,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를 만나신 모양이다. 병원에 가실 때마다 한결같은 친절과 정성이 가득 담긴 치료를 받고 몸은 물론 지친 마음까지 위로를 받는 병원 길이라니, 내 기분까지 좋아지고 깊이 공감하는 한편으로, 내가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는 삶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한 분이셨다, 인생 백세 시대를 말씀하시며 운동과 식습관 관리는 물론, 몹시 검소하면서도 건강 기능 식품과 고가의 의료기에는 지출을 아끼지 않으셨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모든 일에 열정이 넘치고 활동적이던 내 엄마이셨다.
팔십을 넘긴 어느 날 눈길에 넘어져 다친 후 몇 번의 수술과 장기 입원으로, 마치 날개가 꺾인 듯 약해지셨다. 그 와중에 대학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뇌혈관 MRA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는 결과를 받게 된다. 상담차 찾은 신경외과에서 꽈리 모양의 뇌동맥류가 있다는 놀라운 진단을 듣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기다렸으나 회전의자만 빙빙 돌릴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위험의 정도를 물으니 1에서 10까지라 했을 때 8 정도란다. 더욱 놀라 어떤 경우 위험하냐는 질문에는, 잠자다가도 화장실에서 대변보다가도 파열될 수 있다는 답변을 남의 일인 듯 아주 태연하게 한다.
일상생활 중에도 위험하다는 말은 이미 불안하고 약해진 엄마에겐 엄청난 충격이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라, 그럼 무엇을 어찌해야 하느냐고 매달리듯 질문해보았다. 그 연세에 수술할 것도 아니고 따로 방법은 없으니 맛있는 거나 드시고 그냥 사시면 된단다. 그때 의사의 말투나 표정은 ‘그만큼 사셨는데 뭘 더 바라느냐?’로 느껴질 만큼 기분이 나쁘고 어이가 없었다. 더 할 말이 없으니 빨리 나가기를 재촉하는 너무나 냉정하고 성의라곤 전혀 없는 의사. 도리없이 발길을 옮기는 우리 모녀를 향해, 민망해 어쩔 줄 몰라 위로하던 간호사의 표정이 떠오른다.
심각한 것은 엄마가 그 길로 할 말을 잃고 참담한 심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바꿔 드리려고 나름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해도, 쇼핑가자는 말에도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듯 묵묵부답, 마냥 침울해하시니 너무 속이 상했다.
팔십이 넘은 연세라 수술을 권할 수 없고 다른 치료도 큰 의미가 없으니 받아들이고 맘 편히 지내라는 의견이라는 건 물론 안다. 그렇다 해도 언제 어디서라도 잘못될 수 있다는 말을, 노령의 나약한 환자에게 그리 무심하게 전해야만 했을까? 본인의 부모여도 그랬을까? 최소한 주의 사항이라도 알려주며, 두려워하는 환자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상담 결과를 묻는 형제들과의 통화에서 내용을 그대로 전하니 모두 분개하며 항의하겠다고 한동안 떠들썩하였으나, 무슨 소용 있겠냐며 설득하고 말렸던 게 잘한 건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 의사는 아직도 그런 방식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을까?
그 일 이후 엄마는 여러 가지 병환으로 병원을 오가며 많은 의료진을 만났고, 내 부모처럼 성의를 다하시는 선생님이 진료를 보실 때는 나도 엄마도 마음이 편안하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시간이 곧 돈이며, 수많은 대기자를 위해서라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종합병원의 현실을 엄마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7년을 더 사셨지만, 위험하다던 뇌동맥류가 영향을 미친 건 결과적으론 없었다.
그것도 유전이라는 말이 있더니, 매년 직장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에서 나 역시 뇌동맥류가 발견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마침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기압의 변화가 위험할 수 있는지 걱정되어 병원을 찾았다. 비행은 관계없는데 고성으로 노래 부르기, 풍선 힘껏 불기 등만 피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받으면 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다. 가벼운 맘으로 병원을 나서면서 ‘그때 그 선생님도 이렇게 설명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허리를 삐끗하여 찾은 정형외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고가의 MRI 촬영이 필요하단다. 그전에도 과잉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던 터라 신뢰가 가지 않아 결정을 미루니, 방치하면 걸음을 못 걸을 수도 있다 한다. 활동적인 내겐 충격적이며 마치 협박처럼 느껴졌다. 두려움에 검사 CD를 요청해 다른 병원을 찾았다, 영상을 확인한 선생님은 이 정도로 MRI 촬영까진 할 것 없다며 피해야 할 자세와 나쁜 생활 습관을 고치라는 처방을 하셨다. <건강한 허리 만들기, 꼭 지켜야 할 사항. 요추 관리. 운동 프로그램>이라는 유인물을 주시며, 참조하라는 당부도 하신다. ‘이 병원은 다르구나.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처방대로 실천하고 노력했더니, 다행히 탈 없이 잘 걷고 더 이상 허리를 다친 일도 없다.
같은 검사 결과도 전하는 방법에 따라, 나약한 환자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환자의 건강 회복을 위해 그에 적절한 방법을 알려주는 의사가 있고, 영리 목적을 위해 환자의 답답한 심경을 이용해 고가의 검사를 권하는 의사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후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위험의 정도를 최악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의료진의 고충도 있겠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원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이 모두 불안정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의료진의 도움을 구하는 환자는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그 직업을 택했다면, 약한 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돕는 의사가 참의사가 아닐까? ‘의술’은 물론이고,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