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북정(拱北亭)과 공북헌(拱北軒)
1. 공북정(拱北亭)
拜鵑亭(배견정)
배견정(拜鵑亭)은 일명 공북정(拱北亭)이라 하며 재실(齋室) 동쪽 50보가량 거리에 있고,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봉릉(封陵) 초에 창건한 것이지만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지고 무너져서 다만 형지(形址)만 남았던 것을 부사 박기정(朴基正)이 중건(重建)하고 뒤쪽 바위에 배견암(拜鵑巖) 3자를 새겼다. <寧越府邑誌(영월부읍지)>
2. 공북헌(拱北軒)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공북헌(拱北軒)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 건축 / 가옥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8.05.15
소재지 경상북도 봉화군 사제길 12 (봉화읍)
소유자(소유 단체) 우계이씨 대종손 . 관리자(관리단체) 이홍선
拱北軒(공북헌)은 桃村李秀亨(도촌 이수형 1435~1528)이 1455년(단종 3) 수양대군에 의한 왕위 찬탈이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단종의 능침이 있는 영월 쪽(북향)으로 지어 평생을 숨어 살던 옛집이다.
공북헌이란 이름은 방과 마루에 대해서
“이 방을 곧 높고 깊은 千(천). 室(실)이라 하고 저 마루를 두 손으로 맞잡고 평생토록 단종에 대한 공경하던 뜻을 표해온 拱北軒이라 하라”고 하였던 것에서 유래한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도촌이 낙향한 15세기 중반으로 보이며, 창건 후 1768년과 1900년대 초에 중수하였다.
공북헌은 정면 1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맨 안쪽 남향에 온돌방 1칸을 놓고 그 앞쪽 북향에 마루 1칸 반을 두었다. 마루는 북쪽 면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는 흙벽으로 막혀 있다. 마루를 방보다 반 칸 정도 더 길게 빼내 공간의 깊이를 더함으로써 폐쇄성이 더 높은 마루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온돌방은 더욱 엄숙한 정적 공간이 되어 마치 감실형의 사당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북향으로 집을 짓고 북쪽으로만 개방하여 마루와 실을 배치한 평면 구성과 3면을 벽으로 하고 북쪽으로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건물구성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충절의 특수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한 아주 독특한 구성이다.
● 拱(공) : 두 손 맞잡을 공
공북헌(拱北軒)
동산(東山) 서쪽에 있는데, 곧 서령(暑令) 이수형(李秀亨)의 옛집이다.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의 기(記)에, “그 집의 제도가 북향인데, 북쪽 벽에 문 하나를 내고 출입하였다. 아마도 당시 스스로 죽지 못한 신하라 하여, 평소 생활하면서 오직 영월(寧越)의 산천만을 대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지금에 마땅히 ‘공북(控北)’이라 불러야 하겠다.”
하였다. 인용 < 고전번역서 > 재향지 > 순흥지 >궁실(宮室)ㆍ누정(樓亭)
우리 임금 북신(北辰) 향한 지극한 정성 / 我王拱北罄丹誠
<계곡선생집 제26권 / 칠언 고시(七言古詩) 47수 성절 축하 사절로 황도에 가는 이공 춘원을 전송하며[送聖節賀使李公春元赴皇都]>
천랑성은 북두성 끼고 있다고 / 狼星拱北辰
< 고전번역서 > 해행총재 > 간양록 > 적중 봉소 > 난리를 겪은 사적[涉亂事迹] >
위모(魏牟)의 적련(積戀)은 공북(拱北)의 정성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주-D018] 공북(拱北) : 뭇별이 북두성을 옹위하는 것처럼 신하가 임금을 모시는 것을 말하는데, 《논어》 〈위정(爲政)〉의 “덕정(德政)을 펴게 되면, 북두성이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뭇별이 옹위하는 것처럼 될 것이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17] 위모(魏牟)의 적련(積戀) : 위(魏)나라 중산공자(中山公子) 모(牟)가 계속해서 황궁을 연모했다는 말인데, 그가 첨자(瞻子)에게 “나의 몸은 강해 가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대궐 아래에 머물러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身在江海之上 心居乎魏闕之下 奈何〕”라고 질문한 내용이 《장자》 〈양왕(讓王)〉에 나온다.
<고전번역서 > 계원필경집 > 계원필경집 제19권 > 장(狀)ㆍ계(啓)ㆍ별지(別紙) >또〔又〕
비록 달려가 하례(賀禮)하는 데 참여하지는 못하나, 정은 공북(拱北)에 깊으니, 수(壽)하고 강녕(康寧)하도록 축원을 갑절이나 드립니다.”
[주-D006] 공북(拱北) : 모든 별이 북극성(北極星)으로 향하는 것과 같이 사방(四方)의 백성들이 천자(天子)의 덕화(德化)에 귀의(歸依)하는 것. 공진(供辰).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18년 무술 > 2월 25일 >형조 판서 윤향 등이 표문ㆍ전문을 받들고 경사에 가다
황제의 궁전[紫宸]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항상 공북(拱北)의 충성(忠誠)을 바치겠습니다.” 하고,
<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 세조 3년 정축 > 6월 11일 >공조 판서 성봉조ㆍ중추원 사 기건이 명의 채단을 사례하는 표문을 올리다
첫댓글 건물의 이름표에 헌(軒) 자를 붙이는 것은 조정의 허락(비답, 교지)을 받았다는 뜻이다.
민가. 백성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