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테두리 안에서 거대한 성으로 지어져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성) 곧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밖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사랑을 추구할 방법이 없으므로 오직 미움밖에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당을 지어 열심히 모일뿐입니다.
그야말로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패거리 이익집단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는 성전들(엡2:22)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자들이 모여
집단지성이나 집단감성으로 마귀의 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요16장의 중요한 포인트는 임무교대입니다.
“나”(예수)라고 하시던 분은 가시고 다른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라는 분은 오십니다.
요7장에서 말씀하시던 내 때라고 한 어떤 때, 곧 그 때를 말합니다(요7:8)
성경에서 오늘 날이라고 하는 이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들 다시 오실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흰 보좌 심판에 대해서는 믿고 바라고 있는데
이 모든 날 마지막 날 곧 오늘이라 하는 날 성령이 임재 내주 역사하시는
구원의 날 이 한 날을 모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날입니다.
이 날이 세상 몰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가운데 임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비밀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셨고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모든 장애물을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걷어치우신 다음 성령이 이를 완성 해 가십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추수)는 오직 그리스도 한분이 되십니다.
요16:1-4절은 세상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조직체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시민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임금인 사단에 의해 장악된 어두움에
속한 무리들입니다. 요16:2절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조직으로부터 쫓겨나게 됩니다.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해 져서 이스라엘을 쫓아내듯이 세상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미워하므로 그리스도에게로 오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지금 알새 모를 새 그런 현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16:5절부터는 가는 나, 곧 육신으로 오신 예수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임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시면 보혜사를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6:7절)
보혜사 곧 성령은 그가 와서 하시는 일은 먼저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입니다.
1) 믿지 않은 죄 곧 말씀을 받지 않은 죄를 책망하십니다.
곧 말씀을 받을 빈방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불신자 인데 이들을 책망하십니다.
2)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사람을 책망하십니다.
주님이 가신 다음 보내신 진리의 성령은 영생이 하나님의 명령이며(요12:50)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임을 알게 하십니다.
3) 세상임금을 심판합니다.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알지 못하는 죄를 계속 짓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고 아들을
순종하여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르지 않으므로 정죄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소속이 세상 임금의 정사와 권세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와 같은 신자(信者)들이 하나님의 자녀(神子)가 되지 못하고
마자(魔子)들로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게 바로 음녀들이며 뭉치면 바벨론입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문을 양쪽에 두고 그리스도와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본다고 우기고 믿음의 옷도 입었답니다.
세상은 세상의 임금인 옛 뱀 마귀 사단이 심판을 받으므로 함께 심판을 받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을 확실하게 구분해 버리십니다(요16:8-11)
그러므로 이미 요한복음적인 심판은 시작이 된 것입니다. 바로 요3장부터입니다.
그 다음 보혜사 성령이 택한 자들에게 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1) 진리 곧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십니다(요16:13)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심판하십니다(롬2:2) 그러나 불의로 진리를 막으면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임합니다(롬1:18) 오직 예수하며 입으로 달달 외운다고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롬2:8)를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따분해 보이고 무가치하게 보이고 담대하지도 확신에 차 있지도 않는 모습들입니다.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어 그 의로 말미암아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함에도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의 그늘이 그 위에 너풀거립니다(요3:36)
제가 며칠 전에 어느 친구한테 만일 노인성질환으로 스러지는 사람이라면
어느 종교든지 그 사람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단언하건데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어 하나님께 오르락내리락 할 수만 있다면
결코 죽을 병 외에 10년은 앓다가 죽는다는 사회통념하고는 영영 바이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진리를 알고 영생을 보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건너편에서 죄와 사망과 상관이 없이 의와 생명의 왕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부정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기독교가 참담하다는 뜻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영광은 가치성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영적인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새 언약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므로 그의 영으로 영광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나아가는 복음의 광채가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질그릇인 몸 뿐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말해도 자신을 예수의 죽음에 넘겨주지 못합니다(고후4:10)
질그릇인 육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보배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원하여 십자가를 집니다.
주기도를 반복하므로 하늘의 뜻이 이루어져야만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물이
되시므로 드디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마6장)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그 사람의 보화는 언제나 세상에 있습니다.
아무리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설교를 해도 목사를 앉혀 놓은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는 이야기 빼면 없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 식사시간에 제일 허탈한 시간이 바로 그때 입니다.
예수를 파는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한 자이며,
갈릴리로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도 아직 3일 후의 영광 곧 보혜사 성령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의 영광을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우리 속에 실제화 됩니다.
목사는 하늘나라에 관한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증인들인데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증거해 왔어도 그 앞에서 무얼 먹으면 어디에 좋고 어떤 걸 먹으면
미용에 좋다는 이야길 듣고 있다는 건 가히 고문과 같은 시간들인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 놔도 주야장천 먹는 타령입니다.
목사 앞에서 어떻게 하면 성령이 임하시는 자리로 옮겨 갈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어떻게 믿으면 의가 나타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평강을 얻어
그로인해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요리 문답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희락 곧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물어야 정상이죠.
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해산의 수고를 통한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옵니다.
계12장은 해 입은 여자의 자녀들이 나옵니다. 남은 자들이며 뱀 곧 용의 추적대상입니다.
마귀가 땅으로 내려 쫓겼기 때문에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고
땅과 바다는 화가 있을 것이라(계12:12)는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요절과 같습니다.
땅에다가 장막을 짓는다고 하는 패거리들이 시온산에 선 144,000에 들어간다고 떠듭니다.
요한계시록이 새 언약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성경에 무식하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강력하게 말하건대 만일 계시록이 새 언약이라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우리는 이미
그 안에 한 단으로 묶여 올라가 주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았습니다(엡2:6)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빌3:20) 히브리서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하고 부르고 있습니다(히3:1) 자신이 하늘에 속했는지
땅에 속했는지를 모르면 만약 하나님의 간섭 없이 지금 죽는다면 불못행입니다.
신학으로 천상교회는 완전한 교회이며 지상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건 세상의 임금이 마귀 곧 옛 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그 영광으로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뱀은 흙이 먹거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는 현재 고난에 노출이 되어 신음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이 땅의 환난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지만 성령의 인침을 받고
성령이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신다면 능히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이길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참 믿음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